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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읻다 넘나리 1기 (230908~230908)
❝ 별점: ★★★★
❝ 한줄평: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
❝ 키워드: #자연 #사람 #기억 #흡수 #악몽 #불청객 #기계 #확률
❝ 추천: 매운맛 공포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
📝 (23/09/08)
백민석, 「나는 나무다」
👻 소설 속 한 문장: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진실은 원치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진실만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모두 말해줄 수 있었다. 나는 나이테를 오백 개나 품은 나무다. 내가 모든 것을 봤고, 모든 것을 증언해 줄 수있다. (p.35)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끔찍하게 무서운 존재다. 사람들은 숲에서 다른 이들 앞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그곳에 묻어두면 영원히 잊힐 것이라고 여긴다. 또 조경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무자비한 방식으로 나무들을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한다.
그러나 나무인 ‘나’는 죽은 자들의 피와 살을 뿌리를 통해 자신의 온몸으로 흡수하고 나이테에 새긴다. 형제자매, 이웃나무들이 사라져도 자신만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킨다. 쉽게 죽지 않아 오래도록 고통받는 나무. 500년이라는 긴 세월속 온갖 끔찍한 것을 보고 들은 산 증인. 그러나 그런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이 또다른 끔찍한 일을 저지르러 숲에 올 것이고, 나무는 온몸으로 그 진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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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절담」
👻 소설 속 한 문장: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흡수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 (p.80-81)
진짜 이야기란 ‘전율하게 되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 글을 다 읽은 후 엄청난 전율까지는 아니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인간이 제일 무섭다.
유심 스님은 과연 만나는 사람들의 장점만 흡수한 걸까? 다른 사람을 닮는 것도 아닌, 흡수한다는 것. 20년 전의 유심스님과 지금의 유심 스님은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 걸까? 도대체 유심 스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 상자’를 화자는 과연 열었을까, 열지 않았을까?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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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령, 「마구간에서 하룻밤」
👻 소설 속 한 문장: 문진은 집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있는 사람들에게 맞서려면, 자꾸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p.125)
문진이 마주하게 된 악몽 같은 상황의 연속은 정말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문진에게 사기를치고 꿔 간 돈도 갚지 않았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나 문진의 집에서 제 집처럼 움직이는 순연, 25년 만에나타나 채무 이행 계약서를 들이미는 노부부. 모두가 원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집주인 문진은 불청객으로 느껴질 정도다. 선잠에서 깨어났는데도 떠나지 않은 불청객들. 이게 진짜 공포가 아니면 뭐가 공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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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아미고」
👻 소설 속 한 문장:
앞면? 뒷면?
묻는 듯 그것은 고요히 미소 짓는다. 내가 아닌 내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멈칫하다 액셀에 올린 발을 천천히 뗀다. (p.150)
야키마 H1은 로봇에게 친구라는 뜻의 ‘아미고(amigo)‘를 붙여주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죠의 동료들과는 달리 가식없이 솔직하게 그를 불편해했던 죠가 좋았던 걸까? ‘운명이 너무도 쉽게 저 온기 없는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뒤집히는것 같다’는 죠의 말처럼, 야키마 H1은 자신의 마지막조차 알고 있었던 걸까? 미래의 언젠가는 우리 모두 너무도 쉽게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런 상황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이들. 그들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수 있을까?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이 매우 섬뜩했다. 챗GPT의 예언이라니,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 들어맞는 일들이 일어나다니!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불쑥 예언들이 떠오를 때면 엄청난 공포심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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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을 다 읽고 난 후,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네 편의 다채로운 공포 이야기로늦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
+ 책 커버를 벗기면 나오는 귀여운 고양이에 심쿵했다 🐈
+ 순한맛과 매운맛으로 기담을 나눠서 출시한 것도, 표지도 완전 기발한 아이디어 같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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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30822~230907)
❝ 별점: ★★★★★
❝ 한줄평: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른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속 운명의 흐름으로 엮인 인물들의 빛나는 삶
❝ 키워드: #운명 #우정 #사랑 #예술 #역사 #삶 #죽음 #이별 #양심 #생존
❝ 추천: 역사 속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일리야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p.7)
❝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 ❞
📝 (23/09/07) 스탈린의 죽음으로 시작해 시인 브로드스키의 죽음까지, 이 책은 죽음으로 시작해 또 다른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 죽음들 사이에는 운명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엮인 인물들의 빛나는 삶이 있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 둘을 엮는 단어, ‘운명’. 올가, 타마라, 갈랴의 우정, 일리야, 미하, 사냐의 우정. 그리고 그들의 사랑. 삶과 죽음 사이에 이들은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며 만남과 이별, 기쁨과 행복, 슬픔과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라는 안나 알렉산드로브나의 말처럼,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운명이 결정한 대로 흘러가버린다.
양심과 생존. 이 두 키워드를 두고 일리야와 미하의 선택과 결과가 달랐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리야는 ‘요리조리피해 가고 미끄러져나가고 녹아내리며 자취를 감추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p.264) 사람이었고, 미하는 ‘늘남을 도울 준비가 돼 있었으며 무한한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p.212) 사람이었기에 둘의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선택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결정은 운명이 내렸으며, 그 둘은 다른 길을 가게되었다.
짐작했던 대로 작가는 '천막'이라는 주제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초록색은 생명, 자연, 조화를 상징한다고한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초록 천막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결국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 마지막 전주곡과 푸가 나단조에 바흐는 이렇게 썼다.
"엔데 구트, 알레스 구트(Ende Gut, Alles Gut)."* (*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좋군."
사냐가 말했다. 그는 바흐의 말을 믿었다. (p.471-472)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는 걸 의미한다.’는 미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는 과연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끝도 좋을 수 있을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아파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시간의 횡포 속에서 발을 헛디뎠거나 잘 버텼거나 힘든 삶을 살아낸 증인들, 영웅들, 무고한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을 있게 한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 희생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생존보다 양심을 택했던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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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에피소드
「기사가 있는 집」
✎ 그저 말없이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친구를 가진다는 것
「도망자」
✎ 삶의 한 조각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침수」
✎ 때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좋은 표」
✎ 흐르고 흘러 만나게 된 두 이복형제
🎼 「불쌍한 토끼」 ⛤⛤⛤
✎ ‘그녀 역시 양심이 생존과 대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한 종의 생물학적 진화는 살아 숨쉬는 양심을 가진사람들을 씻어내버린다. 결국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 「최전방에서」 ⛤⛤⛤
✎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정은 운명이 하는 거야.”
🎼 「이마고」 ⛤⛤⛤
✎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엔데 구트(Ende gut)」
✎ "엔데 구트, 알레스 구트(Ende Gut, Alles Gut)."*
*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브릭스북클럽 참여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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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30828~230831)
❝ 별점: ★★★★
❝ 한줄평: 시인의 시간은 단어들의 문을 열고 시가 된다
❝ 키워드: #죽음 #시간 #계절 #슬픔 #밤 #책 #편지
❝ 추천: 시인이 고른 단어들이 어떤 시가 되는지 궁금한 사람
❝ 언젠가의 우리는 지금 이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
/ 「비롯」 (p.56)
📝 (23/08/31) 아침부터 밤이라는 하루,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 이 시들은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이 열어 본 단어의 문들 너머의 풍경으로 쓰인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기억들이라면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유년이라는 단어가 거느린 숱한 문들 가운데 겨우 몇 개를 열어보았을 뿐인데 거대한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마음이 쓰려온다. 왜냐하면, 그 문을 열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문장을 적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에세이: 「빚진 마음의 문장 — 성남 은행동」 (p.97)
세상과 삶을 책에 빗대어 표현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는 시들. ‘어떤 시간이든 반드시 썩고,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는 마지막 시(「변속장치」)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침은 밤을 삼키고 밤은 다시 아침을 삼키며 떠나고 또 되돌아오는’(「거인의 작은 집」)것처럼, 시간은 흘러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한 계절이 떠나고 또 되돌아온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는 사라지고, 또 현재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는 시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각자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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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며 문을 닫았다 탁자 위엔 읽다 만 책이 놓여 있고 내가 믿을 것은 차라리 이쪽이라고 여겼다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p.12)
❝ 그는 플랫폼에 서서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호주머니 속의 사랑을 구겨버리고
이름과 질문을 버린다
/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p.29)
❝ 어차피 세상은 해독 불가능한 책이니까
/ 「펭귄의 기분」 (p.47)
❝ 절반에 대한 믿음만으로 식탁에 앉는다
우리는 사라지면서 있다
/ 「변속장치」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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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전망
✎ 시간의 손바닥 위에서 ⛤
✎ 발만 남은 사람이 찾아왔다
✎ 우리는 모두 한 권의 죽음이 되어 간다 ⛤
✎ 말로의 책 ⛤
✎ 이것은 양피지가 아니다
✎ 고리
✎ 폐쇄 회로 ⛤
✎ 펭귄의 기분 ⛤
✎ 비롯 ⛤
✎ 원더윅스
✎ 나의 겨자씨
✎ 거인의 작은 집 ⛤
✎ 터닝
✎ 변속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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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230826~230831)
❝ 별점: ★★★★☆
❝ 한줄평: 고통의 잔해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
❝ 키워드: #고통 #통증 #흉터 #구원 #초월 #빛 #운명 #삶 #죽음 #사랑
❝ 추천: 고통과 삶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하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여자의 허벅다리 안쪽에는 칼로 그은 긴 흉터들이 얽혔다. (p.9)
❝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p.301) ❞
📝 (23/08/31) ‘세상에서 고통이 사라지자 인간은 다시 고통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는 문구에 엄청난 끌림을 느꼈다. NSTRA-14라는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를 개발하며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제약회사, 그러나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의 영혼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며, 자신의 고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구원에 이르며 초월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교단,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
교단의 보호에 보답하기 위해 교단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은 태의 형 한과, 교단의 지시로 제약회사 본사를 폭발시켜 경의 부모를 죽인 태. 부모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받다 자살을 시도해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사고로부터 목숨을 건진경과, 그런 경을 보살피다 결혼까지 하게 된 현. 그리고 이들의 주위를 맴돌며 삶을 지켜보는 엽.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물들의 고통과 통증, 흉터와 상흔, 그리고 고통의 의미와 고통 이후의 삶을 다룬다.
🖋️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p.128)
살아가면서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느끼는 정도와 대응하는 방식, 그리고 고통을 넘어 회복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완벽히 동일하게 나의 고통의 감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알 수 있을 뿐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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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이 찾아오면 경은 자신의 몸과 싸우지 않았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럴 때면 현은 옆에 함께 누워서 창백해진 경의 어깨를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p.169)
🖋️ 경은 현을 사랑했다. 그리고 현과 함께, 자신도 현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삶을 함께 살기를원했다. 고통스럽지 않은 기억으로 삶을 채우고 흉터가 아닌 증거들로 앞에 남은 생을 함께 축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p.3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리고 그 고통을 대신 겪어줄 수는 없어도, 우리는 현처럼 곁에 머무르는 방식으로도 고통을 공유할 수 있다. 부모에게 고통을 받고 잘못된믿음을 주입받아 혼자서는 제약회사 밖의 ‘진짜 현실’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경은, 회사와 사랑하는 현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며,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과거의 삶을 계속 곱씹다 보면 그 속에 매몰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남은 생을 현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결국 홀로 서는 경험을 하며 고통을 극복해 보았기에 경은 사랑하는 현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경이라는 이름의 한자(嬛, 홀로 경)는 ‘홀로, 고독한, 단단한, 치밀한’이라는 뜻과 함께 ‘날렵한, 산뜻할, 우아한’이라는 뜻의 ‘현’이라는 음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보고경은 홀로 있을 때도 현과 함께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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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이 완전한 결별을 고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을 태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래전 태가 저지른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가 남긴 두 사람의 삶 사이에 있던 연결점이 사라졌다는 것, 최소한 경은 이제 그 연결점에 얽매이지 않고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태가 남긴 잔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해 이미 나아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끝이었다. (p.320-321)
스스로에게 가해서 생기든 외부로부터 생기든 간에 고통 이후에는 흉터라는 흔적이 남는다. 흉터는 고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고통에서 회복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경이 마지막으로 태를 찾아가 결별을 고하는 장면은 어쩌면 자신의 흉터를 완전히 봉합하고 회복하는 마지막 단계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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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생체 실험에 이용하는 경의 부모나, 엽이 교단을 만든 목적과 다르게 이를 악용하여 타인의 고통 위에 서서 그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을 보며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 괴로움마저도 자신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수 있는 섬뜩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의 살인이 달갑지 않으면서도, ‘엽-교주-의사-외계 존재’라는 이 세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이 악을 처단하는 것이 오히려 더 극적인 처형이라고 느꼈다.
누구나 고통을 겪지만,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며, 크고 작은 흉터를 품고 있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나의 고통이 이해받거나 대신 겪어줄 수 없는 것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의 곁에 머무르며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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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30830~230831)
❝ 별점: ★★★★
❝ 한줄평: 비 온 뒤엔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기 마련이니까
❝ 키워드: #전학 #속마음 #초능력 #저주 #고요 #소음 #여름 #가족 #선택 #용서
❝ 추천: 뜨거운 여름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첫 문장: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시작됐다. (p.7)
(*티저북 다음 부분부터의 리뷰입니다.)
📝 (23/08/31) 찬은 지오가 자신의 아픔도 알아주길 바라며 자신을 걱정해 주길 바라고, 속마음을 들을 수 없는 유일한사람 지오에게 지금껏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찬도 어렸지만, 새별도 어렸던 그때. 마을 사람들이 없던 일로 덮어두자고 한다 한들 찬에게는 다시는 없던 일이 될 수없는 상실인데. 마을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찬이 새별을 용서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아이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새별이의 잘못을 감싸줬던 것처럼, 찬의 마음을 보듬어준 어른 하나쯤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후 소중한 게 생겨도 또 잃을까 겁을 내는 찬이 안쓰러웠다.
어린 엄마와 자신을 버렸다고만 생각했던 지오의 아빠의 이야기도 아버지의 죽마고우인 유도 코치님을 통해 풀리게 된다. 유도를 포기할 정도로 지오의 엄마를 소중히 여겼지만, 결국 지오의 엄마도, 유도도 잃은 지오의 아빠. 선택의 순간은너무나 짧고, 또 그 결과는 언제나 옳지는 않으며,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도 한다.
찬은 소중한 마음을 지오에게 주는 순간 지오도 잃게 될까 두려워 애써 지오를 밀어내지만, 무너질 걸 미리 두려워하던아이 지오는 관계를 처음부터 튼튼히, 천천히 다시 쌓기로 하고 찬에게 손을 내민다.
🖋️ “그럼 지랄이지. 이래라저래라 네 마음대로 하잖아.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내 마음대로 할 거거든? 지금은 가까워질거고."
이상하다. 가까워지겠다는 말이 위안이 된다. 멀어지지 않겠다는 그 말이 나를 안심하게 만든다. (p.155)
그리고 지오는 지금껏 마을 사람들이 찬에게 숨겨왔던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 “(...) 그러니까 너는 부모님에게서 지켜진 아이가 아니라 모두에 의해서 지켜진, 모두가 살린 아이야.”
(...)
"(...)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이 널 지켰던 것처럼 이제 내가 너 지켜 주겠다고. 이 말이 하고 싶었어.” (p.157-158)
'누군가를 지키는 데 필요한 건 자격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 지오도, 찬도, 지오와 찬의 부모님도, 그리고 새별과 주유,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마음을 담아 서로를 지키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그 진심이 비록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하는 선택이 항상 옳지는 않더라도, 그 마음까지 옳지 않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속마음을 듣는 사람일지라도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 지오와 찬은 뜨거운 이 여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다.
아저씨를 아빠라고 처음 불러 본 지오도, 새별을 용서하게 된 찬도, 마음의 평안을 찾은 듯하다. 여름을 싫어하는 찬을위해 기꺼이 여름을 한 입 먹어주는 지오.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 할 모든 계절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
🖋️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p.187)
(*출판사 티저북 서평단 후 우수서평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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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30825~230826)
❝ 별점: ★★★☆
❝ 한줄평: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아름다운 동화들
❝ 키워드: #샘터동화상 #초등동화 #샘터어린이문고 #특등이피었습니다 #리광명을만나다 #연두색마음
❝ 추천: 힘듦과 슬픔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희망을 얻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올해는 이상하게 마당에 핀 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p.9)
강난희, 「특등이 피었습니다」
📝 (23/08/25)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준이. 남들은 ‘툭등’이라고 부르지만, 준이는 ‘따뜻하고 포근해서 둥글둥글한 할아버지의 등’을 ‘특별한 사랑의 등’이라 말하며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 "할아버지는 '툭등’이 아니라 '특등'이에요. 제게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랑의 등‘이에요.” (p.15)
할아버지는 열매가 많이 열리기 위해서는 ‘회복’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해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 "준아, 해거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단다. 감나무는 스스로 몸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야. 꽃을 더 떨어뜨리고, 달려 있던 감도 더 떨어뜨리면서 다음 해를 준비하는 거지. (...)" (p.21)
할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가시게 되자 준이는 할아버지는 지금 해거리를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할아버지와 둘만의 암호인 자전거 종소리를 계속해서 울리며 할아버지에게 힘을 보내는 듯하다. 함박눈이, 감꽃 향기가 퍼져 나가는 것처럼, ‘툭등 할아버지’가 아닌 신건수 할아버지의 병실까지 자전거 종소리가 울려 퍼지길, 그래서 해거리를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다시 돌아오시길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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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혜영, 「리광명을 만나다」
📝 (23/08/26)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찰나 몽골인 아버지의 북한 무료 의료 진료를 따라가게 된 아이, 초록이. 미술 대회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엄마와 미술 선생님 때문에 미술을 그만두겠다고는 했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듯하다. 초록이 아버지 덕에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어머니를 둔 광명이도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다.
🖋️ "저기, 구름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네."
"아니디. 구름은 바람 따라 움직이는 거디. 그림도 마찬가지고. 마음 따라 기케 붓이 움직이는 거디." (p.62-63)
아끼던 영국산 핸드메이드 물감을 잃어버렸지만, 구름이 바람을 따라 움직이듯, 마음을 따라 그림을 그리겠다는 초록. 초록이 앞으로 그려 나갈 그림이 어떤 모습일지 기다려진다.
🖋️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는 거라면, 물감이 없어진 게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새롭게 쓸 이야기가 생겨서일까. 갑자기 가슴이 도근거린다. 저 멀리서 줄렁이던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 다시 일어났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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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하, 「연두색 마음」 🌿
📝 (23/08/26) 공장에서 만들어져, 상자의 뚜껑이 열리면 깨어나게 되어 있는 로봇들. 그중 하나인 연두가 눈을 뜨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의 손자가 되어 건강과 감정을 살피고, 집안일을 돕는 것이 연두의 임무. 하지만 할머니는 연두를 진짜 손자처럼 대해주시며 방도 마련해 주시고 정성을 다해 연두를 돌보신다.
🖋️ 나는 웃음을 통해 전해지는 할머니의 행복한 마음을 입력하고 배웠다. 행복을 배우면 나도 행복해졌다. 새로운 마음을 배울 때마다 내 마음이 점점 자라는 것 같았다. (p.76)
새로운 것을 배우면 더 잘할 수 있도록 자동 업그레이드되는 최신 로봇인 연두는 할머니를 통해 행복과 새로운 마음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호야라는 개를 통해 할머니를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친밀감‘과는 또 다른 감정인 ‘이상한 마음‘을 배우게 된다.
자신이 아니어도 행복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혹여나 쓸모없어진 자신을 반품할까 봐 슬프고 두려워진 연두는 스스로 전원을 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찾고 걱정하는 할머니의 진심을 느끼게 된다.
🖋️ 할머니는 나를 와락 안았다. 안심과 기쁨이 할머니의 감정이었다. 좋은 감정인데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눈물은 슬플때 나오는 줄 알았는데, 기쁠 때도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p.93)
언젠가 정말로 도래할 수도 있을 미래. 연두가 새로운 마음을 배워가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잊고 지내는 감정들이 있진 않은지 살펴보고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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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30819~230821)
❝ 별점: ★★★★☆
❝ 한줄평: 꿈과 밤의 세계를 헤매다 돌아온 현실
❝ 키워드: #요나 #밤 #눈 #박쥐 #꿈 #잠 #망각 #도시 #굴뚝
❝ 추천: 환상동화 같은 시집 한 권을 읽고 싶은 사람
❝ 잿빛을 잊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
/ 「압생트」 (p.88)
📝 (23/08/21) 에세이 같기도, 연작 소설 같기도 한 시들이었다. 환상동화를 읽는 것처럼 몽환적이고 꿈같은 분위기의 시들. 잿빛의 밤하늘, 달 아래 정말로 흡혈귀 작가가, 요나가, 천사가, 굴뚝의 기사가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 ‘전차 문이열리자 숨이 막힐 듯한 여름의 열기가 밀려들고, 나는 강한 햇빛에 눈을 찡그린 채 소매치기 아이가 플랫폼을 가로질러 건너편 선로를 향해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본다’는 마지막 시까지 완벽한 마무리였다. 꿈인지 진짜인지 모를 밤의 세계에서 헤매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 간명하게 말해서, 시는 나로부터의 탈주다. 시는 생성이고 변신이다. 시는 의미에서 비의미로 나아가는 운동이며, ‘나’에서 ‘나라고 부를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리하여 시는 세계의 다질성을 개방시킨다. 그럼으로써 시의 아름다움은 해석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비참을 일깨운다. 아름다움은 얼빠진 도시 원숭이들을 할퀸다.
/ 에세이: 「원숭이와 나」 (p.139)
현대문학 핀시리즈는 처음인데, 이 시집이 정말 좋아서 다음 책으로 안희연 시인의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을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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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시를 쓴다네. 그리고 그녀는 이 도시가 자신이 꾸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다시 말해서, 자네도 나도 그녀가 꾸는 꿈의 일부라는 거야. 지금 이 순간도, 창밖으로 내리는 저 눈도 말일세」
/ 「소설가」 (p.25)
❝ 처음에는 뭉개진 얼룩처럼 보이다가 곧 또렷해지는 광장 시계탑의 둥그스름한 문자반 불빛 아래 서서, 내 삶은 누군가의 꿈인지도 모른다는 매번 새로 시작되고 매번 똑같은 의심.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꿈꾸고 나를 걷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매번 똑같고 매번 새로 시작되는 의심. 가령 그가 꿈 밖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걷고 내가잠들어 있는 동안 그가 걷는지도 모른다는.
/ 「밤길 걷는 사람」 (p.54)
❝ 「너는 날 처음 본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는 날 잘 알고 있어」 사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전에도 우린 여러 번 마주쳤지. 하지만 넌 모두 잊어버렸어. 네가 잊어버린 다른 수많은 꿈처럼」
/ 「천사」 (p.71-72)
❝ 「(…) 당신의 시를 읽은 뒤부터 내가 쓰는 문장마다 당신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당신의 그 웃음소리가 내 원고에 메울 길 없는 구멍들을 뚫어놓은 것 같단 말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요. 당신 말대로 내 문장이 당신의 문장을 쓰는 것이든, 당신의 문장이 내 문장을 쓰는 것이든,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쓰는 것이든 내가 당신을 쓰는 것이든, 그런 건이제 내 알 바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난 그 구멍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 「요나」 (p.105)
❝ 「꼬맹이, 난 널 잘 알아. 넌 한 번도 너의 꿈을 믿은 적도, 사랑한 적도 없지. 넌 자신이 이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진짜로 살아본 적이 없는 거야. 넌 여전히 고아원의 잿빛 벽 속에 웅크린 겁먹은 어린애로 남아 있을 뿐이야. 반대로우린 꿈속에서 삼백 살은 더 나이를 먹었지」
/ 「소매치기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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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요나 (p.12)
✎ 고아원
✎ 소설가 ⛤
✎ 까마귀의 밤
✎ 밤길 걷는 사람 ⛤
✎ 마감일 ⛤
✎ 회전
✎ 천사 ⛤
✎ 원고 ⛤
✎ 압생트
✎ 요나 (p.102) ⛤
✎ 소매치기들 ⛤
(*출판사 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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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30731~230819)
❝ 별점: ★★★★
❝ 한줄평: 여러 인물의 삶이 얼기설기 엮여 또 하나의 예술로
❝ 키워드: #운명 #우정 #사랑 #예술 #역사 #삶 #죽음 #이별
❝ 추천: 역사 속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
🎼 시작하는 말: 우리의 그릇된 행위를 힘든 시대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시대라는 이유로 우리의 그릇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첫 문장: 잠이 덜 깬 타마라는 촉촉한 계란 프라이가 담긴 접시를 마주하고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p.9)
📝 (23/08/19)
❝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도 결국 죽을 거야. 음악과 시는 영원히 존재할 테고 말이야. ❞
| (...) 소설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사람들의 삶에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과 작고 큰 결정들이 역사의 한순간을 이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복잡한 심리보다는 사랑, 고통, 죽음, 두려움과 같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는 감정들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커다란 초록천막》은 한 시대에 대한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악보가 된다.
/ 출판사 서평
이 소설에서 ‘운명’이라는 단어는 꽤 눈에 띄게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다. 운명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인물들, 그런 만남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모여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순간들을작가는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악, 문학, 사진, 그림 등의 예술을 활용해 인물들의 삶을 또 하나의 예술로 엮어 내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이들의 삶만큼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죽음이다. 한 끗 차이로 생사가 오가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죽음과 삶이 극명히 대비되는 공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작가는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관해 고찰하게 한다.
선인과 악인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등장인물들이 격동의 시기를 통과하는 러시아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때론 기쁨을, 때론 슬픔, 아픔,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커다란 초록 천막’은 삶을 의미하는 걸까, 죽음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삶과 죽음 사이의 세상을 의미하는 걸까. 읽을수록 결말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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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에피소드
「지하의 아이들」
✎ 삶과 죽음은 어쩌면 한 끗 차이가 아닐까
「'러문애'」
✎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에 존재하는 사막‘과 곤충의 변태 과정
「커다란 초록 천막」
✎ 참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를 지닌 존재, 인간
「고아들」
✎ 죽음과 삶이 극명히 대비되는 공간, 장례식장
🎼 「높은 음역대」 ⛤⛤⛤
✎ ‘사랑과 허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다들 언젠가는 그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여자 동기들」
✎ 사람은 참 사소한 것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고, 또 참 사소한 것으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
(*브릭스북클럽 참여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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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146 (230813~230815)
❝ 별점: ★★★★
❝ 한줄평: 당신은 우주 저 너머 별 어딘가에 잘 계시나요?
❝ 키워드: #여름 #구름 #동화 #바다 #노을 #행성 #우주
❝ 추천: 여름날, 그리운 이름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
📝 (23/08/15) 난다의 소문난다 레터를 읽으며 김희준 시인을 알게 되었고, ‘사라지는 건 없어 /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이라는 구절 하나에 끌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한 시집『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구매했다. 시인은 2020년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고, 이 시집은 그의 생일이자 49재에 나온 시집이라고 한다. 보통 시집을 읽다 보면 처음 부분에 집중해서 읽다 갈수록 그냥저냥 읽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시집은 좋았던 시들이 시집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고, 4부의 시들이 특히 좋았다.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참 많았다.
🖋️ 그가 남긴 '시작 노트'를 읽어본다. “먼저 가버린 이름을 생각한다. 입김은 고체가 되어 동그라미로 떨어진다. 첫눈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다면 그건 너일 거라고. (······) 젖은 이름을 가졌구나, 얼마 불리지 못한 어린 이름을 적는다. 지나가다 널 닮은 사람을 봤어. (······) 네가 없는 세상에서 네 이름을 모래사장에 써두는 일에 금방 하루를 써버리고. 불러줄 이름이 지워지고 있어. 그럼에도 첫눈이 따뜻하면 좋겠어. 바다에 겨울과 봄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이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p.142)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갔지만, 그의 시집과 산문집은 이 행성에 남아 있다. 저 멀리 우주 어드메로 먼저 가버린 이름, 그렇지만 이 행성에 아직 남아 있는 이름과 그의 빛나는 글들.
여긴 여름입니다, 당신은 우주 저 너머 별 어딘가에 잘 계시나요?
❝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p.35)
❝ 때때로 스펙트럼 행성에선 그리운 사람을 한평생 쓸 수 있는 이름이 내린다
/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p.62)
❝ 지우개로 몸을 지웠다 하루를 지우는 일보다 나를 지우는 일이 편했다
/ 「왔다 갔다」 (p.78)
❝ 사실 삶 자체가 그런 것 아니겠어요 누군가가 그려낸 한 폭짜리 인생 같은 것 말예요 그 끝에서 당신은 완성될까요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을 구기는 오후」 (p.106)
❝ 여긴 여름이야
거긴 어때?
여름을 잘 보내란 말은 이 여름
더이상 만나주지 않겠다는 말
/ 「안녕, 낯선 사람」 (p.110)
❝ 생각보다 뭉툭한
당신의 손가락을 보는 일에 밤을 다 써버리고
언젠가 저 손이 꼭 잡고 싶어
죽을 것 같던 시간이 도형에 갇힌다
/ 「포말하우트의 여름」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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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 구름 포비아에 감염된 태양과 잠들지 않는 티볼리 공원, 그러나 하나 빼고 완벽한 목마
2부 | 천진하게 떨어지는 아이는 무수한 천체가 되지
✎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 열대야
✎ 7월 28일
✎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3부 | 지금 내가 그린 우리 가족처럼 말이야
✎ 친애하는 언니
✎ 왔다 갔다
4부 | 애인이 없어야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다
✎ 평행 세계
✎ 아무나씨에게 인사
✎ 면접의 진화
✎ 기형적으로 순환하는 너와 나의 설원, 그리고 파라다이스 혹은 샴쌍둥이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을 구기는 오후
✎ 안녕, 낯선 사람
✎ 포말하우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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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30813~230813)
❝ 별점: ★★★★
❝ 기대평: ‘눈부시고 찬란한 여름’의 끝은 과연 어떨까?
❝ 키워드: #전학 #속마음 #초능력 #저주 #고요 #소음 #여름 #가족
❝ 추천: 뜨거운 여름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첫 문장: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시작됐다. (p.7)
📝 (23/08/13) 번영. ‘번성하고 발전하여 영화롭게 됨’이라는 뜻을 가진 동네. 하지만 이름과는 너무나도 다른 동네에 가게 된 지오의 이야기로 글이 시작된다.
엄마를 지키고 싶어 유도를 시작했지만 엄마의 병 때문에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에게 보내지며 갑작스럽게 번영으로 이사가게 된 아이, 하지오. 그리고 오 년 전 부모님을 잃은 후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어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왔지만 지오 곁에 있으면 고요함을 되찾는 아이, 유찬.
두 아이 모두 각각 엄마의 병과 부모님의 죽음으로 원래의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렸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바뀐 일상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지오의 곁에 있으면 매 순간 웅얼웅얼 들려왔던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고, 심지어 지오의 속마음은 아예 읽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찬은 같이 가자고, 멀어지지 말라고 자꾸만 지오를 붙잡는다. 지오와 함께 있을 때는 개구리와 뻐꾸기 소리, 매미 울음소리와 선풍기 소리 같은, 아주 평범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찬. 그리고 속마음을 들을 수 없기에 오히려 지오의 표정, 몸짓, 억양 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하는 찬. 지오는 편안하다는 말에 약간 실망했지만, 찬에게는 편안함이 곧 지오가 특별하다는 표현 아니었을까. 지오가 아니면 절대로 고요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첫 만남에 찬의 이어폰을 고장낸 후 그를 피해 도망다녔지만, 지오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을 수 없는 찬에게 오히려 마음에 있는 말들을 모두 쏟아 낸다. 지오도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마음에만 쌓아두는 게 힘들어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찬은 언젠가 자신에게 필요했던 위로를 지오에게 건넨다.
🖋️
“더 해. 들어 줄게.”
“······뭐?”
“궁금했었어. 그래서 듣고 싶었어, 네 속마음.“
(...)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다.
언젠가 내가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래 주길 바랐던 것처럼. (p.60)
티저북은 찬이 부모님을 잃었던 화재의 원인에 대한 충격적 실마리를 던지며 끝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지오의 부모님 이야기와, 찬의 부모님의 화재 사건의 전말이 풀리면서 지오와 찬이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보듬어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오가 유도를 계속할 수 있을지, 그래서 번영 마을에 다시 한번 번영이 찾아오게 될지도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도 찬이 지오와 함께 있을 때만 고요함을 찾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가 제일 궁금하다.
책의 제목처럼, 뜨거운 여름날 파란 하늘 아래 한없이 푸르른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펼쳐지는 눈부시게 빛나는 두 청춘의 이야기가 여름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뜨겁고 아릿하다. 두 아이가 아름답고 찬란한 여름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라며 책의 정식 출간을 기다려본다. 🌿
(*출판사 티저북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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