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우리 모두 태어난 이상 풍파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풍파.
말 그대로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다 그렇다. 불행 앞에서, 인생 앞에서 공평하다.
44% (ebook)
독서모임 주제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올라와 이에 관해 좀 생각해 보았다.
인생책이랑 비슷하기도 한데 약간은 다르다.
생각난 김에 꼽아보니 아래와 같다.
1. 어느 고쿠라 일기전 - 마쓰모토 세이초
나의 이메일 주소 kokura 의 기원이 된 책.
나는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책 속엔 인생의 답이 있다길래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해답은커녕 오히려 더 모르겠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인간 승리 이야기도 아니고, 못되게 굴던 빌런들을 핵사이다로 때려 눕히는 내용도 아니고, 묵묵히 무언가를 했더니 결국엔 세상이 알아주었더라 도 아니다.
물음표로 가득 찬 나에게 또 하나의 물음표를 더해 준 나의 인생책.
2.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누가 나의 이십 대를 묻는다면 이 책을 보라고 하겠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초중반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물론 약간의 소설적 각색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나는 한국이 너무 추워서 호주로 이민갔다. 조선 땅에 태어났다고 조선에서만 살아야 되는 건 아니라더라.
3.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1번과 2번의 끝에 이 책이 있다. 1번 책에서 계속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그 수 많은 질문들의 해답 (역시 책 속에는 답이 있다!) 그리고 2번 책이 그리는 내 젊은 시절, 기존 가치관들의 대전환을 만들어준 책이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여기 나오는 백사장(황정민 배우 분)의 명대사가 있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맞다. 삶이 고통이다. 하루하루가 괴롭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고통을 없애주진 않는다. 대신 고통스러운 삶을 껴안도록 도와준다.
고통을 견디는 비결은 "의미"이다.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인내할 수 있다.
4. 다윗과 골리앗 - 말콤 글래드웰
위 세가지 책과는 결이 좀 다르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피해의식을 떨치는데 도움을 준 책.
나는 왜 골리앗이 아닐까? 나는 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좀 더 예쁘지 않을까? 나는 왜 좀 더 날씬하지 않을까? 나는 왜 좀 더 머리가 좋지 않을까? 나는 왜 글솜씨가 없을까? 나는 왜 성격이 이 모양일까?
"나는 왜"로 시작하는 육만삼천칠십여섯 가지 질문이 매일 우리를 괴롭힌다.
이 책을 읽은 뒤에도 "오~ 다윗이 골리앗보다 좋구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내용은 아니다.
일단 무조건 골리앗이 좋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좋고 예쁜게 못 생긴거 보다 좋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하지만 다윗도 다윗 나름대로 싸워볼 여지가 있다.
가진 게 없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 과연 그건 어떤 상황인걸까? 각자 찾아보자. 그 걸 찾는게 다윗으로 태어난 우리들의 인생 숙제다.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a lazy dog.
책에서 100번도 넘게 나오는 문장 ㅎㅎ
아름다운 폰트의 비밀을 알고 싶어 읽었는데 영자 폰트에 한정된 이야기라 조금 아쉬웠다. 일본인인 저자는 현재 독일에서 알파벳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며 살고 있는데 처음에 로마자 서체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런던에 갔을 때 "일본인인데 로마자 서체의 디자인을 알 리가 없다"라는 반응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 했나 보다. 이 책 역시 읽다 보면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Futura 체는 깔끔하고 예쁘다.
의외로 폰트의 느낌은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 그 글자의 폭이 주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바야흐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신의 보상회로를 수시로 자극하고 중독에 빠지는 시대, 그와 동시에 더 큰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 탓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강력한 중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활용할 방법을 발명해내는 호모 아딕투스 Homo addictus 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특히 오늘날 빅테크 기업을 필두로 많은 기업이 빅데이터로부터 얻은 정교한 알고리즘 등을 활용해 디지털 중독을 경제적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전체가 디지털 중독을 연료 삼아 돌아가는 '중독경제'를 향해 질주해가고 있습니다.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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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온 중독 디자인 정리.
시핑(맛보기) => 후킹(낚아채기) => 소킹(푹 빠지도록) => 인터셉팅(현실에서 다시 데려오기)
원래 중독은 비싼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약물 중독, 쇼핑 중독, 도박 중독 등 모두 만만치 않은 금액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중독이 싸졌다! 우리들은 스마트폰 덕에 공짜로 무언가에 쉽게 중독될 수 있게 되었다.
병아리는 철망에 다가온 손가락을 콕 쪼았다. 어린 나는 돌연한 날카로운 감촉에 소스라쳐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내 손을 감싸 쥐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아가 괜찮여. 병아리가 애기 예쁘다고 그런 거여. 괜찮여." 66쪽
"예쁜 사람, 왜 그러나."
그것이 생떼의 최종 단계에서 할머니가 꺼내는 마지막 한탄이었다. 76쪽
고모나 아버지를 칭찬할 때도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장혀. 장한 사람이여.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자라는 온갖 비뚤 빼뚤한 모습을 모두 '예쁘다' 고 요약했고 분투하는 모습은 '장하다'고 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입술을 삐죽이며 '별나다'고 했다. 더 나쁘면 '고약하다'였다. ....
...할머니가 나를 야단칠 때 쓴 말도 싱거웠다.
"착한 사람이 왜 그러나."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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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를 언제나 '예쁜 사람'으로 '착한 사람'으로 보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작가의 마지막 문구처럼 그럴 때 우리는 '혼자인지 함께인지 분간되지 않는 충만함으로 가득'해 용기 내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외식만 하는 건 아니고 가끔은 집밥을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