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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2023-11-07 14:31:45“느림은 많은 것을 준다.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바위도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이끼들의 오밀조밀한 살림을 발견하게 된다. 바람이 불 때 나무의 잎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다보면, 가지 끝에다 잔물결을 숨기고 있어 나무는 바다가 아니면서도 파돗소리를 낸다, 는 시인의 눈도 한 수 배우게 되고 다람쥐가 놓친 알밤도 줍고 이 땅에 사람 말고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느끼게 되고(그래서 외롭지 않고) 물의 색깔이 보는 각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게 되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다.
이름하여 느림의 미학. 현대가 빠를수록 어떤 부분만큼은 아주 느린 행보, 그게 있어야 가속도 때문에 종내는 우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ㅡ page 51
이모할머니집 주위에 작부집이 많았다. 머리를 위로 틀어올린 여자, 늘 한복만 입고 있는 여자(시쳇말로 가오마담), 주근깨가 잔뜩 낀 여자, 통통하니 키가 작았던 여자, 그리고 이모할머니네에서 알몸으로 목욕하다가(한여름이면 제 집 목욕탕을 언니들에게 빼앗긴 젊은 작부들이 널찍한 그 집 마당으로 목욕을 하러 왔다. 어디서나 작부의 집이란 좁고 불편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나한테 들켰는데도 놀라지도 않고 너 누구니? 물어와서 나를 더 당황하게 했던 여자 등 여러 여인네들 구경도 재미났다.
그 여인네를 한꺼번에 볼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교 오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섬에 있었다. 가랑비가 가슬가슬 내리는 한여름이었다. 동무들이 낚시도구를 가지로 내게로 왔다.
"괴이(고기) 낚으러 가자."
"어디로, 건너짝으로?"
"야(이 애) 즈그 뎀마 타고 가자. 못치 낚으러 가자."
별 일도 없고, 여름이지만 비가 내려 온 동네가 조용한 날이었다. 우리 넷은 각자 차비를 차리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한 아이가 자기네 뎀마에 올라타 줄을 풀었다(물론 그 애 아버지 몰래 타는 것이었고 결국 그 애는 된통 혼나게 된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름에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에 더 낚시가 잘 된다는 것을. 우리는 마을 앞을 벗어나자마자 낚싯줄을 내렸다. 바로 입질이 시작되었다.
같은 낚시라도 나는 그날의 그 낚시를 잊지 못한다. 들고 나는 배도 없이 아주 고요한 섬에 가랑비는 오다 그치고, 그치다 오고, 바람도 없는 데다 갈매기 울음소리 마저도 조용한 그날 네 아이가 천천히 노를 저으며 하는 낚시. 바다는 마치 우리를 위해 따로 준비된 듯했다.
바다는 그날만큼은 어른들이나 기계들이나, 학교, 가게, 그물 따위를 밀어두고 태초의 모습으로, 생산을 위한 혼돈의 시간을 끝내고 바야흐로 평온의 시간을 맞이하는 바로 그때로 돌아가 어린 네 명의 아이들을 받아들였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이중섭의 그림에 나오는 애들처럼 옷을 홀랑 벗고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자그마한 고추를 바닷물에 씻으며 놀았다. 어미의 뱃속에서 헤엄치는 오래 전의 몸이 되어 아무 걱정 없이. 어떤 어려움도 없이 평화롭고 즐거웠다.
물방울처럼 놀다가 배에 올라보면 여전히 가랑비는 오락가락하고 여전히 춥지도 덥지도 않고 여전히 배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고요했다. 갈매기들으 아에 마취당한 듯 졸고 있어 주위에는 까르르 헤헤, 우리들 웃음소리뿐이었다. 다시 지렁이를 끼어 방금 우리가 자맥질하고 놀았던 바다에 던지면 투르륵, 입질이 왔고 당기면 보리멸이나 쏨뱅어, 놀래미가 물어 있었다. 물고기들마저도 우리와 함께 먼 과거로 거슬러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배는 유림해수욕장까지 떠밀려왔고 문득 뚝,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뭔 소리냐?"
"어디냐, 어디서 난 소리냐?"
"아이가(아이고), 노 좀 봐라."
"워매, 노 뿐질러져 부렀다야."
까르르 떠들다가 배는 떠밀려왔고 노는 여전히 노씹에 노좆이 박혀 있는 상태여서 각도를 두고 물속으로 뻗어 있었는데 날이 바닥에 닿아 휘어지다가 탄력을 못견디고 끝이 부러져 나가버린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배 임자의 아들을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다가, 배 임자의 아들도 가득 겁나는 얼굴을 하다가, 결국은 다시금 깔깔거리며 물로 뛰어들었다. 노를 걷어올린 배는 파도에 떠밀려 모래밭을 타고 앉았고 우리는 백사장을 뒹굴었다. 우리는 섬의 원주민들이었다. 토인들이었다. 모래를 잔뜩 바르고 바다로 뛰어들면 무수한 물 알갱이들이 만들어지며 모래 알갱이와 섞여 솟아올랐다. 해수욕장 위로 서 있는 나무들도 한여름 비를 맞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배를 밀어 바다로 조금 나가 닻을 내렸다. 바다에 떠서 밥을 먹었다. 꾹 누른 보리밥 덩어리와 무 짠지, 그리고 삶은 고구마는 휼륭한 성찬이 되고도 남았다. 육지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대 쪾으로 가면서 낚시를 했다. 이번에는 쥐치가 물었다. 등대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니 하나가 말했다.
"우리 큰 놈 좀 낚으러 가자."
"그러자."
'어디로 가끄나(갈까)?"
"안놀섬 뒤로 가자."
안노루섬은 자그마한 바위섬으로 거문리 옆에 있다. 옛적에 고등어 풍어제를 올린 제단이 있는 곳으로 옆으로 흐르는 물살이 세었다. 안노루섬 뒤로 가서 닻을 내렸다. 닻은 줄을 다 잡아먹고서 간신히 바닥에 닿았다. 물살이 세서 바닥이 깊었다. 추를 하나씩 더 달았지만 물살 덕에 낚싯줄은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런 곳은 낚는 수는 적지만 대신 큰 놈이 물었다. 작은 놈은 물살에 떠내려 가버려 물살을 버틸 만한 놈들만 살고 있었다. 이윽고 어른 팔뚝만한 놀래미나 우럭이 올라왔다. 그러기를 한참, 닻을 뽑아 조금씩 물살을 따라 내려가고 있을 때 동무 하나가 나머지를 불렀다.
"저기 좀 봐라."
"어디, 뭔디?"
"저기 이섬(거문리의 또 다른 이름) 독바구(바위) 옆에."
동무가 손가락질 하는 곳은 거문리 옆구리 쪽으로 큰 바위들이 양쪽에 포진된, 가운데가 자그마한 해수욕장처럼 자리잡은 몽돌밭이었다. 탯속처럼 고요한 섬에서 깔깔거리며 까불거리는 이들이 우리 말고 또 있던 거였다. 애들이란 게 어른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하지만 딱 하나 눈만은 맑은 데가 있어 한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그곳이 참으로 뚜렷하게 보였다. 그곳에서는 작부들이 놀로와 몸을 씻고 있었다.
위아래 다 입은 이들과 위만 벗은 이들, 위아래를 홀랑 벗은 이들 열댓 명이 몽돌밭에서 물에 들고나며 뭐라고 까불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돌도 보아하니 작부가 되기 전이나, 또 사람 것으로 태어나기 전의 어떤 상태로 되돌아가는 중인 듯싶었다. 서로 물장구를 치고, 벗은 이들은 아직 안 벗은 이에게 엉겨부어 억지로 옷을 벗기고, 물속으로 집어넣고, 엄마야, 언니야, 질러대고, 깔깔 호호 시끄럽고, 시원타 수영하고, 물 무섭다고 다 벗겨지고도 바깥으로 도망을 치고, 아랫도리에 털 단 여인네가 쫓고, 젖통이 원시적으로 출렁거리고, 서로 거기를 꼬집고, 아야 언니야, 투정을 해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들 중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아트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서둘러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우리가 뭐 어찌어찌할 줄 모르는 애들이라는 것을 알고 손짓으로 빨리 가라고 손사래도 치고 거꾸로 출렁거리는 젖통을 보여 주며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애들이라서 가까이 다가갈 배짱이 없는 대신 그들이 쫓아올 수 없는 곳에 있는 덕에 닻 놓고 서서 헤헤거리며 구경은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몸을 아끼는 이들도 몇몇 있었으나 몇은 볼 테면 보라는 식으로 다시 물장구 치고 꼬집고 도망가고 쫓고 했다.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였는지 일제히 우리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마 우리가 한 십 년 뒤에 찾아오겠노라고 예약쯤은 해둘 예비 선원들이기에 에라, 서비스 차원이다, 했지 않았을까 싶다.
원초적인 하루는, 발가벗고 헤엄치고 수렵하던 그 먼 과거는, 그리하여 우리의 근본들과 만나 완결의 구도를 갖게 되었다. 가랑비 내리는 고요한 섬의 바닷가에서 물장구 치고 노는 여인네들과 바다 한가운데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 위로 옅은 비구름만 슬겅슬겅 지나갔다.
우리는 각자 한 바구니씩 고기를 담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슴에는 또 한 덩어리의, 여인네들이 홀랑 벗은 몸으로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장면을 가득 담아갔다.
그러나 저 벗어젖히고 깔깔거리는 아름다운 작부들은 바다에 지친 사내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 위로를 해주기도 하지만 간간이 사람 못 쓰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거친 바닷가라 하더라도 순진한 순정파 선원이 꼭 있게 마련이어서 개중에는 작부와 정이 들어 살림을 차린 이들도 있었다. 적금 들어놓은 것(순정파들은 성실하니까 적금을 잘 든다) 해약하고 집안에 있는 돈 없는 돈 그러모아 보다가 꾸기도 하여 작부의 뒤꿈치를 묶어놓고 있는 빚 갚아주고 사랑방 하나 얻어 여인네가 사과도 깍아주고 손톱도 밀어주는 살림의 재미를 보게 된다. 그러나 으레 오래가지는 못하는데 작부란 어디론가로 떠나는 게 몸에 배어 있는 존재들이라 주변 눈이 헐한 날 육지로 가버리기 마련이었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와 산다지만 아무리 사랑하여 빚을 청산해 주고 아껴해도 작부 출신의 신분을 유지한 채 섬에서 누구의 아낙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였다. 배신당한 남자는 술에 취해 이를 갈고 자유의 몸이 된 여인네는 훨훨 육지의 도시에서 익명으로 살아갈 것인데, 잘살면 그나마 나쁘지 않을것을, 꼭 들리느니 또 같은 직종의 일을 한다는 것이 보통이었다. ㅡ page 159~165
한여름의 활기는 멸치떼에게서 왔다. 갑자기 마을이 어수선거리고 한여름 밤바다에 환하게 불이 밝혀지면 그게 왔다는 소리였다.
뜨겁게 내리쪼이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가 닿을수 없는, 우주의 힘이 농축되어 있는 강렬한 태양은 세상천지 뭇것들에게 튼튼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주는 존재이며 밤하늘의 서늘한 달은 더위를 식혀주고 넘쳐나는 기운에 너무 멀리 갔던 것을 되돌아오게 하고 불같이 일었던 용트림의 세계를 찬찬히 가라앉혀 주는 존재이고 별빛은 넓고 거대한 것들이 놓치기 십상인 자질구레한 것들을 조잘대는 존재라면 저 밤바다의 불배들은 그 사이에서 사람들끼리 모여 옥시글거리며 하늘에 대고 꾸무럭거리는 그 어떤 행위인 것이다.
밤바다의 불야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ㅡ page 190
산 위에 홀로 서서
풀과 잡막이 우거진 오솔길을 걷다보니 돌담으로 된 막이 하나 나왔다. 소나무 그늘 아래 쌓여진 창고이다. 들어가보니 비어 있다. 비오면 피하기가 딱 좋다. 산날맹이를 오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탁, 하니 바다와 만난다. 산을 오르면 바다와 만난다. 섬이니까 가능하다.
마른 풀 포기와 나뭇가지와 돌담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세상은 한순간에 바뀌어 사방 끝간 데 없이 트여 있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섬의 꼭대기에 오른 것이다. 남쪽은 간간이 트여 있는데 북쪽은 구름이 첩첩이다. 간혹 겹진 구름 사이가 벌어지면서 한줄기 빛이, 무슨 조명처럼 동그랗게 바다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리고 바람. 햇살을 받은 곳에서는 용접봉 쇳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빛이 반사되고 있고 그 나머지 부분은 푸르스름하게 변해 가고 있는 와중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 바람만이 가득했다. 아, 세상에 넘쳐나고 있는 것은 바람인 것이다. 아무리 흘러가도 다할 줄 모르는 바람인 것이다.
풀은 한쪽으로 일제히 모가지를 꺾어 파도와 방향을 맞춘다. 햇살도 바람을 탄다. 바람 따라 햇살이 옮겨다닌다.
이 풍경.
배 한 척 없이 동서남북 환하게 트여 있는 바다 한가운데 섬이 하나 있고 그 섬 꼭대기에 나 홀로 서서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그러니까 저 드넓은 우주와 꼬막껍질 같은 사람살이의 중간에 생기는 틈 같은 곳이다. 서로 만나서는 안 될 거대한 두 세계 사이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갑자기 세상천지에 나 홀로 되어 저 무거운 시공간의 중력에 눌리고 있는 것이다.
먼 옛날 이 땅은 저 천길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물고기와 해초를 키우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그 무슨 애뜻한 그리움 있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용트림하여 외롭게 몸을 드러내 놓았던 것인데 수만 년 식어도 부족하여 아직도 파도와 바람에 몸을 씻고 있는가. 그러면서 삶을 키우는가.
살아있는 것들이란 결국 제 죽을 곳에서 서식하나, 저 풀 한 포기가 이곳까지 와서 뿌리내리려면 얼마나 힘든 비행을 했을 것인가. 저 소나무의 조상은 생명을 잉태만 한 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다에서 표류를 하였고 짠맛에 시달려야 했을 것인가.
이것들의 고향은 다 어디인가. 풀이나 소나무나 동백이나 바람에 휘어져 다시금 내려가는 갈매기나 돌이나 바다나 사람것의 고향은 저 하늘 너머, 그 너머, 거기에서도 더 너머 어느 한 지점이었을 것이니 우리들은 어쩌자고 그곳에서 폭발하여 이 먼 우주의 변방까지 밀려 내려와 꼬물거리고 움트고 헤엄치고 모가지를 꺽어대고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허나 사람으로서는 저 나무나 돌이나 바닷물이 갖는 기억의 세계를 추측조차 할 수 없으니 수만 년 전 걷는 것들이 이곳에 들어와 볼 계획도 없을 때 이곳은 파도 치고 바람 불고 잎이 날리고 했을 것이고 수만 년 뒤에도 똑같은 것이니 그 미래가 되면 사람들의 삶은 고스란히 어디로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인가. 저이들은 아마도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자는 침묵하는 법이다. 저것들은 그래서 말하지 않고 그저 흘러 다니고 파도 치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훗날 나는 무엇으로 변해 있을까. 늙은 것이 되었다가 뻣뻣하게 죽은 시체가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썩어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몸똥이와 영혼이 분리가 된다면, 그리하여 영혼의 주인이었던 몸뚱이가 뻣뻣하게 굳었다가 점차 즙이 흐르고 살이 문드러지고 그러다가 마침내 뼈만 남고, 더 많은 시간이 흘러 뼈까지도 가루가 되어 마침내 누가 보아도 그게 먼 옛날에는 영혼을 담는 틀이었다는 것을 도저히 모를 지경이 되었을 때, 그때는 몸뚱어리의 주인이었던 영혼은 틀을 벗은 채로 어디쯤을 지나가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것이 되어 있을 것인가.
나는 시간을 뛰어 넘어 예전의, 태풍을 맞닥트리고 골몰하던 망상에 똑같이 잠겨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의 나는 어디로 가버리는 게 아니고 이렇듯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차곡차곡 채워져 있는 거였다.
ㅡ page 196~199”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한창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