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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7 |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5)


❝ 별점: ★★★★

❝ 한줄평: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갈망

❝ 키워드: #소나티네 #살인 #죽음 #욕망 #일탈 #술 #목련 #바다 #정원 #석양 

❝ 추천: 판에 박힌 권태로운 삶에서의 비밀스러운 일탈이 궁금한 사람


❝ 목련꽃은 오늘 밤 활짝 필 것이다. 그 여자가 항구에서 오는 길에 꺾어 온 것을 빼놓고는. 시간은 이 잊힌 꽃봉오리 위로도 한결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


🎼 첫 문장: “악보 위쪽에 뭐라고 써 있는지 읽어볼래?”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p.7)


📝 (23/10/0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여름밤 열 시 반』을 읽은 후 바로 이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집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조금 더 좋았다.


  결혼한 이후 아이를 낳고 안주인 노릇을 하며 10년 간 판에 박힌 듯한 일상을 살던 안 데바레드는 집과 반대편, 시끌벅적한 부둣가 근처에서 아이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는 작은 일탈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이를 죽인 남자를 목격하게 되고, 절대적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라메르가의 저녁 만찬 장면을 담고 있는 7장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주인마님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어딘가 매우위태로워 보이는 안 데바레드와, 상상인지 실제인지 모르지만 라메르가의 집 밖에서 배회하며 정원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는 쇼뱅의 모습이 교차되고 목련꽃이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 듯 완전히 시들어버린 모습이 그녀가 갈망하던사랑이 불가능해졌고, 그 저택에서 앞으로도 판에 박힌 삶을 살며 시들시들해져 갈 것임을 암시하는 듯해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은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고 한다. 안과 쇼뱅의 만남을 잘 설명하는 듯하다. 그들의 만남은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그저 일상에서 흘러가는 속도대로 진행되고, 안의 아이가 연주하는 소나티네가 책속에서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흐른다.


  쇼뱅과의 마지막 만남 후 ‘그날의 종막을 고하는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진 안 데바레드. 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 아니면 이미 죽은 마음으로 라메르가에 못 박힌 채 멍하게 살아갈까? 그것도 아니면 죽은 여자처럼 자신을 사랑해서 죽일누군가를 다시 찾아  나설까? 석양의 아름다움보다 석양의 씁쓸함과 고독함을 더 많이 느낀 뒤라스의 소설 두 편이었다. 🌅


———······———······———


|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 도시에서 바람이 그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게 사실입니다. 전 벌써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안 데바레드는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그 여자는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p.59)


| 그 여자는 소나티네에 귀 기울였다. 아이가 빚어내는 음악이 세월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그녀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걸들으면서 기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p.72)


| 그 여자는 이번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가슴 사이에 꽂은 목련꽃은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것이다. 사내는 곧 정원을 지나쳐 더 멀리 갈 것이다. 그가 지나갔다. 안 데바레드는 가슴에 꽂은 꽃을 비틀어대는 끝없는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p.101)


|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다시 흘러나와 더 커졌다. 그녀는 다시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여자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알아차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을 들어 그 여자 손 위에 포개놓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서로 스쳐 갔다. 지금과 같이 소망 속에서 말고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손은 죽음의 포즈로 굳어진 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그쳤다. (p.108)


———······———······———

모데라토 칸타빌레
모데라토 칸타빌레
23-036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

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3)


❝ 별점: ★★★★

❝ 한줄평: 나의 것이 아닌 사랑을 좇을 때의 공허함

❝ 키워드: #여름 #살인 #소나기 #폭풍우 #서늘함 #지붕 #기다림 #침묵 #술 #밀회 #새벽 #태양 #잠

❝ 추천: 사랑의 강렬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사람


❝ 밤 열 시 반. 그리고 여름.

   그러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밤이 찾아 온다. 그러나 오늘 밤 이 마을에는 사랑을 위한 장소는 없다. ❞


⛈️ 첫 문장: “그의 이름은 파에스트라예요.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p.7)


📝 (23/10/04)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여름밤 열 시 반. 여름의 어느 달인 지에 따라 강렬한 태양열이 남아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기온이 높지 않아서늘한 바람이 불기도 하는 시간. 이 소설은 그런 변덕스러운 여름의 강렬함과 서늘함을 모두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살인은 전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소설은 철저히 마리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마리아는 왜 그렇게 ‘폭풍우 속의 살인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구해서 프랑스로 데려가고 싶어 했던 걸까? 어쩌면 자신처럼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마주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자신과 같이 공허함을 느끼고 그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무언가를 잊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기 위해서인지, 혹은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인지 마리아는내내 술을 마신다.


  기다림, 그리고 침묵. 마리아는 자꾸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에르와 클레르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피에르 모두 상대가 대답을 하길 원할 때 침묵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다림과 침묵은 오히려 긴장감을 계속해서 고조시킨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죽인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후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저녁 무렵부터, 피에르와 클레르가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밤, 마리아가 지붕 위의 남자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임을 확인한 한밤, 그를 차에 태워 마드리드행 국도를 달려 밀밭에 내려두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새벽, 비몽사몽으로간신히 돌아온 호텔에서 잠을 청한 후 맞은 아침, 총으로 자살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마주하게 된 정오, 마드리드로가는 길에 들른 파라도르에서 결국 피에르와 클레르가 사랑을 나눈 오후, 그리고 마드리드에 도착해 마리아가 피에르에게 그들의 이야기의 끝을 고하는 저녁. 변덕스러운 여름만큼이나 변화무쌍했던 하루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이란 없는 걸까? 인간은 은밀하고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걸까? 공허하고 권태로운 마리아의 마음이 전달되어 씁쓸하고 서늘한 여운이 남는다.


———······———······———


| 빗줄기는 가벼워졌지만, 빈 지붕이 비에 젖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꿈에 그리던 고독의 추억일 뿐이다. (p.24)


| 진흙과 밀 냄새가 복도로 흘러 들어온다. 호텔도, 마을도,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와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도, 베로나에서의 사랑의 하룻밤, 그 마르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도 공허한 추억도, 그 냄새 속에 잠겨 있다. (p.53)


| 그녀는 구역질이 날까 두려워 너무 깊이 숨을 쉬지 않는다. 분명 새벽에 마신 코냑의 마지막 한 모금 탓이다. 끊임없이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흐느낌처럼, 그것은 목구멍 밑에서 치밀어 올라온다. (p.97-98)


| 그들은 길 한복판에서 서로 마주 선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건에 결말을 낼 말이 상대에게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피에르는 마리아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부른다.

  "마리아." (p.135)


| 마리아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일이 벌어질 것이다. 30분 안에, 또는 한 시간 안에. 그렇게 되면 세 사람의 애정 관계는 역전될 것이다.

  이번 일만은 확실히 알아두고 싶어진다. 그녀는 자기도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베로나에서 어느 날 밤 그녀 자신이 직접그 관계를 만들어낸 그날 이후 그녀가 그들에게 남겨 준 세상에 자기도 입회할 수 있도록,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사태를 보고 싶은 것이다.

  마리아는 자고 있을까? (p.152)


| 쥐디트는 자고 있다. 클레르와 마리아는 각각 다른 밤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피에르의 머리에 베로나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와 아내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는 죽어버린 애정을 되살리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마리아의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가 미처 몰랐던것은 그로 인해 야기된 마리아의 외로움, 오늘 밤 그녀로 인해 야기된 그 자신의 미안함,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이 슬픔이얼마나 매혹에 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리아."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아줘."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몸에 뿌린 향수는 그녀 자신에 대한 그녀의 절대권,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떠나간 그의 배반, 그녀에 대한 그의 동정심,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 다시없이 소중한 향수였다. 즉 그녀는 사랑의 종말을 예고하는 향기를 몸에 묻히고 있었던 것이다. (p.168-169)


| "어떡하면 좋지?” 그녀가 묻는다.

  "당신은 내 삶이야." 그가 말한다. "한 여자의 단순한 새로움 같은 걸로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아. 당신 없이는 살아갈수 없어."

  "우리 이야기는 끝났어." 마리아가 말한다. "피에르, 이젠 끝났어.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야."

  "아무 말 하지 마."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피에르, 이젠 끝났어." 피에르는 그녀 쪽으로 다가가서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겁을 내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방금 깨달았어.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랬는지도 몰라." (p.170)

여름밤 열 시 반
여름밤 열 시 반
23-035 | 김초엽, 므레모사

현대문학 (230929~230930)


❝ 별점: ★★★★☆

❝ 한줄평: 이해받지 못한 자가 이해받기 위해 내린 선택

❝ 키워드: #환지통 #화재 #화학물질유출 #다크투어리즘 #귀환자들 #여행자들 #함정 #비밀 #중독 #탈출 

❝ 추천: 삶과 죽음의 관계의 전도가 궁금한 사람


❝ 나는 이해의 실패로부터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그 실패의 결과를 파국으로 밀어붙인 시도였다. (작가의 말, p.201-202) ❞


🦿첫 문장: 중요한 무대를 망쳐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다. (p.9)


📝 (23/10/01) SF호러 소설이라고 해서 대체 어떤 내용일지 기대를 많이 했는데 엄청난 긴장감으로 읽어 내려갔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이 소설은 꼭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읽을 것을 권한다.


☠️ 므레모사:


| 원인 불명의 화재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돼 초토화된 ‘죽음의 땅’ 므레모사가 수십 년간 감춰왔던 장소를 개방하는투어를 열어 여행자들이 찾아옴, 코를 찌르는 달콤한 향기가 풍겨오는 곳.


🏃🏻‍♀️여행자들:


| 유안 / 레오 / 헬렌 / 이시카와 / 탄 / 주연은 각자 므레모사에 방문한 목적이 있음


🦿유안:


| 사고로 다리를 잃고 기계 다리를 착용, 무용수로 활동했으나 사라지지 않는 환지 감각으로 고통받고 있음


🚶🏻‍♂️귀환자들:


| 죽음의 땅 므레모사로 돌아온 귀환자들의 신체가 좀비처럼 끔찍하게 변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이해받지 못한 자가 이해받기 위해 내린 선택


  므레모사 투어는 ‘재난 지역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돌며 교훈을 얻는 여행’인 ‘다크투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인 유안, 레오, 헬렌, 이시카와, 탄, 주연은 각자의 이유로 므레모사 투어에 오게 된다. 사실 ‘날것, 다듬어지지않은 비극‘을 목격하는 게 연구의 희소성이 있다고 말하는 이시카와나, ’이르슐의 폭압과 므레모사 주민들의 비극‘을 특종으로 삼으려는 탄, 투어를 유튜브 콘텐츠화해서 므레모사를 볼거리로 삼으려는 주연 모두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지만, 가장 불쾌감을 준 인물은 헬렌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끔찍한 실패로 점철되어 있고, 자신의 비극은 비극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비극을 비극으로 잊어보려는’ 사람이자, ‘다듬어진 비극’은 희석된 것이기에 좋아하지않는다는 사람. 타인의 비극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인물들에 불쾌감을 느껴 더더욱 므레모사의 방문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유안이라는 인물에 몰입해 이야기를 읽어나간 것 같다.


  유안 또한 개인적 비극을 경험한 인물이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무용수. 자신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사랑하는 연인 한나를 위해 힘든 재활을 이겨내고 도약하고자 하지만, 연인은 자신의 통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 다리와 그림자다리의 끝없는 존재 주장으로 엄청난 통증과 고통에 시달린다. ‘살아있다는 건 움직이는 것’이라는 한나. 그러나 유안은 ‘고정된 것, 정적인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녀가 바라는 게 죽음은 아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하는 것뿐. 그것이 유안이 므레모사에 가게 된 이유다.


  므레모사가 예상과 달리 비극이 존재하지 않는, 죽음의 땅이 아닌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삶의 터전이고, 이 장소에 남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암시’에 걸린 여행자들과 귀환자들. 그리고 그 사이의 유안과 레오의 고군분투가 손에 땀을 쥐게했다. 그리고 ‘므레모사의 진짜 귀환자들’을 목격하게 되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어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사람들이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춤추는 유안을 보고 싶어 한 것처럼,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을 도우려던 이들도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걸까? 아니면 오직 타인의 비극과 절망, 고통에만 관심을 보였던걸까?


  그래서 유안의 선택이 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 므레모사로 향하는 유안의 선택. 유안은 이해받지 못했기에 자신을 이해해 줄 존재들이 있는 므레모사에 머물기로 선택한 게 아닐까. 그녀의 선택이 이해되면서도 어쩐지 슬프다.


———······———······———

므레모사
므레모사
23-034 |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230928~230929)


❝ 별점: ★★★★★

❝ 한줄평: 랑을 향한 고고의 애틋한 애도와 사랑의 여정

❝ 키워드: #죽음 #목적 #존재이유 #감정 #마음 #사막 #기억 #행위 #선택 #결정 #고요 #과거로가는땅 #합리성 #그리움 #사랑 #희망

❝ 추천: 랑이 사막을 건너며 찾아 나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


❝ 단 하나였던 삶의 목적을 잃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작가의 말, p.158) ❞


🌵 첫 문장: 랑의 엔진이 꺼졌다. (p.9)


📝 (23/09/30) 


🤖 고고:


| 자신이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랑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가 랑이 죽자 자신의 목적을 찾아 나섬


🗻 과거로 가는 땅: 


| 랑의 죽음 후 고고가 가고자 하는 곳


🖋️ “드카르가 언덕 너머 멈추지 않는 돌풍의 시작점에 그게 있대. 그것이 바람을 일으켜 드카르가의 언덕을 검은벽으로 만들었다고들 해. 물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말해준 사람은 없어. 거기까지 갔다면 다시 이곳으로 올 인간은없을 테니까. 그 곳에 도착하면 모든 걸 이룬 거니까.” (p.37)


💭 감정: 


| 감정은 로봇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건 고고도 감정을 학습하고 흉내 낸다는 것이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정을 따라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살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고고


🖋️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내가 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쩐지 비참하다는 단어를 쓰고 싶다.

  (...)

  "완벽하지 않더라도 보기에 그럴싸하면 돼. 네가 감정을 진짜 느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느끼기에, 그 애가 그렇게 느끼기에 그렇다면 된 거야. 안 그래? 그냥 다 따라 하는 거야. 인간이라고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겠어? 영혼을 뺏어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다고 믿는 순간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시치미 떼. 감정도 네 것이라는 듯이 행동해." (p.131, 134)


———······———······———


🤖 랑을 향한 고고의 애틋한 애도와 사랑의 여정


| 조와 랑 — 지카 — 버진 — 알아이아이 — 살리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소설의 제목이 ‘랑과 나’의 사막이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랑뿐만이 아니라 고고에게도 ‘사진’에서 ‘그림’이 된 사막.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이야기의 제목은 ‘고고의 사막’이 아니라, 꼭 ‘랑과 나의 사막’이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랑과 나의 사막』이라는 '그림'은 결국,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세상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진 고고가 사막을 그림으로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해설 | 오정연, 길 위에서 우리는, p.150)


  소설에는 랑을 향한 고고의 ‘감정’이 가득하다. 고고는 처음에는 이를 단순히 ‘오류’라고 생각해 고칠 수도 있지만유지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그리움을 흉내 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리를 통해 고고는 자신이 오류라 생각했던 랑을 떠올리는 행위는 사실 그리움이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정을 따라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철저히 합리성의 원칙에 따르게 되어 있는 로봇이지만, 고고는 사막을 건너는 여정을 거쳐 과거로 가는 홀에 도착한 후 ‘랑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0.01퍼센트의 확률’을 따르고자 한다. 인간에겐 불가능의 수치일지 몰라도, 0.0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존재한다면 고고에게 그 숫자는 ‘존재한다’는 것. 


  고고 자신은 시도 때도 없이 랑의 영상이 재생되는 것이 오류나 에러라 생각했을지 몰라도, 랑이 처음 고고를 발견했을 때부터, 그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에도 랑을 만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희망을 거는 지금까지, 고고는한순간도 랑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게 아닐까.


  지카에게 ‘인간은 헛된 희망을 품는다’고 말했다가 ‘완벽한 희망은 말이 되는 문장이냐’는 물음을 돌려받았던 고고는, 이제 본인이 그 ‘헛된 희망’을 품고 과거로 가는 홀의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버진 — 알아이아이 — 살리를 만나는 이 사막에서의 여정에서 고고가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누군가를 상실하거나 삶의 목적을 잃은 것 같을 때 고고의 여정이 문득 떠오를 것 같다. 고고는 과연 자신의 희망을 이루었을까. 랑에게 자신의 사막 횡단 여정을 신나게 전해주었을까. 이야기의 끝, 깊은 여운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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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랑과 나의 사막
23-033 | 문지혁, 크리스마스 캐러셀

위즈덤하우스 (230927~230928)


❝ 별점: ★★★★

❝ 한줄평: 회전목마가 멈춰도 우리 인생이 멈추는 건 아니니까

❝ 키워드: #크리스마스 #디즈니월드 #놀이공원 #회전목마 #불꽃놀이 #가족 #엄마 #기억 #환상 #현실 

❝ 추천: 꿈과 환상의 세계인 놀이공원 이야기에 빠르게 빠져들고 싶은 사람


❝ 인생은 정말 회전목마일까? (p.71) ❞

/ 작가의 말 | 회전목마가 멈추면


🎠 첫 문장: “스물한 시간쯤 걸릴거야.” (p.5)


📝 (23/09/28) 실제로는 사촌 지간이지만 에밀리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화자 ‘나’는 에밀리와 두 명의 ‘엄마’, ‘디즈니월드’와 ‘불꽃놀이’, 그리고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 두 명의 ‘엄마’: 

| ‘나’에게는 중학교 2학년 때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와 얼마 전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 가족이 된 ‘아주머니’가 있다.

| 에밀리에게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자신을 입양한 엄마가 있다.


🎡 디즈니월드 & 🎆 불꽃놀이: 

| 젊은 시절 ‘나’의 엄마는 뉴욕에서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까지 버스를 타고 온 적이 있다. ‘나’의 엄마는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를 보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고 말한다.

| 에밀리의 원가족은 디즈니월드에 함께 와서 마지막으로 불꽃놀이를 보았다. 


💭 기억: 

| ’나‘는 고모의 친구이자 엄마의 친구인 세진에게 자신은 알지 못했던 과거의 엄마가 세진과 디즈니월드에 갔던 기억 한조각을 전해 듣게 된다.

| 에밀리는 디즈니월드에 와서 자신을 낳아 준 엄마에 관한 옛날의 기억 한 조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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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목마=메리-고-라운드=캐러셀


🖋️ 종이 두 번 울리자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간간이 터지는 폭죽 소리와 익숙한 디즈니 노래들을 들으며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거기 에밀리가 있었다. (p.56)


  시간적 배경이 꼭 크리스마스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공간적 배경인 놀이공원(디즈니월드)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마스는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즐거운 날이지만, 어린이들이 산타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것과 달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환상과 동심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서 고군분투한다.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의꿈과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어른들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캐러셀’이라는 제목이 좋았다. 


  소설만큼 <작가의 말 | 회전목마가 멈추면>도 좋았다. 회전목마-놀이공원-인생으로 이어지는 메타포와 그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이 회전목마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회전목마가 멈춘다고 우리 인생도 멈추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인생이 늘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건 아니니까, ‘인생이 정말 회전목마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별과 만남, 환상과 일상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는 존재들이다. 더 나은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의 따스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를 것 같다. 🎠

크리스마스 캐러셀
크리스마스 캐러셀
23-032 | 육호수,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시인선 188 (230914~230922)


❝ 별점: ★★★☆

❝ 한줄평: 금지된 영원, 소년, 천사를 넘어

❝ 키워드: #꿈 #현실 #세계 #빛 #어둠 #거울 #벽 #영원 #소년 #천사 #금지 #어항 #죽음 #밤 

❝ 추천: ‘시와 꿈은 닮아 있다’는 말이 궁금한 사람


❝ 속수무책으로 어두운 방에서 어둠인 문장들은 우두커니로 밝았지 ❞

/ 「망명」 (p.110)


🪨 시인의 말


언젠가 거듭 작별하는 꿈에서 너는

손 위에 검은 돌멩이를 쥐여주며 말했지


“새를 잘 부탁해. 죽었지만”


2023년 3월

육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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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9/23) 3부로 이루어진 시집의 시작과 중간, 마무리에 Prelude와 Interlude, 그리고 Postlude까지 들어가 어쩐지 한 편의 음악 같다는 느낌도 드는 시집이었다. 현실보다는 꿈, 특히 악몽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시들이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빛과 어둠, 꿈과 현실, 그리고 금지된 ‘영원’, ‘소년’, ‘천사’. ‘시를 쓸수록 악몽이 진화하’지만(「고락푸르행 따깔 티켓」), ‘다 그만둬도/꿈을 그만둘 순 없고/다 포기해도/꿈에선 포기할 수 없’고(「등 뒤에 바보라 쓴다 해도 나는 바다로 알 거야」),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주 많이 필요해서 쓴다.’는 (「시론에는 원고료가 없고」)는 화자. ‘밤과 아침을 포개어두어’ ‘영원과 하루가 나란한’(「나란히」) 것처럼, 금지된 ‘영원’, ‘소년’, 그리고 ‘천사’를 넘어 현실과 꿈도 언젠가는 나란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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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혹시 고사리 장마라는 말, 아니? 이곳에선 봄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대. 난로 앞에 앉아 산책길에 묻어온 그늘들을 말리고 있어. 구름이 세상을 기어 건너는 계절이야. 지나가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었지. 그렇게 묻는 너의 표정을 떠올리면, 눅눅한 보라색 벽지 속으로 어제 보았던 별과 해변이 동시에 스며들어. 나의 흐린 대답들은 오래전 이곳에 마침표를 똑똑 찍으며 사라졌어. 비 오는 바다 위로 비가 내려. 고사리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나 사람의 이야기를 숙덕일 것 같은 밤이야. 미안, 오늘 시작되는 말로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 「고사리 장마」 (p.23-24)


 웅얼이며 어른거리는 

가루눈 그림자들을

시간의 노이즈로 이해해보지만

나는 시간을 잘 모르고

하늘에서 얼굴로 다가오는 

눈송이를 바라볼 때면

어디론가 날고 있는 기분이 든다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p.137)


 이 마음은

꺼내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되니까

마지막에 딱 한 번만 꺼내어 마주보기로 했지


그래서 네가 나타나면

유일한 마음과 함께 끝나는

꿈의 마지막이었다

/ 「접속—함께」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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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Prelude

✎ 「희망의 내용 없음」


1부 | 면벽중에 벽을 잃어

✎ 「물끄러미, 여름」

✎ 「다나에」 ⛤

✎ 「고사리 장마」 ⛤

✎ 「장마」

✎ 「부레」

✎ 「자정의 기도」

✎ 「쉴 만한 물가」 ⛤


Interlude

✎ 「하다못해 코창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미잘을 보고도 네 생각이 났어」


2부 | 스스로에게 배웅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 「고향, 잠」

✎ 「겨울의 예외에서」

✎ 「고락푸르행 따깔 티켓」

✎ 「등 뒤에 바보라 쓴다 해도 나는 바다로 알 거야」

✎ 「시론에는 원고료가 없고」 ⛤

✎ 「신호 대기」


3부 | 벽을 닦아 거울을 얻어

✎ 「나란히」

✎ 「망명」 ⛤

✎ 「정오의 비틀림과 오후의 뒤틀림, 자정의 흐느낌과 새벽의 헐떡임」

✎ 「산티탐 프렌드」

✎ 「벽을 닦아 거울을 얻어」 ⛤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

✎ 「접속—함께」 ⛤


Postlude

✎ 「순진한 의인화—소돔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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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23-031 | 장대익, 다정한 인공지능을 만나다

샘터 (230919~230920)


❝ 별점: ★★★★

❝ 한줄평: 문명을 지속하고 진화시키는 힘은 ‘ㄸㄸㄸㄸ(똑똑하고 따뜻하게)’!

❝ 키워드: #아우름 #인공지능 #AI #장대익 #진화학자 #인문교양 #다정한인공지능을만나다 #챗gpt #호모사피엔스 

❝ 추천: 인공지능 등 새로운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


📝 (23/09/20) 최근 챗GPT를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인공지능에 관심이 생겼는데 ‘다정한 인공지능’이라는표현은 뭔가 새롭게 느껴져 이번 샘터 물방울서평단 세 번째 서평 도서로 인문교양시리즈 아우름 56 『다정한 인공지능을만나다』를 선택했다. 아우름은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인문교양 시리즈’라고 하는데, 여는 글과 총 4장으로 이루어진 본문, 그리고 닫는 글까지, 알찬 강연을 하나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저자 장대익 교수는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로,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에서 인류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미래까지 진화적 관점, 인문학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셔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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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는 글 | 챗GPT 시대의 미래 지도 

*‘지구의 정복자’ 사피엔스의 성공 비밀은 독보적 똑똑함과 사회적 지능(따뜻함), 두 가지 모두 있어야 문명이 계속 진화할 수 있음


🤖 1장 | 챗GPT,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

*미래에는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AI 로봇(안드로이드 로봇), 유전자 조작된 인류, 사이보그 등 다양한 존재와 살아가게 될것

*더 이상 정보나 지식을 찾는 ‘검색의 시대’가 아니라 ‘지식 생성의 시대’, 정보와 지식을 융합하는 능력이 중요한 통찰의시대, 통섭의 시대가 올 것


🤖 2장 | 인류 문명은 어떻게 진화했나

*호모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생태적 지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능, 즉 공감력이 있었기 때문

*인간이 가진 사회성의 정점: 화자의 마음을 읽는 것, 배려는 진화의 결과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인지 능력 또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비슷하게 느낄수 있는 정서 능력’으로, 공감의 3단계는 정서적 전염 →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는 동정심 → 역지사지(관점의 전환, 관점전환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


🤖 3장 | 인간과 로봇, 경계는 사라질까

*우리의 공감력이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총 40명의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실험장에 오기 전 인공지능 스피커를 일주일 동안 사용하게 함, 인공지능 스피커가 엉뚱하거나 잘못된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전기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누르게 하는 실험 결과 처음 인공지능 스피커를 쓴 B그룹은 91%가 킬 버튼을 눌렀으나 일주일 동안 상호작용을 했던 A그룹은 30%밖에 킬 버튼을 누르지 않아 수치가 3배 정도 차이 남.

*AI가 인간 고유의 능력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영역에 위협을 가할 때 인간은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될지 연구 -> 우리의 정체성 중 위협받은 단면들은 포기하고, 위협받지 않은 단면들을 더 중요시하며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더 뛰어나다고 심리적 보상을 함.

*만일 인간 정체성의 모든 핵심 단면에서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날이 온다면, 인간성을 다시 규정하려 들지도 모름. 이처럼 미래에 AI가 공감의 대상이 될지, 아니면 경쟁의 대상이 될지를 예측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


🤖 4장 | 미래의 교실,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까

*모방 능력뿐 아니라 가르침이 인간이 문명을 아주 정교하게, 빠른 속도로 축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사피엔스는 모방과 가르침이라는 학습을 집단적 차원으로 승화시킴

*인공지능의 시대에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는 동료 학습과 관계 학습 때문

*인류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생태적 지능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이 중요하게 작용했듯, 학생들은 ‘공감’을 배워야 함, 공감력을 기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독서, 우리가 뇌를 어떻게 쓰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해부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데(뇌의 가소성), 독서는 인지적, 정서적 뇌를 모두 변화시킬 수 있는 원천


🤖 닫는 글 | 똑똑하고 따뜻하게!

*인공지능은 유능함의 새로운 도구이며 다정함의 위험한 씨앗

*혁신으로 인해 더 똑똑해진다고 해서 우리가 자동으로 더 따뜻한 존재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함, 따뜻함, 즉 다정함은 양극화 문제를 구원할 유일한 힘이고, 학교에서는 유능함 향상을 위한 수업만큼이나 다정함(친절, 공감, 배려, 협력)을 배우고 경험할 수업이 있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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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영상 속 로봇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며 탄식하고, 밀어뜨리는 남자를 얄미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바로 우리의 공감력이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의 공감의 반경은 과연 동물을 넘어 기계에까지 뻗칠 수 있을까요? (p.95)


🖋️ 우리는 학교에서 지식과 관계를 배웁니다.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지식과 관계를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p.133)


🖋️ 존경받으려면 똑똑한 사람이 되게끔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리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공감력을 배우고 기르세요. 똑똑하고 따뜻한 개인은 누구에게나 어느 집단에서나 존경받고 사랑받습니다. 이 두 속성이 인류가 성공할 수 있었던비법이었고, 앞으로도 문명을 지속할 힘이며, 여러분을 추앙받는 개인으로 만들어 주는 원리입니다. (p.158)


  ‘닫는 글’에서 장대익 교수는 똑똑함과 따뜻함이 인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이자 문명을 지속할 힘이라고 말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존재와 잘 공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정함’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인문교양시리즈 아우름 시리즈의 다른 도서들도 궁금해졌다. 책 두께가 얇아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어서 부담도 없고 청소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라서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이이 시리즈를 접하고 많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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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인공지능을 만나다
다정한 인공지능을 만나다
23-030 | 임솔아,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티저북)

문학동네 (230915~230916)


❝ 별점: ★★★★

❝ 기대평: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이어 나갈 ‘느슨하고 다정한 관계’

❝ 키워드: #관찰 #비밀 #우정 #사랑 #애인 #외로움 #기다림 #이별 #곁 #그림자 

❝ 추천: 여러 만남과 헤어짐의 결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우주는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p.11)


📝 (23/09/16) 아홉 살의 우주부터 스물일곱 살의 우주까지, 우주의 삶의 일부를 짧은 단편 영화로 엿본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관계를 ‘관찰’하고 ‘학습’해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뭔가를 관찰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주는 자신에겐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데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려워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야 했다. 그렇지만 열여덟에 만난, 그냥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같이 있기만해도 되는 아이, 선미. 그만 바래다줘도 된다고 한 후에도 버스 정류장에 먼저 도착해 자신을 기다리고, 야간자율학습이끝나면 우주가 먼저 버스에 오르는 것을 정류장에서 바라보는 선미. 다시 만난 그들의 관계는 바뀌어 이제는 우주가 선미의 방을 꾸며주고, 선미를 돕고, 선미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우주와 선미 모두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달랐고, 그렇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했을지라도 결국 언제가 됐든 둘의 관계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평생을 함께 다닌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챈 순간처럼 스산해졌다. 우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랬다. (p.82)


  열여덟부터 스물일곱.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우주와 선미. 우주는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낯설지만 익숙하다는 느낌, 그리고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장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이라는 것이 잔인한 말일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이별도 하나의 결실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별도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같이 해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헤어짐은 늘 아프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든 겪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충분히 앓더라도 잘 견디고 마무리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티저북이 소설의 제2부 「관찰의 끝」을 담고 있다고 해서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티저북 인물소개에 언급됐던 인물들이 깜짝 선물처럼 등장해서 더 흥미로웠다. 


  우주는 미술전시에 함께 참여하게 된 이들이 말하고 싶으면 말할 수 있게 기다리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도록 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것과, 때로는 곁에 그냥 서 있어 주는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느슨하지만 다정한 관계’라는 설명이 딱 맞는다고 느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쩌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옆돌기를 하더라도 놀라거나 박수를 치거나 눈썹을 찡그리지 않고, 나무나 물을볼 때처럼 옆돌기를 오직 옆돌기로 볼 수 (p.94)’ 있지 않을까. 화영, 우주, 보라, 정수 네 명의 인물들이 소설을 통해 보여 줄 ‘느슨하지만 다정한 관계’가 무엇일지 정말 기대된다. 🫧


(*출판사 티저북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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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23-029 | 개브리얼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문학동네 (230902~230910)


❝ 별점: ★★★★

❝ 한줄평: 비극과 절망 후에도 반드시 내일은 오고,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 키워드: #세상 #게임 #인생 #선택 #문 #우정 #사랑 #고통 #오해 #화해 

❝ 추천: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


❝ 그러나 인생은 끊임없이 다다르는 것이다. 지나야 할 또다른 문이 어김없이 있다. (물론, 더이상 없을 때까지.) ❞


🌊 시작하는 말: 

세상엔 오직 사랑뿐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것뿐 

한데 그걸로 됐어, 화물열차의 무게는 

레일이 골고루 나누어 져야지

— 에밀리 디킨슨


🌊 첫 문장: 메이저가 스스로를 메이저라 칭하기 전에는 샘슨 메이저였고, 샘슨 메이저Mazer이기 전에는 샘슨 매서Masur였으며 — 단 두 글자를 바꿈으로써 겉보기에 멀쩡한 유대계 청년에서 세계 창조 전문가로 변신했다 — 어린 시절에는 샘이었고, 할아버지 가게에 있는 <동키콩> 오락기 속 명예의 전당에는 S.A.M.으로 올랐지만, 어쨌든 대체로는 샘이었다. (p.13)


📝 (23/09/11) 어린 시절 게임을 통해 친구가 되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사이가 멀어졌던 샘과 세이디. 각자 하버드와 MIT로 진학한 두 사람은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 만남을 계기로 함께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든든한 조력자 마크스와 함께 그들은 <이치고: 바다의 아이>라는 게임을 만들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그 후 다른 게임을 만들며 샘과 세이디는 계속해서 갈등을 겪고, 결국 게임을 함께 만들지 않게 되기도 하며, 수술, 사랑, 그리고 총기사건 등 엄청난 사건에 직면하기도 한다.


  샘과 세이디 모두 그들이 만드는 게임에 자신들의 이야기,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향 등을 담는다. <이치고>는 고통과 흉터에서 자유롭고 싶은 샘의 소망이 담긴 캐릭터 이치고가 길을 잃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치고의 어머니가 자식을 잃은 것처럼 세이디가 아이를 잃은 경험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계의 양면>의 메이플타운은 샘이 과거에 겪은,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마스터 오브 더 레블스>은 게임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세이디의 믿음이 담긴 게임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샘은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세이디가 게임을 플레이할 모습을 그려보며, 그리고 그녀가 다시 한번 문지방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며 <개척자>라는 게임을 만들어낸다.


🖋️ 게임을 디자인하는 일은 결국 그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을 그려보는 일이다.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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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는 샘과 세이디의 사랑, 샘과 마크스의 사랑, 세이디와 마크스의 사랑의 형태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꼭 로맨틱한 관계만이 사랑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느 누가 샘과 세이디의 사랑, 샘과 마크스의 사랑을 사랑이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샘과 세이디의 사랑은 이 소설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다. 서로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샘과 세이디는 사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꽤 많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의 빛과 어둠을 다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각자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를 주는 심한 막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염려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한다.


🖋️ (...) 세이디는 샘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북받쳐올랐다 — 둘에 결국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염려할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염려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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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읽으며 ‘선택’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샘이 다치지 않아 병원에서 세이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만약 둘이 우연히 만나지 못했더라면? 만약 둘이 함께 게임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만약 오퍼스가 아닌 셀러도어를 선택했더라면? 만약 그들이 캘리포니아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세이디와 마크스가 함께 일본으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마크스가 로비에 응대를 하러 가지 않았더라면? 세이디가 매직아이 책을 샘에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책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수많은 문 앞에서 선택을 하고,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어쩌면 많은 것들이 우연과 운명에 좌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이디는 샘에게 ‘그들이 만날 수 있는 다른 길은 무한히 있었고, 결국 샘의 인생 게임에 다른 식으로 어떻게든 나타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이디의 말처럼, 그들이 정말 인연이고, 운명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만나게 될 순간은 반드시 찾아왔을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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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운 작가님의 단편소설 「한밤에 두고 온 것」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결국 ‘오늘 또 오늘 또 오늘’이 될 것이다.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비극과 절망 후에도 반드시 내일은 오고,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다시 맨 처음 에밀리 디킨슨의 시로 돌아가 본다. 

  세상엔 오직 사랑뿐이고,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건 그것뿐이라는 화자의 말.

  그러나 살아가고 사랑하면서 겪는 비극과 절망, 고통과 삶의 무게는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골고루 나누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이 된 오늘,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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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23-028 | 정보라, 호

읻다 넘나리 1기 (230909~230910)


❝ 별점: ★★★★☆

❝ 한줄평: 결말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란

❝ 키워드: #구미호 #사람 #사랑 #인연 #이승 #저승 #꿈 #약속 #대가 #기억 

❝ 추천: 삶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찾고 있는 사람


🌙 첫 문장: 늦은 밤이었다. (p.9)


📝 (23/09/11) 


  인연(因緣).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혹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최기준은 어쩌다가 황지은과, 황지은은 어쩌다가 최기준과 인연이 닿아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지은이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 그리고 기준이 사람인 것은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기준은 지은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한다. ‘평생 다른 사람들한테 지은의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자신의 100퍼센트를 줄 것’. 지은은 과거의 경험으로 이 약속이 헛된 것임을 알고,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퍼센트 전부를 준다는 기준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지은은 다시 한번 속아 본다. 


  그러나 구미호로부터 기준을 지키려는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를 지키려는 기준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기준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인 지은에 대한 기억을 앗아가 버린다. 기준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지은은 몇 번이나 모습을 바꾸어 기준 앞에 나타난다. 사랑하는 이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것. 이게 과연 단순히 사람을 홀리는 걸까? 이걸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준은 지은에게 했던 두 가지 약속 모두 지키지 못한다. 헛된 약속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사탕발림에 속고자했던 지은은 또다시 약속을 저버리고 만 기준을 향한 마지막 고백을 남긴 후 사라진다.


🖋️ "이젠 끝이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해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걸, 나도 해보고 싶었어, 그 사람이 당신이라서." (p.198)


  사람에게는 긴 세월이 구미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고, 사람은 너무 빨리 늙고 죽기 때문에 사람을 향한 지은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생 안에서 남은 날들 동안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 사실글의 대부분이 사람인 기준을 중심으로, 혹은 기준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지은의 과거 이야기나 지은이 기준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등이 정말 궁금해졌다. 어쩌면 신비스러운 존재고, 마술처럼 아름다운 지은의 캐릭터 유지를 위해서 그녀의 이야기는 물음표로 남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구미호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예전 드라마인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여자주인공 구미호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학원의 괴짜 여자 선생님은 돌고 돌아 다시 기준의 곁을 맴도는 지은일까? 기준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 인연이란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주어진 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p.207)


  우리 모두가 주어진 생을 살아가며, 인연을 만날 수 있기를,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 뜨겁고, 진하고, 향기로우며, 기묘하게 달짝지근한, 익숙한 맛의 커피는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졌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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