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이언니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눈부신 안부 by 백수린, 문학동네, 2023
해미(전직작가), 안드레 케르테스 사진 전시, 이모에 대한 글쓰기, K.H.
알프스 산 추크슈피체
우재(19년전 대학 동아리 남사친, 현 제주도 거주, 약사)
파독간호사
큰이모(오행자), 의사, 21세 파독
마리아이모(최말순), 딸 레나(혼혈), 21세 파독
선자이모(임선자), 한수, 한미 남매, K.H., 19세 파독
해리/해미/ 해나
일년전 가스폭발 사고로 언니(해리)를 잃고, 해미네는 아빠만 부산에 두고
엄마의 큰언니가 있는 독일의 G시로 엄마의 유학차 가게 된다.
해미의 열세살 겨울부터 열다섯 겨울까지의 독일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파독간호사로 왔던 이모들, 그리고 그 아이들
선장이모의 뇌종양이 재발하기전에 한수는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해미, 레나, 한수는 매주 모여 정보를 수집하다
imf로 해미가 조기 귀국하게 되어 독일 생활은 마무리된다.
해미는 지금까지 K.H.를 마음의 빚처럼 생각한다.
살아온 기간동안 가장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알게 된 책들과 숙제같은 책들.
하지만 깊이있는 읽기는 되지 않고 있다.
충분한 사색이 없는...다만 그 느낌만 안고 다른 책을 또 보게된다.
눈부신 안부는 청명하다기 보다는 뭔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는 모르겠으나
말그대로 눈부신 시기에 대한 추억이고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과거에 대한 아부이지 않을까 싶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시기가 다 있지 않은가.
그 아이들과 있을 때면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나라에서 이주해온 이방인도, 언니를 사고로 잃은 아이도 아니었으니까. 그곳에서 나는 그거 온전한 나였고, 레나는 온전한 레나였으며, 우리는 온전한 우리였다. 그런 시간은 이모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무른 산딸리나 살구로 만들어주던 잼처럼 은은하고 달콤해서,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 (40쪽)
...선자이모가 혼잣말을 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지?"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흠칮 놀라 선자 이모를 돌아다보았다. 선자 이모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흰빛이 너울대는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년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테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름답지?"
언제나 표정이 적어 화난 것처럼 보이던 선자 이모의 얼굴에 드리워진 꽃그늘이 바람이 불 때마다 레이스처럼 어른거렸다. 마리아 이모가 우리를 웃기기 위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할 때마다 꽃물이 번지듯 환해지던 선자 이모의 얼굴.(74쪽)
돌이켜보면 독일에서 보낸 두번째 여름부터 겨울까지는 언니의 사고가 일어난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한때였다.그즈음을 생각하면 차례로 떠오르는 것들. 햇살 아래 부서져내리던, 구시가지 광장 한복판에서 떨어지는 분수의 물줄기. 테라스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면 달콤함에 이끌려 날아오던 벌들. 초록으로 빛나던 여름 나무들. 오래된 건물의 벽을 달구던 열기. 고지를 모른 채 상승 곡선만을 그리며 고조되던 감정의 음률. 수신호를 하기 위해 한 팔을 뻗은 책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리거나, 스스로 어른인 줄 알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홀로 뒷짐지고 걷던 G시 곳곳의 거리들. 카를 마르크스나 프리드리히 뵐러처럼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달고 있던.(106쪽)


백명버튼, 김동식, 위즈덤, 2023
-누군가 성공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망한다.
초단편 소설, 백명 버튼은 한정된 재화와 시간적 요소 등을 감안하면 정말 인간 사회를 말하는 것도 같으나,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 보다는 더 가치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읽으면서 김남우에 의해 뭔가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김남우는 반전의 요소는 맞았다.
나는 백명 버튼을 눌렀을까...
호기심이 생기긴 했으나 내 성격상 관심끄고 그냥 나의 길을 갔을 것 같다.
인간 세상에 악마가 나타났다. 작은 버튼을 손에 쥔 그는 인류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백 명 버튼'입니다. 하나의 버튼을 백 명이 딱 한 번씩만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버튼을 누른 백 명 중 두 명이 파멸하고 한 명이 성공합니다.(7쪽)
그리고 두 남자가 있다. 두 남자의 생각은 서로 달랐다. 한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는 상대에게 확신에 차 말했다.
"그래서 악마가 '백 명 버튼'을 판매한 거다. 그게 이 세상의 진리니까."
"그건 이미 사라졌잖아."
"그래. 김남우가 그렇게 만들었지. 그리고 그 김남우에게 어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자리를 빼앗겼고, 어느 정당의 청년 정치인은 기회를 빼앗겼고, 그리고 내 눈앞의 어느 대학생은 졸업식 대표 연설 자리를 빼앗겼지. 알겠어? ㅗ든 성공은 반드시 누군가를 망하게 해야 가능해. 백 명 버튼은 사라졌지만, 어차피 인간 사회 자체가 백 명 버튼이야."
제목 그대로 읽고나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어서 빌려서 봤는데 소장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이다.
저자가 사는 동네가 어디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성곽이 있는 높은 동네, 오랜 이웃,
그리고 그곳에서 떠나 보낸 이들을 생각해 본다.
봉봉이, 언덕위의 집,수녀였던 E언니, M이모, 할머니, 막내삼촌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 장소에 대한 기억들, 글쓰기
어떤 장소에서의 오랜 기억
E언니의 말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40쪽)
인생이 집을 찾는 여정같다던 말. 우리의 집은 어디일까? 언젠가는 그 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집'에. 그곳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 아무리 쫓아내봤자 다시 떼를 지어 찾아오는 불안과 유혹에 눈이 가려져 몇번이나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지라도. 먼 나라에 살았다는 어떤 왕의 말처럼 인생이 결국엔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할지라도.(41쪽)


작가의 루틴 BY 김승일 외, 넥서스, 2023
기억나는 문장들 발췌
반복이 생활을 견고하게 만들지만 그 와중에 나를 낯설게 두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규칙이라면 규칙이랄까. 어색해서 몸서리칠 때가 더 많지만, 내가 모르는 시간을 살고 싶다.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를 쓴다'라는 말에는 '사로잡힘'이 담겨 있다. 시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나는 이유없이 시를 썼다. 딱히 이유를 모르겠는데도 전력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시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다. (서윤후, 36쪽)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다른 일도 곧잘 해낼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설거짓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전에 무언가를 먹었다는 뜻. 그리고 설거지는 다시 무엇이든 먹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말처럼, 나는 삶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설거지로써 삶은 이어진다. 설거지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다. (이현호, 125쪽)
언제부터인가 루틴에 관한 자기 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다.나도 다른 글에서 루틴 이야기를 한 대목 쓰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루틴이란 다만 개인의 성공을 위한 습관이 아니라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이야기 했다. 루틴을 틀에 박힌 행동이나 어떤 일의 반복이라고 본다면, 지구가 일정한 궤도로 태양 둘레를 돌고 또 달이 지구를 도는 것도 루틴이다.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나 해류의 순환 등도 마찬가지다. 이 우주적인 자원의 루틴 없이 세계는 존속할 수 없다.(이현호, 140쪽)
"틈을 주라는 거에요. 틈."
'틈'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습니다. 숨이 트이고 호흡이 편안해지고, 차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기본 좋은 바람이 불 것 같은 말이었습니다. 틈이라는 말.
(최지은, 189쪽)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최지은 시인.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표출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 같다.
저의 경우 시와 애도가 가까웠던 까닭에 어둡고 두려운 마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요. 그렇지만 쓰고 싶은 마음은 이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것 같아요.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쓴다.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쓴다. 나를 더 알기 위해 쓰고, 그리하여 조금 더 잘 살아 내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도는 상실의 대상을 완전히 잊고 멀리 보내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으로 두고, 달라지는 것을 계속 느끼며 또 다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애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상실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때때로 두렵고 어두운 것을 알면서도 안고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내일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요. 내일을 생각하게 하고, 기대하고, 꿈꾸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요.(최지은, 187쪽)
비비안 마이어 by 앤 마크스, 북하우스, 2022
그림책 수업에서 "가치를 알아보는 눈" 이라는 주제로 비비안 마이어 라는 사진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1926~2009, 프랑스 태생, 보모이자 사진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미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갔는데 비비안 마이어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에 해당되었다.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프랑스계 였는데,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친밀했어야 할 비비안의 어머니는 태어날 때 이미 아버지가 떠났고, 그 어머니(외할머니) 역시 비비안의 어머니를 두고 미국행을 택한 상황이어서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비비안 마이어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진 못했다.
엄마를 따라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던 그녀는 보모로써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사진을 찍으며 살다가, 사후에 그 사진들은 평가받게 된다.
어린이과 길 위의 사람들과 건물, 풍경 등을 많이 찍었고
자화상도 많다.
그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거나 그림자의 형태를 가진 것들이 많다.
경매를 통해 그녀의 사진과 소지품을 소유하게 된 존 말로프의 부탁으로 앤마크스는 6년간 그녀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혼자라고 생각한 그녀에겐 그래도 사진에 대해 함께 얘기할 친구들이 그때그때 있었던 것 같고, 생활에 있어서도 나름의 취향도 볼 수 있다.
사진은 그녀에게 아마도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어떤 힘이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치만, 그녀는 사후에 그녀의 삶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긴 하지만, 생전의 그녀였다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
어쨌든 그녀의 사진에 대해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기에 사장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있으니 그 점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
하루에 평균 3만보를 걷는 사람
걷기 위해 하와이를 가고, 그곳에선 한식을 챙겨먹기 위해 식료품 가게부터 찾는 사람, 그리고 파를 조달하기 위해 손수 키우는 사람
영화, 그림, 독서모임, 운동, 걷기 등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사람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작가의 말대로 걷기와 삶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대체할 것 없이 매일매일 맞닥들이는 것
지나다보면 행복하고 슬프고 다양한 순간을 만나는 것
그치만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신의 보폭에 맞춰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
나는 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가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나아가기보다 머물기를 선호하고, 오늘은 걷지 못할 이유에 대해 타협하고.
나는 건강한 복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자꾸 잃어버리지?'(38쪽)
한때 나는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41쪽)
장거리를 걸을 때는 지치기 쉽다. 판단력도 흐려진다. 그러므로 걷는 시간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쉬는 시간'이다. 평소보다 많이 걸을 때는 운동화 속의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가 발바닥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면 잘 참고 걸어왔던 그간의 시간도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누구도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79쪽)
도저히 나가서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혹은 걷다가 체력이 달려서 집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던 날, 그런 순간들을 견디게 만든 것은 결국 걷기를 다 마치고 돌아올 때의 성취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러니 어쩌면 한 걸음 한걸음은 미래를 위한 저축같은 것이다. 지금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괴롭기까지 하지만 훗날 큰 감동과 의미를 선물해주니까(81쪽)
나만의 트레킹 코스 만들기(91쪽)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206쪽)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282쪽)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292쪽)
(질문) 나에게 마지막 4박6일이 주어진다면?, 나만의 트레킹코스 만들기
2022년 노벨문학상을 탄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 처음 접한 소설
몇 페이지 안되는 작품이라 읽는 것은 한시간도 안걸린 것 같은데
담은 내용은 가볍지 않다.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투영된다고 하나,
그의 글을 대놓고 그러해서 소설속 당사자는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남자 역시 그녀가 쉰이 넘어 만난 서른 살 아래의 남자였다.
" 쉰네 살인 내게, 그는 내가 단 한 번도 연인에게 받아본 적 없는 정열을 바쳤다"(20쪽)
그는 그녀와 여러 방면으로 다른 사람이었고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감정과 남녀의 만남이
금기는 아니지만, 나이와 성별의 기대치라고 해야 하나 그런 점에서 일반적이지 않을 때 오는 시각에 대해 마치 제 3자인양 적어나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직 틀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내 첫 번째 세계의 기억 전달자였다. 설탕을 더 빨리 녹이겠다며 커피 잔에 든 설탕을 젓고, 스파게티 면을 자르고, 사과를 잘게 잘라 칼끝으로 찍어 먹는 것은 내가 그에게서 당혹감에 휩싸인 채 다시 발견한, 잊고 있던 행동들이었다. 나는 다시 열 살, 열다섯 살이 되었고, 또다시 내 가족과 사촌들과 한 식탁에 있었다. 그 안에서 그는 하얀 피부에 노르망디 사람답게 볼이 빨겠다. 그는 뒤섞인 과거였다.
그와 함께 나는 삶의 모든 나이를, 내 삶을 두루 돌아다녔다.(24-25쪽)
나는 꼭 젊은 남자를 만나지 않더라도 내 젊음의 시기를 함께 했던 몇 개의 장소를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비가 많이 오면 빗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던 고등학교 강당의 지붕이 있는 계단이러던가...대학교 시절 내내 가방 보관소 역할을 하던 작은 열람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앉아있던 햇빛 가득했던 운동장 스탠드, 그리고 교정이 훤히 보였던 작은 벤치 같은 곳들...
시절은 사람으로 인해 돌아갈 수도 있지만, 사소한 물건과 장소로도 돌아갈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시강좌를 들어서 인가, 연보가 있으면 꼼꼼하게 다시 읽어봐진다.
매년 얼마나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고, 글을 써왔는가가 보인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와 그 속에서의 여성으로서의 삶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다.
그에 걸맞는 상복도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일단 아니 에르노의 글을 더 읽어봐야겠다.
책과 우연들 by 김초엽, 열림원, 2022
이 책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쓰기에 대한 다양한 범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과학 전공자였던 작가가 소설을 쓴 계기와 도움이 되었던 작법서,
글쓰기를 위한 협업과정과 도움이 되었던 책들
SF소설 작가들과 글쓰기 공간 등등
글을 쓴다는 건 막연한 마음 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동기와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밑천과 표현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로 덮인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71쪽)
소설의 표면 아래 살펴보기
인물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어휘를 쓰는지, 장면은 어떻게 전환되는지, 시점은 어떻게 인물에서 인물로 건너뛰는지, 장면 묘사는 어느 정도 비율로 나오는지...소설가가 되고 '불순한' 독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159쪽)
한국 소설을 읽는 즐거움
소설가들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차근차근 따라 읽어 가는 것,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조심스레 뒤쫓으면서 소설이 변화해가는 결을 느끼는 것..(168쪽)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SF 소설가들이 세계와 인물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차근차근 살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랬더니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인 소설의 공통점이 보였다. 그 소설들은 초점이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었다....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 모순적 상황과 세계와의 갈등에 처하는, 그러나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것은 읽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175쪽)
뭔가 이 소설은 나도 같이 눈내리는 밤, 눈을 꾹꾹 밞아가며 한밤중에 오랜시간동안 돌아다니는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깨어나면 엄청 몸이 무겁고 피곤한 느낌이 드는.
벤조를 메고 온 챔버, 가이드
혼자 사는 30대 여성, 수면제를 삼키고 사흘만에 일어나 살고자 먹었던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게 됨
눈이 펑펑 내리는 밤, 나의 죽음을 꿈을 통해 알리고자 몇몇의 사람을 챔버와 함께 찾아가는 여정
중학교 친구 규희와 즉석떡볶이, 세모와 누운아이, 엄마와 초코우유
결국 엄마 꿈으로 가는 걸까
나는 누구의 꿈으로 가고 싶어 했을까
눈이 발목까지 쌓인 밤
차갑고, 메마른 느낌
나는 나라는 존재를 빈 괄호로 두고 싶었다. 이제 죽은 나를 발견해주길 원하지 않았다 내 죽음의 경위와 삶의 이력들을 오해 없이 완결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나와 이어진 사람의 꿈으로 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세모의 꿈으로 가서 웃는 아이를 보고 입술을 벌려 누운 아이를 보고 싶었다…중략…규희와 동백떡볶이에서 만나 스위트콘을 넣고 떡볶이 국물에 밥을 볶아 먹어야지…중략…내 상상력의 힘으로, 내가 기억하는 기쁨을 위해, 벌써 그 꿈들이 도착해 나와 꿈꿀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그 꿈들이 나보다 오래 머물며 사람들 마을을 떠다닐지도 몰랐다. 39쪽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가나출판사, 2018
팟캐스트 듣다가 읽어봐야지 하고 펼쳤는데
책 속 사례들이 왠지 익숙한 것이 전에도 읽어봤던 책이었던 것.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할 자신은 없지만
"선 넘으셨어요" 라고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 징후
사과를 지나치게 자주 한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자책을 많이 한다.
폐쇄적인 성격이 된다. (51쪽)
오랫동안 고민해 선택한 결과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신조차 시시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 (69쪽)
신경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는 "불안이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방심하면 금세 살이 찌는 몸을 대하듯, 마음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실제로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대단한 정신력이 아니라 우선 몸과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중략)...그러니 마음의 근육을 키울 일이다. 키운다는 건 감정의 진폭이 업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우울함이 찾아오더라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는 회복력을 얻는 일이다. 그리고 이 회복력이야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자존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180-18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