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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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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는 도서관이 있지요

어릴 때부터 또래 문화 안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연예인 이야기였다. "너는 누구 팬이야?"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빠르게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여자아이들의 결속이 힘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야기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주제에 쉽사리 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 처음에는 이런 내가 이상한가 싶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관심이 생기려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친구들과 대화 코드를 맞추고자 부러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 실패.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다(이를테면 BTS가 몇 명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구나, 라는 걸 잔잔히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나란 인간은 영원히 팬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싶다. 보편적인 장르가 달랐을 뿐 내가 좋아하는 책과 작가님들에 대한 팬심은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이라는 걸 차차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독서모임에서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주제로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다. 모임에 참석하고자 일전에 읽었던 작가님의 책들을 제외하고,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들까지 한 권 한 권 섭렵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담고 있는 메시지에, 에세이를 읽을 때는 독서 생태계에 진심인 작가님의 가치관에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논픽션(특히『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취재할 수 있나 싶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아 물론 좋은 의미로). 그렇게 모임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작가님과 함께 하는 비대면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고, 그날이 시작이었다.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모임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처럼 극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고, 불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인생사 참 재미있는 건 그때 불호를 외쳤던 유일한 사람이 다름 아닌 지금의 내 연인이라는 사실이다(사람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와는 그전부터 오래 알던 사이였는데, 그날의 모임을 계기로 사귀...게 된 건 아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종종 그때 일로 장난을 치곤 한다). 당시 그가 주장했던 논리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타당한 면도 없지 않았기에 이해는 했지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당시 모임을 주최했던 회원분은 장강명 작가님의 책들 중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모조리 챙겨오셨는데, 큰 가방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바리바리 담아오셨다. '이분이 나보다 더하구나' 싶어 사진도 찍었지만 사진에 담긴 책 외에도 더 많은 책을 집필하셨다는 게 함정이다. 올해도 다른 독서모임에서《표백》을 지정도서로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지만, 그때와 달리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다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들어봐도 그들의 논리는 비판보다 근거 없는 비난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시 본론(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서론이었다).

지난주에 장강명 작가님의 강연을 다녀왔다. 아차산숲속도서관에서 독서의 달을 기념해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문학 독서와 삶의 답변들"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문학 작품을 더 친근하게,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북토크, 강연 등이 열릴 때마다 시간이 맞으면 꼭 참석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이 주제라는 점이 좋았다. 심지어 아차산숲속도서관은 그전부터 가보려고 찜해둔 여러 도서관 중 한 곳이었다. 고작 사진으로 접한 게 전부였지만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마냥 안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 경관도 좋다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그 주변만 뱅뱅 돌고 또 돌았다. 사이사이 언덕은 또 어찌나 많던지. 걸어가는 내내 체력 소모(그날 2만 보를 넘게 걸었다)도 체력 소모지만 이러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출발 자체를 워낙 일찍 했던 터라(길치의 준비성이랄까) 한참을 헤맸음에도 강연 시간보다 1시간 정도나 일찍 도착했다. 저 멀리 도서관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덕분에 도서관 근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선선한 바람, 저 멀리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까지.

도서관에 들어갔더니 강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역시나 맨 앞자리는 조심스러워 그 뒷줄에 앉았지만, 이번 강연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내 앞에 앉지 않는 바람에 작가님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1층에는 장애인 화장실만 있었다. 혹시나 싶어 사서님께 여쭤봤더니 2층에 비장애인 화장실이 있다고 하시길래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서관 운영시간이 6시까지라 강연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 막혀있었다.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작가님이 2층 대기석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다행히 엘리베이터 쪽을 등지고 계셨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겨우 꾹꾹 누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심호흡을 하면서 인사를 드릴까 말까 어찌나 고민을 했던지. 한창 강연을 준비하고 계신데 괜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쭈뼛쭈뼛거리다 결국 용기를 냈다.

"작가님"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 하고, 조금 멀찍이 서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가님을 불렀다. 작가님은 안경을 벗고 계셨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을 고쳐 쓰시고는 뒤돌아 나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받아주셨다. 심지어 나의 짧아진 머리도 알아봐 주셨다. 세상에, 맙소사! 근데 막상 인사를 건네고 나니 다음 말을 이어가야 했는데... 너무 떨려서 그만 횡설수설, 손을 휘휘 저으며, 먼저 내려가 있겠다는 말만 와다다다 내뱉고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열림과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이럴 거면 작가님을 왜 부른 걸까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향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자책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 서가에 있는 책들로 시선을 돌렸다. 책을 펼쳐들고 읽으려 했지만 활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중간중간 작가님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화들짝 놀라곤 했던 건 (안)비밀이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다.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말씀에 번번이 놀라며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은 오랜만이었는데, 역시나 좋았다. 울컥하는 지점이 있어 눈물을 꾹 참기도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기쁨보다 고통에 더 반응하고,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에 울림이 있었다. 한 편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작품에 대한 분석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대 또한 감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몰입해야 하는 구간은 '내가 어디서 고통을 느꼈는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떤 인물의, 어떤 장면에서 고통을 느꼈는지, 왜 그 장면이 고통스러웠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사람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여기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 '뭐지? 나 방금 왜 울었지?' 혹은 '뭐지? 방금 뭘 읽은 거지?'와 같은 감상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그 작품을 음미하며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책을 읽는 것조차 유튜브의 짧은 영상으로 대체하며 맥락만 짚어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이번 강연을 통해 알았다. 내가 문학을 읽는, 읽어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의 성격, 자라온 환경, 소설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느낀 나만의 감상을 공론장에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주장을 갖추는 것. 그게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였다. 그 가치는 단순히 짧은 영상으로 줄거리만 파악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고유함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는 세상에 널렸고, 조금만 검색하면 책을 읽지 않아도, 그 책에 대한 온갖 정보를 섭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독서 생태계를 함께 일궈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날 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배웠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단어들을 조금 더 균일하게 나만의 문장으로 끼워 맞출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집까지 향하는 길 또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롭지 않았다.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산길을 내려갔다가 그 선택을 후회했다. 가는 길에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가로등도 없어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길이 맞긴 한 건지 점점 두려워졌다.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난데없이 오밤중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내려가다 조금씩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큰길이 나왔다. 다행이다 싶어 지도를 열었더니 이제야 조금씩 좌표를 제대로 잡아주기 시작했다. 가려던 역은 아차산역이었는데, 내가 막상 도착한 곳은 광나루역이었다(괜찮아, 익숙해, 이 느낌). 다행히 역에서는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어렵지 않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주말에 연인을 만나 작가님의 강연 이야기를 전했다. 가을, 밤, 책, 문학, 진심, 고통, 삶 등 묵직한 단어들이 오고 갔다. 한때는 작가님의 작품에 '불호'를 외쳤던 연인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작가님의 가치관을 종종 읊어대던 나에게 물들어가는 것인지 '역시'라는 말로 화답하는 연인의 모습에 같이 웃었다. 가을밤이고 모든 게 완벽했다.

(아 모기만 빼면...)

'완벽'이란 단어의 함정

사람들은 왜 자꾸 소리를 지를까.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길거리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소리 지르며 싸우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 하야하나? 다짜고짜 일단 소리부터 빽 지르고 보는 그 심보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화가 났고, 화를 분출하고 싶고, 에라 모르겠다 꽥. 뭐 이런 건가? 그 상황에서 그걸 고스란히 당하거나 목격하고 있을 타인에 대한 배려는? 존중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노조절장애가 분노조절잘해라는 말로 희화화되는 것 또한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의 올바른 의학적 용어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다. 이는 폭력이 동반될 수도 있는 분노의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행동 장애로,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서도 상황에 맞지 않게 분노를 폭발하는 증상을 말한다. 호르몬 분비의 이상,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의 기능 이상, 어린 시절의 학대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현되곤 한다.


혼자 살기 시작했던 건 30살 봄부터였다.

원가족에게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유롭게 뛰놀던 시기는 진작 지났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혼자 짊어지며 산다는 건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걸 차근차근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중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타인들의 소음이었다. 6년 차가 된 지금도 이 불안감은 여전하다. 평소 청력이 좋은 편인데, 혼자 살고부터는 원래도 좋았던 청력이 더 밝아졌다. 층간소음으로 꽤 오랜 기간 고통받으면서 귀가 트인 것이다. 흔히 이걸 층간소음 귀트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 번 트이고 나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그때 이후로 부쩍 더 원치 않는 소음에 고통받는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귀트임은 좋은 말로 쓰인다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쿵쿵, 쾅쾅, 드르륵, 지이익 같은 다양한 일상(?) 소음에는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긴 건지(포기한 건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진다(이건 어디까지나 넘어가는 게 아니고, 강제로 넘어가지는 것이다). 세상에 조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 특히 타인에게 보여지지 않는, 밀폐된 자신만의 공간이라면 더하겠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익명의 세계가 더 저열하고 날이 선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걸 다 차치하고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소음이 하나 있다. 바로 누군가의 비명소리다. 이건 단순 소음으로만 볼 수도 없고, 이유도 모르겠고, 이유를 알아도 무섭고. 어떤 상황을 대입해 봐도 도무지 긍정회로가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소리 한 번 안 질러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하다못해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려 퍼질 때면 정말이지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듣는 비명은 그 공포감이 배가 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낯선 동네에 집을 보러 갔다가 건물 후면에서 난데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한 여성을 목격하기도 했다. 훤한 대낮이었는데, 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저토록 날카롭고 처절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인지. 처음 방문한 동네였는데, 그분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일단 후순위로 미뤄뒀다. 경관도 좋고, 근처에 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다는 평이 많아 일부러 찾아온 곳이었는데, 그분 덕분에 꽤나 강렬하게 '불호'로 각인돼버렸다. 물론 그분 한 분 때문에 동네 전체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막상 마주한 그 동네는 로드뷰로 살펴보며 상상하고 그려왔던 모습과도 확연히 달랐다. 이래서 발품을 들이는 게 중요하구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 읽은 리얼리티 소설 《탕비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여러 직장에서 ‘탕비실 빌런’으로 꼽힌 사람들을 한데 모은 7일간의 리얼리티 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찝찝함과 기묘한 불쾌감이 공존한다. "누가 가장 싫습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작가의 전 작이《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불편한 감정을 한껏 자아낸다. 우리는 타인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을까. 도덕과 윤리, 청결함이 사라진 그야말로 동물적인 감각만 낭자한 스산함이 느껴진다. 남이 보지 않아도 신호등의 신호를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차가 오지 않으면(심지어 차가 오는데도!) 마구잡이로 손을 휘휘 저으며 신호를 건너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교통에서도 적당한 데시벨을 유지하려 노력하거나 대화 자체를 중단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사생활이 낱낱이 노출될 정도로 우렁차게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1인 가구가 많은 건물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늦은 밤이나 새벽이면 유독 심하다. 내밀한 공간에서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이들이 많다. 외로워서 그러는 것일까, 오후에 덜 풀린 화를 이렇게라도 표출하고 싶은 것일까. 가끔은 싸우는 소리도 들리고, 욕설과 고성이 같이 오가기도 한다.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소리가 날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도대체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제도 오랜만에(?)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다. 옆집인지, 윗집인지, 옆옆집인지 출처는 알 수 없다. 층간소음 유경험자로서 한마디 덧대보자면,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라고 해서 꼭 근처라는 보장이 없더라. 저 멀리서 바닥과 벽을 타고 타고 넘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이건 관리실에 연락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어제 비명을 지른 사람은 여성이었고, 누군가와 싸우는 소리인 줄 알고 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니 무언가 자신의 비통함을 표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부터 서서히 끌어내는 비명인데, 이건 마치 동물이 포효하는 듯한 느낌마저 풍긴다. 2차로 물건을 던지는 소리도 났는데, 방바닥에 무언가를 던지며 악을 쓰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자 추측일 뿐이다. 전에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겁부터 잔뜩 집어먹고 덜덜 떨기 바빴지만 이제는 다르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은) 한다.


소설《탕비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생각이 복잡했는데, 어제의 사건 덕분에 한층 더 이 생각에 몰입하게 됐다. 사적인 공간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가꾸고 다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올라왔다. 앞뒤가 다르고, 본능대로 행동하며, 일관성이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였지만, 보여지지 않는 나의 이면과 속마음은 과연 어떨까. 나는 과연 완벽한 사람일까?


뜬금없지만 나는 관계에서도 비슷한 속성을 바란다. 완전무결한 상태의 강박이 있다. 원가족 안에서 지난한 관계를 겪어왔던 터라 이 감각이 유독 더 강렬한 것인지, 미세한 균열이 시작되는 게 늘 두려웠다. 그 작은 균열이 만들어낼 파장이 무서웠다. 관계는 마치 유리와도 같아서 견고할 때는 끈끈해 보이지만 자칫 방심하는 순간 금이 간다. 금이 간 유리는 되돌릴 수 없다. 새롭게 다시 만들거나 그 금을 따라 조금씩 벌어지다 산산이 부서지길 기다리는 꼴이다. 그럴 때마다 올해 초에 읽었던 민바람 작가의《낱말의 장면들》속 문장들을 떠올린다. 그에게 관계란 훼손된 흔적을 지워야만 건강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시간 위에 함께 남기는 흔적 그 자체였다. 가시밭길 위에서 같은 경로만 맴돌더라도 그 시간이 쌓여 더 큰 연민과 사랑이 되기도 했다고. 마음만큼 잘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더 나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진심으로 매번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고. 관계는 지키는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던 그의 문장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던 온갖 상념들을 주르륵 쓰다 보니 도대체 결론이 뭔가 싶다. 근데 꼭 결론을 지어야 할까. 타인의 소음이든 관계의 불안함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흘러가는 하루의 일부일 뿐이다. 과정을 온전히 자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뿐, 완벽할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럼에도 다시 또 넘어지겠지만.

공용
공용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배우들에게는 감정선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부여된 역할에 오롯이 집중하고자 감정을 몰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감각을 글을 쓸 때마다 자주 느낀다. 하나의 감정이 한껏 차오를 때면 수없이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홱홱 쌓이고 사라지고, 쌓이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빠르게 낚아채 글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때면 꼭 도구가 없다. 시간이 지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와도 이미 늦었다. 아무리 그때의 무드를 이어가려 노력해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의 문장들, 장면들, 표정,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이미 나를 떠나버렸다. 빈 화면을 멀거니 쳐다보며 한 글자도 적지 못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노트북을 닫는다. 그리고 일어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반복. 그래서 오늘의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 쓰려던 글은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절주절 상념이나 풀어놓으려 한다.

하나. 황정은 작가님의『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남은 페이지를 마저 읽고, 연인에게 짧은 감상을 전했다. 황정은 작가님은 연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이다. 그분의 저서를 모두 읽은 연인은 그분의 문체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연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연인은 오늘도 출근했다.

하나. 그동안은 적에도 명절만큼은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다. 아무리 관계가 틀어져도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만남인지라, '적어도 명절만큼은'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억지로) 붙여줬었다. 그나마 나에게 부여된 하나의 도리였다. 그 꼬리표가 사라졌다. 명절에도 가족들을 만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할 수가. 연락이 올까 두려운 것만 빼면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자꾸 노력하라고 말한다. 도대체 여기서 뭘 더 노력하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일단 쉬고 싶다. 귀를 막고 싶다. 들러리가 익숙한 나에게 이제 와서 역할을 부여하려 드는 게 싫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를 견디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기로 한다.

하나. 내년이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난다. 6년을 살았다. 처음 홀로 살이를 시작한 곳이었고,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어떤 동네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도무지 정이 붙지 않곤 하는데, 이 동네가 나에게 그랬다. 온갖 종류의 유흥업소가 즐비한 밤거리가 늘 무서웠다. 가끔은 끈적하게 따라오는 낯선 이들의 시선(몸이 따라올 때도 있고)도 역겨웠다. 이른 새벽의 산책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새벽 4시부터 길에서 원숭이 소리를 내는 어떤 남성 때문에 잠에서 깼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고층인데도, 새벽의 고성은 꽤나 짱짱하게 귀에 박힌다. 평소에도 4시에 눈을 뜨는 나지만, 오늘은 휴일이잖아. 어우 제발... 조용히 귀를 막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의 울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새벽에 경찰차 소리는 이제 익숙하다. 가끔은 출근길에도 건물 앞에 주차된 경찰차를 마주하곤 한다. 옆에서는 고성이 오간다. 다들 아침부터 기운도 좋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글은 내년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여러 후보지 중 한곳에 와서 쓰고 있다. 서울이 아닌 낯선 동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출퇴근이 힘들겠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몸의 안녕일지, 정신의 안녕일지.

하나. 어제는 거진 2년 반 만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어찌나 가볍고 좋던지. 내 머리카락은 원체 숱도 많고 두꺼워서 기부하기 좋은 컨디션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동료들이 회사 게시판에 머리카락 기부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길이가 짧아 합류하지 못 했지만 그 기관의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후에 혼자 기부를 했었다. 다만 한 가지, 직원들의 인증샷처럼 예쁘게 잘린 머리카락을 상상했으나 내 머리카락은 그런 모양이 아니었다. 숱이 너무 많아 흡사 뱀이 똬리를 튼 것마냥 크고 징그러웠다. 우편으로 보내기 전까지 보관하고 있는 동안, 나와 같은 공간에 그 뭉텅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네 머리라고 이 양반아). 다만 이번에는 기부를 할 수 없었다. 올여름 햇살이 유독 강하다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카락 끝이 햇볕에 잔뜩 타서 갈색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결도 많이 상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쑹덩쑹덩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했다. 길렀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저 머리카락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아깝고 속상했다.

하나. 지난 연인들 중 나의 긴 머리를 유독 좋아했던 이가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내 머리카락은 숱도 많고 굵은 편이라 대체로 단발을 고수하는 편인데, 그를 만나고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었다.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인걸요."라는 책 속 문장을 여러 번 떠올리게 하는 그였다. 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걸 마치 자신의 목이라도 잘려나가는 것마냥 싫어했다. 그것 말고도 그는 나의 모든 걸 소유하려 들었다. 그 모습에 질려가던 어느 날이었다. 보란 듯이 짧게, 아주 짧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타났다. 여름이었고 너무 더웠으니까. 흰 티에 짧은 반바지, 그리고 단발.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는 변한 모습으로 나타난 나를 노려보듯이 가만히 응시하더니 꼭 일본 여고생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욕일까 칭찬일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 씩 웃었다. 그해 가을이 되기 전에 그와 헤어졌다.

하나. 지난 주말「딸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봤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기를 고르던 중이었다. 소설을 얼마나 각색한 것인지 원작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영화는 영화로, 소설은 소설로 보자고 마음을 비웠다. 살면서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삶을 삶이 아니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를, 저토록 선명하고 생생한 세계를 부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감정을 억누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비웃을 수 있는 것일까. 누가 감히?

그저 같이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려펴졌다.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살아있는 감각을 억지로라도 죽이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정상이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인기 없는 영화관이라 사람이 적어 다행이었다. 관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하나. 늘 같은 시간, 같은 벤치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알고 있다. 노숙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그 벤치에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보고 계신다. 벤치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도 있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신다. 출근길에 한 번, 퇴근길에 한 번. 그분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시선을 오래 두지는 않는다. 항상 큰 교회 앞 벤치에 계셨는데, 오늘 집을 나서면서는 그분이 다른 벤치에 계신 걸 처음 봤다. 우리 집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벤치였다. 그늘이 있는 곳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그분을 지나쳤다. 홀로 외롭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입고 계신 옷과 여러 개의 짐 가방을 보면 집이 없는 분 같지는 않았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분 같았다(눈치를 받는 사람일까, 눈치를 주는 사람일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나. 추석이 이렇게 더웠던 적이 있었나. 작년 이 시기에 나는 홀로 창원에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덥지 않았다.

하나.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는 공육파트가 있다. 함께 공(共), 기를 육(育)자를 써서 함께 성장한다는 조직의 철학이 담긴 부서다. 매월 초 공육 소식지를 공지로 업로드 하는데 이번 소식지에 세상에나! <그믐>이 실렸다. 읽고도 내 눈을 의심했다. 다들 알게 모르게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차 올랐다. 다만 조회수가 아직 151이라는 게 아쉬웠다. 몇 백 명이 있는 조직에 고작 151... 아니야, 점점 더 늘어날 거야. 나도 그믐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그 동료에게 조용히 다가가 우리만의 암호를 속삭이고 싶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애쓰지
애쓰지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넷이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시소의 높이를 수평으로 맞추려는 노력을 자주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과정은 더 깊고 섬세해진다. 미세한 균열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다 구멍이 하나, 둘 뚫리고 '으악, 망했어. 망했어!'라고 연신 허둥거리다 툭. 관계를 끊어버린다. 의아한 상대가 '너 왜 그래?'라고 물었을 때, 답하기 어려웠다.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시소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 내가 먼저 시소에서 훌쩍 (뛰어) 내려와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해 말을 삼킨다). 나의 이 말을 상대가 납득할 수 있을까. 끈기가 없다고 나무라지는 않을까.


관계란 지키는 게 아니라 누리는 거라던 문장이 떠오른다.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움츠러든 아름의 모습에서 가장 깊숙한 나를 봤고, 해든과 민아의 모습에서도 골고루 나를 겪었다. "그들이 이루는 삼각형은 각자가 선 자리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라는 문장이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그 삼각형을 여러 사람과 나눠가지지 않으려 욕심을 부린다. 하나의 꼭짓점도 열어주지 않는 사람.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그 선들이 골고루 다 나 같아서 애틋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들의 관계에 쓴웃음이 났다. 혼자는 외롭고, 두 명은 찐득하고, 세 명은 미묘하다.

그럼 네 명은? 잘 모르겠다. 그냥 혼자 있자.

김화진 작가가 궁금해졌다. <나주에 대하여>를 읽어봐야겠다.

마음이
마음이
한여름 밤의 꿈


지난주 금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Beyond Beer Bookclub 완독파티를 무사히 다녀왔다.

이토록 늦은 귀가라니, 거기다 맥주 파티라니!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도리님의 문장을 빌려 보자면, 여름이었다! 크아.

근데 글의 첫 사진이 모임 사진도 아니고, 대뜸 등장하는 이 사진의 정체는 무엇인고 하니.

바로바로 장 작가님께 받은 초콜릿 선물이다.

누군가가 고작? 이게 뭐라고? 라고 말한다면, 다 따라와. 어서, 당장(불끈).

평소에는 입에도 잘 안 대는 메로나를 만취만 하면 먹겠다고 노래 노래 부른다는 나의 농담(이라 쓰고 진담이라 읽는다)을 기억하시곤 메론맛 초콜릿을 선물로 주신 작가님.

오래오래 간직... 할 수는 없고(먹는 거잖아유), 아껴 먹어야겠다. 냠냠.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그래 이건 꿈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설레서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 들 수가 있나(취한 건 아니겠지). 사실 살롱드북으로 향하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독 그랬는데, 꼭 중요한 행사나 시험을 앞두고 당일 아파버릴 때가 많았다. 학예회 때도 한 달 내내 실컷 연습하고 의상까지 맞춰서 학교로 향했지만, 정작 무대에 오르기 직전 아파버리는 바람에 홀로 남아 교실을 지켜야 했던 적도 있다. 긴장이 과해지면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기 일쑤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복통으로 골골대곤 했으니. 이번 모임도 사실 걱정이 되긴 했다. 강연은 내가 입을 열 일이라도 없으니 다행이지 독서모임은 말을 해야 하잖아. 그래서 더 떨렸나?

파티(?)의 시작은 7시 30분이었지만 7시 전에 이미 그 근처에 도착해버렸다. 작가님은 인터뷰가 끝나고 그곳에 계속 머무르실 예정이라 일찍 와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으아아아 말도 안 돼. 더 부끄러워. 누구 때문에 떨리는 건ㄷ...(읍) 아무튼, 진정하고. 그래도 30분 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어 멀찍이서 책방을 봤는데, 세상에나. 아직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놀란 마음에 다시 언덕을 내려가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자는 심산으로 두리번거리다 무작정 대형마트로 들어가 버렸다. 과일 코너를 둘러보며 '오, 이 동네 물가가 꽤 괜찮군'이라는 생각을 가만가만 이어가고 있었는데, 나중에서야 알았다. 같은 시각 나처럼 차마 책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근방을 배회하고 있던 또 다른 영혼이 있었다는 사실을. 도리님은 온라인에서 언급했던 나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시곤 바로 알아봤다고 하셨다. 그 말씀 덕분에 그때의 내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더라... 이를테면 중얼중얼 혼잣말이라던가, 뭐 그런 거.

거의 1년 만이던가. 살롱드북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은은한 조명과 탑처럼 카운터 앞을 지키며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책들, 잔잔한 음악과 특색 있는 서가의 큐레이션까지. 살롱드북만의 은근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무더운 여름밤 우리의 첫 파티 장소로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공간이었다. 인원이 많아 테이블을 붙이고 자리 세팅까지 일사불란하게 이어갔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정성스럽게 모임을 준비하는 모습에 괜히 또 혼자 뭉클해졌다. 작은 것 하나도 세심하게 살피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들은 여전히 따스하고 사랑스러우니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 시리즈 모임이었지만, 우리는 두 작가의 책 이야기 외에도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영화와 책을 알아갔고, 함께 웃고 술을 마시며 건배를 했다(세상에, 건배 얼마 만이지).

구호는 하나.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온라인상에서 활자로 외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목소리로 뱉으면서도 와 이게 정녕 꿈인가 싶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조금 더 깊은 주제들도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독서모임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고충과 고민이랄까. 각자가 경험했던 독서 공동체의 모습을 나누며, 또 그리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진솔한 과정이 좋았다. 사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우리에게 이미 잊힌지 오래였고(나만 그랬나), 모임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생하게 감상을 나눴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의견은 꽤 분분하게 여러 갈래로 뻗어갔다. 온라인에서와 달리 좋았다는 평도 많았다. 아냐아냐, 난 싫었다고요. 목소리를 꾹꾹 참다가 딱 한 마디만 하려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와르르 쏟아내고 나서야 아, 이게 아닌데 싶었다. 말은 이미 내 입을 떠낸 뒤였다. 허허허.

'처음 뵙는 장작가님께 부담되지 않게 몰래 신기해하기(?)'를 염두에 두셨던 도리님처럼, 실은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먼발치에서 강연을 들은 횟수는 꽤 여러 번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니! 조금 멀찍이 앉아 거리를 지키려 했는데, 실패. 어쩌다 보니 대각선 앞에 앉아버렸다. 오들오들 떠는 게 티 나지 않도록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실패.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을 때, 작가님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어 연신 왼쪽을 향해서만 말했다(아이고 목이야). 평소의 나는 대화할 때 상대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편인데(집중하느라 오히려 빤히 본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작가님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깜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피하곤 했다. 다행히 술도 들어가고 적당히 나른한 기분에 취해 긴장이 서서히 풀려가...기는 개뿔(?). 잔뜩 긴장해 횡설수설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작가님과 서로 대화라는 걸 생생하게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쁘긴 했다. 모임에서 만난 작가님은 한층 더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분이셨다. 뭐 솔직히 그냥 다 좋았다(주먹인사 나도 잘 할 수 있는...).

김새섬 대표님과는 온라인에서 종종 이야기를 나눴지만 오프라인으로 뵙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걸크러쉬! 청춘이라는 주제에 맞춰 모자를 쓰고 오셨다는 말씀에 귀여움까지 덤. 대표님의 블로그에 그믐과 관련된 글이 올라올 때마다 꼼꼼히 챙겨읽곤 했는데(영상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믐 평생해 주실 거죠?"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우리의 수장님(?)은 멋진 분이셨다. 크...

여기 어디 시간 도둑이 있나. 2시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던가.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되었다는 대표님의 목소리에 다시 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저기 2차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다음 날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한마음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모임원들과 함께 살롱드북을 나왔다. 다행히 내가 가려는 버스 정류장과 모임원들이 가려는 2차 장소의 방향이 같았다. 도리님과 나란히 걸으며 온라인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잔잔히 이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라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만남이라는 게 그렇다. 아쉬운 마음이 있어야 다음 만남이 기대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정성을 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고 하죠. 그리곤 만나요."

이 대사 덕분인지 영화 속에서 펀과 함께 유목생활을 이어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좋았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유롭게 헤쳐 모여하는 그들의 관계가 따뜻하고 건강하다 여겨졌다. 나는 느슨한 연대에서 찾아오는 안온함을 여전히 애정한다. 그리고 요즘도 '지속할 수 있는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결론은 늘 비슷하다. (생계유지를 위한 행위를 제외하고)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기질은 타고난 건지. 자꾸 궤도를 이탈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내가 그믐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나에게 그믐은 소중한데 느슨하다(궤변인가).

그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근데, 이렇게 길게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 글은 왜 이렇게 또 하염없이 길어진 거야. 알 수가 없네, 정말.

춘천을 다녀왔다

생각해 보면 매년 한 번씩은 춘천을 다녀왔던 것 같다. 파주도.

여름이나 가을에 주로 다녀왔는데, 당일치기로 다녀올 때는 남형석 작가님의 '첫서재'를 방문하기도 했고, 하룻밤 자고 와야겠다 싶을 때는 항상 같은 숙소를 찾았다. 얼마 전에도 그 숙소를 검색해 봤는데 다행히 사라지지 않고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유독 춘천이었을까.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26살이던가? 늦었다면 늦은 나이였지만 혼자 떠났던 첫 여행지가 바로 춘천이었다. 그때는 춘천에 아무 연고도 없을 때였는데,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는 게 그곳을 첫 여행지로 고른 단순한 이유였다. 아마 그렇게 시작됐던 것 같다. 춘천과 파주를 매년 찾는 나만의 루틴이.

그리고 그제, 올해 처음으로 춘천을 다녀왔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설레었다. 서울에서도 종종 강연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회사 교육 기간과 자꾸 겹치는 바람에 갈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시간 연차(탄력근무제가 있는 직장이다)를 잘 쓰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동안은 춘천을 갈 때마다 꼭 지하철을 타곤 했다. 기차보다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천천히 흘러가는 창밖의 초록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 종점으로 향할수록 승객들이 열차에서 한 명 한 명 내리며 한산해지는 시간, 그렇게 몇 남지 않은 승객과 몸이 닿을 필요 없이 헐렁한 좌석에 띄엄띄엄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했다. 반복적인 열차의 진동이 마치 요람처럼 느껴져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늘 분주한 서울과 달리 춘천으로 향할수록 몸도 마음도 여유롭게 늘어지는 감각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목적지와 일정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었다. 그래서 ITX-청춘열차라는 걸 처음 타봤다. 덕분에 길도 헤맸다(사실 원래도 길치다).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ITX-청춘열차는 지하철과 같은 홈에서 탄다는 점이다. 촌스러워 보여도 할 수 없다. 나는 이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분명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오는데, 내 눈에 보이는 건 지하철 홈밖에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던 찰나, 웬걸. 그곳으로 ITX-청춘열차가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이걸 타도되는 건가 싶어 긴가민가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열차에 올랐고, 다행히 내가 예매한 좌석을 찾을 수 있었다. 남춘천역까지 가는데 예상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자리에 앉아 챙겨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청춘』과 김기태 작가님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챙겨왔는데, 이번에는 김기태 작가님의 소설을 꺼내 읽었다. 요즘 푹 빠져있는 소설이다(읽을 때마다 혼자 키득거리는 포인트가 있다).

ITX-청춘열차는 확실히 경춘선 지하철보다 빨랐다. 창밖으로 다채롭게 펼쳐진 푸릇푸릇한 여름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승객들이 커튼을 내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 같아 엄두도 못 냈다. 가만히 책을 읽으며 열차 안의 고요함에 나도 함께 젖어들었다. 똑딱똑딱 잘도 흐르는 시간과 비례한 평온함에 몸이 녹아내리나 싶었는데, 어느새 열차는 남춘천역에 도착해있었다. 1년 만이던가, 반가운 마음을 즐길새도 없이 개찰구를 향해 다다다다 뛰었다. 그때부터 걷고 버스를 타고, 행여나 방송을 놓칠세라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경직된 자세로 버스 손잡이를 꼭 잡고, 내리고, 다시 또 다다다다. 그렇게 내 눈앞에 '커먼즈필드 춘천 안녕하우스'가 보였다. 사실 단번에 찾은 건 아니고, 옆 건물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혼자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던 건 (안) 비밀이다. <우리는 타인과 꼭 연결되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춘천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인문 아카데미가 이곳에서 곧 진행될 예정이었고, 내가 춘천을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강연 제목은 "상상으로 만든 동네, 현수동", 강연자는 장강명 작가님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어 좋은 자리가 많았다. 하지만 자리를 고를 때마다 매번 고민에 빠지곤 했다. 가장 앞자리, 그것도 정중앙에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막상 그렇게 앉으면 작가님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끄러워 강의에 집중하지 못할 나를 알기에. 그래서 작가님의 북토크나 강연을 갈 때마다 욕심을 내려놓고, 애매하게 대각선, 그것도 앞에서 두세 번째 줄 정도? 에 조심스럽게 앉곤 했다. 하지만 앉은키가 작은 편이라(일어서도 작기는 마찬가지) 앞사람의 체격에 따라 복불복으로 시야가 가려질 때가 많았다.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퍽 속상했다.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큰마음 먹고 춘천까지 시간 연차를 내면서 왔으니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나름대로 중앙,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맙소사. 강연이 시작될 때까지 내 앞에 아무도 앉지 않는 바람에, 작가님의 정면에 떡 하니 앉아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강연이 시작되고 작가님을 마주하고 있는 게 쑥스러워 시선을 피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애써 태연한 척 눈을 마주쳤다. 다행히(?) 작가님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시지 않고, 준비해 오신 PPT 자료를 요리조리 짚어가며 무대를 종횡무진하셨다. 화면에 띄워주시는 지도와 그림, 역사 자료 등이 신기해서 긴장감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온전히 강연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연은, 하... 말해 뭐 해. 너무 좋았다. 현수동이라는 상상의 동네를 말씀하시며, 광흥창역과 현석동뿐만 아니라 한강과 지리, 역사, 인물 등 온갖 시대 배경까지 세세하게 설명하시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회자님의 말씀처럼, 동네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연구하신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무튼, 현수동』을 읽을 당시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던 상상의 동네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작가님이 꿈꾸는 동네는 단순한 주거지의 형태가 아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따스한 마을이었다. 끊임없이 새것만을 추구하는, 업데이트에 중독된 세상에 반하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다가와 마음을 울렸다. 어릴 적 내가 살았던 동네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건, 그 동네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겠구나 싶었다.


작가님의 블로그 대문 사진은 과거의 현석동 모습이다. 좋은 일이 많았던, 소중한 동네라고 하셨다. 나에게 그런 동네는 어디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한곳이 있었다. 사실 작년 장기휴가 때도 몇 년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소중한 곳, 역시 나는 추억이 가득한 동네가 좋구나, 더 나아가 이야기가 있는 삶을 사랑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내 블로그 대문 사진도 바꿔야지)

그렇게 한참 동안 강연에 푹 빠져있었는데, 이제 질문을 받겠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손목시계를 봤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흘렀다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강연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을 나서기 전, 작가님께 조심스레 인사도 드리고 싶었지만, 괜히 또 그러면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 마음만 고이 간직한 채 안녕하우스를 나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무더운 날씨처럼 마음속에도 온기가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열치열이라고 하지 않던가(뭐래).


이번에 만난 작가님의 모습은 옛날식으로 치자면 동네에서 가장 유능한 이야기꾼 같았다. 옷차림도 자유분방하고 말이다(하하). 만약 내가 과거에 태어났더라면, 마을에 이 이야기꾼이 온다는 소식이 돌 때마다 와다다다 뛰어가서 가장 앞자리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보았다. 건물 밖에는 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 경춘선 지하철에서 위험한 일을 당했던 나를 걱정하며, 퇴근하자마자 춘천으로 달려와준 연인이 고마웠다. 그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늘 강연이 너무 좋았다고, 행복한 밤이라고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나를 보며 연인은 익숙하다는 듯 씩 웃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역시 화수분"

'자기
'자기
태어나는 걸 선택할 수 있나

이 짧은 한 문장에서 이토록 많은 상념이 쏟아져 나온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 아직은 결혼도 출산도 어느 것 하나 원치 않는 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확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출산에 대한 책임감이 결혼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 낳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애국이라는 말 좀 그만, 제발 쫌!), 낳고 난 후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는데, 내가 누군가를 이 세상에 데려올 권리와 자격이 있나?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엄마에게 유독 자주 들어왔던 말이 있다. 레퍼토리는 대체로 비슷한데, 결론은 늘 이쪽이다.

"너는 내가 낳고 키워준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대전제가 너무나 절대적이라 나의 의견 하나 말하는 것조차 일일이 검열당했다. 자유롭지 못 했다.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감히 토를 단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그저 가만히 따르라고. 엄마는 내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말은 "근데 너는 염치가 없다."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 또한 늘 한결같았다.

"내가 널 낳고 키워준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태어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없잖아. 그럼 책임지는 것도 당연... 까지는 아닐지언정, 나를 억압하고 굴복시키는 도구로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을 주변에 종종 하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에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많았다. 그저 모녀간의 가벼운 투닥거림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서. 근데, 근데 말이다. 나는 그 정도였으면 그 집을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강력히 자리 잡은 '데이트 폭력'이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여겨지는 '고부간의 갈등'처럼, 가정 안의 불화나 부모의 폭력적 언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미미하다. "원래 가족끼리는 다 그렇게 부대끼고 사는 거야"라는 시시한 푸념쯤으로 여겨진다. 쓴웃음이 난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일일이 통제하려 들었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어떠한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뒤가 없는 사람 같았다. 물러섬도, 어떠한 미안함도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그 공간에서 엄마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그런 것 따위는 엄마의 안중에 없었다. 내가 새벽에 잠들어 있으면 무작정 불을 켜고 방에 들어와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지금 당장 할 말이 있다고,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계속 그래왔다. 내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면 학교고 회사고, 나의 어느 것 하나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머리가 자라면서 아는 게 많아지고, 차근차근 나만의 생각을 가치관으로 정립해가면서 엄마와의 부딪힘은 잦아졌다. 더 정확히는 엄마가 나를 억압하려 드는 강도가 세졌다. 어릴 때는 몸을 때리면 내가 아파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는 몸을 때려도 아픈 걸 티 내지 않았다. 티 내면 그걸 약점 삼아 더 때릴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는 몸이 아닌 얼굴이나 뺨, 머리를 때렸다. 이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모욕감이 드는 행위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를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인간 대 인간의 대화가 불가능한 폭력적인 행위들. 30살이 되어 그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엄마는 참지 않았다. 감정이 쏟아지는 날이면 옆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하루는 그 둔탁한 물건에 맞아 귀 뒤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다. 오빠가 와서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면, 평생 지우지 못할 흉터를 안고 살아야 했을지도.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내 노트북도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은 엄마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다 내 탓이라고 말했다. 내가 자신을 화나게 해서, 감히 말대꾸를 해서. 그때마다 너는 정말 염치가 없다고 말했다. 키워준 걸 감사히 여길 줄 모른다고 했다.

엄마와의 지난한 관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끊어주지 않으면, 엄마가 그토록 외치던 염치라는 것. 그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자기연민이 과하면 그렇게 별로라고, 주변에서 그러던데 말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적당히.

엄마가 나를 상처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를테면 "너 따위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와 같은)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럼에도 유독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니 까짓게"

그냥 농담처럼 하는 말이 아니다. 저 말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건, 폭력이었다. 니 까짓게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머리 좀 컸다고 감히 나를? 네가? 보여줄게. 네 위치가 어딘지. 네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밖에서 인정 좀 받았다고 해서 뭐라도 된 줄 알지? 아니, 틀렸어. 너는 고작 이 따위 인생밖에 살고 있지 못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내 말을 따르지 않았으니까! 라고 소리치면서.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맞으면서 입을 닫고 아무런 반응하지 않는 것. 참는 것. 엄마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것.

왜냐하면,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하니까.


엄마가 낳고 키워준 걸 감사해야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태어나고 싶냐고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그치, 염치가 있어야 한다. 근데 염치 없게도 나는 감히 이 글을 쓰고 있다. 서평이라고 하기에는 고작 한 문장에서 뻗어난 상념들을 활자로 풀어내 이 공간에 올리는 게 과연 옳은가, 염치 없는 거 아닐까, 이 무해한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또 깊어진다.

아빠가 만약 나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했을까.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을까. 살아보지도 않은 세상을?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누군가 나에게 태어난 걸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럼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나마 대답할 수 있는 건(대답하고 싶은 건) 태어남은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죽음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제발. 그럼에도 가족이잖아, 부모잖아, 라는 말을 함부로 건네지 말기를. 나의 엄마를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가르치려 들지 말기를.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다. 원가족에서 벗어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혼자 살면서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다. 늦은 밤 나를 따라오던 남자, 문을 두드리던 남자,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던 남자, 헤어지고도 집 앞에 찾아와 나올 때가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겁을 주던 지난 연인들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핸드폰 창에 112를 대기시켜 놓는 것.


하지만 그 모든 위태로운 순간에도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곳에 가는 날은 명절과 생일, 그마저도 관계가 괜찮아졌을 때만 유효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내 가족으로 허락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나도
나도
필사모임에 대한 소회

회전목마 타는 아이들을

바라본 적 있는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인 적 있는가.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를 뒤따라간 적은,

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지켜본 적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서도

대답조차 듣지 못할 만큼.

하루가 끝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앞으로 할 백 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달려가는가.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아이에게 말한 적 있는가,

내일로 미루자고.

그토록 바쁜 움직임 속에

아이의 슬픈 얼굴은 보지 못했는가.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서둘러 달려갈 때

그곳으로 가는 즐거움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걱정과 조바심으로 보낸 하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선물과 같다.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속도를 늦추고,

음악에 귀 기울이라.

노래가 끝나기 전에.


_데이비드 웨더포드, 「더 느리게 춤추라」




습관이 참 무서운 거구나.

29일 동안 꾸준히 해오던 무언가가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느낌이 이토록 헛헛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시'라는 장르에 제대로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2021년 11월이었다. 매일 한 편의 시를 노트에 필사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처음 시를 필사하게 됐던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원체 (긴)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 글의 어휘폭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로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어휘력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읽어서는 늘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시는?

시라면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나에게 시라는 장르는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편이라 알게 모르게 계속 편식하고 있긴 했다. 그런 내가 아름답고 다정한, 다채로운 문장들을 지속적으로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그분들의 언어가 나의 언어로 묻어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암호해독에 빠질 때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좋은 문장을 정성스럽게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그믐에서 모임을 열었던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장강명 작가님의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그리고 이번이 약 10개월 만에 여는 두 번째 모임이었다. 작년에 첫 번째 모임을 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여유'였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여유가 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장기근속 휴가로 한 달의 쉼이 주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한 달 동안 책과 관련된 이곳저곳을 쉬지 않고 찾아다녔다. 직장인의 신분이라 긴 휴가가 아니고는 시도할 수 없었던 지방의 북스테이와 서점, 도서관 등 곳곳을 뚜벅이로 걸어 다니며 책 세계에 폭 빠져 있었던 시기였다. 교정교열이라는 것도 처음 해봤다.

첫 모임도 그때 열었다. 막상 열긴 열었는데, 그믐의 생태계를 잘 모르던 때라 어버버 하면서 (혼자만의)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러던 중에 장 작가님까지 함께해 주셔서 얼마나 기뻤던지! 작가님의 첫 멘트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믐에 들어갔다가 작가님의 댓글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던 건 안 비밀이다.

그리고 이번 모임이 두 번째였다. 주제는 시와 필사. 내가 필사하고 싶은 시집을 고르고, 직업적으로 여유로운 시기도 맞춰야 해서 운동화 끈을 묶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할까 말까, 농담이 아니라 이 고민만 100번도 넘게 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호기롭게 열었고,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다.

매일 필사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매일 필사를 이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중간중간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슈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필사 하나만큼은 29일을 꾸준히 했다. 내가 이 모임에 이토록 진심을 담을 거라곤 나조차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치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것처럼 푹 빠져있을 때가 많았다.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올려주시는 손글씨를 가만히 읽으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치기도 했다.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눠주실 때는 감동이 밀려왔고, 중간중간 건네는 농담에 혼자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져 갔고, 시와 소설, 필사를 중심으로 엮어가는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정말이지 하나하나 모두 소중했다.

곁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연인은 나의 필사모임을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필사모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화수분처럼 떠들어대는 나를 신기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망울이 좋았다. 나보다 더 문학을 좋아하고 진심을 다하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9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헛헛한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다음 모임을 기약할 수 없는 건, 또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나의 계획 때문이다. 그 메일을 받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상하게 바쁠 때는 일이 꼭 몰려온다고. 여유 있던 시기를 잘 잡았다 생각했지만 그 시기에 유독 이곳저곳 예상치 못한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정중히 거절하고 단 하나만 남겨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일을 시작하려 한다. 나에게 제안을 건넸던 상대에게는 당시에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이제는 중요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마무리 지었고, 이 필사모임이 그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소중했고, 소중했기에 이 공간에 처음으로 글을 남겨본다. 그믐의 블로그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싶어졌다.

끝으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누군가의 필사 한 편을 옮기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팔은 안으로 안으로 굽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출처는 최승자 시인님과 장강명 작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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