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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문학과지성사(대여 | 전자책)
❝ 별점: ★★★★★
❝ 한줄평: “눈보라가 칩니다 /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이별의 원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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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사람이 온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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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산다고 했습니다
그 역의 막차 시간 앞에서 서성거리다
추운 그 역 광장에
눈사람 만들어 놓고 왔습니다
/ 「수색역」 부분
✴︎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 「이 넉넉한 쓸쓸함」 부분
✴︎
사랑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불가해한 사랑을 겪고 크나큰 낙담을 하게 된 사람일 것이다. 낙담 뒤에는 무엇이 올까.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사랑 앞에서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세상 곳곳에 그 대답은 넘치지만 끝끝내 그 대답들이 성에 차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모든 지혜를 바쳐 사랑에 대해 감각할 기회가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공손하게 비껴가며, 대답 대신에 이미지로 보여준다. 시인이 대답을 절제하기 위하여 절제한 것은 아니다. “뿌리가 번지고 번져서 파낼 수 없게 되어서/다시 되묻는다”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체념이라 했지만, 이것은 “이토록” 다음에 “기어이”를 적게 되는( 「여행」) 이병률만의 문법이다.
/ 발문 | 김소연,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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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다시 읽은 이병률 시인의 시집. 김소연 시인이 발문을 써주셨는데, 이 발문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돌아가 시집을 한 번 쭉 다시 읽었어요.
✦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으로 가득 찬 이 시집.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나자’는 말이 정말 정말 좋았어요. [📝 2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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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Ⅰ
✎ 「살림」
✎ 「사람」 ⛤
✎ 「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 ⛤
✎ 「사랑의 출처」 ⛤
✎ 「사람의 재료」
✎ 「설산」
✎ 「사람이 온다」 ⛤
Ⅱ
✎ 「청춘의 기습」
✎ 「지구 서랍」
✎ 「두 사람」 ⛤
✎ 「호수」 ⛤
✎ 「밤의 골짜기는 무엇으로 채워지나」
✎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
✎ 「수색역」 ⛤
✎ 「왜 그렇게 말할까요」
✎ 「무엇을 제일로」 ⛤
Ⅲ
✎ 「내가 쓴 것」 ⛤
✎ 「이별의 원심력」 ⛤
✎ 「이 넉넉한 쓸쓸함」 ⛤
✎ 「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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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구매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이렇게 끝난 어떤 소설의’ 다음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은 현실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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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시장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문득 오늘 밤은 술이 깰 때까지 발길이 가는 대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걸어 내야지만 조금 전 내 눈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취기로 인한 환영이 아니었음을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뒤돌아 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어느 오래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발끝에 힘을 주며 똑바로 걷기 시작했고, 벅차오르는 기분을 동행 삼아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한밤에 두고 온 것」, p.43)
✴︎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싶지만 나는 정말이지 몰랐고, 어쩌면 계속 모를 수도 있었지.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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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운 작가님의 단편을 몇 편 읽어보고 구매한 소설집. 역시나 참 좋았어요. 숨고 싶고, 피하고 싶고, 참아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도망치며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 중요한 결심을 하고, 용기 내어 한 걸음을 내밀고, 질문을 하고, 글을 쓰는 화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요. 이들의 용기와 절박함에 나의 일이 아니라 모른다고 무관심했던, 그리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무심했던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 Love wins, 사랑이 항상 이긴다는 말. 누군가에게는 몹시도 간절한 외침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인정받거나 응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존중받는 것이 당연한 순간. 그런 날이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은 오늘이 되는’ 것처럼 반드시 올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도록 현실의 우리 모두가 ‘이렇게 끝난 어떤 소설’의 그다음을 만들어가야겠죠. [📝 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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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단편
✎ 「한밤에 두고 온 것」 ⛤
✎ 「윤광호」
✎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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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구매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속고 속이는 거짓말투성이의 숨 막히는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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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훌륭해요. 선생. 정말 훌륭해. 나는 자신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소. 그리고 진실이 아니라면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가장 믿지 않소. 그런 사람은 바보인 데다 또 자연 법칙을 거역하는 바보이니 말이오.」 (p.140-141)
✴︎
「그럴지도 모르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당신을 믿어야 하나요? (…) 나를 만난 이후 거짓 없는 시간을 30분 이상 보낸 적이 없는 당신을? 아닙니다. 믿을 수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겁니다. 왜 믿어야 합니까?」 (p.277)
[📝 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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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도서제공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나는 나를 다 보여줬어요.”(「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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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의 잠꼬대
어떤 사랑은 책임에 후행하고
나는 영원히 너의 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 「obdachlos」 부분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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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반복으로 지탱된다. 작년 폭우 기사에 썼던 제목을 올해 기사에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어느 기점을 지나면 대부분의 일들이 예측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이미 경험한 미래’ 앞에서 사람은 기대를 잃고 무력해지곤 한다. 그리고 시는 이와 정반대의 일을 한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마치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는 것. 다 해본 일을 처음 해보는 듯 즐거워하는 것. 끝을 알고 있는 사랑일지라도 일단 빠져보는 것. 서둘러 짐작하려 들지 않는 것. 대화하는 중에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 지루하단 눈빛을 보내지 않는 것. 이런 순수, 혹은 무지. 이런 아둔함, 혹은 용기가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이란 물살을 반짝이게 만드는 물비늘.
/ 에세이: 「미래의 냄새」 부분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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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를 하며 조금씩 아껴 읽은 시집. 시인의 에세이를 읽을 때쯤 산불이 아주 심하게 나서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에세이를 읽는 내내 참 먹먹했어요. ‘예측 가능한 미래’라는 말이 과연 양립 가능한 말일까 싶으면서도, 또 ‘어떤 과거는 빛나는 미래가 된다’(에세이, p.163)고 말하며 수없이 반복될 미래의 장면을 현재에서 그려보는 시인의 문장에서, 앞에서 읽었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인의 시들이 스르륵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 ‘낮이 밝으면 / 어깨엔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가뿐하게 / 언덕길을 내려갈 거예요. // 나는 나를 다 보여줬어요.’(「집들이」 부분, p.24-25)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시인은 이야기를 시작해 자신을 다 보여준 편지를 독자에게 건넸고, ‘이 정도의 비밀은 꺼내어볼 수 있지 않을까 물으며, 편지를 받는 사람이 직접 뜯어보라’(「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부분, p.144)고 말합니다. 편지를 받는 이가 열어보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봉주연 시인이 우리에게 건넬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져요. [📝 25/04/05]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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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왼발로 숫눈을 밟은 당신에게
✎ 「Arrival」
✎ 「랜딩」 ⛤
✎ 「집들이」 ⛤
✎ 「oort」
✎ 「내일부터 장마 시작」 ⛤
✎ 「시간순」
✎ 「해령」
✎ 「새로운 안부」 ⛤
✎ 「obdachlos」 ⛤
✎ 「러브레터」 ⛤
2부 | 오른발로 숫눈을 밟은 당신에게
✎ 「미래사彌來寺」
✎ 「요약본」 ⛤
✎ 「세매라는 새」
✎ 「생활」 ⛤
✎ 「걱정하지 마세요」
✎ 「피사체가 되는 연습」 ⛤
✎ 「예식」 ⛤
✎ 「가정 계약」 ⛤
✎ 「오로라가 아니라」
3부 | 추신
✎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
✎ 「저녁이 올 것은 아침부터 정해져 있다」 ⛤
✎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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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대여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빛이 사라지면 / 또 다른 어둠이 나타났다 / 그러나 빛이 지나간 자리를 기억할 수 있듯이 / 당신을 기억해 낼 것이다”(「나의 바깥이 되어」)
❝ 키워드: 투명 | 유령 | 숨 | 마음 | 물속 | 몸 | 이름 | 사라짐 | 비움 | 기억 | 사랑 | 사람 |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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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 「침투」 부분 (p.29)
✴︎
깨지기 쉬운 것을 사랑했지 깨지는 순간이 되면 온몸을 다해 조각나는 광경을 더는 손에 쥘 수 없는 작은 유리컵과 이어 붙일 수 없는 뾰족함
/ 「비워내기」 부분 (p.34)
✴︎
걸음을 멈추는 순간 다음 걸음은 더 힘들어졌다. 알면서도 자꾸만 멈추게 되었다. 조금만 가면 돼. 그렇게 우리는 조금을, 조금의 조금을 만들어 냈다.
/ 「조금의 조금」 부분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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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해지고, 흩어지고, 녹아내리고, 비워내고, 사라지지만, ‘눈이 녹아가도 / 녹지 않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사라져도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녹지 않는 겨울」 부분, p.120-121)는 마음. 시집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게 마음이라면 / 몸 같은 건 사라져도 좋을 텐데’라는 시인의 말이 더 좋아지는 시집이었어요. [📝 2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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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 「투명한 몸」 ⛤
✎ 「순수한 기쁨」 ⛤
✎ 「감춰지지 않는 것들의 목록」
✎ 「흩어진 마음」
✎ 「침투」 ⛤
✎ 「비워내기」 ⛤
✎ 「원래의 공원」
✎ 「언덕의 모양」 ⛤
✎ 「어떤 사랑」 ⛤
2부 | 흩어진 채 하나가 되어
✎ 「건설된 영원」
✎ 「해변으로부터」 ⛤
✎ 「조금의 조금」 ⛤
✎ 「천사의 노래」
✎ 「기억 창고」
✎ 「아침」
3부 | 내가 점차 투명해질 때
✎ 「멈춰버린 인간들」 ⛤
✎ 「사라져도 좋을 마음」
✎ 「천천히 녹아가는」 ⛤
✎ 「아무도 읽지 못하는 편지」
✎ 「dying」 ⛤
4부 | 남겨진 사람만이 떠나간 사람을 생각할 수 있고
✎ 「녹지 않는 겨울」 ⛤
✎ 「나의 바깥이 되어」 ⛤
✎ 「버려지지 않은 물건의 버려진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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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대여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이별 이야기를 이렇게나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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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머릿속에 잡생각이 가득해 꼭 찌르면 펑 터질 것 같은 나였지만 해파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점점 차분해졌다. 저절로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생각이 하나둘 지워지는 것 같았다. 희고 투명한 몸을 물의 흐름에 맡기고 목적도 욕심도 없이 그저 흘러다닐 뿐인 해파리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생각이란 것을 하기는 할까 싶다가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하며 결국엔 나도 생각을 멈추고 만달까. 둥근 우산처럼 생긴 몸 가운데 네잎클로버 모양 무늬가 밤하늘에 흩날리는 꽃처럼 꿈결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며 차분히 차분히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 가서」, p.61)
✴︎
나는 지금 영인이의 사정이나 순대의 병원비를 핑계 삼아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외면해 버리고 있는 거 아닐까.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옷을 입었으면 빨래를 해야 하듯 사랑을 했다면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남은 사람이 깨끗이 치워야 하는 것. 그렇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슬픔을 꼭꼭 씹어서 소화시켜야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시간이 약이 될 때까지, 언젠가 그런 사람도 있었지 하고 지나가듯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꾹꾹 누르고 다져서 결국 내 마음의 굳은살로 만들 수 있다면.
하지만 그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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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리 작가님 안 사랑하는 법 나는 모른다... 이미 읽어 본 단편들이 많아서 나중에 소장하려고 일단 빌려 읽었는데 진작 구매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어요... 🥹 박서련 작가님이 써주신 발문도 너무 좋았고, 「비눗방울 퐁」을 읽고 나서는 소설집 제목을 『비눗방울 퐁』으로 정한 건 정말 신의 한 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소설집 읽고 나서는 좋았던 단편을 몇 편 골라두곤 하는데, 이 책은 그냥 모든 단편이 좋았습니다 🫧
✦ 엄마가, 애인이, 남편이, 외계 존재가, 그리고 동물이 떠나는 이야기들은 (놀랍게도 「보험과 야구르트」를 제외한 모든 단편이 떠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들이에요) 어쩌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별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 그래서 더 괴롭고 힘들지만 결국에는 지나가는 슬픔의 시간들. 모든 고통과 슬픔이 비눗방울처럼 퐁하고 사라지면 좋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지나 보낸 후엔 우리의 내면에 그것들이 반짝이는 조각들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위로. 이 책은 발랄하고 경쾌하지만, 또 덤덤하게 그런 위로를 건네주고 있어요. 모두 비눗방울 퐁! 함께 읽어요 🫧 [📝 2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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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대여 | 전자책)
❝ 별점: ★★★★☆
❝ 한줄평: 샤워젤과 소다수와는 다른 맛으로 깊어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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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걸 볼 수 있겠지
꼭 그만큼 못 보는 것도 생기겠지
그래도 기다리지는 말아야지
낡고 이상한 세계에서
더 낡고 더 이상한 세계로
옮겨 가는 동안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무연히 지켜봤다
영원히 찾아 헤매겠다 생각했던 것들
무수한 별, 아름다움
어둠 속에서 맑은 물이 쏟아지는 소리
사람의 것과 사람의 것 아닌 아름다움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기억하지 마
다시 십이월이 올 거야
우리의 뜨거운 맥박도
도무지 이어 쓸 수 없던 한 편의 시도
폭설이 다 지워 줄 거야
/ 「폭설도 내리지 않고 새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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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새겨진 우리가 비굴한 모습으로 서로 미워할지라도
기억하겠니?
바다는 아무리 헹궈도 바다라는 것
내가 너를 계속 사랑할 거라는 것
/ 「그때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한 것」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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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던 사람들의 불행을 우리가 다 알 수 있을까 우리의 불행도 우리를 이해시키지 않잖아
투명한 잔에는 슬픔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담겨 있다
/ 「눈도 내리지 않는데 고백」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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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 조금 놀랐는데요. 상큼발랄한 시도 있었지만 카푸치노처럼, 뱅 쇼처럼, 뜨겁다기보단 조금 따뜻하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시들도 많았습니다.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해설 ‘크로셰 메모리’를 읽으니 그 묵직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집의 해설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다시 차근히 읽어보고 싶은 시집입니다. 다음 시집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되는 시인! [📝 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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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 「신년 운세」 ⛤
✎ 「럭키슈퍼」
✎ 「진짜진짜 축하해」 ⛤
✎ 「폭설도 내리지 않고 새해」 ⛤
✎ 「그때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한 것」 ⛤
✎ 「오래된 기억인지 오래전 꾼 꿈인지 알 수 없어요」 ⛤
✎ 「안개가 짙은 겨울 아침에는 목욕탕에 가야 한다」
2부 | 죽어서도 유망주가 되고 싶다
✎ 「홀로그래피」
✎ 「디올 전속 디자이너가 내 옷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검은 고양이와 자객」
✎ 「이 봄밤은 왜 나의 봄밤이 되지 못하는가」
✎ 「축하를 말하기 전에」 ⛤
✎ 「죽어 버려」 ⛤
3부 | 미래가 태어나려면 필요한 일들이었다
✎ 「흩어지지 않는 마음」
✎ 「눈도 내리지 않는데 고백」 ⛤
✎ 「시네마와 무비」
✎ 「물 밖의 일」 ⛤
✎ 「미래에 내리던 비에는 아무도 잠기지 않고」
4부 | 너의 팬이야
✎ 「알루미늄 빗방울」 ⛤
✎ 「도전! 판매왕」 ⛤
✎ 「딸기와 판다곰」
✎ 「노을을 좋아하고 때때로 레몬 향을 견디는 사람에게」 ⛤
✎ 「카푸치노 감정」 ⛤
✎ 「뱅 쇼 러브」
✎ 「팬레터—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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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대여 | 종이책)
❝ 별점: ★★★★☆
❝ 한줄평: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이어서 더 기묘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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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처지가 마치 오래된 모래시계 같지 않나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모래시계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모래알이 마모되면서 더 빨리 흘러내리게 된대요. 그래서 오래된 모래시계는 점점 빨라지게 마련이죠.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의 신경망도 모래시계처럼 닳고 닳아 지쳐버린 거예요. 구멍이 숭숭 뚫린 거름망처럼 모든 자극이 신경망을 술술 통과해 버려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죠.” (「솔기」,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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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아침, 수녀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삶에 대해 온화한 태도를 가진 평온한 여성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커피를 마시고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을 열심히 분류하는 수녀들의 여읜 손가락들이 흐트러진 질서를 회복시켜 주었다. 언젠가, 머지않아 나 또한 어떤 손길에 의해 내 몸의 모든 요소가 분해되어,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리라. 이것이야말로 최종적인 재활용이다. 정화의 의식이 끝나고 나면 커피에 넣었던 크림 덩어리는 커피에서 분리되어 개별적인 존재가 되어 다른 범주에 속하게 된다. 함께 어우러져 만든 맛과 질감은 어디로 갔을까? 방금까지도 조화롭게 공존하던 그 무언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모든 성인의 산(山)」,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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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읽은 외국 소설 단편집! 올해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첫 책으로 가장 최근에 출간된 단편집을 선택했는데요. 첫 만남 아주 성공적! 🥰 첫 작품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는데 열 편 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찜찜하고 불편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들이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어 좋았습니다. 최성은 선생님의 번역이 좋아서 더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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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단편
✎ 「승객」
✎ 「병조림」
✎ 「솔기」 ⛤
✎ 「실화(實話)」 ⛤
✎ 「트란스푸기움」
✎ 「모든 성인의 산(山)」 ⛤
✎ 「인간의 축일력(祝日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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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대여 | 전자책)
❝ 별점: ★★★★★
❝ 한줄평: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떠올리게 될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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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콜리에게도 그리워할 순간이 생겼다. 투데이와 주로를 달릴 때다.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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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선란 + 로봇의 조합은 저에게 거의 눈물 치트키 수준··· 콜리부터 연재, 은혜, 보경, 그리고 투데이까지 책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이들에게 마음을 듬뿍 줄 수밖에 없었어요. 🥹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그 3초가 콜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길 바라는 마음뿐··· 무조건 재독해야 할 책으로 저장···💙 [📝 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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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온 (대여 | 전자책)
❝ 별점: ★★★★
❝ 한줄평: 낯설지만 아름답고 매혹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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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는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아가는 직업입니다. 무언가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합니다. 그걸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파견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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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게 좋은 삶을 주고 싶어. 최선을 주고 싶어.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와. 우리의 삶은 잠깐 반짝였다 스러지는 불꽃이지. 그렇다면 가능한 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야 해.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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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생명체와 아름다운 줄 알았으나 섬뜩했던 어떤 마음.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란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 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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