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오늘 출근길에 엄마를 만났다. 아니, 만나지 않았다. 아니, 만났다. 아니, 만나지 않았다.
늘 타던 15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책을 읽다가 피곤함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버스의 움직임이 요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내려야 할 정류소를 지나칠까 싶어 간간이 눈을 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장소가 달라져있었다. 회사에 다다를수록 습관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정신이 서서히 깨어남을 느끼며 다섯 정거장 정도를 앞두고 있던 와중에 하차문 앞에 서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많이 닮아있었다. 작은 키에 수수한 옷차림, 짧은 단발머리, 두툼한 가방, 머리숱이 많아 핀으로 야무지게 고정한 것까지 하나하나 엄마와 닮아 있... 아니, 엄마였다. 아무리 봐도 엄마가 맞았다. 엄마가 하차벨을 누르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비몽사몽했던 정신이 확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엄마가 맞았다. 작년 봄 이후로 처음 보는 엄마였다.
'이 시간에 엄마가 왜 여기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 하차할 정류장이 조계사인 걸 보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고 버스가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나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느릿하게 감각됐다. "엄마"라는 목소리가 차마 나오지 않아 부드럽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손길에 깜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엄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종종 의아했던 장면이 하나 있다.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던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면 그 사람이 아닌데도 상대를 착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들었던 생각은 '에이,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몇 초 동안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아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화들짝 손을 놓으며 "어머, 죄송해요! 착각했어요!"라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자 그녀는 인자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때마침 정류장에 다다른 버스의 뒷문이 열렸다. 그녀가 먼저 내렸다. 이 상황이 민망했던 나는 마치 그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준비했던 사람처럼,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내렸다. 먼저 내린 그녀는 신호등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멀뚱히 서서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 차차 정신이 들었다. 고작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와 닮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를 다그치며 상처주던 엄마가 아니라, 나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주던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징징대지 말라고 속으로 다그쳤다. 눈물을 꾹 참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주먹도 힘껏 쥐어 보았다.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러다 지각한다'
올해 나의 키워드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나의 키워드는 '밀도'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밀도 있게 살아가기'
평소에도 작은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인데, 작년에는 이 키워드 덕분에 그 감각이 한층 더 깊어졌다. 무언가를 느릿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삶의 곳곳에 묻어났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골똘히 생각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이를 담고자 했다.
올해도 키워드를 정하려 했는데, 작년처럼 단번에 정해지지 않는다. 두 가지를 놓고 계속 고민 중인데, 평화와 평온이라는 단어를 이리저리 입으로 굴려보고 있다. 고작 평'화'와 평'온'이라는 한 글자 차이라 언뜻 보기에는 말장난 같지만, 그 한 글자가 일으킬 파장은 꽤나 크다. 어떠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평화롭고자 마음먹으면 선택지는 비교적 좁아진다. 단순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평온하기로 마음먹으면 선택지는 훨씬 넓어진다. 자세한 예시도 있는데, 연인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올해 당신의 시선을 외부에 둘 것인가, 내부에 둘 것인가 고민하고 있군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것을 골라도 내 편이 되어주겠다는 말에 든든한 마음이 차올랐지만, 혹시 둘 다 하면 안 되는 거냐는 질문에는 살짝 웃음이 났다. 으아 더 복잡해졌다. 이러다 전혀 뜬금없는 단어가 툭 하고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뭐 괜찮다. 이제 고작 2일인데 조급할 필요 없지.
새해 첫날에는 작은 서점을 다녀왔다.
작년부터 찜해두고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던 곳인데, 드디어 어제 방문한 것.
이렇게나 경사진 곳에 서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웠던 해방촌 나들이. 새해라 그런가 손님들이 정말 많았다. 나도 가만가만 그 대열에 합류했지만(혼자 온 손님은 나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서점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어 살짝(아니 많이) 실망한 채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책을 덮었다. 몸이 유독 피곤했던 건 기대와 달랐던 서점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요 근래 고단했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뭐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좋다. 새해니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는 유리(가명)는 만날 때마다 키가 한 뼘씩은 더 자라는 것 같다. 이러다 내 키를 금방 따라잡겠다 싶은데, 뭐 어때. 남자아이라 더 쑥쑥 크면 좋지. 근데 키만 자라는 게 아니라 말수도 함께 자란다. 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낯가림이었던지 뭘 물어도 돌아오는 답이 짧았다. 유리는 말이 없는 아이인가 싶어 덩달아 나도 같이 말을 삼켰다. 꼭 필요한 말이 있을 때는 한 글자 한 글자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구성해서 아이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그랬던 유리를 만난 지도 이제 1년이 넘었다. 아이는 수다쟁이가 됐고, 우리를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입을 쉬지 않는다. 요즘은 부쩍 이런 말도 하는데.
"저 되게 바빠요. 저 만나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번 주 토요일에는 네모님이랑 만나고요. 다음 주 토요일에는 세모님이랑 만나고요. 다음 주에는 동그라미님, 또..."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우와, 유리 되게 바쁘구나, 엄청 인기쟁이네. 너무 좋겠다. 우리랑도 만나줘서 고마워."
나의 질투를 바랐던 걸까.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흥'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이 퍽 귀엽다.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대화(라 쓰고 말장난이라 읽는)를 나누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을 룸미러로 지켜보던 연인은 운전대를 잡고 가만히 웃는다. 기관에서는 우리가 하는 것을 친교 후원 활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리는 이 친교 후원 활동이 세 번째인 아이다. 입양과 파양이라는 단어가 위태롭게 존재하듯, 이 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고작 10살인데,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 활동이 종료됐다고 한다. 물론 후원자도 사정이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유리를 만나면서 마냥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니까. (유리에게는 비밀이지만)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유리는 11살이 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빨리 겨울방학이 왔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데, 이번에 다시 만나면 또 어떤 말을 할까. "인생 뭐 별거예요?"라고 세상 시니컬하게 말할지, "공부가 싫어요."라고 투덜거릴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럼에도 이 아이의 목소리를 좀 더 오랫동안 천천히 듣고 싶다. 유리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아직 난 모든 게 서툴기만 하다. 유리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우리를 기억할 때,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잘 해야겠지. 바른 사람이 되어야겠지.
한동안 정아은 작가님 소식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알게 된 날 오전에도, 나는 연인에게 정아은 작가님의 이야기를 했었다. 2025년에도 이분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이라고. 지난 주말, 연이은 사고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조심스러운 참사에 할 말을 잃었다. 해가 갈수록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인지 참담했다. 그래서 어제는 퇴근길에 이곳저곳을 무작정 걸었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걷고. 걷다 보면 생각이 조금 단순해지고, 어떤 감정은 사그라들기도 하니까.
연인은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사였고,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였는데, 그는 그 말이 정말 싫었다고 했다. 딴에는 위로랍시고 어른들이 건네는 말인 건 알겠는데 "슬퍼하고만 있지 말라"는 의미로 닿았다고. 슬픔에 빠진 유족에게 필요한 건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라고, 당시의 그는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혹시 누군가에게 이 말을 생각 없이 건네지 않았나 곰곰이 돌아봤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닌 상황이나 마음을 마주했을 때, 대체로 말을 삼키자 마음 먹었다. 경험자의 말에 무게를 담기로 했다. 사려 깊지 못한 나의 어떠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생각해서다. 지금의 이 상황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조심스럽고 숙연해지지만, 일상을 지키는 방식으로 애도하려 한다는 장작가님 말씀에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몸도 마음도 유독 차가운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6평 정도의 작은 집이다. 이 작은 집에도 책장이라는 걸 하나 뒀는데, 맨 위 칸에는 보통 꽃이나 액자, 디퓨저 등을 올려둔다. 근데 지난 토요일부터 새로운 아이(?)가 자리를 잡았다. 이 용도로 가능한가 싶었는데, 상자 뒤편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니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빅토리아 시리즈는 현대인들의 생활 공간에 작은 갤러리를 선물하고자 만들어진 제품으로, (중략) 어디에 두어도 아름다울 수 있도록, 얇은 액자 형태로 디자인했습니다."
이 작품의 본래 용도는 '차'다. 마실 수 있는 차. 여러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비스커스도 있어 어찌나 반가웠던지. 모임에서 받은 선물이라 소중하게 야금야금 아껴 먹겠지만 말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늘 고민이 많다. 이번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에 한 권이지만 책 자체가 워낙 두껍기도 했고, 거기다 고전. 심지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 더 그랬다. 그에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어바웃타임》이라는 영화 덕분이었다. 영화 설정상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초능력이 대를 이어가는데, 그중 아들과 아버지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아버지는 이 능력을 어떻게 쓰셨어요?"
"주로 책을 읽었지. 인간이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읽었어. 두 번씩, 디킨스는 세 번. 넌 어떻게 쓰고 싶니?"
스치듯 흘러간 대사였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인상 깊게 남았다. 찾아보니 찰스 디킨스는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는 소설가로서 현대의 할리우드 최고 스타가 누릴법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톨스토이가 19세기 최고의 문호라 극찬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에게 한창 관심을 가졌을 당시 골라뒀던 작품도 하나 있는데, 바로《두 도시 이야기》다. 이 책은 디킨스의 여러 작품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귀족의 폭압 정치, 복수의 광기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 역사소설이자,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희생과 염원을 담은 숭고한 사랑 이야기라고 했다. 언젠가는 꼭 완독하리라 다짐하고 읽을 책 목록에 고이 넣은지도 어언 5년, 서서히 잊혀져가나 싶었는데 그믐에서 찰스 디킨스 모임을 만난 것이다. 일명 "[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심지어 마지막 책은《두 도시 이야기》였다. 기회다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기를 그만두고 이참에 진짜 읽어보자 굳게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선택은 늘 조심스럽다. 공지만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며 갈팡질팡했다. 펀딩 페이지는 또 몇 번을 들락날락했던지. 그렇게 모임 시작일에 거의 임박해서야 조심스레 신청버튼을 누르고, 장장 3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내가 고른 북클럽 패키지는 오프라인 완독파티가 있는 E였다. 완독파티는 12월 중순이었지만, 그전에도 세 번의 줌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작품인《위대한 유산》을 읽으면서 걱정과 달리 술술술 읽히는 그의 필체와 통통 튀는 듯한 주인공들의 생동감에 반해버렸다.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책임감 있는 인물들을 응원했고, 안쓰럽고 눈길이 가는 인물들에게 마음이 닿기도 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 중 꼭 한 명씩은 좋아하는 인물이 있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한결 수월한데, 다행히 각각의 작품마다 괜찮은 인물들이 꼭 한 명 이상씩은 있었다.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의 결핍을 애써 꾹꾹 누르는 인물들에게 유독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기질이구나 싶었다.
처음 신청할 때만 해도, 12월이 언제 오나 까마득하다 여겨졌는데, 웬걸.《올리버 트위스트》를 완독하고,《두 도시 이야기》모임이 시작되고 나니 이 모임의 피날레(완독파티)가 점점 가까워져가고 있음이 비로소 실감 났다. 특히《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세 작품 중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라 앞서 읽었던 두 권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한 땀 한 땀 메모하며 정성스럽게 읽어나갔다. 이번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모두 기억하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일념으로 말이다. 하지만《두 도시 이야기》는 세 작품 중 배경이 가장 넓었다. 나라 대 나라의 이야기였다(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었지만, 영국 국적을 가진 인물들 덕분에 '이 사람이 어디서 왔다고 했지?', '이 사람은 또 어디서 왔다고 했지?'라는 도돌이표 질문을 던지며 기억력의 한계를 여러 번 시험당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이들의 세계관에 적응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이때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게 인물들 이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을 무렵,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디킨스의 필력에 책을 놓지 못하고 훌훌 읽어나가다 갑자기 완독. 오잉?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한 전개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 짠-하고 끝나버린 것.
교과서에서 하나의 사건으로만 접했던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로 만나니 몰입도가 달랐다. 갑자기 타임슬립을 통해 프랑스 광장 한복판에 놓인 기분이었다. 피가 낭자한 길거리를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가다 누군가의 광기에, 죽일듯한 시선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몸을 숨기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도망치고, 넘어지고, 다시 또 도망치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뒤에 있던 누군가가 "어이, 시민" 하면서 어깨를 톡톡 치고, 싸늘하게 미소 지을 것만 같은 스산함. 읽는 내내 아찔했던 장면이 많았는데, 그 아찔함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건이 이 책을 읽는 도중 생겨나고 말았다.
다름 아닌 비상계엄령. what the...
비상계엄령이라는 걸 살아생전 경험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시각 나는 잠들어있었고, 일어났을 무렵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다음날 뉴스를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잠들어있던 나와 달리 당시의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고향이 전라도다. 심지어 아빠는 광주 토박이다. 1980년 광주에서 비상계엄령과 5·18 민주화운동을 나란히 겪었던 아빠는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살벌했다던 그때 그 시기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하나의 전설처럼 말이다. 근데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비상계엄령이라니, 나라가 산산조각난 느낌이었다. 연일 기사가 쏟아졌다. 2016년 탄핵을 외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면, 이 혼란한 시기에《두 도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이 지금의 우리와 닮아있다 여겨졌다. 초반에는 프랑스 귀족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끼고 분노한 시민군의 모습을 응원했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명했던 구호가 흐릿해지면서 기요틴의 존재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피로 얼룩져가는 서사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던 거다. 우리가 저들처럼 되지 않도록, 지금의 혼란한 상황에 다시금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준 책이었으니까. 앞으로 내가 이 나라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시민의식을 가져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믐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완독하지 못했을 책이다. 박산호 작가님이 중간중간 전해주시는 역사적 배경과 찰스 디킨스의 이야기를 통해 모임은 더욱 풍성해졌다. 번역체에 낯설어하던 감각도 조금은 무뎌질 수 있었다. 날짜도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들어맞았을까.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모임이 가능할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 세상은 소란스럽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불을 밝혀야 한다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힘이 솟는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는 그믐의 구호처럼, 그믐이 사라지면 내 인생에 암흑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약속장소인 솔깃은 신당중앙시장 구석에 위치한 작은 주점이었다. '그럴듯해 보여 마음이 쏠리는 데가 있다'는 '솔깃하다'의 어근에 걸맞게 매력적인 장소였다. 타고난 길치라 그 근처를 빙빙 돌긴 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꼭꼭 숨어있는 비밀 아지트 같았다.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우리들만의 비밀 집결지랄까(그믐의 암호를 대시오!). 공간이 협소할 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내부에 화장실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역시 대표님의 안목). 은은한 조명과 색색의 의자들, 부엌과 연결된(?) 뻥 뚫린 벽까지,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감각적이었다. 사장님이 인센스 스틱을 피우셨던 건지 모임 중간중간 향이 느껴지기도 했는데(나만 느꼈을까), 그 덕에 살짝 몽롱한 것이 이승이 아닌 저승에 있는 느낌이 들기도(뭐래니...).
그래서 완독파티 모임이 어땠냐면 말이지.
너무 좋았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너무너무! 그믐이 아니었다면 골방에서 혼자 읽고 덮었을 (아니 어쩌면 시작도 못했을) 책을 서로 진도에 맞춰 착착착 단계별로 올라가 최종 보스(?)를 짜잔하고 만난 느낌이랄까. 세상은 여전히 혼란하지만, 우리는 솔깃에 모여 도란도란 삶을 나눴다. 책과 삶, 책과 사람. 그 모든 목소리가 하나하나 생생하게 울려 퍼졌고, 보물처럼 소중했다. 연말을 이렇게 따스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더없이 기쁘기도 했다. 처음 이 모임에 참여하고자 결심했을 때만 해도 '12월은 언제 오나', 책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내가 이걸 다 읽을 수 있긴 한 걸까'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독파티에서 소회를 나눌 무렵이 되어서야 '이제 정말 끝났구나' 실감이 났다. 헛헛한 마음도 올라왔다. 헤쳐 모여의 감각에 익숙한 나지만, 모임이 길었던 만큼 여운도 길게 남았다. 모임 말미에 그믐은 내게 생명수 같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러하다. 길잡이별이 되어주신 김새섬 대표님께도, 장강명 작가님께도 늘 감사한 마음이다. 부디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믐을, 독서 생태계를 잘 지켜주셨으면. 그럼 난 가만가만 두 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지.
(자신 있어요!)
연인에게는 이 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조잘조잘 재잘재잘 자랑을 워낙 많이 했었다. 줌미팅이 한 번씩 끝난 다음 날이면, "이번 모임은 말이야"로 장광설을 늘어놓았고, 그는 그때마다 활짝 웃으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나쁜 남자가 아니다, 흥). 그가 계속해서 기다렸던 질문은 세 권을 모두 읽고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이었다. "아직은 비밀이야"를 외쳤다가 완독파티가 끝난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의 최애작품을 밝혔다.《위대한 유산》에서《두 도시 이야기》로 옮겨갔다고. 우리 두 사람도 책으로 만난 사이라, 책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이 난다. 다음 주에는 둘만의 책 파티(?)를 하기로 했다. 경건하게 앉아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과 새롭게 알게 된 좋은 작가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다음 주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서관이나 북카페)에 가 하루 종일 책만 읽자고 다짐했다. 종종 연인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이라는 책을 계속해서 읽고 싶다고.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만나는 동안만큼은 그에 대해 다 안다 자신하지 않고, 하루하루 그라는 책을 읽어가겠다고 말이다.
덧, 완독파티가 끝난 후에는 벽돌책 모임에 몰입하고 있다. 매달 새로운 책이 정해질 때마다 관심은 많았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건, 진입장벽이 높은 모임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 읽고 있는 책은《노이즈》다. 벽돌책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고 계신 분들은 이 책 정도(?)면 벽돌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그래서 용기 내 신청했다), 나는 아니다. 진도에 맞춰 읽으면서 살짝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을 놓을 수는 없어서 김초엽 작가님의《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책도 함께 읽고 있다.


모임은 29일이 지나면 종료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이 하나하나 문장이 되어 자리를 잡아간다. 그럼에도 어떤 질문은, 또 어떤 대답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생각이 닫히기도 한다. 고집스럽게 내 주장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게 아니라 이렇다 할 정답이 없는 질문과 답이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 계속해서 묻고 답을 듣고. 그렇게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모르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29일의 모임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묘한 고양감이 차오른다.
이 책은 작년에 처음 읽었다. 장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자주 느끼는 감각인데 빨려 들어가듯 읽어나갔다. 주인공이 내 옷자락을 부여잡고 놔주지 않는 느낌, 그의 생각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와닿는 느낌? 비틀어 말하고 싶은 지점도 있었지만, 그렇게 또 하나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지 않을까. 읽으면서 계속 '나의 랠리는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신기한 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람이 얼마 전, 모임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모든 글을 지우고 사라졌던 이가 아무렇지 않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의 오래전 글에 답을 달았다. 응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응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궁금하긴 했다. 어떻게 지내요? 아니, 어떻게 지냈어요? 왜 말도 없이 도망치듯 사라졌었나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랠리를 완주하고 돌아온 것일까.
어떻게 지냈든 저떻게(?) 지냈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거면 됐다.
어제는 오랜만에 혼자 영화관을 다녀왔다.《룸 넥스트 도어》라는 영화를 봤다. 보는 내내 떠올랐던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위에서 말장난처럼 읊었던《어떻게 지내요》라는 책이다. 영화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고 갔던 터라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가 퍽 신기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면 말이지... 마음에 묵직한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벅찼다. 삶과 죽음, 치열한 고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떠올랐다.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고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작은 영화관이라 사람이 적었고 비켜줄 이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죽는 순간, 그 옆방에 있어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존엄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자유와 그것은 자유가 아닌 범죄라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총성처럼 귓가를 땅땅 때렸다. 친구의 죽음(자살)을 바로 옆에서 지킨 주인공은 과연 그 기억을 안고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 삶의 의미로 돌아가본다. 이건 결국 자신만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요즘은 삶의 형태가 워낙 다양해지기도 했고, 직업과 직장의 유형이랄까, 속성? 도 점점 더 세분화 되어가는 것 같아서. 통속적인 행복의 틀이 산산조각 난 느낌이다. 자신의 가치를 오롯이 알아봐 주고 인정하는 건 결국 다 본인 만족이지 싶은 거다. 그런 의미에서 종현의 완주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위안이 됐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혹은 누군가 알아봐 준다 해도 그건 그거고 나는 나야! 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달든 쓰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마음가짐으로)를 좇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하니까. 그럼에도 이번 수북탐독 모임에서는 더 깊은 대화가 오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장작가님의 말씀,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 딜레마를 받아들이는 것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모순의 모순, 내가 뱉었던 말에 '아차'하고 걸려 넘어지는 지점들. 책임져야 하는 지점들. 이런 걸 하나씩 구체화하면서 가치관을 세워간다는 건 단단해짐과 동시에 저릿한 고통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글은 장작가님이 모임에서 하셨던 말씀인데, 너무 인상 깊어서 가만히 옮겨본다.
저는 세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더 넓게 또 더 촘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제 가치관을 발전시켜 보려 해요.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건 압니다. 그래도 질문들을 던져 보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때로 ‘저런 행동은 얼마나 가치 있는 걸까’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저런 인생은 가치가 얼마나 있는 걸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네, 저는 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어쩌면 한 가지)입니다. 먼저 제 머리로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고민하지 않은 사안이 제가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한테 중립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가와 함께 옵니다. 제가 제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가치 판단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또는 제가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머리가 아닌 감성이나 원시적 본능의 영향을 받는 도덕적 직관에 따라 그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은 윤리의 확장을 둘러싼 도전이 많습니다. 동물권이나 정체성 정치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그런 논의에 대해서 저는 지적으로 성실해지고 싶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 나쁜 것’이라고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해야 겨우 중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저는 이미 아주 크고 촘촘한 가치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체계는 바로 시장논리인데, 적어도 논리적 완결성은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IT 개발자와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삶의 가치는 각각 얼마다, 하고 순식간에 계산해내는 가치체계입니다. 저는 그 가치체계의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거기에만 의존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장논리는 워낙 촘촘하기 때문에 제가 저항하지 않으면 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힘을 발휘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저항하려면 저는 시장논리가 힘을 발휘하는 영역-사실상 모든 영역-에 대해 저만의 가치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모임에서 여러 의견을 나누면서 계속해서《표백》이 떠올랐다.《재수사》도 여러 번 언급됐는데, 이제 와 고백하자면 안타깝게도 사실 나는 아직《재수사》를 읽지 못했다. 장작가님의 저서를 거의 다 섭렵했음에도 유독 이 작품을 읽지 못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주변에서 극찬하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미제 살인', '오피스텔', '범죄' 등과 같은 몇몇 키워드 때문이다.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혼자 살고 있는 나와 겹치는 지점이 많았던 여성의 모습에, 읽다가 포기했다. 평소에도 스릴러나 공포물을 질겁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무서운 상상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읽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이번 모임 덕분이기도 하고, 최근에 만난 어떤 이 때문이기도 하다. 혼자는 아직 무서우니 내년에는 그믐에서 이 책을 주제로 같이 읽기를 시도해 보면 조금 나으려나. 괜찮으려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과 토론은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꼬리물기처럼 이어지는 각종 살인 사건들의 서사만 잔뜩 듣게 되면 어쩌지. 시작도 안 해놓고 벌써부터 걱정인형들만 하나하나 데려오는 기분이다.
내가 처음으로 도서관(이라는 곳을) 갔던 게 언제였더라. 이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7살쯤이던가, 창원에 이사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손에 이끌려 향하곤 했는데, 일단 건물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동네 안에 정차하는 의문의 버스. 바로 이동도서관이었다. 책을 가득 실은 버스가 아파트 단지에 조용히 멈춰 서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버스 안으로 들어가 나에게 책을 골라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 달리 어렸을 때의 나는 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밖에 나가서 방방방 뛰어놀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 하니 그저 답답할 뿐.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버스 안에서 이 책 저 책 심드렁하게 뒤적거리다 마지못해 한 권을 고르는 식, 이게 나와 도서관의 첫 기억이다. 역사의 한 흐름처럼, 이제는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이동도서관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 '찾아가는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여러 도서관에서 다시금 이런 형태의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잊고 있던 도서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 건 이번에 읽은 <사서의 일>이라는 책 덕분이다.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는 아직 모호하지만,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를 아이-원트-송으로 흥얼거리는 내게 이 책의 제목은 꽤 의미심장했다. 매듭은 천천히 지으려 한다. 1인 출판사나 동네서점도 생각했었고, 글을 쓰는 직업(꼭 작가가 아니더라도)도 여러 가지를 떠올려봤다. 대학원(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고, 읽고 쓰는 것과 관련된 편집자, 사서 등 온갖 직업군을 찾아보기도 했다(물론 이 모든 직업군은 기초가 없기 때문에 바닥부터 배워야 할 테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만난 책이다. '책과이음' 출판사에서 '느린사람' 활동을 하면서 신청했던 두 권의 책 중 마지막 한 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두천시 사동초등학교의 도서관이 아닌, 부속으로 있는 '지혜의 집'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양지윤 사서의 에세이다. 2021년에 출간된 책인데, 작가의 소개글에는 '어느덧 10년 차 계약직 사서의 소심하고도 치열한 도서관 운영기'라는 문장이 담겨있다. 이 책이 출간된 지도 3년이 지났으니, 그녀는 어느새 지혜의 집 사서로 13년 차가 된 셈이다.
지금껏 내가 주변에서 들어온 '사서'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 안정을 추구하는 성격. 엉덩이가 무거운 편. 다독가. 그리고 종종 한가한 사람. 더러 맞는 점도 있고 완전히 틀린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모험'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라는 인상이 강한 듯하다. 사서가 되기 전, 내 생각 역시 주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이곳만큼 내 안에 꾹꾹 눌러왔던 모험심을 자극하는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온갖 모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나 할까.
오래전에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 사서로 일하시는 분을 만났던 적이 있다. 당시 그 모임은 고정멤버로만 운영되던 곳이었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사서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하고, 다재다능(심지어 힘도 세야 하겠더라는)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양지윤 사서가 책에 남겨놓은 문장처럼, 나 또한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조용하고, 우아하고, 차분한 사람.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해박한 지식으로 책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자신만의 책 취향이 꼿꼿할 것 같은 사람. 일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 책을 만지는 일이라 생각하니, 뭔가 다 정적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인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된 도서관의 모습은 꽤나 생경했다. 그곳 또한 누군가의 철저한 일터였고, 고상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은커녕 각종 행사에 서류 작업에 정리할 것도 많고, 주말 출근까지 더해져 강행군이 따로 없었다. 모든 면에서 만능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악성 민원도 잦아서 온갖 고충을 다 겪고 있었는데, 평일 퇴근 후 독서모임이었던지라, 지인의 지친 모습이 늘 안쓰러워 보였다.
양지윤 사서가 일하는 지혜의 집 또한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우선 도서관 자체가 작아 그곳을 찾는 발길이 거의 없었고, 일도 찾아서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학교 도서관이 아닌, 학교와 떨어진 부속 도서관이라 더 그랬으려나.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조차 지혜의 집 도서관에 큰 기대가 없어 보였다. 가만히 그 자리를 지켜주기만을 바랐다. 양지윤 사서는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딱히 없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혼자 감당해나간다. 첫날 도서관에 도착해서는 오랫동안 닫혀있던 그곳을 활짝 열고 청소하는 데만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쏟기도 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도망치는 불량 학생들 때문에 거친 성정을 부러 나타내기도 하고,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온갖 수다를 떨며 도서관을 만남의 광장처럼 여기는 학부모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교대해 줄 직원도 없이 홀로 그곳을 관리하느라 점심 먹을 시간조차 빠듯하지만, 알뜰하게 도시락을 싸와 자신만의 안온함을 찾아가는 단단한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그렇게 2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 더 오랫동안 그 공간을 가꿔가게 된다. 적은 예산을 알뜰하게 모아 서가에 들일 책을 정성스레 고르고, 여러 교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간다. 도서관 사서이자 일본어 번역가이기도 한 그녀는 지혜의 집에서 직접 일본어를 가르치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10년 넘게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만났지만 매번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힘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녀에게 지혜의 집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기르는 일에는 서툰 나지만, 이 작은 공간만큼은 사라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그녀만의 올곧은 힘이 실려있다.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공간에서 '사서의 일'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던 에필로그를 읽으며 가만히 책을 덮었다.
이 책을 읽고 문득 지혜의 집이 궁금해졌다. 양지윤 사서의 말처럼, 여전히 그 공간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운영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지혜의 집이 강제로 폐관될 위기에 놓여있다는 화가 나는 소식이었다.
이어지는 건 양지윤 사서의 글이다.
"사동초 지혜의 집 작은도서관 폐관 이슈를 다룬 신문기사가 난 다음날, 폐관에 반대하는 시민 분들이 작은도서관에 모였습니다. 10년 넘게 활동하는 작은도서관 동아리 회원들, 몇 년 전부터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다는 분들이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시에서 벌이는 비민주적인 폐관 방식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폐관 철회를 요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지혜의 집은 작은도서관 폐관 반대 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 또한 서명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게 고작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기사에도 나와있지만, 2022년에 마포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어 시민들의 공분을 샀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만들어진 곳인데, 어떻게 지켜온 곳인데. 여전히 그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데. 부디 작고 소중한 이곳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사라지게 된다 해도 한번은 꼭 방문하려 한다. 하나씩 사라져가는 작은 동네 서점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일까. 누군가에게는 우주일 수 있는 그 공간이 이렇게 사라져가는 걸 마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다시 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나 또한 자주 방문하는 작은도서관이 하나 있다. 회사 근처라 점심시간에 종종 다녀오곤 하는데, 규모가 워낙 작아 서가에 책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상호대차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고, 가끔은 희망도서를 신청하기도 한다. 덕분에 꽤 많은 책을 이곳에서 만났다.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점심시간에 가면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채워가는 게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나만 이 도서관을 애용하는 줄 알았는데, 나처럼 몰래몰래 이곳을 다녀가던 동료가 있었다. 하루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딱 마주치는 바람에 서로 어찌나 놀랐던지. 다행히 그는 작년부터 나와 책으로 소통을 이어가던 몇 안 되는 동료 중 한 명이었다. 비밀아지트가 들킨 기분이었는데, 사서님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곳이 비단 나의 아지트만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작은도서관이 만들어준 또 하나의 연결고리였다.
작년 초『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사람이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부조리한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는 그곳에서 일하며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당시에 그 영화를 보며 수치로 평가되는 한 인간의 생과 사에 분노했고,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치부하며 덮어두기 급급한 사회 이면에 치를 떨어야 했다. 비단 그 영화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특히 노동과 관련된 부조리함들은 이루다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한 사람의 인생을 수치로 평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콜센터』라는 책을 처음 읽었던 건 30살, 독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단순히 제목과 목차에 끌려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깊어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아나운서, 공무원, 대기업 입사, 음식점 창업 등 각기 다른 목표를 갖고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다. 그들이 경험한 콜센터의 모습은 그야말로 시궁창 같았다. "평생 콜센터에서 일해라"라는 말이 욕이 되는 곳.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이토록 지독할 수 있나, 싶은 면면들이 많았다. 온갖 진상들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대는 청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숨이 막혔다. 세상에는 꼬인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싶어 인간혐오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믐의 좋은 점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그 책을 집필하신 작가님과 활자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뿐만 아니라 작가님이 이 책을 쓰시면서 경험하셨던 것을 하나하나 세세히 알아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꽤나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번 모임도 그랬다. 김의경 작가님의 작품은『콜센터』뿐만 아니라, 월급사실주의 동인지『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 수록된 <순간접착제>도 읽었던 터라 더더욱 이번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다.
모임은 29일 동안 진행됐다. 그리고 역시나,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작가님은 참, 인간적인 분이셨다.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이어가시며 콜센터에서 근무했을 당시의 상황들을 진솔하게 풀어주셨다. 유독 눈길이 가는 인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도 담아주셨다. 김혜나 작가님이 모임지기가 되어 질문도 하나씩 올려주셨다. 함께 참여했던 모임분들도 올라오는 질문에 맞춰 각자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주셨다. 이야기 보따리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순간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믐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9월의 마지막 일요일에는 그믐에서 진행했던 모임의 감상을 그대로 이어가고자『콜센터』를 지정도서로 한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열어 보았다. 4명이 모일 예정이었지만, 한 명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총 세 명이서 진행됐다. 모임지기는 나였고, 소수라 더 밀도 있는 대화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에 발제문도 열심히 만들었다. 궁금한 걸 풀다 보니 질문이 17개가 됐다. 이렇게 많이 준비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실은 넘버링을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질문을 준비했을 (지독한) 나란 인간. 일단은 이 정도만(?) 하자는 생각에 발제문을 마무리했다. A4용지 4장을 꽉 채운 분량이었다. 모임 당일, 인원수에 맞춰 깔끔하게 프린트 한 종이를 챙겨 카페에 모였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3시간이 부족했다. 심지어 발제문에 담긴 질문을 다 나누지도 못 했다. 노동현장과 직업, 일(직업과 일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에 대한 묵직한 말들이 오갔다. 회원분 중 한 분은 실제로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어『콜센터』에 등장하는 시현의 입장에 많이 공감했다고. 나는 되레 그분의 생생한 경험담 덕분에 시현이라는 캐릭터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다(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시현은 내게 비호감이었다). 그날 모인 우리 세 명은 닉네임으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서로의 실명도, 나이도, 사는 곳도, 정확한 직업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런 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책을 읽고 나눈 각자의 삶이었으니. 상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콜센터』를 읽을 때마다 나의 스물다섯 살이 생각난다. 첫 직장에 입사했던 게 25살, 3월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나는 달라졌을까, 라고 질문한다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삶에서 몇 번의 굵직굵직한 고난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과감하게 경로를 틀었다. 키를 잡은 건 온전히 나여야 했고,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이었다기 보다는 혹독한 근무환경일 때가 많았다. 사방에서 나에게 big엿(표현 왜 이래)을 날리는 기분. 어디 하나 발 딛고 설 수 없을 정도로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기분.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터덜터덜 퇴근했던 그때 그 시절. 아빠가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찬장에 고이고이 진열해뒀던 비싼 양주를 매일 퇴근하고 한 잔, 두 잔, 그렇게 들이켜댔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독한 술을 마셔야만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다시 기상이었다. 찬장에 전시해둔 귀한(?) 술병의 액체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버젓이 보였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쟤는 저게 얼만지 알고 저렇게 마셔대나'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때는 그 술들이 나에게 하나의 탈출구였다.
비단 콜센터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 아니 하물며 청소년들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커녕 수많은 기계, 그 기계의 부속품 중 하나로 취급받는 노동계의 취약점을 우리는 더 많이 고발하고 들춰내야 하지 않을까. 진상 고객이라는 이유로 떠밀리고 떠밀려 가장 약한 누군가가 그들을 상대하고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건 누군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정량적 지표로 수치화할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깊어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한없이 무력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업들 중에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굳이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너무나 몰지각하게 그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반복해서 유사 재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부의 개입은 다소 소극적이다.『다음 소희』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읽은『콜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읽었던『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는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며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라고도 말한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섬세함으로 머물러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옮아가야 하는지까지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비록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행동만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콜센터』모임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조금 더 뾰족한 인권 감수성을 품은 채 살아가고 싶다고. 모두가 행복한 일터는 어려울지라도, 모두에게 건강한 일터만큼은 꿈꿀 수 있기를, 몸도 마음도 다 말이다.
어릴 때부터 또래 문화 안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연예인 이야기였다. "너는 누구 팬이야?"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빠르게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여자아이들의 결속이 힘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야기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주제에 쉽사리 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 처음에는 이런 내가 이상한가 싶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관심이 생기려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친구들과 대화 코드를 맞추고자 부러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 실패.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다(이를테면 BTS가 몇 명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구나, 라는 걸 잔잔히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나란 인간은 영원히 팬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싶다. 보편적인 장르가 달랐을 뿐 내가 좋아하는 책과 작가님들에 대한 팬심은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이라는 걸 차차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독서모임에서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주제로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다. 모임에 참석하고자 일전에 읽었던 작가님의 책들을 제외하고,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들까지 한 권 한 권 섭렵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담고 있는 메시지에, 에세이를 읽을 때는 독서 생태계에 진심인 작가님의 가치관에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논픽션(특히『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취재할 수 있나 싶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아 물론 좋은 의미로). 그렇게 모임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작가님과 함께 하는 비대면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고, 그날이 시작이었다.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모임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처럼 극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고, 불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인생사 참 재미있는 건 그때 불호를 외쳤던 유일한 사람이 다름 아닌 지금의 내 연인이라는 사실이다(사람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와는 그전부터 오래 알던 사이였는데, 그날의 모임을 계기로 사귀...게 된 건 아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종종 그때 일로 장난을 치곤 한다). 당시 그가 주장했던 논리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타당한 면도 없지 않았기에 이해는 했지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당시 모임을 주최했던 회원분은 장강명 작가님의 책들 중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모조리 챙겨오셨는데, 큰 가방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바리바리 담아오셨다. '이분이 나보다 더하구나' 싶어 사진도 찍었지만 사진에 담긴 책 외에도 더 많은 책을 집필하셨다는 게 함정이다. 올해도 다른 독서모임에서《표백》을 지정도서로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지만, 그때와 달리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다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들어봐도 그들의 논리는 비판보다 근거 없는 비난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시 본론(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서론이었다).
지난주에 장강명 작가님의 강연을 다녀왔다. 아차산숲속도서관에서 독서의 달을 기념해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문학 독서와 삶의 답변들"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문학 작품을 더 친근하게,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북토크, 강연 등이 열릴 때마다 시간이 맞으면 꼭 참석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이 주제라는 점이 좋았다. 심지어 아차산숲속도서관은 그전부터 가보려고 찜해둔 여러 도서관 중 한 곳이었다. 고작 사진으로 접한 게 전부였지만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마냥 안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 경관도 좋다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그 주변만 뱅뱅 돌고 또 돌았다. 사이사이 언덕은 또 어찌나 많던지. 걸어가는 내내 체력 소모(그날 2만 보를 넘게 걸었다)도 체력 소모지만 이러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출발 자체를 워낙 일찍 했던 터라(길치의 준비성이랄까) 한참을 헤맸음에도 강연 시간보다 1시간 정도나 일찍 도착했다. 저 멀리 도서관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덕분에 도서관 근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선선한 바람, 저 멀리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까지.
도서관에 들어갔더니 강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역시나 맨 앞자리는 조심스러워 그 뒷줄에 앉았지만, 이번 강연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내 앞에 앉지 않는 바람에 작가님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1층에는 장애인 화장실만 있었다. 혹시나 싶어 사서님께 여쭤봤더니 2층에 비장애인 화장실이 있다고 하시길래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서관 운영시간이 6시까지라 강연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 막혀있었다.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작가님이 2층 대기석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다행히 엘리베이터 쪽을 등지고 계셨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겨우 꾹꾹 누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심호흡을 하면서 인사를 드릴까 말까 어찌나 고민을 했던지. 한창 강연을 준비하고 계신데 괜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쭈뼛쭈뼛거리다 결국 용기를 냈다.
"작가님"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 하고, 조금 멀찍이 서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가님을 불렀다. 작가님은 안경을 벗고 계셨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을 고쳐 쓰시고는 뒤돌아 나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받아주셨다. 심지어 나의 짧아진 머리도 알아봐 주셨다. 세상에, 맙소사! 근데 막상 인사를 건네고 나니 다음 말을 이어가야 했는데... 너무 떨려서 그만 횡설수설, 손을 휘휘 저으며, 먼저 내려가 있겠다는 말만 와다다다 내뱉고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열림과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이럴 거면 작가님을 왜 부른 걸까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향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자책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 서가에 있는 책들로 시선을 돌렸다. 책을 펼쳐들고 읽으려 했지만 활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중간중간 작가님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화들짝 놀라곤 했던 건 (안)비밀이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다.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말씀에 번번이 놀라며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은 오랜만이었는데, 역시나 좋았다. 울컥하는 지점이 있어 눈물을 꾹 참기도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기쁨보다 고통에 더 반응하고,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에 울림이 있었다. 한 편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작품에 대한 분석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대 또한 감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몰입해야 하는 구간은 '내가 어디서 고통을 느꼈는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떤 인물의, 어떤 장면에서 고통을 느꼈는지, 왜 그 장면이 고통스러웠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사람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여기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 '뭐지? 나 방금 왜 울었지?' 혹은 '뭐지? 방금 뭘 읽은 거지?'와 같은 감상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그 작품을 음미하며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책을 읽는 것조차 유튜브의 짧은 영상으로 대체하며 맥락만 짚어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이번 강연을 통해 알았다. 내가 문학을 읽는, 읽어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의 성격, 자라온 환경, 소설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느낀 나만의 감상을 공론장에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주장을 갖추는 것. 그게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였다. 그 가치는 단순히 짧은 영상으로 줄거리만 파악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고유함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는 세상에 널렸고, 조금만 검색하면 책을 읽지 않아도, 그 책에 대한 온갖 정보를 섭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독서 생태계를 함께 일궈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날 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배웠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단어들을 조금 더 균일하게 나만의 문장으로 끼워 맞출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집까지 향하는 길 또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롭지 않았다.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산길을 내려갔다가 그 선택을 후회했다. 가는 길에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가로등도 없어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길이 맞긴 한 건지 점점 두려워졌다.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난데없이 오밤중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내려가다 조금씩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큰길이 나왔다. 다행이다 싶어 지도를 열었더니 이제야 조금씩 좌표를 제대로 잡아주기 시작했다. 가려던 역은 아차산역이었는데, 내가 막상 도착한 곳은 광나루역이었다(괜찮아, 익숙해, 이 느낌). 다행히 역에서는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어렵지 않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주말에 연인을 만나 작가님의 강연 이야기를 전했다. 가을, 밤, 책, 문학, 진심, 고통, 삶 등 묵직한 단어들이 오고 갔다. 한때는 작가님의 작품에 '불호'를 외쳤던 연인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작가님의 가치관을 종종 읊어대던 나에게 물들어가는 것인지 '역시'라는 말로 화답하는 연인의 모습에 같이 웃었다. 가을밤이고 모든 게 완벽했다.
(아 모기만 빼면...)


사람들은 왜 자꾸 소리를 지를까.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길거리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 하야하나? 다짜고짜 일단 소리부터 빽 지르고 보는 그 심보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화가 났고, 화를 분출하고 싶고, 에라 모르겠다 꽥. 뭐 이런 건가? 그 상황에서 그걸 고스란히 당하거나 목격하고 있을 타인에 대한 배려는? 존중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노조절장애가 분노조절잘해라는 말로 희화화되는 것 또한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의 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다. 이는 폭력이 동반될 수도 있는 분노의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행동 장애로,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을 말한다. 호르몬 분비의 이상,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의 기능 이상, 어린 시절의 학대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현되곤 한다.
혼자 살기 시작했던 건 30살 봄부터였다.
원가족에게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유롭게 뛰놀던 시기는 진작 지났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 짊어지며 산다는 건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걸 차근차근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중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타인들의 소음이었다. 6년 차가 된 지금도 이 불안감은 여전하다. 평소 청력이 좋은 편인데, 혼자 살고부터는 원래도 좋았던 청력이 더 밝아졌다. 층간소음으로 꽤 오랜 기간 고통받으면서 귀가 트인 것이다. 흔히 이걸 층간소음 귀트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 번 트이고 나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그때 이후로 부쩍 더 원치 않는 소음에 고통받는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귀트임은 좋은 말로 쓰인다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쿵쿵, 쾅쾅, 드르륵, 지이익 같은 다양한 일상(?) 소음에는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긴 건지(포기한 건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진다(이건 어디까지나 넘어가는 게 아니고, 강제로 넘어가지는 것이다). 세상에 조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특히 타인에게 보여지지 않는, 밀폐된 자신만의 공간이라면 더하겠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익명의 세계가 더 저열하고 날이 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걸 다 차치하고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소음이 하나 있다. 바로 누군가의 비명소리다. 이건 단순 소음으로만 볼 수도 없고, 이유도 모르겠고, 이유를 알아도 무섭고. 어떤 상황을 대입해 봐도 도무지 긍정회로가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소리 한 번 안 질러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하다못해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려 퍼질 때면 정말이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듣는 비명은 그 공포감이 배가 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낯선 동네에 집을 보러 갔다가 건물 후면에서 난데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한 여성을 목격하기도 했다. 훤한 대낮이었는데, 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저토록 날카롭고 처절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인지. 처음 방문한 동네였는데, 그분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일단 후순위로 미뤄뒀다. 경관도 좋고, 근처에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는 평이 많아 일부러 찾아온 곳이었는데, 그분 덕분에 꽤나 강렬하게 '불호'로 각인돼버렸다. 물론 그분 한 분 때문에 동네 전체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막상 마주한 그 동네는 로드뷰로 살펴보며 상상하고 그려왔던 모습과도 확연히 달랐다. 이래서 발품을 들이는 게 중요하구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 읽은 리얼리티 소설 《탕비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여러 직장에서 ‘탕비실 빌런’으로 꼽힌 사람들을 한데 모은 7일간의 리얼리티 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찝찝함과 기묘한 불쾌감이 공존한다. "누가 가장 싫습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작가의 전 작이《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불편한 감정을 한껏 자아낸다. 우리는 타인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 도덕과 윤리, 청결함이 사라진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만 낭자한 스산함이 느껴진다. 남이 보지 않아도 신호등의 신호를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차가 오지 않으면(심지어 차가 오는데도!) 마구잡이로 손을 휘휘 저으며 신호를 건너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교통에서도 적당한 데시벨을 유지하려 노력하거나 대화 자체를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사생활이 낱낱이 노출될 정도로 우렁차게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1인 가구가 많은 건물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늦은 밤이나 새벽이면 유독 심하다. 내밀한 공간에서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이들이 많다. 외로워서 그러는 것일까, 오후에 덜 풀린 화를 이렇게라도 표출하고 싶은 것일까. 가끔은 싸우는 소리도 들리고, 욕설과 고성이 같이 오가기도 한다.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소리가 날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도대체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제도 오랜만에(?)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다. 옆집인지, 윗집인지, 옆옆집인지 출처는 알 수 없다. 층간소음 유경험자로서 한마디 덧대보자면,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라고 해서 꼭 근처라는 보장이 없더라. 저 멀리서 바닥과 벽을 타고 타고 넘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이건 관리실에 연락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어제 비명을 지른 사람은 여성이었고, 누군가와 싸우는 소리인 줄 알고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무언가 자신의 비통함을 표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부터 서서히 끌어내는 비명인데, 이건 마치 동물이 포효하는 듯한 느낌마저 풍긴다. 2차로 물건을 던지는 소리도 났는데, 방바닥에 무언가를 던지며 악을 쓰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자 추측일 뿐이다. 전에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겁부터 잔뜩 집어먹고 덜덜 떨기 바빴지만 이제는 다르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은) 한다.
소설《탕비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생각이 복잡했는데, 어제의 사건 덕분에 한층 더 이 생각에 몰입하게 됐다. 사적인 공간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가꾸고 다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올라왔다. 앞뒤가 다르고, 본능대로 행동하며, 일관성이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였지만, 보여지지 않는 나의 이면과 속마음은 과연 어떨까. 나는 과연 완벽한 사람일까?
뜬금없지만 나는 관계에서도 비슷한 속성을 바란다. 완전무결한 상태의 강박이 있다. 원가족 안에서 지난한 관계를 겪어왔던 터라 이 감각이 유독 더 강렬한 것인지, 미세한 균열이 시작되는 게 늘 두려웠다. 그 작은 균열이 만들어낼 파장이 무서웠다. 관계는 마치 유리와도 같아서 견고할 때는 끈끈해 보이지만 자칫 방심하는 순간 금이 간다. 금이 간 유리는 되돌릴 수 없다. 새롭게 다시 만들거나 그 금을 따라 조금씩 벌어지다 산산이 부서지길 기다리는 꼴이다. 그럴 때마다 올해 초에 읽었던 민바람 작가의《낱말의 장면들》속 문장들을 떠올린다. 그에게 관계란 훼손된 흔적을 지워야만 건강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시간 위에 함께 남기는 흔적 그 자체였다. 가시밭길 위에서 같은 경로만 맴돌더라도 그 시간이 쌓여 더 큰 연민과 사랑이 되기도 했다고. 마음만큼 잘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더 나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진심으로 매번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고. 관계는 지키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던 그의 문장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온갖 상념들을 주르륵 쓰다 보니 도대체 결론이 뭔가 싶다. 근데 꼭 결론을 지어야 할까. 타인의 소음이든 관계의 불안함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흘러가는 하루의 일부일 뿐이다. 과정을 온전히 자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뿐, 완벽할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럼에도 다시 또 넘어지겠지만.
배우들에게는 감정선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부여된 역할에 오롯이 집중하고자 감정을 몰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감각을 글을 쓸 때마다 자주 느낀다. 하나의 감정이 한껏 차오를 때면 수없이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홱홱 쌓이고 사라지고, 쌓이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빠르게 낚아채 글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때면 꼭 도구가 없다. 시간이 지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와도 이미 늦었다. 아무리 그때의 무드를 이어가려 노력해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의 문장들, 장면들, 표정,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이미 나를 떠나버렸다. 빈 화면을 멀거니 쳐다보며 한 글자도 적지 못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닫는다. 그리고 일어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반복. 그래서 오늘의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 쓰려던 글은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절주절 상념이나 풀어놓으려 한다.
하나. 황정은 작가님의『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남은 페이지를 마저 읽고, 연인에게 짧은 감상을 전했다. 황정은 작가님은 연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이다. 그분의 저서를 모두 읽은 연인은 그분의 문체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연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연인은 오늘도 출근했다.
하나. 그동안은 적에도 명절만큼은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다. 아무리 관계가 틀어져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만남인지라, '적어도 명절만큼은'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억지로) 붙여줬었다. 그나마 나에게 부여된 하나의 도리였다. 그 꼬리표가 사라졌다. 명절에도 가족들을 만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할 수가. 연락이 올까 두려운 것만 빼면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자꾸 노력하라고 말한다. 도대체 여기서 뭘 더 노력하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일단 쉬고 싶다. 귀를 막고 싶다. 들러리가 익숙한 나에게 이제 와서 역할을 부여하려 드는 게 싫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를 견디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기로 한다.
하나. 내년이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난다. 6년을 살았다. 처음 홀로 살이를 시작한 곳이었고,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어떤 동네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도무지 정이 붙지 않곤 하는데, 이 동네가 나에게 그랬다. 온갖 종류의 유흥업소가 즐비한 밤거리가 늘 무서웠다. 가끔은 끈적하게 따라오는 낯선 이들의 시선(몸이 따라올 때도 있고)도 역겨웠다. 이른 새벽의 산책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새벽 4시부터 길에서 원숭이 소리를 내는 어떤 남성 때문에 잠에서 깼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고층인데도, 새벽의 고성은 꽤나 짱짱하게 귀에 박힌다. 평소에도 4시에 눈을 뜨는 나지만, 오늘은 휴일이잖아. 어우 제발... 조용히 귀를 막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울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새벽에 경찰차 소리는 이제 익숙하다. 가끔은 출근길에도 건물 앞에 주차된 경찰차를 마주하곤 한다. 옆에서는 고성이 오간다. 다들 아침부터 기운도 좋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글은 내년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여러 후보지 중 한곳에 와서 쓰고 있다. 서울이 아닌 낯선 동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출퇴근이 힘들겠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몸의 안녕일지, 정신의 안녕일지.
하나. 어제는 거진 2년 반 만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어찌나 가볍고 좋던지. 내 머리카락은 원체 숱도 많고 두꺼워서 기부하기 좋은 컨디션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동료들이 회사 게시판에 머리카락 기부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길이가 짧아 합류하지 못 했지만 그 기관의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후에 혼자 기부를 했었다. 다만 한 가지, 직원들의 인증샷처럼 예쁘게 잘린 머리카락을 상상했으나 내 머리카락은 그런 모양이 아니었다. 숱이 너무 많아 흡사 뱀이 똬리를 튼 것마냥 크고 징그러웠다. 우편으로 보내기 전까지 보관하고 있는 동안, 나와 같은 공간에 그 뭉텅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네 머리라고 이 양반아). 다만 이번에는 기부를 할 수 없었다. 올여름 햇살이 유독 강하다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카락 끝이 햇볕에 잔뜩 타서 갈색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결도 많이 상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쑹덩쑹덩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했다. 길렀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저 머리카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아깝고 속상했다.
하나. 지난 연인들 중 나의 긴 머리를 유독 좋아했던 이가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내 머리카락은 숱도 많고 굵은 편이라 대체로 단발을 고수하는 편인데, 그를 만나고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인걸요."라는 책 속 문장을 여러 번 떠올리게 하는 그였다. 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걸 마치 자신의 목이라도 잘려나가는 것마냥 싫어했다. 그것 말고도 그는 나의 모든 걸 소유하려 들었다. 그 모습에 질려가던 어느 날이었다. 보란 듯이 짧게, 아주 짧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타났다. 여름이었고 너무 더웠으니까. 흰 티에 짧은 반바지, 그리고 단발.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는 변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를 노려보듯이 가만히 응시하더니 꼭 일본 여고생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욕일까 칭찬일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 씩 웃었다. 그해 가을이 되기 전에 그와 헤어졌다.
하나. 지난 주말「딸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봤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기를 고르던 중이었다. 소설을 얼마나 각색한 것인지 원작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영화는 영화로, 소설은 소설로 보자고 마음을 비웠다. 살면서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삶을 삶이 아니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를, 저토록 선명하고 생생한 세계를 부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감정을 억누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비웃을 수 있는 것일까. 누가 감히?
그저 같이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려펴졌다.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살아있는 감각을 억지로라도 죽이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정상이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인기 없는 영화관이라 사람이 적어 다행이었다. 관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하나. 늘 같은 시간, 같은 벤치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알고 있다. 노숙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그 벤치에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보고 계신다. 벤치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도 있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신다. 출근길에 한 번, 퇴근길에 한 번.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시선을 오래 두지는 않는다. 항상 큰 교회 앞 벤치에 계셨는데, 오늘 집을 나서면서는 그분이 다른 벤치에 계신 걸 처음 봤다. 우리 집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벤치였다. 그늘이 있는 곳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그분을 지나쳤다. 홀로 외롭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입고 계신 옷과 여러 개의 짐 가방을 보면 집이 없는 분 같지는 않았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 같았다(눈치를 받는 사람일까, 눈치를 주는 사람일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나. 추석이 이렇게 더웠던 적이 있었나. 작년 이 시기에 나는 홀로 창원에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덥지 않았다.
하나.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는 공육파트가 있다. 함께 공(共), 기를 육(育)자를 써서 함께 성장한다는 조직의 철학이 담긴 부서다. 매월 초 공육 소식지를 공지로 업로드 하는데 이번 소식지에 세상에나! <그믐>이 실렸다. 읽고도 내 눈을 의심했다. 다들 알게 모르게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차 올랐다. 다만 조회수가 아직 151이라는 게 아쉬웠다. 몇 백 명이 있는 조직에 고작 151... 아니야, 점점 더 늘어날 거야. 나도 그믐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그 동료에게 조용히 다가가 우리만의 암호를 속삭이고 싶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