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두려운 고흐
2025-12-17 21:35:38
고흐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 미묘하다. 예술에 대한 그의 끈질긴 집착을 대단하다고 칭송하기엔 그는 너무 예민하고 괴팍하지 않은가?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까지 세상과 사람들과 타협하지 못하면서 이토록 외로워하다니.......
예전에 내가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 고흐의 편지를 읽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내 모습을 고흐에게 투영했던 모양인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칭송받는 화가가 사실은 이토록 엉망진창이었다니 반가웠고. 역시 세상사람들이 바보가 분명하다고, 그가 살아있을 때 잘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비웃었다. 그러나 이십 대 후반이 돼서 다시 읽게 된 지금은 다르다.
내가 지금 고흐를 마주쳤다면 나는 그를 인정할 수 있을까? 지금 사람들이 고흐를 사랑할 수 있는 건 그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고흐의 괴상한 생활과 멀어졌기 때문인 건 아닐까? 그가 귀를 자르고, 물감통을 마시려고 하는 등 미친 행동을 하며 그림과 화가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괴랄하게 살다가 죽을 때까지 가난하고 외로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더욱 그의 그림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의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룩 안타깝고 진절머리가 났다. 그가 나의 가족이거나 친구였다면 더더욱 그랬겠지. 씁쓸하지만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싶은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고통을 겪은 사람의 극단적인 삶 바깥에서, 남겨진 그의 그림을 안전한 방식으로 찬탄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일지.
예술이라는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고흐는 그렇게 외로웠고 괴로웠다. 그런 괴로움 덕분에 걸작이 탄생했다고 말하기엔 그가 너무 고통스러웠던 거 같다.
물론 깊이는 고뇌와 수련으로 고통과 함께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고흐가 그냥 조금 더 무던하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자잘하게 그림으로 돈도 벌고 테오와 술 한잔하며 세상을 한탄하다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 더 늙어갔더라면. 그저 그런 삶에 허우적대면서도 꿈을 놓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심심했을지 몰라도 조금은 더 살만하지 않았을까. 낮은 온도로 오래 끓는 삶에서도 그가 예술을 마주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세상에게서 이해받지 못하고 평생 외로움과 무능력 속에 빠르게 발산해버린 고흐가 참 안타깝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었기에 함께 괴로움에 휩쓸린 동생 테오의 삶도 무척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