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한국문학번역원 발행 영문 계간지 Korean Literature Now 58호에 과거 독서모임 했던 경험과 그믐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 밖의 그믐의 여러 이야기를 '문학적 경험'이라는 큰 주제 아래 부족하나마 적어 보았다.
마침 번역을 맡아 주신 분이 정슬인 번역가님이라 반가웠다.
‘흑뢰성’은 책걸상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추천을 듣고 최근 읽은 격월간 미스테리아에서도 나오고 해서 읽기 전부터 제목이 익숙한 책이었다. 불야 성 (하세 세이슈 작)처럼 일본 뒷골목 야쿠자들의 생존기를 그린 책인가 싶었지만 배경은 옛날 옛날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한창 땅따먹기에서 승전보를 울리고 있던 시기, 그에 맞서 한 성을 지키는 성주의 이야기를 그렸다.
워낙 기대를 가지고 읽어서인지 크게 울림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었다. 두께가 꽤 두껍지만 내용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성 안에서 일어난 네 개의 수수께끼를 푸는 방식이라 장편소설보다는 연작소설 느낌이다. 개별 개별 재미있지만 이 정도 두께감 있는 추리소설을 읽고 난 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밀물처럼 다가오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들은 없었다.
472쪽
저희는 다만 죽음으로도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격월간지 미스테리아 44호와 함께 내년도 달력이 왔다. 달력에는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 의 출생일과 사망일이 나와있다. 여기까진 그냥 평범한데 추리소설 내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들이 함께 표기되어 있어 재미를 준다. 예를 들면 3월 11일은 ‘용의자 X의 헌신’ 작품 속에서 에도가와 제방에서 남성 사체가 발견된 날, 5월 20일은 해리 보슈가 옛 전우 메도우스의 시체를 마주친 날. 1년 365일 모든 날에 이런 사건이 적혀 있으면 더 좋을텐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력을 보고 아! 오늘은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던이 실종된 날이구나 라며 하루를 시작하면 매우 재미있을 듯. 하지만 일 년의 모든 날짜와 연결된 사건을 다 찾으려면 미스테리아 에디터들이 너무 힘들긴 할 것 같다.
동네에서 오래된 분식집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들어가니 젊은 청년 두 명이 활기차게 일하고 있었다. 계란김밥과 새우튀김,왕잡채김말이튀김,오징어튀김을 주문.
계란지단으로 꽉 찬 정성이 들어간 김밥은 아침에 미리 싸 놓은 듯 조금 차가웠지만 튀김은 주문 받고 다시 튀겨 나와 따뜻하고 바삭했다.
마포 서강도서관은 6호선 광흥창역과 연결되다시피 한 도서관이라 이 주위에 살 때 참 자주 다녔다.
당시 지하철을 타고 통근을 했기에 지하철 역은 아침저녁으로 꼭 거칠 수밖에 없는데 마침 그 옆에 도서관이 있으니 책 대출도 반납도 얼마나 쉬웠는지...
오랜만에 도서관을 갔는데 옛 기억이 새록새록, 추억을 간직했지만 내부 공간은 밝아지고 엘리베이터도 수리가 된 듯.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서강 도서관 모습에 혼자서 흐뭇.
p.s 사진에 있는 건 사과가 아니고 근처 빵집에서 파는 사과빵이다. 얼핏 보면 모양이 사과랑 너무 흡사해서 못 알아볼 정도. 쫀득한 껍질(?)안에 크림치즈와 사과쨈이 들어있다.
코로나로 심신이 피폐해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주말, 이런 날엔 ‘히가시노 게이고’류의 소설들이 딱인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고른 일본 추리 소설 “요리코를 위해”
코지 미스터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별로 시답지 않은 수수께끼 풀이 정도를 기대했는데 막상 내용은 꽤나 무겁다. 거기다 끝 부분은 그리스 비극처럼 마무리되어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이 다소 심란해졌다.
네 번째 그믐밤은 다같이 모여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해 보았어요.
특히 ‘국자와주걱’은 이런 진행 방식에 완전 적합했습니다. 옛날 할머니 사랑방에 놀러온 듯 모두 신발 벗고 앉아서 따뜻한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처음에 이 곳의 조용함에 놀랐어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고요해지는데요, 도시의 소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먼저 처음 만나 뵌 분들 간에 약간의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각자가 최근에 경험한 콘텐츠 중에 재밌었던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리한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공유하니 참고하세요.~
저는 마쓰모토 세이초 - 어느 고쿠라 일기전
장강명 작가님 : 안제이 사프콥스키 - 위처
챠우챠우님 : 하재영 -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챠우챠우님 인생지기 : 김수경 - 아내
김금숙 작가님: 세바스티앙 팔레티, 김은주 - 열한 살의 유서 / 드라마 황혼
국자와주걱 책방지기님 : 난쏘공 / 한국이 싫어서
송다영님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권혜선님 : 김승옥 수상문학상 작품집 (2022)
김미례 감독님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마쓰모토 세이초 - 검은 안개
수북강녕님 : 윤하- 사건의 지평선
외길수순님 : 장강명 - 재수사
써니워커님 : 박시백 - 조선왕조실록
위와 같이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받으니 30분이 흘렀습니다. ^^ 어쩌죠? 1부는 45분인데요,
원래 제가 준비한 독서토론 발제문을 소개합니다. 아래와 같이 알차게(?) 준비했는데, 아직 첫 번째 질문도 나누지 못하고 30분이 훌러덩. 이후 김현숙 책방지기님의 난쏘공 추천 이유와 지난 시간에 관해 들었습니다. 실제로 빈민운동, 탁아운동을 인천에서 하셨기에 난쏘공이 소설 속 일로만 다가오지 않으셨을텐데요, 이날 그믐밤에 자리했던 이들이 모두 가장 인상적으로 들었던 순간입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발제문>
1부 (45분)
1. 이 작품을 인생책으로 골라주신 김현숙 책방지기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게요. 처음 읽으신 건 언제고 어떻게 인생책이 되었을까요?
2. 이 작품은 1978년에 나왔는데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이 있어요. 그 때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1978 vs 2022
-작가는 몸집이 작고 발육이 안 좋은 난장이 아버지를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하층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지금 ‘난장이’에 해당하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가장 공감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민중문학, 노동문학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할까요? 필요하다면 이들 문학에 담겨야 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노동자들의 위로와 연대, 지금 이 시대의 철저한 고증과 기록?
2부 (44분)
본격적으로 1978년과 2022년의 경제적 차이를 비교해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이 있어요.
‘칼날’에서 "물이 잘 나올 세상이 언젠가는 올걸요." 같은 부분
‘궤도 회전’에서 이런 문장들입니다.
'너의 잠자리는 늘 따뜻했지? 오십 년생 굴피나무까지 얼어터지게 한 지난 겨울, 네 방의 온도는 몇 도였지?'
'넌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았지? 목욕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네 방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지? 너는 잠을 자다 춥고 배고파 깨 본 적이 없지? 그런데 은강방직 공장에 나가는 난장이 아저씨의 딸은 어땠는지 아니?'
지금 우리들은 그냥 수도꼭지에서 물이 잘 나오는 걸 넘어서서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데요, 과연 그럼 그 만큼 행복해진걸까요?
[사이다, 포도, 라면, 빵, 사과, 계란, 고기, 쌀밥, 김.] 명희는 나의 손가락 하나를 마저 짚지 못했다. 그때의 명희에게는 그 이상의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지금 당장 가지고 싶은 것 9가지 써 보세요.
그리고 2분을 드릴게요. 그 중에서 5개를 지우겠습니다.
남은 것 4가지 함께 발표해 볼게요.
4.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편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기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지나친 부의 축적은 사랑의 상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나친 부의 축적의 정의는 과연 얼만큼일까요? 아래 몇 번에 해당되시나요?
1. 많이 가지면 왜 사랑의 상실이 되는지?
2. 100억 이상의 부는 필요없다. 내 아래 3대 정도 먹고 살 재산 이외의 부의 축적은 잘못이다.
3 서울시내 중형 아파트 하나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 많이 가지면 죄가 된다.
4. 일 년 정도만 삶을 꾸려가면 된다. 그 이상 쌓아 놓지 말고 이웃에게 베풀자.
---------------------
이상이 제가 준비한 독서모임 발제였는데요 과연 그믐밤에 저희들은 저 발제문의 어디까지 이야기했을까요? 상상은 여러분께 맡깁니다.
'국자와주걱' 은 여럿이 함께 먹는 요리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조리도구에서 책방 이름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4회 그믐밤은 넉넉한 인심의 이 곳 '국자와주걱'에서 참석해 주신 분들과 함께 밥 한 술 뜬 것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사한 날에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데 왠지 안 땡겨서 (지난 번 이사할 때 먹었던 짜장면이 별로였던 기억도 나고) 무턱대고 집을 나섰다. 뉴스가 나오는 조용한 동네 치킨집. 술집에서 아이돌 음악보다 뉴스 나오는 게 듣기에 더 나은 나이가 되었다. T.T
옛날 통닭과 닭똥집 세트. 싸진 않지만 매우 맛있어서 흡족한 기분으로 나왔다.
책을 읽고 나의 옛날 집을 떠올려 써본 짧은 글.
--------------------------------
초등학교 아니 당시는 국민학교 2학년, 전라도 순창에서 서울시 마포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후 스물일곱살에 호주로 혼자 기술이민을 가기 전까지 20년 이상을 한 집에서 살았다. 서울시 마포구 아현2동 656-16, 2층 오른쪽
내가 유일하게 외우는 집의 주소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여러 집에 살았지만 내가 집 주소라고 외우는 것은 항상 현재 살고 있는 지금의 집과 나의 오래된 아현동 집. 이렇게 두 개 뿐이다. 현재 사는 집의 주소는 다음 집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잊어버리곤 하니 실질적으로 외우는 집 주소는 아현동 집 하나뿐이다.
집은 5,60년대에 지어진 낡은 다가구 연립으로 우리 가족이 이사할 당시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으나 막상 첫 삽을 푼 것은 내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였으므로 실로 오랜 시간을 허물어져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남아있었던 셈이다. 내가 호주로 떠나고 나서도 남은 식구들은 그 집에서 10년을 더 살았으니 우리 가족이 그 집에서 지낸 기간은 총 30년 이상. 원래 연탄 보일러를 때는 집이었는데 중학교 때인가 현대식 보일러를 포함한 나름 신식 리모델링 작업을 큰 외삼촌이 해주셨다.
연탄 보일러를 땔 때에는 주방에 쥐가 많아서 찍찍이를 놓아 여러 마리 잡곤 했고, 그 다음엔 바퀴벌레가, 그 다음엔 개미들이 들끓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량 아버지와 성실하고 다정하지만 변화를 무서워하는 어머니, 폐지를 주우시는 친할머니 밑에서 우리 세 자매는 자랐다.
방 두 칸, 거실 하나,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 식구는 여섯
방 하나가 부모님 방이고, 나머지 하나에 우리 세 자매가 잤다. 나만의 방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한 개념이다. 상상할 수 없었기에 바래본 적도 없다. 딸 셋이 모두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화장실 하나에서 동시에 씻고 대소변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집은 북향이고 창문도 작게 나있어 종일 어두워서 우리들은 날씨의 변화나 계절의 바뀜도 잘 알지 못했다. 겨울이면 웃풍이 너무 심해서 집 안에서 장갑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기억도 난다. 지긋지긋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그 집이었는지, 당시 내 삶인지 알지 못한다. 학업성적이 그나마 좋아서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나름 우대받는 첫째였지만 사춘기 내내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던 이유는 팔 할이 그 집 때문이었다.
일 이년 전인가..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고 이미 철거가 끝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사 현장은 높다란 가림막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자갈과 각종 공사재료를 실은 커다란 트럭만이 임시문을 통해 드나들고 있었다.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우리 집 터가 보였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널어놓은 빨래가 항상 바람에 날리던 우리 집 옥상도, 새끼 길고양이가 우는 것이 시끄럽다고 던져서 죽였던 옆집 아저씨가 살던 집도, 공구리를 대충 발라놓은 집 앞 삼거리 길도, 하도 오랫동안 드나들어서 돈이 없어도 과자를 달아놓고(?) 가져갈 수 있었던 동네 슈퍼도.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무의 공간 앞에서 나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사라진 것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인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몰랐다.
나는 나의 옛 집을 앞으로도 절대 그리워 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미워하지도 않을 것 같다. 너무나 싫고 부끄러웠지만 그 시간 또한 나의 일부분이다.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뾰족한 다른 길이 없었음도 안다. 그만한 집 한 칸이라도 팔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나의 부모는 최선을 다했다.
그 집의 마루에서 아버지는 어린 세 딸의 긴 머리를 정성스레 묶어 주셨고, 비가 새는 주방에서 어머니가 싸주신 돈가스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나는 괜실히 으쓱함을 느꼈다. 책을 좋아하는 큰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폐지중에서 책으로 보이는 것들을 골라 특별히 옆으로 빼놓으셨다. 이 외에도 그럭저럭 나쁘지마는 않은, 생각하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추억들이 그 집에, 그 시절에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나의 옛 집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보내야 할 때다.
그래서 나의 옛 집과 옛 시절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로 이 글을 쓴다.
안녕, 아현2동 656-16, 2층 오른쪽
핫크리스피 버거에 감자는 사이즈 업, 날이 추워 차가운 콜라 말고 따뜻한 아메리 카노로.
공교롭게도 패스트푸드 식사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책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