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월간 십육일 – 은유]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 재단법인 4·16재단 (416foundation.org)
내 머릿속 세월호 아이들의 존재에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자매나 형제, 친구, 단원고 학생, 희생자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들은 사랑에 애태우고 눈물짓고 노래하고 포옹하는 열일곱 살 사랑의 주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희생자’는 단지 희생자가 아니라 사람이거늘. 여지껏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다. 304명의 죽음은 304가지 사랑의 소멸이라는 것. 304개의 전구가 꺼진 만큼 세상은 어두워졌겠고 304개의 사랑 이야기가 중단된 만큼 인간 정신은 쪼그라들었다. 이게 얼마나 큰 손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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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과 죽음의 공통점일 것이다. 일상 어디에나 있고 어떤 방식으로도 존재하는 것.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보려고 하지 않으면 안 보인다는 사실까지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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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망설이는 친구에게 간절함 한 스푼 얹어 말하고 있었다. “다음에 가면 좋겠지만 우리가 나중에 아플 수도 있고 또 싸울 수도 있어. 다 변하더라.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틀어지고 가까웠던 친구랑도 멀어지고, 멀쩡했던 사람도 병에 걸리고. 같이 여행을 가도 좋을 우정, 건강, 시간, 마음, 여윳돈… 이런 조건이 너와 나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게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지 않을까. 거기다가 가성비까지 완벽한 여행의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몰라. 완벽한 삶이 없듯이.”
친구는 설득됐다며 팔랑귀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웃었다. 나는 나의 진심을 받아준 친구가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아픔은 한 세대를 성장시킨다. 고통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이치일 거다. 군부독재를 거치며 민주주의를 배우고 아우슈비츠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세월호 참사도 내게 커다란 배움과 각성을 안겨주었다. 사회에 큰 구멍을 만든 기성세대로서의 면목 없음,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들리는 비명을 수신하는 일의 중요함, 유가족의 말씀대로 내 자식만 위해서는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깨달음 같은 것들. 남이 불행한데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의식에 눈뜬 것도 세월호 덕분이다.
그래서 관용구처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무엇을 잊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했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죽음과 더 가까운 나이에 이르렀고 그러면서 조금씩 선명해짐을 느낀다. 무엇을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지. 그건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랑이다. 살고자 했던 삶이다. 세미와 하은이 했고, 하고자 했던 사랑을 잊지 않고 싶다.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겠구나 다짐한다.
영화에서 세미는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뜻깊게 보낸다. “오늘은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라며 다가가고 고백하는 일로 하루를 온전히 다 쓴다. 이 설정은 무척 아프지만 다행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닮고 싶은 삶이다. 그래서 세미가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연습시키듯이 나도 나를 길들이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삶의 유한성을 우선 고려하기. 이것이 생의 마지막 일이 되어도 좋은가. 그럴 만하다면 실체도 없는 다음으로 미루지 말기. 세상이 주입하는 효율과 계산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기. 먼저 손 내밀기.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한 번 더 시도하기. 사랑이 안전한 세상을 위해 같이 싸울 친구를 곁에 두기. 침투하고 침투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그리하여 내 삶의 최후가 사랑의 일이면 좋겠다. 세월호 아이들의 사랑의 역사를 이어 쓸 수 있도록.
4월 19일, 사람 너덧이 한사람을 둘러싸고 무릎을 꿇는다. 뭔가를 애원하느라 흙바닥에 무릎을 끌며 기다시피 하는 사람은 전부 팔다리가 가느다란 여자, 꼿꼿이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두툼한 몸을 가진 남자다. 여자들은 남자를 향해 계속 말을 건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그는 입술을 꽉 다문 채 핸드폰을 들어 자기 아래에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촬영해 간다. 다급한 마음에 남자의 바짓자락을 잠시 붙잡은 한 여자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걸어가는 다리에 맥없이 질질 끌려가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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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2023년 초부터 1년 안에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강제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는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한 파주시는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성매매 집결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된 바로 그 여성들이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를 조직하며 강제 폐쇄에 저항하자 파주시는 그들을 업주에게 조종당한 여성들, 혹은 말할 권리가 없는 범죄자들로 치부하고는 “불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매매집결지폐쇄 TF 팀장 앞에 무릎 꿇었던 날에도 자작나무회 대표는 그저 말하고 있었다. 집결지에 사는 여자들에게도 사정이 있다고, 여기 있는 여자 중에 누구는 아픈 가족을 부양하고, 누구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누구는 아파서 다른 일을 못 한다고, 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게 된 사정이 있는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쫓으려고 하면 어떡하냐고, 면담 날짜를 잡아서 우리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차 활동가 '여름'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묻는 동료에게 “처음엔 우리가 안 보이는 척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멋진 말이 하나도 안 나왔다”고 전했다. “왜 피해자 말을 안 들어주고 도망가세요? 어디 가세요? 성매매 피해자라고 했잖아요. 피해자를 위한다면서요. 근데 왜 피해자가 무릎 꿇고 면담 날짜 잡아 달라고 하는데 그냥 가세요?” 대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거의 독백이나 다름없게 된 이 질문들을, 그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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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의 몸을 통해 현현한 파주시가 성매매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증언해야겠다고 느낀다. 개인의 몸과 성별에서 비롯되는 인상을 떼어 놓고 4월 19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 유감이지만, 그렇지만 그건 정말 그린 듯한 남자의 모습, 권력의 모습, 곧 국가의 모습이었다.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이 일평생 전력을 다해 거부하는,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역사로 반복되는 모습 말이다. 슬픈 여자, 화난 남자. 빼앗기는 여자, 파괴하는 남자. 말하는 여자,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남자. 포기하지 못하는 여자, 촬영하는 남자. 그리고 끝까지 대드는 여자를 처벌하기로 결정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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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24년 5월,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당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팠습니다. 무릎이 아니라 마음이. 자기들이 피해자라 정해 놓은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는지. 상처받았습니다. 어떻게 얘기를 들어달라 무릎을 꿇고 사정한 것이 공무집행방해죄가 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저희의 이런 상황들이 알려지지 않고 매번 묻히는지, 우리는 목소리도 내면 안 되는 사람들인지 억울하고 힘듭니다.”
🚩8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오만과 편견'을 3가지 녹음파일로 올려주세요.
1. '엘리자베스' 입장에 더 다가가서
2. '다아시' 입장에 더 다가가서
3. '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품으면서
Q. 각 녹음파일이 확 다르진 않더라도 세 가지 버전의 낭독을 하면서 찾아지는 게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어떤 점을 발견했나요?
(다음주 월요일(6/3) 오후 3시전까지)
📣 다음 수업 전에 1장과 2장에서 안했던 부분을 예독해주세요~
📍수업내용
낭독 피드백
-내 안에만 맴도는 목소리. 타인에게 들려주려고 해야 함.
-로맨스가 없다. 청소년 소설 같다며. 로맨틱을 넣자.
-뚝뚝 끊긴다. 파도가 치듯 물결 치는 흐름으로 쫀쫀하게 낭독
-엘리자베스 속대사에는 칭찬 받았다. 나와 다른 역할을 흉내내지 않고 내 목소리로 낭독한 점. 그게 진정성과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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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과제 후 생각한 것들
입장에 따라서 생각하며 낭독하니 시선이 달라지면서 그려지는 그림이 달랐어요. 로맨스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서로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신경 쓰이고 끌리는 상황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입장에서는 엘리자베스의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이 크게 느껴졌고 다아시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보였어요.
다아시의 입장에서는 엘리자베스 입장에서 보지 못한 다아시의 떨림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시선 속 엘리자베스가 간지럽게 예쁘더라고요.
마지막 객관적 시선에서는 앞서 상상한 둘의 입장을 뒤섞어서 관망해봤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되기도 하고, 다아시가 되기도 하며 이야기를 따라갔어요. 작가의 마음이 이런건지, 한 이야기에서 두 등장인물을 동시에 이해하고 이입하며 이야기를 지켜보는 경험이 낯설면서도 즐거웠네요.


‘그녀가 죽였다’ 제작진의 성별 떠나 봐달라는 ‘모순’ [플랫] - 경향신문 (khan.co.kr)
<그녀가 죽였다> 말미 피해자의 사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폐쇄회로(CC)TV 장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저런 여자가 있구나, 세상 참 무섭다”고 했고 제작진은 이 문구를 자막으로도 강조했다. 김상중이 느꼈던 충격도 그것 아니었을까. 저런 ‘여자’가 있다는 것. 수많은 남성 범죄자는 성별과 무관한 범죄자 일반이지만, 여성 범죄자는 저런 ‘여자’이자 천륜을 어긴 엄마로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끔찍한 악인이란 것과 별개로 고유정과 이은해라는 이름이 수많은 남성을 제치고 악마성의 상징적 기호가 되는 과정은 성별을 떠날 수 없으며 실은 그것이 <그녀가 죽였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이름 모를 그녀들의 죽음엔 한없이 익숙해지면서.
🚩7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강아지똥'을 녹음파일로 올려주세요.
수업 때 나온 다양한 캐릭터를 재료 삼아, 강아지똥과 민들레의 대비되는 캐릭터(입장)을 만들어서 낭독해주세요.
(다음주 월요일(5/27) 오후 3시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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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내용
- 햇볕을: 해뼈틀
- 꽃을: 꼬츨
- 흰둥이'의': 흰둥이'에'
- 조사 '의'는 '에'로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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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후 생각한 것들
강아지똥은 스스로를 잘 모르는 존재, 그래서 참새의 말에 자신을 미워하며 불안해하는 존재, 그래서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민들레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강아지똥의 필요를 아는 존재, 그래서 강아지똥에게 다정하게 알려주는 존재로 그려봤습니다.
툭툭 끊어지지 않는 낭독, 감정이 과잉되지 않는 낭독을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다음엔 한 문장 한 문장 집중을 잃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톤 조절에 더 신경써봐야지 생각했습니다.


🚩6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내 목소리에 보내는 편지'를 녹음파일로 올려주세요.
녹음파일은 유튜브에 올라갈 예정이니 원치 않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다음주 월요일(5/20) 오후 3시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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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에게 보내는 편지
이해받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서 부지런히 목소리를 냈다.
사랑받지 못하는 모습을 애써 숨기고
추레한 내가 내가 아닐 거라는 자기 주문을 걸며
아닌 척도 하면서
항상 늦었고 모자랐던 나는 뭐든지 애를 써야 했다.
모난 점을 드러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압력보다 나 자신을 갖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내가 새어나온다.
변하더라도 결코 잊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었지
내가 나이기 싫어서 아등바등대다가
끝내 맥없이 주저 앉은 곳엔
내 목소리가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ㅣ 서울대 김승섭 교수 특별강연 (youtube.com)
실패 속에서도 삶을 지탱해 준 가치 ㅣ 김승섭 교수 x 장일호 기자 북토크 풀영상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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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장님 따님 결혼식도 패스하고 갔던 북토크.
청첩장을 내가 만들었는데 일정이 겹쳐서 고민하다가 북토크를 선택했다.
대체로 이런 행사는 혼자 다닌다. 함께 가려는 사람도 없고 피곤하게 누군가를 설득해서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누군가와 함께 가고 싶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괴물>을 보고 난 후, 은유 작가님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으면서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고민해 봐서 그럴까.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함께여야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고민하고 기회를 봤으나 끝내 일행을 구하지 못했다.
독서 모임 친구 치킨님께 용기 내서 물어봤다.
무거운 내용에 대한 부담감에 거절하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꽤나 속상했다.
나와 함께 슬퍼해 줄 사람은 없구나.
북토크 당시에는 김승섭님의 책은 읽어보지 못하고 장일호 기자님의 팬이라 신청하게 됐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김승섭님의 번역하신 <장애의 역사>라는 책의 존재만 알고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으나 읽지는 못했다. 장일호 기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냅다 신청했었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김승섭 교수님의 강연을 인상 깊게 듣고 고민하다가 두서없는 질문도 했다.
청중의 얼굴을 꼼꼼히 보려고 애쓰며 질문을 경청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내 말에 이렇게 집중해 주던 남성 어른(+지식인)을 본 적이 있었나?
그 집중은 따뜻했고 그 시선 속에선 내가 모자랄까 봐, 부족할까 봐 두렵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북토크라는 걸 막 쫓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울진에서 대구까지 버스로 3시간
대구에서 광주까지 버스로 3시간
중간중간 뜨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길겠지.
울진에서 광주까지 버스를 타고 쫓아갔다. 양다솔 작가님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북토크를 들으러 러브앤프리 서점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의 북토크 후에 사인회 때 앞선 누군가가 작가님께 안아봐도 돼요? 라고 하고 포옹했다. 그걸 보고 나도 여쭤본 뒤 어색하지만 재밌게 작가님과 포옹했다. 그 경험은 낯설고 소중했다.
이후에 다른 여러 북토크를 갈 때도 상황을 보며 여성 작가님께 포옹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다들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고, 서로를 얼싸안고 마무리하며 기억에 온기도 남겼다.
남성 어른 강연을 들을 때는 고민해 봤으나 절대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하고 매번 말았는데. 이번 북토크 후에 김승섭 교수님 사인회 때는 가능할 것 같았다.
번호가 밀려서 끝 순서로 밀려났지만, 오히려 좋았다.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말할지 계속 고민하고 속으로 말을 굴렸다.
안아드려도 될까요.
제가 안아드려 봐도 될까요.
안아드려도 괜찮을까요.
막상 내 차례에 왔을 때 세 따님이 있다는 작가님의 일화에 다른 대화로 빠졌다. 기획되지 않은 이야기에 당황한 나는 엉망진창으로 대화를 이었고 내 책에 사인이 마무리될 즈음.
작가님을 쳐다보며 조금은 결연하게 말했다.
"제가 안아드려도 될까요?"
작가님은 그럼요~하고 훌쩍 일어나셨다. 작가님의 큰 키와 대비되는 나의 작은 키에 당황하며 앗 제가 안아 '드려'야 하는데! 라고 말했다. 팔의 위치를 가늠하다가 살포시 포옹하고 작가님을 도닥였다.
"애쓰셨습니다. 건강하세요."
포옹 후에 이 말을 전하고 자리를 떴다.
사실 이 말을 더 고민했다. 이번 책이 작가님의 마지막 대중서라고 하셨다. 이 고마움과 아쉬움을, 이 소중함을 어떻게 부담 주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 감사함이 작가님께 버겁지 않기를 바랐다. 작가님의 행적이 무척이나 대단하고 멋졌지만, 작가님을 추켜세우고 그 자리를 떠나는 걸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마음을 '잘'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지?
나름 머리를 굴리다가 강연 중 애썼다는 말이면 된다고 하셨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감히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마음을 꾹꾹 담아서 힘줘서 이야기하되, 가볍게 전달하고 싶었다.
전해야 할 말을 전했고 어색한 포옹도 했다. 그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 뒤늦게 책을 읽으며 그때를 자주 떠올렸다. 내가 했던 말. 거부되지 않은 포옹. 안전하다는 감각.
응답받고 싶은 마음으로 쫓아갔지만 나도 응답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애썼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그 말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읽고 성소수자, 에이즈, HIV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프렙 관련해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유성원 작가님의 블로그.
내가 읽으며 알게 된 것들을 어떻게 현실과 연결 시킬 수 있을까 계속 고민 중이다. 작가님의 블로그를 틈틈히 보고 있다. 책과 삶이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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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생각해왔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데 할 수 없다면 왜 그런 걸까? 그에 앞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행위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꺼린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내가 만난 PL들은 게이공동체에 나름 잘 어울리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태원 클럽에서, 종로 거리에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싶어하는 타인의 욕망을 존중해주며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자기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도 잘 있다. 그들은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 잘 들어 있는 듯하다. 그 결말에 대해 어떤 의심도 품지 않음을 연기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 침묵이 나는 밉다. 양성인 게이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은 듯한데, 주변에서는 왜 찾아볼 수가 없지?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마치 내가 혼자인 것처럼 느끼도록, 나만 고립된 것처럼 느끼도록. 그냥 치과 가듯이, 감기가 심해져 병원에 가듯이, 감염내과에 간다, 이러면 안 되나? 에이즈 모임 관련 후기에는 '나와는 상관없을 테니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등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다. 일회성을 띤 봉사활동처럼. 나는 그게 싫고 밉다. 너희는 언젠가 감염될 것이며, 양성인 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도 된다, 그거 별일 아니거든, 이라고 말하고 싶다. 염려로 침묵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서, 말할 필요 없는 침묵. 그런 침묵을 기다린다.
내가 양성 판정을 받는다면, 그다음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병원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에서 어떤 상담을 받아야 하며, 정보들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 정리해 매뉴얼을 만들 것이다. 나는 HIV 예방에 별로 관심이 없다. HIV에 감염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도 그다지 없다. 어느 편이든 상관없다. 나는 별로 살아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이후의 삶이다. 이 다음엔 무엇이 올까?'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책 저자, 유성원님 블로그


🚩5주차 완료/이번주 미션(★복독★필수)
📍<나에게, 낭독> 책에서 '가끔 서툰 나에게'를 녹음파일로 만들어주세요.
+ "내가 말을 이렇게 하고 산다고요?" 20~30번 다르게 연습 후 가장 딱 맞던 버전으로 녹음!
(다음주 월요일(5/6) 오후 3시전까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녹음파일로 만들어주세요.
(다음주 월요일(5/13) 오후 3시전까지)
1. 각각 적어도 한 개의 녹음파일을 단톡에 올려주세요.(여러 개의 녹음파일을 자유롭게 올리셔도 괜찮아요)
2. '어떤 문장'이 내 마음에 와닿았는지 알려주세요.
3. 그 문장이 '왜' 내 마음에 닿았는지 알려주세요.
4. 읽으면서 '느낀 점'을 나눠주세요.(길어도 짧아도 괜찮아요)
⚠다음 수업은 5월 13일(월)입니다.
A4 종이 4~5장(스케치북도 좋아요)
크레파스, 색연필을 준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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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툰 나에게>
1. '그때의 꼬맹이에게 엄마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였다.'
2. 이번에 엄마가 집에 와서 오래 머물고 있다. 성인이 됐지만 엄마 품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살을 부빈다. 살면서 점점 이런 감각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꼭 필요하다. 글 속 화자도 사랑하는 이와 몸을 맞대고 목소리로 연결되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 듯해서 좋았다. 그 부분을 낭독하면서 나도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3. 이번에 낭독을 하면서 내용에 더 집중이 됐다. 제대로 체화되려면 멀었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좋았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
1. "말을 하고 사니까 이렇게 속이 후련하구나"
2. 엄격한 아버지와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면서 억압 받으며 살아온 어머니 학생의 일화가 마음이 아팠다. 우리 엄마도 종종 집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우리를 보면 신나서 계속 떠들게 된다고 하신다. 말이라는 게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그걸 못하면서 사는 일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어머니 학생과 우리 엄마가 겹쳐보였다. 어머니 학생이 '자신의 말'을 되찾으셔서 너무 다행이다.
3. 좀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오독이 난다. 낭독도 헬스 같다고 생각이 든다. 데드리프트를 할 때, 들어올린 바벨을 내려 놓을 때에도 방심하지 말고 힘을 유지해야한다. 낭독도 그렇다. 끝날 때까지 집중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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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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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후 생각한 것들
- 소리를 : '오이으' 모음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 읽는: 잉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