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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문학과지성사 (240124~240203)
❝ 별점: ★★★★☆
❝ 한줄평: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p.41)
❝ 키워드: 슬픔 | 내일 | 이별 | 사랑 | 그리움 | 두려움 | 미움 | 지옥 | 중심
❝ 추천: ‘푸른색의 꿈’이 담긴 시들이 궁금한 사람
❝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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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북클럽 에디션 도서 『불온한 검은 피』로 허연 시인을 알게 되고, 우리끼리 독서모임으로 시 낭송과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시집들도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섯 번째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의 제목이 제일 끌려서 이 시집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 ‘떨어져 봤기에 날아오르는 몇 초의 달콤함을 알 수 있고’(「트램펄린」, p.12),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고, 또 생길 수 있는 것이기에 가슴 덜컹하지 말자’(「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p.41)고 하며, ‘그리움 같은 건 들키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며, 중심을 잡으라’(「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 p.43)는 화자. 3부의 거의 마지막 시 「중심에 관해」(p.132-133)에서 ‘중심’이라는 단어를 통해 중심을 지켜야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오고, 도착할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처럼, 시집 전체에서 ‘중심’을 지키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느낌이었다.
✦ 그래서 ‘사랑해. 그렇지만 /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p.41)라는 구절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내일을 모르고, 곧 부서질 것 같고, 아무리 가져도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어떤 단어도 모두 부정확해 반은 사랑이고 반은 두려움인‘(「이별의 서」, p.89) 무언가. 그럼에도 중심을 잡으며 계속 사랑하는 우리.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과 사랑은 그래서 노래가 되는 것일까. [📝 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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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2020년 6월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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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그리워 심장에 손을 얹으면 그 심장은 이미 없지.
이제 다른 심장으로 살아야 하지.
/ 「슬픈 버릇」 (p.20)
❝
그해에는
적절치 않은 음표들이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다
무한대로 아름다워지곤 했다
/ 「트랙」 (p.67)
❝
기뻐서 했던 말들이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
/ 「이별의 서」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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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트램펄린」 ⛤
✎ 「슬픈 버릇」
✎ 「상수동」
✎ 「새벽 1시」 ⛤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 「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 ⛤
2부
✎ 「누구도 그가 아니니까」
✎ 「트랙」
✎ 「이별의 서」 ⛤
3부
✎ 「해협」
✎ 「지옥에 관하여」
✎ 「중심에 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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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북스 (240129~240202)
❝ 별점: ★★★★☆
❝ 한줄평: 책을 읽고 난 후 당신의 마음을 채우는 이름 하나쯤은 남기를
❝ 키워드: 감정, 이해, 사랑 | 좀비, 용기 | 마음, 균형 | 마지막, 운명 | 죽음, 질문 | 목적, 진실
❝ 추천: 다섯 빛깔 다채로운 감정과 마음,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To. 당신이 채우고 싶은 이름 ❞
/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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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북스의 앤솔러지 시리즈 ‘자이언트 픽’은 일 년에 한 번, 매해 첫 달 출간된다. 작년에 이유리·김서해·김초엽·설재인·천선란 작가님이 쓰신 ‘마음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이야기 다섯 편이 수록된 자이언트 픽 첫 번째 책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째 자이언트 픽 『투 유』의 출간 소식을 듣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리뷰단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다.
✦ 김화진, 구소현 작가님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있었고, 김빵, 김청귤, 명소정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첫 자이언트 픽 책에서도 김서해, 설재인 작가님을 새로 알게 되었고, 참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되었다.
✦ 좀비가 드글드글한 세상에서 재회한 두 친구의 이야기 「좀비 라떼」, 내 안의 여러 갈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시간과 자리」,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운명을 맡기는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죽은 연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담긴 「투 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먼 행성에서 지구로 온 금속 회로의 이야기 「이방인의 항해」까지. 첫 책을 읽을 때처럼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자꾸 최애 단편이 바뀌었다. 자이언트 픽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마구마구 픽하고 싶은 단편들💖
✦ 다섯 편 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단편은 김청귤 작가님의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과 명소정 작가님의 「이방인의 항해」!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에서 ‘지구의 마지막 빙하’가 녹아내리는 게 정말 조만간 다가올 미래 같아서 매우 섬뜩해졌다. 「이방인의 항해」는 첫 자이언트 픽 책에 실린 천선란 작가님의 「뼈의 기록」이 떠올라 더 좋았다. ‘관찰의 대상이지 상상의 배경이 아니라고 애써 열망을 억누르려 하지만 바다에 도착한 미래를 그리기를 멈출 수 없는’(p.265-266) 금속 회로에 마음이 가서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글이었다. 의외로 새로 만나게 된 작가님들이 내 취향 저격이라 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 출판사 서평에서 ‘함께 나눈 마음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니까.’라는 말이 참 좋았다. 우리는 다양한 감정과 마음을 알아채고 이해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 그리고 함께 나아간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당신의 마음에도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쯤 있기를. 이 책의 제목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투 유’여서 더욱 좋다. [📝 24/02/03]
(*자이언트 픽 리뷰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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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빵, 「좀비 라떼」
: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일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Mt.Fujitive - whisper
| 현관문을 열자 소파 앞에 그대로 서 있는 라떼가 보였다. 순간 뼈마디가 저릿했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득하게 멀어졌던 순간이 난데없이 가까워졌다. 라떼, 저 이름 모를 좀비 때문에.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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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시간과 자리」
: 내 안의 여러 갈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권진아 - 흘러가자
♫ 눈물이 나면 다 울고 웃음이 나면 또 웃고 사랑하는 걸 사랑하고 우스갯소리 하고 흘러가자 그냥 그렇게 별일 없이 오늘 그렇게 흘러가자 흘러가자
| 연극은 항상 그리웠고 지호가 사는 지역에는 연극이 드물었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 그리움의 상태가 좋았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리워만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슬프면서도 좋았다. 마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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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귤,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
: 죽기 전에 보러 간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서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는 일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짙은 - 빙하
♫ 세상의 모든 빙하가 녹아 그 물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 당신과 나 이 깊은 골짜기를 메워준다면
| 영상으로만 봤던 하얗고 거대한 빙하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 볼품없이 깨진 얼음조각 같았다. 바다색을 흡수한 것처럼 새파란 게 다를 뿐이었다. 그 빙하는 하나가 눈물을 뚝뚝 흘린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물을 뚝뚝 흘리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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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현, 「투 유」
: 사랑하는 이의 죽음 후에도 남아서 살아가는 일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정승환 - 별 (Dear)
♫ 아주 멀리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저 별처럼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더 대단해. 충격은 흡수되어 전부 녹아 없어질 거야. 불행이 뱀처럼 달려들어도 우리의 늪 같은 마음은 그 뱀을 잠기게 만들어. 회복할 수 있어.”
전시회 벽면에서 본 대사가 나오는 장면까지만 보고 그녀는 잠들었다. 너무 큰 충격으로 기절한 마마로바의 귓가에 겔이 속삭이는 장면이었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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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정, 「이방인의 항해」 ⛤
: 관찰이 아닌 상상으로 나아가는 일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James Quinn - Dreamer's Path
| 여기서 보인 모든 행동이 바다를 향한 항해였다는 걸 이 아이는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걸까.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능은 오직 수집의 원동력을 위해서 존재한다고만 생각했다. 사고는 나의 기호를 만들고, 행동은 내게 선택지를 주었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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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40127~240127)
❝ 별점: ★★★★☆
❝ 한줄평: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고
❝ 키워드: 언어 | 말 | 말하기 | 교정 | 마음 | 사랑 | 상처 | 글쓰기 | 복수 | 용서 | 삶
❝ 추천: 말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적이 있었던 사람
☃️ 첫 문장: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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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8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었다. 매일과 영원 시리즈 중 한 권인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를 읽다가 이 책이 언급된 글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소설 만세』는 잠시 덮어두고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모인 스프링 언어 교정원. 말더듬증을 고치고자 그곳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자신에게 잘해 주면 ‘너무나도 쉽게 사랑에 빠져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라는 소년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상처 받은 끝에 미워하고, 속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 가장 예민한 시기에 말의 어려움까지 겹쳐 소년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족, 친구, 선생님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 드넓은 바다 위 홀로 떠 있는 외딴섬보다도 더 외롭지 않았을까. 본인이 가장 말하기 어려운 단어로 계속해서 별명을 바꿔 가는 스프링 사람들과 함께 소년은 조금씩, 천천히 말을 더듬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여러 훈련들을 해 나간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스프링 언어 교정원 사람들의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소년의 마음은 다시 사르르 녹아내린다.
✦ 말. 말의 무게. 말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말을 하는 게 힘들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는데 소리 내서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든’(p.66)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면 아무 데나 공격해서는 안 되고 약한 부분, 아킬레스건을 찾아야’(p.83) 한다던 소설가의 말. 누군가에게 제대로 상처를 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 그렇게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말이 많이 아팠다. 책을 읽으면서 스프링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져서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였다.
✦ ‘작가의 말’이 정말 좋았다. 특히 ‘계속 쓸 수 있다. / 계속 살 수도 있다.’(p.163)라는 말. 쓰는 일이 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다가와서 마음에 남았다. 오래도록, 많이 많이 써주세요 🫶🏻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궁금했던 작가님들이 참 많았는데 좋아하는 정용준 작가님으로 시리즈를 시작하니 다른 작품들도 완전 기대된다. 윤고은, 최진영, 박서련, 문지혁, 조예은 작가님 작품부터 천천히 읽어 봐야지! [📝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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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한 조각 빼곤 다 고쳤지. 이상하게 편한 사람. 더듬는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더듬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듬는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니까. 아마 무의식조차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나 봐. 아! 24번은 무의식이 뭔지 알아?
알아요.
그리고······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p.75)
|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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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240124~240126)
❝ 별점: ★★★★★
❝ 한줄평: 짧은 소설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니
❝ 키워드: 멍과 돌 | 꿈과 현실 | 부서진 것과 낡은 것 | 죽은 자와 산 자 | 친구와 살인자 | 장난과 죗값 | 기억과 망각 | 기다림과 떠남 | 주객전도와 평온 | 익숙함과 외로움
❝ 추천: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분량의 소설부터 읽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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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산책에는 ‘짧은 소설’ 시리즈가 있다. 지금까지 18권의 짧은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나온 정용준 작가님의 짧은 소설 『저스트 키딩』을 읽어보았다. 모두 13편의 짧은 소설을 중간중간 들어간 일러스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읽기 전에는 ‘짧으면 얼마나 짧겠어’ 했는데 한 편이 생각보다 정말 짧긴 하다. 그럼에도 한 편 한 편이 완결성 있고 여운도 있어서 ‘짧은 소설도 이렇게 완벽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세신사 신 씨와 소년 사이의 비밀이 담긴 「돌멩이」, 실패를 흉내 내고 있어 ‘시간 도둑’이라는 말이 씁쓸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인물이 나오는 「시간 도둑」, 누군가에겐 친구지만 누군가에겐 살인자일 수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 나오는 「친구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가 뒤얽힌 기억으로 고통받는 노인의 이야기 「당나귀 노인」, 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두 남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종이들」, 그 어떤 상상보다도 끔찍한 현실에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는 「해피 엔딩」,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뮤트」까지. 밑에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리스트엔 포함하지 못했지만 모든 단편들이 정말 좋았다.
✦ 보통 작가의 단편을 읽고 괜찮으면 장편을 읽는 편이라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이것도 내 기준에는 장편은 아닌데,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긴 하다)를 제외하곤 아직 장편을 읽지 않았는데 정용준의 ‘장편’은 어떨지 너무 기대된다. 『프롬 토니오』가 제일 궁금해서 아마 이 책부터 읽을 듯!
✦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가 「겨울 산」의 첫 문장 낭독을 듣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겨울 산」은 작가님의 중편소설 『유령』이나 『겨울 간식집』에 실린 단편 「겨울 기도」처럼 앞으로 겨울이 다가올 때쯤 의식처럼 꺼내 읽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겨울을 싫어하는 나도 이번 겨울은 그다지 싫거나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떤 계절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을 만나고 간직하는 건, 그래서 그 계절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2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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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좋았던 짧은 소설
✎ 「너무 아름다운 날」
: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 현실과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꿈’. 당신의 선택은?
| “ (…) 때문에 나는 그가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후회와 어리석음은 인간의 영원한 양식이니까요.”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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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 펜션」
: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곳
| “죽어도 끝나는 거 없어. 사라지는 것도 없고. 나도 안 사라져.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어디도 갈 수 없더라고. 형이 나 생각하면 나는 형 옆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몸 없이 사는 거. 영혼이 되는 거. 자유로운 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형. 내 생각 좀 그만해. 아니, 하더라도 다른 생각 좀 해. 좋았던 것들도 있잖아.”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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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스트 키딩」
: 저스트 키딩, 장난일 뿐이라고? 억울하다고? 죗값을 치렀다고?
| “죗값. 당신이 지은 죄는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닙니다. 형량은 그렇게 나왔겠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그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됐거든요. (...)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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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바다」
: 먼바다로 떠난 이들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는 길
| 저는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갈 수 있어요. 바다로 향하는 모든 톨게이트를 알고 있지요. 이 톨게이트를 지나 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변한답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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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 ⛤
: 끝나지 않는 겨울에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지 말 것
|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물방울들. 영원은 그것들을 돌멩이처럼 버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거품처럼 작고 얼음처럼 반짝이며 물처럼 투명한 아이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거예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내리는 나의 눈송이들. 영원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어요.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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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시집 22 (240122~240125)
❝ 별점: ★★★★★
❝ 한줄평: 아름답고도 슬픈 겨울을 지나
❝ 키워드: 빛 | 사랑 | 겨울 | 슬픔 | 깜깜 | 밤 | 잠 | 꿈 | 감각 | 생각 | 감정 | 저녁 | 눈 | 그림자 | 사건 | 이야기
❝ 추천: 겨울과 봄 사이를 거닐고 싶은 사람
❝ 이다음 봄에 우리는 어느 무덤에서 울어야 할까요 ❞
/ 「이다음 봄에 우리는— 고백6」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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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경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이다음 봄에 우리는』의 제목에는 봄이 들어가는데 표지엔 눈송이가 그려져 있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겨울 분위기가 스며 있는 시집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슬픔과 쓸쓸함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이다음 봄의 우리’를 기대하게 하는 시집이었다.
✦ 『겨울밤 토끼 걱정』 낭독회에 갔었을 때 시를 낭독하시는 목소리가 참 좋았었는데,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시를 읽으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층의 감각」이라는 시는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시집이 가득하고, 고요해서 어쩐지 소곤소곤 말해야 할 것 같은 곳. 조만간 다시 가고 싶다.
✦ ‘목도리를 꺼내는 것을 깜빡하고, 스웨터에는 오래된 얼룩들’이 남아 있는데, 그렇게 겨울‘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울‘은’ 산다(「그런 잠시 슬픔」, p.18-19)는 말이나, ‘생각의 숨내를 맡은 것도 같아서 조그맣게 아름다워 참 슬프다 따위의 불면을 더듬거려보는’(「한밤의 기분」, p.47) 일, ‘예쁜 것을 본 적이 없는 삭이 자꾸 시간을 물어보고 남은 시간이 없었을때 괜찮다고 말하는’(「삭削」, p.82) 것.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름답고도 슬픈 구절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이제 겨울이 돌아오면 유희경 시인의 시집도 떠오를 것 같다.
✦ 『겨울밤 토끼 걱정』에 실린 겨울 느낌이 담긴 시들이 좋았기 때문에 제목에 계절이 들어간 이 시집을 골랐는데, 좋았던시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패드로 필사를 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 다른 시집도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 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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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그림자가 말했다.
천천히 들려줘요.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다.
2021년 가을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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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불면 그것은 감정이야 맞아 중얼거리며 끌어안듯 왼쪽으로 돌아눕는 것이다 이제 자자 잘 자 아쉬워하면서 이건 참 어쩔 수 없네 생각의 숨내를 맡은 것도 같아서 한 번 더, 이제 자자 잘 자, 하고 조그맣게 아름다워 참 슬프다 따위의 불면을 더듬거려보는 것이다
/ 「한밤의 기분」 (p.47)
❝
빼내려고 애를 쓸수록 깊어지는 것이 있다 그날 밤
나는 사랑의 한끝을 붙들고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잊어, 말해주는 사랑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디 좋은 것만 있겠어, 나는 대꾸를 해주었을 것이다
사랑의 딱딱한 한끝을 놓아주고서 팔짱을 끼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몰라 딱딱한 몸을 가진
사랑은 묻어두고서 이제는 후회하고 있다
/ 「연작戀作」 (p.119-120)
❝
이제 문을 닫으려고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잊을 겁니다.
문이 닫히고 나면
남은 일은 문을 열고 나서는 것. 그러니,
천천히 들려줘요. 내게.
이다음 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 부록 | 그림자의 말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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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Ⅰ. 그 겨울은 누구의 장례였나
✎ 「겨울 정오 무렵」 ⛤
✎ 「선한 사람 당신」 ⛤
✎ 「빈 코트」
✎ 「그런 잠시 슬픔」 ⛤
✎ 「지독한 현상」
✎ 「밤은 잠들지 못하고」
✎ 「보이지 않는 꿈」
✎ 「돌아오는 길」
✎ 「이 층의 감각」 ⛤
✎ 「보이지 않는 소리」
✎ 「한밤의 기분」 ⛤
Ⅱ. 고백은 필요 없는 것
✎ 「아직은」 ⛤
✎ 「어머니의 검진 결과를 기다리던 병원 로비에서」
✎ 「오송」
✎ 「겨울, 2007」 ⛤
✎ 「오래된 기억」
✎ 「이다음 봄에 우리는」
✎ 「녹은 눈을 쓸어내기」
✎ 「봄에 가엾게도」
✎ 「잃어버린 사월과 잊어가는 단 하나의 이야기」
✎ 「추모의 방식」
Ⅲ. 이야기의 테이블
✎ 「니트」
✎ 「그치지 않는다」 ⛤
✎ 「삭」 ⛤
✎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
✎ 「마른 물」
✎ 「의자들 있는 오후」
✎ 「가변시력」
✎ 「빈 테이블 서사」 ⛤
✎ 「기린 인형」
✎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적은 측면으로」
✎ 「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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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240106~240124)
❝ 별점: ★★★★☆
❝ 한줄평: 양가감정이 담긴 세 편의 이야기
❝ 키워드: 양가감정 | 용기, 정체성 | 사랑, 욕망 | 무게, 기다림
❝ 추천: 사람의 마음과 양가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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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출간된 책들도 한 권씩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김병운, 이주혜 작가님의 글이 실려 있어 구매했는데 세 편 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이주혜 작가님의 단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2023년 가을 편의 「이소 중입니다」를 읽고 『누의 자리』를 찾아 읽었을 때 참 좋았어서 이 단편도 궁금했는데 ‘쓸모’와 ‘무게’, ‘오해’와 ‘이해’,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단어들을 엮어 내려간 이야기가 조금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 김병운 작가님과 이주혜 작가님은 여기 실린 단편들이 수록된 소설집을 내신 걸 알고 있어서 그 소설집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봤는데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과 인터뷰를 함께 볼 수 있어 작품과 작가를 더 깊이 알게 해 줘서 참 좋다. 올해도 이 시리즈는 쭉 구매해서 읽어야지. [📝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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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윤광호」
: 용기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문제라는 말
|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쪽으로 걸어가는, 그래서 자꾸만 나의 위치와 한계를 자각하게 만드는 광호 씨의 용기를 경계하면서도 선망했던 게 아닐까 싶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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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 「아무도」
: 사랑해서 원하는 것과 원해서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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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
: 이해와 오해, 그 사이의 엄청난 무게
| 나는 그런 내 몸을 구해줄 생각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것들의 무게가 궁금했다. 사토 상 미소의 무게. 그 사람 기다림의 무게. 사장이 나를 선택했을 때 내게 부려놓은 소문의 무게. 아버지가 돌리던 자전거 바큇살 사이의 무게. 우리 구은정 양, 다리 벌렸니? 소희 언니가 별안간 터뜨린 눈물의 무게. 내 안에 새로 생긴 빈자리의 무게. 그 없어짐의 무게.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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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저는 이 소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까스로 인정한 사람이 결국 긍정하는 데는 실패한 이야기라고 봤고, 구애에 대한 거절을 존재에 대한 거부로 인식하게 되는 이런 상황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윤광호에게도 익숙할 거라고 상상했어요. 활동가이기 이전에 게이 남성으로서 윤광호에게도 수많은 거절과 좌절로 점철된 사랑의 역사가 있을 테니까요. (김병운 × 선우은실, p.50)
| 모두 ‘참는’ 어른들 사이에 희진만이 따로 떨어져 있다가 결국에는 ‘아무도’에 심지어 희진 자신조차 포함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때에 느끼는 그 쓸쓸함은 너무 깊어요. 단지 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만이 그 ‘아무도’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닐까요. 뜨거웠던 희진의 감정을 소설은 영원히 담아둘 수 있을 테니까요. 말씀하신 안도라는 감정은 깊은 고독 안에서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더 슬퍼지지만. (위수정 × 이소, p.101)
| 사장이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은정은 감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어쩌면 이고 진 게 너무 많은 은정에게 사랑은 더할 엄두가 나지 않는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니었을까요? (이주혜 × 이희우,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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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240113~240123)
❝ 별점: ★★★★★
❝ 한줄평: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는 책
❝ 키워드: 공연예술 | 시간 | 소멸 | 기억 | 공허 | 슬픔 | 아름다움 | 사랑 | 고유함 | 사라짐 | 흔적 | 사람
❝ 추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
/ 「봄의 제전」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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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흥미롭고 공연예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었다.
✦ 문학을 공부하며 희곡 수업은 거의 다 들었고 연극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므로 희곡 자체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완성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연극을 보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상상만 하던 것들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것은 마법 같았다. 상연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 버리는 마법. 그때 본 연극들의 감상을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 순간일지라도 기록해 두었다면 조금은 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 작가도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며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그마저도 금세 바스라진다’(「뒤늦게 쓰인 비평」, p.5-6)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지기에 실체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솔렌과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솔렌」, p.40)이어서 그 일을 좋아한다는 솔렌과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공연 티켓을 건네주는 것으로 작가에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선물’한(「장 끌로드 아저씨」, p.150) 장 끌로드 아저씨. 이들이 사라지는 것들의 슬픔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 기대한 것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글들이어서 참 좋았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김동현 선생님께」, p.67)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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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김동현 선생님께」 (p.67)
| 돈 지오반니가 내게 외치고 간 말은 분명 삶을 끝까지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계속 울라는 말로 치환할수 있다면. 그제서야 나는 그 무거운 지속을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꽁띠뉴에. 나는 사라지지만 당신들은 울음을 계속우세요. 나와 당신들이 외면하지 않은 세계의 아픔에 대해.
/ 「꽁띠뉴에」 (p.88)
|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 그것이 단순한 선의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준 사람. 그는 내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주었다. 고통을 다루더라도 화해가 이루어지는세계. 때로 비참한 결말일지라도 죽음 직전엔 반드시 고결한 노래가 흐르는 세계. 연극에서와 달리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직접 다뤄지는. 우리가 몰랐던 말, 현실에 없었던 말, 영영 못 들을 말이 전해지는 세계. 나는 떠나지만 당신을 영원히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장 끌로드 아저씨」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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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40118~240121)
❝ 별점: ★★★★
❝ 한줄평: 순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순간이 될 때
❝ 키워드: 꿈 | 내일 | 해 | 시간 | 순간 | 추억 | 미래 | 생 | 손 | 감각 | 리듬 | 고독
❝ 추천: 순간과 시간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이처럼 무언가를 쥐는 일은 어떤 믿음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
/ 에세이 | 생의 리듬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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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리뷰에서도 몇 번 썼었는데, 작가를 만나는 첫 시집이나 첫 소설로 현대문학 핀시리즈를 선택하면 만족스러운 독서를 하게 된다. 시인선의 경우 시인의 에세이가 실려 있어서 좋고, 소설선은 작품해설이나 발문, 작가의 말을 통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분량도 ‘첫 만남’에 딱 알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작품을 쓴 작가라면 핀시리즈 작품에 먼저 손이 간다.
✦ 시집을 다 읽고 나서 왜 시집 제목을 ‘왼손은 마음이 아파’라는 구절로 정한 건지 궁금했다. 핀 시리즈 volume II의 에세이 주제가 ‘신체’고, 시인이 손과 손가락에 관한 에세이를 써서 「패러다임」이라는 시의 이 구절이 가장 잘 어울려서일까? 종종 시집 제목에 관해 생각해 보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이 시집은 다른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읽으면서 시간과 순간에 관한 구절들이 인상적이어서 이와 관련된 제목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이 시집은 내게 꿈과 생, 순간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남을 것 같다. 특히 「메리와 해피와」라는 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무렵에 항상 떠오를 것 같은 시다. ‘메리 크리스마스’의 메리, ‘해피 뉴 이어’의 해피를 아이라고 생각해 보니 재미있으면서도 약간 쓸쓸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렇지만 ‘새해가 밝아오는 것과 별개로 / 해피는 늘 곁에 있다고 했다 / 보이지않는다고 해서 / 없다고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p.103-104)는 구절이 참 좋았다. 보이지 않아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른다는 말이 힘이 되었다. [📝 24/01/22]
(*출판사에서 진행한 북토크에서 이벤트 당첨으로 도서를 증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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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속에서는 태양이 지고 있었다. 태양은 너무 커다래서 시간이 흘러도 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 여전히 지평선에 걸려 있었지. 밤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 내일을 감히 상상할 필요가 없었지. 불행을 감히 점칠 필요가 없었지.
/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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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는 산책하는 연인들이 있었다 모래알들을 밟으며 앞길을 내다보았다 막막했다 눈썹달을 바라보며 좋은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봄이 코앞이라고 믿기로 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봄을 기다렸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까마득하구나
/ 「봄밤비」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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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봐. 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나 나쁘다. 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 「표리부동」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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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앞으로도 매년 태어나야 해
매년이 내일인 것처럼 가깝고
내일이 미래인 것처럼 멀었다
/ 「생일」 (p.108)
❝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들을 쥘 기회를 얻을 것이다. (...) 生의 실마리를 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쓰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무언가를 쥐는 일은 어떤 믿음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에세이: 「생의 리듬」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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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첫 문장」
✎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 「봄밤비」 ⛤
✎ 「애」 ⛤
✎ 「대체적으로」
✎ 「표리부동」 ⛤
✎ 「모자이크」
✎ 「그날의 전날」
✎ 「메리와 해피와」 ⛤
✎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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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40120~240120)
❝ 별점: ★★★☆
❝ 한줄평: 문이 닫힌 후, 그 뒤에선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 키워드: 심리 | 스릴러 | 사이코패스 | 완벽 | 불안 | 선택 | 실수 | 희망 | 기회 | 공포 | 악마 | 복수
❝ 추천: 킬링타임용 심리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
🚪 첫 문장: 주방의 대리석 조리대 위로 쾅 하고 샴페인 병이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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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A. 패리스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원제: Behind Closed Doors)를 읽었다. 『브링 미 백』을 읽으면서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했기 때문에, 이번 소설은 강렬한 반전이 있길 바라며 읽었다.
✦ 이 소설과 『브링 미 백』을 비교하자면 『브링 미 백』이 개인적으론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비하인드 도어』의 답답함이 내겐 좀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결말도 원하던 것이긴 하지만 약간 아쉬운...? 좀 더 고통받기를 바랐는데... ㅎㅎ
✦ 완벽해 보일수록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새겨들어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그레이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서 자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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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이 자, 자, 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 온 에스터와 루퍼스를 환영하는 건배를 제안한다. 나도 잔을 들고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다. 기포가 입안에서 춤을 추자 갑자기 행복감이 퍼진다. 그 느낌을 붙잡아두려 애쓰지만, 행복감은 올 때만큼이나 금방 사라져버린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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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31207~240119)
❝ 별점: ★★★★☆
❝ 한줄평: 주기적으로 다시 읽고 싶은 삶과 죽음 사이의 글들
❝ 키워드: 이별 | 인생 | 삶 | 죽음 | 시간 | 슬픔 | 사랑 | 마음 | 지금 | 행복 | 어둠 | 희망 | 사막 | 믿음 | 모순
❝ 추천: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빛과 어둠에 관한 글을 읽고 싶은 사람
❝ 어둠은, 삶으로 규명하면 밝아진다. ❞
/ 「이 어두운 세계의 빛나는 작법」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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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가 너무 슬퍼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갈지 걱정했는데 중간중간 분위기를 환기하듯 웃긴 부분들이 있어서 좋았다. 묵직하지만 너무 무겁기만 하지 않은 산문집이라 좋았다.
✦ 나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빛과 어둠에 관해 계속 성찰하게 되는 글들이었다. ‘나’로 산다는 것은 아무도 나 대신 죽어주지 못하고, 아무도 나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어두운 세계의 빛나는 작법」). 내가 나의 등불이 되어 나의 어둠 속을 간다는 것(「잘못된 세계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밤길」).
✦ ‘모든 사랑이란 결국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명왕성에서 이별」)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을 강하게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폭염서정(暴炎抒情)」)이라고 하시는 부분은 아직 잘 와닿지 않았다.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것을 넘어,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이별의 순간에 다시 이 책을 꺼내 읽고 싶다. [📝 23/01/20]
(*민음사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증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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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삶보다 위대하지 않다. 죽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의 삶이다.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위대할 필요가 없다.
/ 죽음에 관한 소견 (p.80)
|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
/ 수필인간(隨筆人間) (p.84)
| 문학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 사라지지 않을 권리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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