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으러 가야겠다 (아 물론 돈은 내고)
2025-10-11 21:17:32
"늙었으니까 세상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그대로 죽으라고?"
언행이 고약한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불쑥불쑥 비뚤어진 마음들이 올라오곤 했다. 가끔은 속으로 지독한 말들을 품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소름끼치는 불온한 어떤 것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거다. 그게 남들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모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 무서울 것 없는 세 노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설명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세 명의 주인공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던 할아버지의 숨겨온 직업이 여운처럼 남기도 했다. 그 직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도.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게 죽음과 노화가 아닐까. 주어진 생명 시계는 다 다를지언정 필연적으로 찾아오고야 마는 것. 셋은 두런두런 지난 삶의 궤적을 짚어가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돌아보니까'라는 말을 연거푸 뱉어대는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할아버지가 말한다. 뭘 자꾸 돌아보냐고, 그만 돌아보라고. 별 볼일 없는 인생이지 않았냐는 자조 섞인 말에 그딴 게 어딨냐는 핀잔을 듣곤 하지만, 정말 그렇지 않나?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는 게 어디 있고, 별 볼일 있는 인생이라는 건 또 어디 있는데? 그걸 판단하는 건 누구고? 다들 그냥 고만고만하게 적당히들 사는 거지. 삶을 돌아보는 작업은 내가 종종 하는 익숙한 패턴 중 하나다. 반추라고도 하던데, 성찰의 의미라면 조금 더 거창한가. 영화를 보며 요즘 내가 품고 있던 고민들이 한 줌 먼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역시 인간의 욕심이란 끝도 없구나 싶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 고민이 뭐였더라...
생각 주머니는 제때 비워주지 않으면 머릿속을 비집고 나와 지독한 마음을 품고 나를 병들게 한다. 찰랑찰랑 소리가 날 때 한 번씩 톡톡 털어줘야 하는데, 가끔 그 시기를 놓치곤 부정적인 생각 꼬리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면 너무 갔다 싶은 거다. 그게 현실 가능한 욕심이야? 그런 세상이 존재하냐고. 아니, 존재 할 거라고 생각해? 도리어 묻고 싶어진다.
(돈 안 들이고 죽기 위해) 영양실조로 자살해 임종을 맞이하겠다는 친구의 계획을 마주했을 때는 대체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너가 오늘 안 죽으면 기다려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꽤 아팠다). 고기 값을 계산하지 않고 허겁지겁 도망치고, 낡은 폐지를 서로 갖겠다며 핏발을 세우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 말문이 막히다가도, 그럼 내 인생은 뭐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 눈물 섞인 웃음이 났다. 염치없는 손자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차다가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걸,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돈이 뭐길래, 사람이 뭐길래, 그토록 소중하다 외치던 가족들은 다 어디 갔느냔 말이다. 부질없다, 진짜.
얼마 전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와 이토록 암담한 세상이라니' 싶어 마음이 울적했는데, 이 영화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진 기분. 편협한 시선에서 살짝은 멀어진 것 같기도 하고. 괄괄한 세 노인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다가, 울다가, 다시 또 웃다가. 좋은 영화였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삶을 고치고 또 고쳐가며 살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한다. 고장나는 것이 두려워 방어만 한다면 그것 또한 겁쟁이가 아닐까.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함께 감상을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이 질문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상상하는 당신의 노년은 어떤 모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