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나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편이다. 기능이 완전히 고장 날 때까지 쓰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십 년 이상 된 물건들이 많다. 누군가 중고로 준 밥솥, 엄마의 결혼 선물인 냉장고, 남편이 결혼 전부터 써오던 헤어드라이어까지 모두 오래된 물건들이다.
최근 압력 밥솥이 고장났다. 집에서 밥을 자주 해먹지 않아서 햇반으로 대체할까 고민했지만, 햇반 용기가 분리수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렴한 전기밥솥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밥솥은 빠르게 배송되었으나, 전원 코드를 꽂자마자 에러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봉된 설명서를 확인해보니 온도감지기 고장일 때 나오는 메시지였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라 판매자에게 교환을 요청했지만, 판매자는 기사 점검이 먼저라고 했다.
고객센터에 여러 차례 전화 연결 끝에 겨우 성공했으나, AI 시스템이었다. 고장 증상을 반복해서 설명했지만 AI 상담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카카오톡 상담으로 전환했는데 카카오톡 상담 역시 연결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보다 기다리는 것이 수월했다. 마침내 A/S 접수가 되었고 기사님이 방문했다.
"이 밥솥은 왜 사신 거예요?" 밥솥을 본 기사님의 첫 질문.
고장 증상을 물어볼 거라 생각했던 나는 예기치 않은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가 "밥을 해먹으려고요." 라고 답했다.
"이 제품은 저희 라인에서 최저가 제품이라 밥맛이 좋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고급 라인으로 교체하시는 게 어떨까요?"
불량품을 받아 속상한 와중에 영업 권유를 받으니 당혹스러웠다. 품질이 그토록 좋지 않다면 애초에 판매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기사님은 고장이 맞다며 "이제 원래 하시려던 대로 판매처에 반품 신청하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3분 만에 자리를 떠났다. 이제 제품을 다시 포장하고 판매자에게 고장 판정 사실을 전달한 후, 다음 안내를 기다려야 한다.


사르가소 해는 북대서양 중앙에 자리 잡은 독특한 해역으로, 해안선 없이 해류에 의해 경계가 그려진 유일한 바다라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앙투아네트는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크리올의 딸로 태어났다. (크리올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본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현지에서 태어난 유럽인, 혹은 그 후손을 가르키는 말로 쓰이다가 추후 유럽인과 비유럽인 사이의 혼혈을 뜻하는 말로 바뀌기도 했으며 점차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아가씨가 백인이지만 서방님 같은 백인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우리하고 같지도 않고요."
앙투아네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끝에 영국에서 온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제인 에어의 남자 주인공 로체스터. 앙투아네트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카리브해의 총 천연색 자연과 그 자연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녀를 두려워한다.
"이 곳은 내 편도 당신 편도 아니에요. 우리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그저 장소이고, 자연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로군요. 이 곳이 당신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자연이 누구 편도 아니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내가 여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아무 것도 사랑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자연은 당신이 흔히 불러대는 하느님처럼 인간에게 무관심해요."
문학은 현실을 재구성하여 우리를 삶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내게 그저 추상적인 개념이었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은 뒤 나는 그 개념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르가소 바다는 Sargassum이라는 해초로 뒤덮여 선원들에게 '마의 바다' 혹은 '죽음의 바다'로 불렸지만 실은 풍부한 해조류가 가득한 특유의 환경을 지닌 곳이라고 한다.
혼돈과 고립 속에서 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며 살아갔던 자메이카의 사람들. 그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파도와 폭풍우로 가득했고 세상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두려워했다.


지난번 톱클래스 매거진과의 인터뷰가 인연이 되어 톱클래스의 콘텐츠 플랫폼 토프(topp:)에 '김새섬의 그믐과 함께 읽기'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격 주에 한 번 씩 그믐에서 진행되었던 흥미로운 독서 모임을 소개하고, 그믐 회원들의 개성 넘치는 서평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이번 연재는 네이버와 다음에도 송고될 예정이라 그믐과 함께 읽기를 동시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해질 무렵, 주방을 청소하다가 문득 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작은 주방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열어둔 다른 방의 낡은 액자 속 가족사진에 또렷하게 내려앉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세 식구만 찍은 사진 속에서 나는 외동딸 코스프레 중이다. (사실 딸은 셋이고 나는 K-장녀 ^^)


매년 마지막 날이면, 나와 남편은 함께 유서를 쓴다. 우리는 유서를 서로에게 읽어주고 그 음성을 녹음하여 파일로 교환한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유서를 쓰고 읽는 시간은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어느덧 십 년 정도가 되었고, 우리의 기억을 담은 타임캡슐을 만들어온 것 같아 뿌듯하다.
법의학자 이호 교수의 책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며 깨달은 진실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결국,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배워야 한다.


지난해 12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믐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의 특성과 함께 읽기의 효과를 연결 지어 이야기했어요.
집단 동조와 또래 압력은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며,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도록 활용할 수도 있겠고,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에 휘둘릴 수도 있겠지요.
한국인이나 한국 문화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두 시간 넘게 진행한 대화를 짧은 기사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 같네요.
앞으로도 저는 함께 읽기의 힘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나 강연 등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주의하겠습니다.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은 '문샷(Moonshot)'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다. 문샷은 달 착륙처럼, 불가능해 보이지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케네디는 "쉽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나사는 이를 증명했다.
나는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을 론칭하며 우리 팀에게도 문샷에 도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에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사는 어떻게 일하는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조직 문화와 방식을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나의 문샷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전략이 정말 필요할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운 좋게 승진하고 이직에 성공하는 동료를 보면 마음 한켠에서 질투가 피어오른다.
공들여 세웠던 계획이 실패하고, 예측했던 일들이 빗나갈 때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탈함이 밀려온다. 나 역시 때로는 그저 운명에 순응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을 느낀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말한다. ‘전략은 내일을 개선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하는 힘든 작업’이라고. 이 책은 29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 가는 부분부터 살펴보고,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읽어나가면 된다.
세부적인 전략의 방법론보다는, 우리 삶에서 전략이 왜 필요한지, 그 본질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회사의 인수합병으로 업무 강도가 심해지던 어느 겨울,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작은 도피를 계획했다. 해외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아 집 근처 인천의 호텔로 향했다. TV 대신 좋은 스피커가 갖춰진 정갈한 호텔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반신욕을 즐기고, 억새밭이 펼쳐진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다시 회사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일의 감각>을 읽다가 내가 머물렀던 영종도 네스트 호텔이 카카오 대표를 지낸 저자 조수용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눔글꼴’ 캠페인, 네이버 초록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줬다.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결과물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이 책 역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결과물이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연어가 맞 서야 할 더 큰 도전이 있다. 바로 삼투압 조절이다.
물고기의 체액은 바닷물보다는 덜 짜고 민물보다는 더 짜다. 바다에서는 몸속의 물이 짠 바다로 빠져나가는 탈수를 막기 위해 아가미와 콩팥이 쉼 없이 일한다. 반대로 민물에서는 몸속으로 밀려드는 물을 끊임없이 오줌으로 배출해야 한다. 연어는 이처럼 정반대의 환경을 오가며 끊임없이 적응한다.
생명체에서 삼투 현상은 불균형을 회복하려는 끝없는 시도를 통해 필수적인 에너지와 물질의 이동을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은 바로 그 이유로 바다를 생명의 기원으로 추정한다. 바다에 사는 천재들의 생존 비법을 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