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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자음과모음 (e-book, 231201~231202)
❝ 별점: ★★★★☆
❝ 한줄평: 그래도 엄마··· 많이 사랑하시죠?
❝ 키워드: 코로나, 엄마, 딸, 애증, 부양, 돈, 삶, 꿈
❝ 추천: 엄마와 딸의 ‘변신담 세 편’이 궁금한 사람
❝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기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만 쓸 수 있고, 어쩌면 그건 반쪽짜리 진실이 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
/ 에세이 | 무지개떡처럼
📝 (23/12/03)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에는 작가의 에세이와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는 게 참 좋다. 이서수 작가님의 소설집을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코로나 시대의 세 모녀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때론 가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여러 생각이 드는 복잡미묘한 소설들이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뭉클해지고 울컥해질 때가 있다. 엄마가 조금 더 나이가 든 후에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면 좀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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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절에 버리러」 ⛤
| 우리에겐 아직 폭죽이 많이 남아 있었다. 팡 터뜨리고, 와아 감탄하고, 피시식 사라질 폭죽이 100발 넘게 남아 있었다. 엄마의 손에 불붙은 폭죽을 건네주며 나는 이 순간을 엄마가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다.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그날에도. 찬란하게 떠올라 이내 어두운 바다 속으로 녹아 사라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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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 그날부터 내 꿈은 깊숙한 상자 속에 숨겨놓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소설을 쓰고 있다. 투잡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처럼 말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데, 엄마는 알까. 실은 소설 쓰는 게 너무 즐겁다. 즐거운데 즐겁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끼는 엄마처럼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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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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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31129~231130)
❝ 별점: ★★★☆
❝ 한줄평: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죽을지 선택한다는 것
❝ 키워드: 인간 | 로봇 | 흡혈인 | 인조인간 | 말살 | 안전장치 | 기계 | 인공태양 | 아포칼립스
❝ 추천: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 속 존재들의 치열한 고민과 싸움이 흥미로운 사람
❝ 약육강식의 절대적 법칙이 깔린 세계에서, 기어코 자신이기를 선택해 밤을 걷는 존재들이 있다. ❞ (천선란, 「발문」 | p.135)
🌌 첫 문장: 핵융합이 일어나는 조건은 온도, 밀도, 가둠시간, 이 세 가지라고 로슨Lawson이라는 영국 학자가 밝혀냈다. (p.7)
📝 (23/11/30) 정보라 작가님의 작품들 중 세 번째로 읽게 된 이 책.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님이 발문을 쓰셨다고 해서 더욱 궁금했다.
✦ 『고통에 관하여』보다는 가볍지만 『호』보다는 묵직한, 딱 중편소설 볼륨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장편소설이었다면 조금 더 내용이 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장면들이 있어 짧은 분량이 약간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 ‘약육강식의 절대적 법칙이 깔린 세계에서, 기어코 자신이기를 선택해 밤을 걷는 존재들’이라는 천선란 작가님의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생존자들, 인류를 말살하고자 하는 로봇, 로봇의 노예가 되어 충실하게 인간을 학살하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로봇 신봉자들, ‘인간과 기계의 합작품’인 흡혈인, 그리고 인간을 닮았고, 자신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인간형 로봇, 빌리. 이들 중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고자 하고,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이길 원하는 존재, 그들이 ‘밤을 걷는 존재들’이다.
✦ ‘화장실의 미친 여자’ 이야기가 더 풀리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원래 ‘화장실의 미친 여자’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이 소설로 발전한 것이라는데, ‘화장실의 미친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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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언제나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에 무척 능숙했다. 다른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인간을 잘 죽이지 못했다. (p.17)
| 나는 빌리가 질문했던 인간의 조건을 생각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액체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눈물, 땀, 피. 혹은 진물이나 오물.
나에게는 없다. 피도 눈물도 땀도 체온도. 생명도. (p.83)
| 빌리는 죽었다. 빌리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꼭 그래야만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인조인간 제작소를 파괴하기는커녕 인간형 로봇들도 완전히 처치하지 못했다. 기계들의 계획은 하나도 저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하도 끝에 몰렸다. 밖에는 태양이 내리쬔다. 우리는 갇혔다. (p.122)
| 노예의 순리는 필요 없다. 나도 나의 죽음을, 내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햇빛 아래 재가 되어 사라지거나, 끝없는 밤하늘 아래 목이 잘리거나.
어느 쪽이든, 오늘은 아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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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231125~231129)
❝ 별점: ★★★☆
❝ 한줄평: 사람과 삶,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 세 편
❝ 키워드: 구별, 의식 | 계획, 보상 | 사랑, 증오
❝ 추천: 사람, 삶,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23/11/30) 『소설 보다 : 여름(2021)』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봄도 구매했었는데, 가을 먼저 읽고 봄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생각보다 두께가 있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소설들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은 찾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는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면서 자신과 구별 짓는 화자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고, 「오늘 할 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좋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사랑과 결함」이세 편 중 제일 인상적이었지만 이 단편도 잘 읽혔다기 보다는 어딘가 불편하고 찜찜한 구석이 있어 곰곰 생각하며 읽었다. 인물들에 충분히 이입하고 읽지 못해서일까.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읽으면 다를까? 재독을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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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 단체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움직임을 사심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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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현, 「오늘 할 일」
|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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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소연, 「사랑과 결함」 ⛤
|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고모나 엄마는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과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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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삶의 터전이 단단할수록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모순으로 느껴졌고 일탈마저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71)
| 이 소설에는 '삶은 통제되지 않는 것' 혹은 '삶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사실 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통제되지 않는 삶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걑거든요. (p.138-139)
| 물론 어떤 함의를 지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에게 '사랑'은 어찌 보면 가혹한 것과 같거든요. 마음을 주게 됨으로써 일어날 예기치 못한 일들을 감수하게끔 하는 감정입니다.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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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231128~231128)
❝ 별점: ★★★★
❝ 한줄평: 섬뜩하게 시작해 아련하게 끝나는 이야기 세 편
❝ 키워드: 죽음, 감각 | 반복, 끝없음 | 불행, 행복
❝ 추천: ‘닿음과 닿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닿음과 닿지 않음에 관한 소설 세 편 ❞
/ 출판사 소개
📝 (23/11/29)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를 모아보자 생각하고 소설 보다 2023 외에 처음 구입한 『소설 보다: 가을(2021)』. 작가보다는 작품의 제목들에 끌려 사게 된 책인데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독서를 했다. ‘닿음과 닿지 않음’의 소설들이라는 출판사의 소개처럼 물리적, 심리적, 그리고 시공간의 닿음과 닿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었다. 세 편 다 정말 좋았지만 가장 내 취향은 구소현 작가님의 「시트론 호러」! 시트론이라는 상큼한 느낌의 과일과 호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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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소현, 「시트론 호러」 ⛤
: 유령이 되어서도 소외된 자의 닿기 위한 노력
| 다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절대로 살아 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닿고는 싶었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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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혜영,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 계단이라는 무한 루프에 갇혀버린 자의 소리 없는 각인
| 계단 아래 계단, 그 아래 다시 또 계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구렁텅이였다. 발밑으로 펼쳐진 공간의 밑바닥이 가늠되지 않았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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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란, 「위해」
: 위해, 위험 혹은 위로와 위안
| 사람들은 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은 달랐다. 난 어느 정도 행복하고 나야말로 긍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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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물이 차오를 경계가 없는 옥상의 세계에서도 자신이 새긴 글자들을 오돌토돌하게 느끼는 것이 ‘내’가 이어나가야 할 생이거나, 내가 생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벽에 새긴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라는 말은 세계에 대한 단언이 아니라 계속 이어 씌어질 문장들의 개시로 읽혔습니다. (p.83)
|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고 그래서 이런 마음도 있고 저런 마음도 있다고요. (…) 마음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원래 계속 흘러가는 거구나 한 뒤로는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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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e-book, 231125~231127)
❝ 별점: ★★★★☆
❝ 한줄평: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 키워드: 새싹 | 나무 | 삶 | 생명 | 죽음 | 운명 | 사랑 | 이해 | 연민 | 죄책감 | 고통 | 의도 | 마음 | 믿음
❝ 추천: 삶과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
❝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
❝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
/ 작가의 말
🌳 첫 문장: 작은 섬에는 작은 열매를 좋아하는 작은 새가 많았다. (프롤로그)
📝 (23/11/27) 최진영 작가님은 단편 「돌담」으로 알게 된 작가님인데, 소설집 『겨울방학』의 편집자 리뷰에서 ‘최진영의 인물들은 두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와 ‘마음을 단단히 쌓는 인물들’이라는 문장을 보고 ‘최진영이 그려내는 인물들’이 궁금해졌다. 이번에 장편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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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읽었던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에서도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좀 더 깊게 삶과 죽음, 그리고 ‘신 혹은 절대자’에 관해 사유해 볼 수 있었다.
| 우주에서 생명이란 너무나도 이상한 현상. 신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 살려달라는 기도를 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 그러니까 죽음이란 ‘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없어지는 현상’이었다. 그와 같은 정의에 목화는 미약한 온기를 느꼈다. 다만 그것이 없어질 뿐이다. 그것 아닌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하는’ 존재만이 사람은 아니다. 그 외의 더 많은 의미가 모여 사람을 이룬다.
| 삶은 죽음과 탄생을 모두 담는 그릇이다. 죽음 없는 삶은 불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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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천자 - 장미수 - 신목화 - 루나로 이어지는 가업인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다른 존재라는 것, 즉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 임천자와 장미수, 신목화가 각자 다른 이름을 붙이듯,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 각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듯, 각자 ‘단 한 사람’만을 구할 수 있는 운명을 다르게 받아들이듯, 임천자와 장미수와 신목화의 ‘단 한 명’이 모두 다르듯, 임천자와 장미수와 신목화는 모두 다른 사람, 단 ‘한 사람’이다. 무조건 운명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대신 목화가 선택한 길이 참 좋았다. 나무의 지시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하는 일.
| 신목화에게 ‘왜 나인가’란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것처럼 이미 주어진 운명이었다. 신목화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운명에 내 몫이 있음을, 내 의지가 개입할 수 있음을,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증명하는 것.
| 목화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추었다. 그리고 중개 중에 이전에는 하지 않는 것을 했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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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 그 사이의 사랑. 그들은 다른 사람이기에 그들의 사랑의 모양도 모두 다르다. 임천자에게 사랑은 말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죽어서도 기꺼이 원망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 신복일에게 사랑은 심장이어서 사랑이 멈추면 삶도 끝나는 것, 장미수에게 사랑은 감추고 속이는 것 없이 다 말해주는 것. 여러 사랑 중에서도 임천자의 사랑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장미수가 언젠가 꼭 그 사랑을 깨달았기를.
|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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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살리는 일’, 그리고 ‘산 사람을 살리는 일’.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리고 ‘산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라던 금화의 말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마음껏 기뻐하고 사랑하고 때론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영원한 오늘’을 누리며 ‘단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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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231120~231126)
❝ 별점: ★★★★
❝ 한줄평: 섬뜩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고딕!
❝ 키워드: #고딕 | 실종, 추적 | 사랑, 파멸 | 살인, 죄악 | 저주, 참회 | 예언, 운명 | 꿈, 환상
❝ 추천: 현실과 환상 사이의 공포를 사랑하는 사람
❝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고딕 문학의 고전 ❞
/ 출판사 소개
📝 (23/11/26) 은행나무 브릭스 북클럽을 마치고 선물 받았던 책 『고딕 이야기』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대학교 때 고딕 소설을 읽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하고 황량한, 그러나 풍부한 배경 묘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아 고딕소설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소설집 제목이 ‘고딕 이야기’라서 망설임 없이 고른 책인데 가을, 겨울 분위기가 나는 단편들이 많아서 지금 읽기 딱 좋단 생각을 했다.
✦ 다른 사람이 플레이하는 공포 게임 영상을 즐겨 보고, 인터넷의 괴담 이야기를 읽거나 영상을 보는 게 재미있다. 소설은 그런 콘텐츠들과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현대 공포 소설도 좋지만,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오랜 과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딕 소설은 참 매력적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문학에서 고딕은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경이로움, 떠도는 유령의 두려움, 현재를 엄습하는 과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p.360)고 말한 것처럼, 개스켈의 소설에서는 유령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공포,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섬뜩함, 현재를 불안하게 하는 과거의 압박감 등을 다루고 있다.
✦ 유령이나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나는,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인간의 잔인함과 끔찍함이 더 무서웠다. ‘저주’를 다룬 두 단편 「빈자 클라라 수녀회」와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두 단편은 무서우면서도 쓸쓸하게 슬퍼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올여름에 고딕 소설을 잔뜩 샀었지만 읽지 못하고 책장 한 구석에 밀어두었었는데, 이번 소설집을 읽으니 내년 여름에는 꼭 고딕 소설들을 챙겨 휴가를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은행나무 브릭스 북클럽 종료 후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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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나는 형사 경찰의 시대에 사는 것에 감사한다. 내가 살해당하거나 중혼을 한다면, 어떤 경우든 내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그 일에 대해 전부 알게 될 것이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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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보모 이야기」
: 사랑이 대체 뭐길래······
| 더더욱 몸서리쳤던 것은 그 지독한 날씨의 고요함 속에서, 그 아이 유령이 온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그 작은 손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울부짖고 울고 하는 것이 보임에도 어떤 희미한 소리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때였다.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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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주 이야기」
: ‘범죄를 저지르는 꿈’은 진짜였을까 아니었을까
| “끔찍한, 끔찍한 살인이었어요! 그 살인자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요. 난 붉게 달아오른 저 불의 중심이 마음에 들어요. 봐요, 얼마나 까마득하게 멀어 보이는지. 그리고 그 먼 거리가 어떻게 저것을 무시무시한, 꺼버릴 수 없는 무언가로 만드는지.” (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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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 클라라 수녀회」 ⛤
: 저주와 참회, 그리고 속죄
| “하지만 제가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버림받았습니다. 하느님조차 기이하고 사악한 힘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허락하고 있으니 제가 어쩌겠습니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난단 말입니까?”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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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
: 예언을 거스르려는 노력, 운명의 힘은?
| “나는 그대에게 살아가라는 저주를 내린다. 나는 안다, 그대가 차라리 죽기를 기도하게 되리라는 것을.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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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나뭇가지」 ⛤
: 인륜보다 못한 천륜
| “세상에 돈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어. 그랬다면 당신이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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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사실인지」
: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환적인 하룻밤
| 저는 넓은 계단 양쪽으로 펼쳐진 비어 있는 커다란 회랑에서 웅장하게 밀려드는 웅얼거림을 (마치 먼 바다에서 물결이 밀려나고 또 밀려들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그 쉼 없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고, 우리 위 어둠 속에 희미하게 그 소리를 인지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치 수 세대에 결친 목소리가 침묵하는 허공에서 메아리치다 물러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p.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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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다가도 불현듯 느끼는 불안과 섬뜩한 공포를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 함께 풀어가는 개스켈의 19세기 고딕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와 가슴 깊은 곳을 휘저을 것이다. 에세, to be,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 두려움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p.36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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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비 (231123~231124)
❝ 별점: ★★★★
❝ 한줄평: 예상을 넘어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건의 진상
❝ 키워드: 범죄 | 살인사건 | 증거품 | 서류 | 재수사 | 진상 | 미스터리 | 추리 | 반전 | 경찰
❝ 추천: 예측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
❝ “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p.51) ❞
❝ “사건의 진상이 뭐든지 간에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경찰관의 사명이니까요.” (p.99) ❞
🏢 첫 문장: 데라다 사토시는 녹슨 철문 앞에서 깊디깊은 한숨을 쉬었다. (p.9)
📝 (23/11/25) 청년서가와 리드비가 함께 한 기대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감사하게도 『붉은 박물관』 도서를 제공받았다. 카드 뉴스가 매우 흥미로워서 눈길이 갔던 책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된 일본 미스터리라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몇몇 미스터리들은 중간쯤 읽다 보면 대충 범인을 때려 맞추곤 했는데 이번에는 읽으면서 나의 예상이 한 번 빼고 모두 빗나가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예상을 넘어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건의 진상’이란 한 줄 평을 쓴 것도 정말 사건의 진상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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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 ‘붉은 박물관’은 일정 기간이 지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가 모이는 곳이다. 천재적인 고위직 경찰 커리어지만, 의사소통 능력은 거의 제로인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수사 과정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수사 1과에서 좌천된 조수 데라다 사토시 콤비는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며 수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재수사를 진행한다. 박물관의 수위 오쓰카 게이지로, 미화원 나카가와 기미코가 나오는 장면도소소한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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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에코가 재수사를 지시하면 사토시는 사건 관련 인물을 만나며 사건 당시의 일을 묻기도 하고 사에코가 물어보라고 한 것을 질문하기도 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정보를 얻는다. 그래서 사토시와 함께 단서를 얻어 사건을 추리해나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름 메모를 하며 열심히 추리해 보았지만 사에코의 번뜩이고 천재적인 추리의 반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ㅋㅋ 다섯 개의 사건 중에서 나는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와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 특히 충격적이고 재미있었다. 제목을 잘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아마 추리하다가 정답에 도달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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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진상이 뭐든지 간에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경찰관의 사명’이라는 사토시와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에코. 증거품과 수사 자료를 살펴 재수사를 지시하고, 사토시가 수집해 온 추가정보들을 바탕으로 번뜩이는 추리를 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는 사에코. 사에코도 인정한 기억력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착실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하는 사토시. 둘의 조합이 기가 막히다. 탐정물보다 이런 콤비물이 더 내 취향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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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건의 진상이 궁금하다면, 예측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히이로 사에코의 외모 언급이 꽤 많아서 ‘꼭 필요한 이야기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작가님이라면 이 정보도 괜히 언급한 게 아닐지도...? 후속작 『기억 속의 유괴』가 지금 예약판매 중이던데 출시되면 이 작품도 꼭 읽어봐야겠다!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서가와 리드비가 함께 한 기대평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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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수요일 (231123~231123)
❝ 별점: ★★★★
❝ 한줄평: 삶과 죽음, 그 사이 무수한 경계를 유영하는 정체성
❝ 키워드: 물고기 | 비늘 | 몸 | 소통 | ‘나’ | 이름 | 말 | 사랑 | 삶과 죽음 | 지구 | 경계 | 정체성
❝ 추천: 다와다 요코의 세계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
❝ 결국 이 모든 변화와 변모는 정체성의 유동성을 가리키고 그 끝은 바로 죽음이다. (p.114) ❞
/ 옮긴이 해제 | 경계의 안팎으로 사유하는 이야기
🫧 첫 문장: 인간의 몸은 팔십 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p.7)
📝 (23/11/23) 읻다 넘나리 서포터즈 두 번째 도서 서평 제출 후 우수 참여자 중 한 명으로 뽑혀 편집자 김소띠 님의 최애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바로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 은행나무 에세 시리즈에서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에 어른거리는』으로 이름을 알게 된 작가인데 아직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었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 중 편집자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하셔서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길래 궁금한 마음에 세 번째 서평을 제출하고 바로 이 책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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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에 왜 제목이 ‘목욕탕’일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의 의미가 확 와닿지는 않았다. ‘욕조’가 있는 공간이어서? 독일어 'bad'의 뜻이 ‘목욕’, ‘목욕물’도 있던데 내가 모르는 언어라 번역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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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늘 있는 여자’라는 설정에서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가 잠깐 떠오르기도 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좀 더 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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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과 후반부의 문장이 오버랩되며 인간의 유동성이 지구의 유동성으로 확장되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 인간의 몸은 팔십 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울 속에 매일 아침 다른 얼굴이 비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마와 뺨의 피부는 매 순간 그 아래에서 흐르는 물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늪의 진창과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인간의 움직임처럼 변한다. (p.7)
| 지구는 칠십 퍼센트가 물로 뒤덮여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지구 표면이 매일 다른 모양을 보여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하수는 아래에서 지구를 움직이고 바다의 파도들은 해변을 갉아먹고 위에서는 사람들이 암석을 파괴하고 계곡에다가 논을 만들고 바다를 둘러싼다.
그렇게 지구의 모양이 변해간다.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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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 그 사이의 끊임없는 정체성의 유동성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화자와 크산더, 호텔에서 만난 지하실의 여자 모두 계속해서 이전의 정체성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넘어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나는 투명한 관이다.’(p.101)라고 말하는 부분은 우리가 죽음으로 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 “사람들이 죽으면 더는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말은 틀린 거예요. 사람들은 죽으면 더욱더 동경하는 게 많아져요.”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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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말, 소통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통역을 하러 간 자리에서 통역자인 ‘나’가 없이는 서로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크산더에게 독일어를 배우며 그와 사랑에 빠진 ‘나’. 혀를 잃어 말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나‘의 정체성은 흔들리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말을 잃게 되자 진짜 자아를 찾아 나서게 된다. 다와다 요코의 많은 작품들이 ‘외국어에서 모국어로 역행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해체하고 탈경계적 글쓰기를 지향’(출판사 서평)한다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워서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말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진다. 크산더가 내 앞에서 해주는 말들을 반복하는 동안 내 혀는 그의 소유로 넘어갔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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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보다 더 내 취향이었던 다와다 요코의 작품! 김소띠 님 다시 한번 책 선물 감사합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 다른 좋은 책을 만날 때면 정말 책 사이를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고 싶은 심정... 🫧
(*읻다 넘나리 서포터즈에서 우수 참여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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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 넘나리 1기 (231115~231121)
❝ 별점: ★★★☆
❝ 한줄평: 놀라운 우주적 상상력으로 써내려 간 ‘진리의 책’
❝ 키워드: 우주 | 비밀 | 합일 | 상상 | 공리 | 직관 | 무한 | 끌어당김과 밀어냄 | 확산 | 복사 | 응축 | 순환 | 상대성 | 작용과 반작용
❝ 추천: 에드거 앨런 포의 놀라운 우주적 상상력이 궁금한 사람
❝ 우주적 상상력 안에서 합일하는 진리와 아름다움 ❞
/ 출판사 소개글
❝ 지금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우주적 순환의 거룩한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인지도 모르니까. (p.184) ❞
/ 옮긴이의 말 | 우주라는 사건
📝 (23/11/22)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과 표지에 끌려 고른 책. 사전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읽다가 책의 1/3 정도를 읽은 후에 도저히 혼자 이 글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에 출판사 서평을 먼저 찾아보았다. 다른 넘나리 분들의 후기를 보니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으신 분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유레카』는 에드거 앨런 포가 1848년에 했던 강연 〈우주의 구조에 대하여〉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네 가지는 공리, 끌어당김과 밀어냄, 유한과 무한, 그리고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 이 글에서 언급된 공리는 공리(公理,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와 공리(空理, (1) 사실과 동떨어지거나 실제로 소용되지 않는 이론. (2) 만유(萬有)에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이치.)였는데 나는 公理의 뜻만 알고 있었던 걸 이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 ‘끌어당김’과 ‘밀어냄’이 곧 물질이라(p.50)고 말하며 모든 현상을 ‘끌어당김’과 ‘밀어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나중에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성으로 설명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 인간은 무한이라는 개념의 ‘허깨비’를 애지중지하지만 사실 우주에도 유한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 놀랐다. 그리고 포의 설명을 읽으면서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숫자로 저렇게 설명해도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 정말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참으로 사소하고 우주의 입장에서는 ‘무’로 느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 옮긴이의 말에서 ‘우주가 태초의 입자에서 무수한 많음으로 나뉘고, 그 같음이 무수한 다름으로 나뉨으로써 관계가 생기고, 무연의 옳음이 무수한 관계들의 그름으로 나뉨으로써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되었’으나 ‘만물이 하나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개개인의 고통과 행복이 언젠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상쇄되리라는 것을 의미’(p.182-183)한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현대 과학의 9가지 발견을 시적 직관으로 예견했다고 평가받는 이 글을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은 <머리말>에서 ‘이 글을 오로지 예술 작품으로서 바치는 바다’라고 말하며 ‘나의 사후에 이 작품이 오로지 시로서 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는 ‘도대체 왜 포는 이 글을 시로 읽어달라고 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니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순환이 ‘우주라는 완벽한 신의 플롯’(p.146)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우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글이 포에게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포 자신이 써내려 간 아름다운 시일 수 있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다시 읽으면 정말 시처럼 느껴질까? 미래의 내가 할 독서가 문득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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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우주의 — 물리적, 형이상학적, 수학적 측면에 대해 — 그 본질, 기원, 창조, 현재 상태, 운명에 대해 — 이야기할 작정이다. (p.11)
| (...) 나무는 나무이거나 나무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 즉, 나무이면서 동시에 나무가 아닐 수는 없다는거예요 (...) 이제 그에게 묻겠어요. 왜냐고 말이에요.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에요 — 그 누구도 두 번째 답을 내놓진 못할 거예요. 유일한 답은 이거예요 — '그것은 나무가 나무이거나 나무 아닌 다른 어떤 것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말하지만 밀 씨의 유일한 답이에요 (p.24)
| 옳음은 긍정적이고, 그름은 부정적이며 — 옳은 것의 부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차가움이 뜨거움의 부정이고 — 어둠이 빛의 부정인 것과 같다. 어떤 것이 그르려면,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과의 관계에서 글러야 한다 — 그것이 충족하지 못하는 어떤 조건, 그것이 위반하는 어떤 법칙, 그것이 괴롭히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그르게 하는 존재나 법칙, 조건이 없다면 —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나 법칙, 조건이 아예 없다면 — 그것은 그를 수 없으며 따라서 옳아야 한다. (p.74-75)
| 그리하여 끌어당김과 밀어냄 —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 이라는 두 참원리는 가장 엄격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영원히 동행한다. 그리하여 육체와 영혼은 손을 맞잡고 걷는다. (p.88)
| 인간의 뇌는 분명히 '무한'에 기울어 있으며, 무한 개념이라는 허깨비를 애지중지한다. 이 불가능한 관념을 상상해내자 이것을 지적으로 믿으려는 희망에서 열정적으로 갈망하는 게 아닌가 싶다. (p.125)
| (...) 지구상에서의 모든 거리가 실은 사소하여 — 거대한 우주적 양에 비하면 절대적 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p.139)
| 대칭성이야말로 우주의 — 그 대칭성의 숭고함 면에서 시들 중 가장 숭고한 시에 불과한 우주의 — 시적 본질이다. 대칭성과 정합성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용어이므로 — 시와 진리는 하나다. 사물은 진리에 비례하여 정합하며 — 정합성에 비례하여 참되다. 다시 말하지만, 완벽한 정합성은 절대적 진리일 수밖에 없다. (p.157)
| 이 견해에서, 또한 이 견해에서만 우리는 거룩한 불의의 — 무정한 운명의 —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 만악의 존재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되는데, 하지만 이 견해에서는 그 이상이 — 견딜 수 있는 것이 — 된다. 우리의 영혼은 더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한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기쁨을 확대하려는 바람으로 — 그것이 헛된 바람일지라도— 스스로의 목적을 증진하고자 한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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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 넘나리 1기 (231118~231120)
❝ 별점: ★★★★
❝ 한줄평: 나 MBTI 많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네
❝ 키워드: #MBTI : INTJ, INTP, ENTP, ENFP, INFJ, INFP | 연애, 외로움 | 일반적, 생각 | 제도, 사랑 | 이별, 다름 | 유형, 비정상 | 이해, 감각
❝ 추천: 다른 사람들의 MBTI 추측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MBTI 과몰입러, 작가님의 MBTI가 궁금한 사람
❝ 그래도 나는 MBTI가 좋아, 누군가를 알고 싶은 마음이라니 기특하고 귀엽잖아. ❞
/ 이서수, 「알고 싶은 마음」
📝 (23/11/21) 우주 최초 MBTI 테마 소설집이라니! 읻다 넘나리 세 번째 도서를 고를 때 망설임 없이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를 택한 이유는 좋아하는 이유리 작가님이 ENFP로 소설을 쓰셨기 때문❤️ 나도 ENFP라 운명처럼 느껴져 더욱 신이 났다. ㅋㅋㅋㅋ
이 책에는 여섯 분의 작가님이 각각 INTJ, INTP, ENTP, ENFP, INFJ, INFP 유형의 인물을 다룬 작품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고, 작가님들의 Q&A도 담겨 있어 책을 덮는 순간까지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가득했다.
내가 F가 거의 80% 가까이 나오는 극 F고, 친한 친구들이 INFJ, INFP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 작가님이 쓰신 후반부의 세 작품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나 이유리 작가님의 「그때는 그때 가서」가 이 책의 내 최애 작품❤️ 이유리 작가님이 그린
ENFP 주인공 수진과 거의 한 몸이 된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다. 이유리 작가님의 Q&A를 읽으니 정말 작가님과 나는 같은 엔프피구나 느껴져서 신기했다 ㅋㅋ 작가님은 ‘머릿속이 꽃밭’(p.111)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셨지만, 종종 친구들에게 ENFP 유형이 ‘대가리 꽃밭’이라는 말이 있다더라고 말하며 깔깔 웃곤 했던 나라서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 읽은 후에는 정말 대책 없으나 사랑스러운 수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2권이 T 유형, 3권이 F 유형 특집인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T 유형과 F 유형의 인물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MBTI 유형에 맞는 소설집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MBTI 과몰입러라면 이 소설 강추! 작가님들의 진짜 MBTI가 궁금한 사람에게도 강추! MBTI 테마 소설집 시리즈 기획하신 읻다 선생님들 완전 감사합니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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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디나이얼 인티제」
: MBTI 과몰입러와 MBTI 극구거부자 그 사이일 순 없는 걸까?
|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면 당연히 좋지. 누가 모르나? 그러나 자신부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걸 바라는 건 파렴치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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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주말에는 보통 사람」
: ‘일반적’이라는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
| 그러니까 윤아는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단 듣는 편이었다. 비과학, 비과학 하면서 투덜대는 나와는 달리 윤아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적당한 타협과 균형 감각도 있는 편이었다. 내가 틀린 건 아니지만, 윤아가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건 안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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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운, 「도도의 단추」
: 사람도, 동물도,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는 일정한 자격 없이는 화를 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따위 자격이 필요한 세상 자체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따금씩 끓어올랐으나 영지는 손도 시리고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자꾸만 누워버렸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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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그때는 그때 가서」 ⛤⛤
: 대책 없음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ENFP의 매력
|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부르는 김선자 씨의 노래를 들으며 눈앞에서 꿈결처럼 흘러 다니는 보름달물해파리 떼를 보는 이 순간은 글쎄, 정우의 말대로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쁜 이상함, 유해한 이상함이 있고 좀 바보 같지만 무해한 이상함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함, 그건 아무래도 잘못은 아니다. 이런 순간이라도 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간담, 이 풍진세상을.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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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알고 싶은 마음」 ⛤
: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알고 있는 마음
| 어떤 사람의 상황을 자세히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태라는 걸 이젠 안다. 알고 있다고 하여 뭔가를 해줄 수는 없더라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동되는 마음이 있다. 염려하는 마음, 간간이 떠올리며 기도하는 마음. 누군가 그렇게 해주면 상대는 무심결에 힘을 얻는다. 기운이 전해진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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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나 여기 있어」 ⛤
: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 그 감각을 알았다. 나는 가고, 너는 여기 남겠구나. 누가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고 내가 남겨진 것이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고 그저 우리가 함께가 아닌 순간에 대한 예감만이 또렷했다. 나는 언제나 그 감각을 알았다. 그런 감각이 스미는 순간을 알았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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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딱 한 달만 다른 MBTI 유형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유형으로 살고 싶으세요? 이유는요?
A. 글쎄요, 깊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ENFP가 제일 좋습니다. 다른 것은 되고 싶지 않네요.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답하고 보니 이 역시 자기애 넘치는, 굉장히 ENFP적인 답변이네요······.
Q. ENFP의 이런 점은 진짜 최고다, 이 점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부끄럽다, 하는 게 있다면?
A. 낙천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것! 저는 인류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내일 하루는 어김없이 밝고 아름답게 시작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점이라면 남의 칭찬(대부분 립서비스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거, 끈기와 집중력이 정말 부족하다는 거······? 그리고 현실감각의 부재.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매력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죄송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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