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블루이
2026-04-13 00:05:44
1.
1권 29장부터 전개되는 돈키호테 구출작전(미꼰미꼬나 공주) 에피소드는 세르반테스가 내게 준 선물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나는 이 장면을 읽을 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마음이 울렸다. 돈키호테 구출작전 (미꼰미꼬나 공주)에피소드는 까르데니오와 도로테아 그리고 돈키호테 마을의 신부님과 이발사가 돈키호테를 마을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괴상한 상상을 완전히 존중해주며 연극을 하는 이야기이다. 내 마음이 감동했던 이유는, 그러한 작전이 다른 목적이 있는 가짜 연극이었을지라도 여럿이 함께 공감해주고 돈키호테가 ’존중’받아서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 따스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며칠동안 돈키호테의 그 에피소드가 머릿속을 맴돈다.
2.
4.8. 수요일, 건우와 장난감 놀이를 하던 것에서 시작한다. 건우는 그날도 마을이 그려진 매트를 거실에 펼쳐놓고 토미카 장난감을 길마다 배치하며 그 나름의 어떤 상황극을 펼치고 있었다.
어쩌다가 나는 제대로 한번 건우와 놀아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건우가 토미카를 가지고 노는 톤(tone)으로 아이 눈높이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며 놀았다.
특별했던 점이라면
1) 건우가 만든 상황(교통사고)에 대해 사건의 구체적인 원인-가령 뒤차가 와서 앞차를 박았다든지, 도로가 일차선이고 반대편에 다른 차가 있어서 피할수 없었다든지 등-을 캐묻되, 어느 정도 엉뚱하고 황당한 이유도 곁들여 놀이하는 기분이 들도록 사건을 조사했던 점
2) 건우와 내가 마을의 경찰관이 되어서 사건들을 조사한다고 가정한 점. (도둑은 다섯명이 있는데 그중 세명은 블랙홀로 빨려가서 실처럼 길어져버렸다더라 하고 후속편 떡밥을 남겼다)
3) 교통사고 외에도 마을에 도로를 새로 뚫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쪽으로 내는게 옳다, 아니다 저쪽이 낫다 하는 얘기를 하다가 건우가 결국 내 말에 수긍하였고 “좋아. 아빠 인정할게”라며 합의했던 점. (대신 아빠라는 어떤 권위나 아이수준에선 어려워할 딱딱한 논리를 앞세우진 않았다. 예를 들어 “A방향으로 도로를 낼 때, 옆 목장의 양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B방향이 좋다고 생각해” 수준이었다)
이렇게 40분동안 진하게 놀고난 뒤에 건우가 오늘 재밌게 놀았다며 함께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나를 꼭 안아주었다.
3.
한편 요즘 건우가 보는 블루이(Bluey)라는 애니메이션을 우연히 함께 보다가 이 애니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돈키호테의 미꼰미꼬나 공주 에피소드 그리고 건우와의 토미카마을놀이 경험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음을 깨쳤다.
매화마다 블루이(주인공 이름)의 부모는 블루이와 그 동생(빙고)의 상상 장난을 아이들 수준에서 바로, 유쾌하게 응해준다. 황당하다든지 왜 그런 장난을 하는지 등은 전혀 따지지 않고 아이가 어떤 상황을 상상하면 바로 그 설정을 존중하고 그 속의 캐릭터가 되어주는 것이다.
블루이의 매 에피소드에서 부모의 이런 태도는 반복된다.
4.
EBS 다큐멘터리 중 ‘유아 발달과 내적동기의 중요성‘을 다룬 것이 있는데 해당 다큐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내적동기‘라는 뿌리가 있어야하고 내적동기는 놀이 그리고 정서적 안전성의 토대 위에 그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놀이‘이기에 ‘학습‘처럼 맞다/틀리다라는 기준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게 생각해볼수 있다. 옳은 답이든 아니든 간에 건우 딴에 ‘되는‘ 방향으로 상상하며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다큐를 이해했다. 상상해보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며 그것은 일종의 근육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또 최대한 건우와 같은 수준에서 대화하며 건우가 편한, 즉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놀이를 즐겼던 점을 생각해보면 정서적 안정성의 중요성은 별다른 이견이 필요없을 정도다.
강조하건대 앞서말한 블루이에서의 부모의 모습이 보여주는 바는 EBS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동일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또한 돈키호테의 ‘(황당무계한) 상상에 대한 따스한 존중’ 역시 유사한 면이 있어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건우와의 놀이경험에서 이런 것들이 생각나서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 시작에 돈키호테가 있었다는 점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