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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위즈덤하우스 (230805~230811)
❝ 별점: ★★★★
❝ 한줄평: 오감으로 읽어 내려가는 잔혹동화
❝ 키워드: #물고기 #인어 #숨 #호흡 #헤엄 #물 #호수 #강 #바다
❝ 추천: 그럼에도, 바닥 없는 물인 세상에서 숨 쉬고, 헤엄치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나는 맑은 정신으로 헛것을 볼 만큼 심신미약자도 아니고 오컬트 신봉자도 아니며 술에 취하지도 않았어요. (p.7)
📝 (23/08/11)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미각까지 다섯 가지 감각을 모두 이용해 소설을 읽어내려 간 기분이 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은 후에 잠시 그 여운을 음미했다.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와닿는 감각의 글을쓸 수 있는 걸까.
한 인터뷰에서 구병모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9)
| 구병모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다. 이에 대해 구 작가는 “인간 자체가 바로 현실에 생존해 있는 불완전함 그 자체”라며 “주변을 관찰하며 찾아낸 인간성의 그늘진 이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불안정성과 상처를 소설 속 인물들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말처럼,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아파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아픈 상처를 입힌다. 빛 아래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어둠에 자신을 숨기는데 더 익숙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죽음 직전의 순간 아가미를 얻었고, 그 후에는 등에 비늘을 얻게 된 아이. 물 밖에서보다 물속에서 더 편안하게 숨을 쉴수 있는 아이, 곤.
곤을 집으로 데려오자고 노인을 설득했고, 아이의 이름도 붙여주었으면서 정작 알 수 없는 질투와 분노, 두려움을 느끼고 곤을 미워하지만 그럼에도 애정을 주는 아이, 강하.
우연히 강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알 수 없는 인어를 닮은 생명체에 관한 글을 올렸다가 그를 안다는 사람을 찾아 고마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길을 나선 해류.
강하가 『장자』를 읽고 ‘북쪽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곤(緄)’이라는 이름처럼, 곤은 어쩌면 ‘강과 하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의 강하와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바닷물의 흐름‘이라는 뜻의 해류라는 이름을 만나 하천, 호수,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 나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땅이 질어서 질퍽하게 된 곳’인
‘이녕’에서는 제대로 숨을 쉬고 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나와는 다르다는 특별함을 이해할 수 없어 물고기 새끼라며 미워하면서도 곤을 사랑했던 강하는, 곤이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숨 쉬고 살 수 있도록 그동안 온갖 겁을 주고 협박하면서까지 나가지 못하게 했던 세상 밖으로 갑작스럽게 속박을 풀고 내쫓듯 내보낸다.
🖋️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곤은 대문을 열고 뒤돌아보았다. (p.185)
그리고 강하가 곤의 이름을 지어줄 때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된 붕(鹏)’을 보며 예감했던 것처럼 작은 새가 날갯짓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곤은 이내촌을 떠나간다.
🖋️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p.194)
곤은 확신을 가지고 바다를 헤매는 걸까, 아니면 확신 없음으로 바다를 헤매는 걸까. 어떤 마음이든, 앞으로도 곤은 그가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물속에서 그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살아가지 않을까.
🖋️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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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씨의테이블 (230801~230804)
❝ 별점: ★★★☆
❝ 한줄평: 결코 완성되지 않을 한 편의 그림인 인간의 삶
❝ 키워드: #생각 #기억 #추억 #시간 #진실 #슬픔 #타인 #미완성
❝ 추천: 나 자신을 깊이 있게 고찰해보고 싶은 사람
✨ 시작하는 말: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겠죠,
서서히 비웃다가
모두가 외면할 때까지,
📝 (23/08/04) 최근 짧은 기간 동안 너무나도 만연한 혐오와 비방, 차별을 보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을 비난하는 건 쉽고, 내가 다치는 건 싫어서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사람들. 이 세상이 약간 싫어지기도 했다.
🖋️ 타인 혹은 세계 속에서 우리는 왜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알고 싶어 하는지, 왜 우리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모든 힘으로 부정하고 마는지, (…) (p.25)
🖋️ 우리는 오늘도 우리 개인의 슬픔에 몰두하느라 타인의 슬픔을 거의 모두 지나친다. (p.31)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듣고, 알고 싶은 것과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철저히 구별해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또 우리 자신의 슬픔을 생각하느라 타인의 슬픔은 쉽게 지나치고 잊는다. 이럴 때마다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자꾸 떠오른다.
|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p.202, '깊이 있는 사람' 중)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픔에 대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을 잘 모르고, 잘 모르면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꾸만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기. 그것이야말로 진실일 확률이 높다. 이 순간 내가 나를 얼마나 속이고 싶어 하는지, 나는 거짓에 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p.172)
🖋️ 그러니까 우리는 한순간의 생각을 확고히 믿는다. 영원성을 부여할 것처럼. 이 현재를 어떤 불멸하는 상자 안에 그대로 간직할 것처럼. 그러나 모든 것은 잠시 떠오르고 사라진다. 우리의 믿음과 생각도, 상상과 감정도 일어났다가 다시금 사라진다.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속성만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p.180)
사실 우리가 지금 미워하고 비난하는 모든 것들도 영원할 것 같지만 순간의 일이다. 다른 미워하고 비난할 대상이 생기면 그 전의 일은 순식간에 잊힐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 감정도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라지고 잊힐지라도 우리가 한 순간의 선택들은 모두 우리 안의 어딘가에는 남아있을 것이기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정해진 삶의 형태는 없으며 각자의 생존법이 있을 뿐이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대입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며 나아가 볼 뿐이다. (p.24)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고, 타인의 삶은 타인의 것이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싶은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작가 자신도 이 글을 쓴 내일의 자신이 언제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 의아해할 것 같다고 했는데, 나 또한 다음에 이 글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나아진 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전가옥 오리지널27 (230729~230802)
❝ 별점: ★★★★
❝ 한줄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 스마일 베어는 죽지 않아’
❝ 키워드: #돈 #복수 #구원 #생명 #죽음 #진실 #거짓 #행복 #사랑
❝ 추천: 진실을 향한 숨 막히는 레이스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
✨ 첫 문장: 모든 이야기는 돈에서 시작한다. (p.7)
📝 (23/08/02)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굳은 의지로 거짓된 타협 대신 진실한 도전을 강행하며 예정된 비극을 기어코 막아서는 이야기’라는 책 뒤 표지의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복수를 꿈꾸며 생의 의지를 다지는 아이 화영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물으며 생의 의지를 잃어가는 아이 도하. 어쩌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운명 같은 둘의 만남. 한 명은 복수를 위해, 또 한 명은 사과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두 아이는 함께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내딛는다. 그리고 서로를 구원한다. 살고 싶게 한다.
🖋️ 죽이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복수 이후의 삶을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음을 상상하고 싶어졌다. 아주 약간이라도 나은 다음을 위해서는 한정혁의 목을 긋고 끝내는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 속 눈물에 가려진 민낯을드러내야 했다. (...) 그런 괴물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저질렀든 무고한 피해자로 모두가 추억하게 둘 수는없었다. 왜냐하면, 난 그 뒤에도 살 거니까. 살고 싶어 졌으니까. (p.268-269)
🖋️ 도하는 그래서 한결 자유로워진 몸으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갔다. (...) 그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유령들의 기분. 어떤 몸도 없이 정말 유령이 되어 버린 도하는, 외로웠다. (...) 그는 연결되고 싶었다. 화영, 그리고 화영이사는 세상과 다시 이어지고 싶었다. 이렇게 강렬한 욕망은 처음이었다. (p.356)
작가는 레인보우 아파트가 있는 월평동과 씨더뷰파크가 있는 그린동을 오가며 차곡차곡 화영과 도하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더 나아가 마침내 온 도시가 숨겨왔던 엄청난 진실을 보여준다.
원한과 악의에 가득 찬 악령 각자도 처음부터 그렇게 삿된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악의가 모이고 모이는 데 악령보다도 더 악독하고 잔인한 인간들이 기여했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악령들의 복수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오히려 악에 받친 그들의 비명이 처절해서 슬프기도 했다.
돈으로 구원을 사거나, 돈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구원이 있고, 돈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 돈으로 생명을 사려고 했던 한정혁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그 죽음의 순간이 언제일지, 죽음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 있으니까. 사랑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화영이 마지막에 소년원에 가서야 해피 스마일 베어를 꿰매는 장면은 어쩌면 도하의 상처도, 본인의 상처도 봉합하고치유하는데 꼭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하니까. 자신의 몸을 두고도 방황하던 도하가 화영이 봉합 수술을 마친 해피 스마일 베어를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둘만의 단어를 내뱉자 원래의 몸에 안착한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살고자 하는 의지가 크지 않았던 도하가 화영을 만나삶의 의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으니까.
🖋️ 두 사람은 그제야 서로의 진짜 눈을 보고 인사할 수 있었다.
“안녕.”
화영이 제가 꿰맨 곰 인형의 팔을 흔들며 인사했다.
"돌아와서 다행이야."
도하는 건네받은 곰 인형의 손을 흔들며 답했다.
"당연하지. 해피 스마일 베어는 죽지 않아." (p.358)
그 모든 비극을 보고 겪었음에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복수의 끝을 맞이하고도, 두 아이는 서로의 눈을 보며 웃고, 인사하고, 다시 살아가고자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 스마일 베어는 죽지않아’!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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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230725~230730)
❝ 별점: ★★★★
❝ 한줄평: ‘지금-여기에서 살기 위하여‘ 오늘도 읽기
❝ 키워드: #시 #세상 #삶 #사랑 #힘 #지금
❝ 추천: 시와 글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싶은 사람
✨ 시작하는 말:
산산이 부서지면서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매일 상처 속에서도 피어나는 삶이 있고,
시의 선물이 있으니까요.
📝 (23/07/30) 책을 읽은 후 북토크와 함께 해 더욱 풍성한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진행을 맡으신 유희경 시인의 유려한 진행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고, ‘시는 영혼을 썩지 않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 소금 같은 존재’라는 정은귀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 하지만 어떤 시와 글은 마음에 콕 박혀 오래 머무릅니다. 그래서 그 힘에 기대어 오늘을 살게 하고 어려운 한 순간을버티게 합니다.
/ 지금-여기에서 살기 위하여 (p.9)
글을 읽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글을 통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마음이 힘들 때 기도를 하는사람들이 있듯, 나는 마음이 힘들 때 글을 읽으며 힘을 얻곤 한다. 이 책도 읽는 내내 앞으로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한 편씩 꺼내 읽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참 아프고 슬픈 소식이 많았던 7월이었다. 이 세상이 너무나 많은 슬픔과 절망, 죽음으로 가득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학살의 일부’라는 말에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
🖋️ 네, 맞아요. 우리 자신이 학살의 일부입니다. 말라 바스러지는 이파리와 연두 이파리가 함께 오는 것처럼 우리는 학살의 일부이며 생명의 일부입니다. 이 세계에서 낮은 숨 쉬는 우리가 모든 행불행의 원인이요, 결과이고 과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 책임을 기꺼이 감당할 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 죽음의 ‘일부’가 되는 일 (p.40-41)
우리 모두는 학살의 일부지만, 동시에 생명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항상 마음속에 새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아픔과 슬픔, 고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쁨, 행복, 즐거움도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나의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우리를 구원하는 건 결국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편집자의 말
시와 글을 통해 삶의,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찾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샘터 (230721~230724)
❝ 별점: ★★★☆
❝ 한줄평: 나도 수영 한 번 해볼까?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 키워드: #씨유숨 #어푸어푸라이프 #수영툰 #수영 #근육 #인생
❝ 추천: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났던 사람, 수영의 A부터 Z까지 알고 싶은 사람
📝 (23/07/24)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 중인 요즘, 오래전 수영을 처음 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었다. 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라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이미 수영을 즐기고 계시는 분도 책을 재미있게 읽으시겠지만,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났던 사람에게 이 책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수영장에 챙겨가야 할 준비물부터,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올 때까지의 과정, 있으면 유용한 수영템, 올바른 수영복 고르는 방법, 수영 친구 만드는 방법, 수영장의 일반적 문화, 수영 강습과 자유 수영의 장단점, 한강이나 여행지 같은 이색적인 곳에서 수영 경험 하기, 수영 대회, 수영에서 더 심화해서 할 수 있는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 ‘수태기’ 극복 방법, 몸에 힘을 빼는 것의 중요성, 수영으로 찾은 체력과 행복 등 정말 A부터 Z까지 수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수영을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장 수영장에 등록하고 싶어질 것이다.
🖋️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부터 외우듯 수영을 배울 때 숨 쉬는 방법부터 익힌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깨우치며 배우면 안 될 건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하나 하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물 공포증 (p.52)
작가님의 물 공포증 에피소드를 보면서 내가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를 떠올려봤다. 물을 무서워하던 어린 나를 엄마가 수영장에 데려가 수업을 등록했던 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영이라는 걸 처음 배우게 되었다. 물에 바로 들어가면 어쩌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처음 2주 정도는 어린이용 수영장에서 머리만 물에 넣고 호흡하는 법과 발차기만 배웠던 것 같다. 아주 천천히 물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또 발이 닿는 곳에서 연습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물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두 달 후에는 성인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수영을 배워두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물을 무서워했을지도 모른다.
또 작가님이 수영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고민하시던 부분이 지금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신기하고 웃겼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 망설여지는 이유 중 두 가지가 ‘수영은 몸이 기억한다는데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와 ‘수영복을 입는 게 꺼려지는데 괜찮을까?’ 였기 때문이다. 작가님의 글을 보며 수영을 다시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용기도 조금 생긴 것 같다.
🖋️ 수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이런 화려한 취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수영의 재미와 수영복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치료는 오직 구매뿐. 이미 많아진 수영복을 다 입어 보기 전까지 당분간은 수영을 그만둘 수 없다. / 내 안의 화려함 (p.74)
얼마 전 읽은 소설에서도 수영 초보자인 주인공이 ‘요란하고 과감한 색상은 숙련자의 것‘(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p.10)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데, 작가님께서도 상급반이 된 기념으로 형광 핫핑크 수영복을 고르셨다는 대목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감이 생길수록 수영복도 화려해지는 걸까? 이것도 뭔가 수영인들의 암묵적 룰인가 싶어서 귀엽게 느껴졌다.
작가님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다 보니 수영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수영장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속도에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끈기 있는 노력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함께할 때 더 즐겁고 힘이 난다는 것, 잘하면 즐겁지만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나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 있어 기준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장거리 레이스를 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염두에 두고 내가 가진 힘을 잘 배분해 내 페이스대로 가야 한다는 것, 모두 수영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해당되는 좋은 말들이었다. ‘좋아하면 행복해진다’는 마지막 글의 제목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학과지성사 (230718~230723)
❝ 별점: ★★★★☆ (23.10.23 수정)
❝ 한줄평: 다채로운 빛깔로 기억될 2023년의 여름
❝ 키워드: #수영 #호흡 #사랑 #고향 #시절
❝ 추천: 2023년의 여름을 한 권의 책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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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 (23/07/18)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극한 호우’라고 불릴 만큼의 비가 퍼붓고, 그로 인해 많은 생명이 숨을 거두었고, 농작물, 건축물 등 할 것 없이 모두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소설 속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너무나 무겁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어른이 된 후 기억에 남는 참사가 너무 많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은 더더욱 많겠지만. 어쨌든 그런 죽음 이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시간은 흐른다. 슬프게도.
수영을 좋아한다. 물속은 몹시 고요해 가끔 그 안에 있다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숨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부자연스럽고 절실한 일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는 주호의 말처럼, 물속에서는 물 밖과 달리 숨을 참아야 하고, ’호흡‘이 매우 소중해진다. 하지만 수영에는 물속을 유영하는 방식만 있는 게 아니라, 물 위를 떠다니는 방식도 있다. 몸에 힘을 적당히 빼야 물에 뜰 수 있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적당히 힘을 주고, 적당히 힘을 빼서 물에 뜨는 균형점을 찾는 일, 삶도 그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희주와 주호가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는 건, 어쩌면 열심히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이유는 모르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살아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이 보면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인 게 아닐까.
🖋️ 물속과 물 밖. 시끄러움과 고요함. (…) 물이 흔들리고 물이 휜다. 딱 그만큼 몸이 흔들리고 몸이 휜다. 떠오르는 몸. 가라앉는 몸. 물을 밀어내는 만큼 밀려가는 몸. 밀어내는 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 두 사람은 손안에 들어오는 물을 만진다. 움켜쥔다. 갈 수 있는 만큼 간다. (p.40)
‘딱 그만큼,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함’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글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은 듯하다.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따뜻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아릿한, 그런 글이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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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롤링 선더 러브」
📝 (23/07/20)
🖋️ "아 근데. 나는 사랑이 좀 하고 싶다." 엘. 오. 브이. 이. 그게 뭔데. 나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고 싶다고 말하네. 웃겨. 아주 웃겨. (p.69)
37살의 맹희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사랑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함께일 때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은 없어 보인다. ‘혼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둘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람으로, 둘이 있을 때 더 행복하기에 연애를, 결혼을 결심하는 걸 텐데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예전엔 나도 쉽게 입 밖으로 내뱉었던 말. ‘사랑이 뭔데! 나도 사랑 좀 해 보자!’ 이때의 사랑은 주로 연인과의 사랑을 해보고 싶단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와 범위가 아주 넓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저런 말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나도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니까.
맹희가 말하는 ‘세상에 아무리 줘도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 예전엔 이 점에도 불만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큼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아무리 마음을 줘도 같은 크기만큼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때로는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서 주는 마음에 보답받으려고 하는 건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나도 보답하지 못한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 그 순간에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그걸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엔 관계에 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 나의 상태, 나의 행복 같은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여럿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물론 다른 의미로 즐겁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꼭 연애, 결혼, 육아 등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희는 어쩌면 그 과도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정답과 모험 사이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사람.
🖋️ 맹희는 외투를 옷걸이에 단정하게 건 뒤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하고 왔다." (p.99)
맹희의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사랑 좀 하고 싶지만, 또 사랑을 쿨하게 끝낼 줄도 아는 사람. 두려움 없이 언제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주 용기 있는 사람.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으며, 기대기도 하고, 속기도 하겠지만’ 맹희는 그래도 계속해서 ’사랑‘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맹희가 찾아 나갈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가 나아갈 길을 응원하고, 또 따라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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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 (23/07/22) 고향. 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쭉 살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낯선 단어다. 지금 사는 도시가 고향이긴 하지만, 나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p.129)
주인공에게 고향 울산은 애증이 담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난’ 대상이 ‘추자 씨’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자 씨도 아마 분명히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추자 씨에게서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주인공은 추자 씨에게 큰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고향인 것처럼, 가장 먼저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내려왔지만, 산불 때문에 원래 집이 아닌 ‘덕미 씨’의 집에 머무르게 된 것도 묘하다. 내가 모르는 나날들을 함께 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조금 외로워 보인다. 고향의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춘자 씨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함께 하기는커녕 덕미 씨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는 상황.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식물의 숨구멍을 막는 물때와 먼지. 겉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닦으니 새까만 먼지와 죽은 벌레들로 더러운 불투명한 형광등판.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쌓인 지도 몰랐던 먼지가 부옇게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p.145)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추자 씨가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결국 ’울산의 추자 씨‘도 주인공이 ‘지나가야 할 한 시절’ 같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p.149-150)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대신 택시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떠나보내야 할 한 시절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 나는 바랐다. (...)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p.150-151)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인 듯하다. 울산과 추자 씨라는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게 될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시작을 꿈꿀까? 그의 미래가 어떻든, 후회 없이 두 발로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잔뜩 흐린 하늘의 오후에 이 글을 만났다. 마음이 답답하고, 어쩐지 숨이 좀 막히는 습도와 기온. 날씨와 글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했다. 쓸쓸하지만 강렬한 마무리가 ‘재’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나무 노벨라 (230721~230722)
❝ 별점: ★★★☆
❝ 한줄평: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 나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 키워드: #이야기 #여행 #반복 #게임 #주인공 #작가
❝ 추천: 인생이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 고민 중인 사람
✨ 첫 문장: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주변이 이전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건 조카 시환 때문이었다. (p.9)
📝 (23/07/22) 인생이 만약 무한으로 리셋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어떨까? 새로 플레이할 때마다 다르게 살아보는 것이 좋을까?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 전개가 몹시 흥미로웠다.
🖋️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p.218)
소설 속 이 문장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인 내 몫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이 세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돌아가는 곳이니까.
🖋️ 작은 점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생을 결심하는 순간의 배경이 되었다.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연쇄였다. 그렇게 우리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p.231-232)
그래서 소설에서 나현과 태인을 통해 사랑과 이별을,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말하는 방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현과 태인이 함께 냥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사랑을 만들고 가꾸어나가는 것도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의 연필 소리가 겹치며 리듬을 만들어내듯’(p.100) 각자의 이야기를 조절해 ‘둘의 최선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p.105)이 사랑을, 그리고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현과 태인이 합의한 냥고 캐릭터가 점점 흔들리지 않게 된 것‘(p.106)처럼.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에 서로의 세계가 파고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확장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사랑은 태인은 냥나라 행성에 남고 나현은 홀로 현실로 돌아오자 ‘반 쪽짜리 이야기’(p.118)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별이라는 건, 연인으로 지내며 함께 가꾸어왔던 이야기가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이 만들어가던 이야기는, 사랑은, 둘이 아니게 된 순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건 좋았던 기억의 조각들과는 별개다. 순간은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어도, 결말이 나버린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다.
인간관계로 생각해 보면 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만나 변화하고 확장될 수도 있고,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약속을 통해 만들어낸 세계를 함께 하는 특별한 경험’(p.69-70)을 할 수 있다는 것. ‘남의 이야기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p.70)을 받아들이는 것.
🖋️ 그래도 상상을 계속한다. 끝내 누군가와 만날 나의 이야기를. 아무도 보지 않을 곳에 잠시 비치되었다 금세 잊힐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계속 서로의 이웃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이야기를. 아직 세상에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낼 멋진 거짓말을, 진짜가 될 거짓말을. (p.235)
그래서 나현이 ‘남의 이야기를 미워했을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까지 미워하게 된 것’(p.128)처럼 먼저 나의 이야기를 사랑해야 타인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받아들일 힘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 나갈,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나를 구하고 살게 하는,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이야기.
🖋️ "이제부턴 내 이야기를 시작하겠어." (p.138)
당신도,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서울국제작가축제 이벤트로 그믐 독서모임에 참가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비시선 349 (230714~230717)
❝ 별점: ★★★☆
❝ 한줄평: 세상의 절반은 슬픔이지만, 그 나머지 절반은 사랑이기에 아름다운 것
❝ 키워드: #사랑 #꿈 #가난 #시작 #아름다움 #마음 #슬픔
❝ 추천: 시를 잘 모르지만 앞으로 좋아하고 싶은 사람
📝
시집을 읽는 동안 때론 슬프지만, 때론 아름다운 구절들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시를 잘 몰라도 그냥 좋을 수 있다는 것. 그냥 읽으면 된다는 것.
❝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 「있다」 (p.8)
❝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 「오필리아」 (p.10)
❝ 둥근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비의 머리카락이
내 발등을 어루만지면
너를 만나게 된 이유와 만나게 되겠지
/ 「아케이드」 (p.13)
❝ 대체 뭘 바라는 거죠? 몰라요
이 시를 몰라요 너를 몰라요 좋아요
/ 「인식론」 (p.42)
❝ 왜 마음은 어린 날 좋아했던 음료수병 같지 않을까
/ 「그런 날에는」 (p.51)
❝ 나는 기억한다, 그날 널 향해 내린 건 세상의 첫 가을비
아무래도 우리는 천년을 함께 살아온 것 같아
/ 「슬픔의 작은 섬」 (p.72)
❝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 「세상의 절반」 (p.76)
❝ 이 향기를 전해 줄 수는 없어
너는 언젠가 부드러운 고개를 숙여 하얀 꽃잎들을 바라보았을 테고
향기를 힘껏 들이마셨을 테고
/ 「자스민」 (p.112)
들녘(참새책방) (230711~230713)
❝ 별점: ★★★★
❝ 한줄평: 호러를 진정으로 즐기는 겁쟁이가 일류다
❝ 키워드: #공포 #호러 #에세이 #겁쟁이
❝ 추천: 겁 많은 공포 애호가, 다양한 공포 콘텐츠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
🖋️ ‘겁쟁이’와 ‘공포 애호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수식어인 걸까? 그렇지만 난 정말로 겁이 많고 또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p.11)
단번에 날 사로잡은 문장. 작가님과 나는 비슷한 결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 또한 ‘겁쟁이’지만 누구보다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류의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공포 애호가’니까! 작가님이 나보다 더 겁쟁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읽는 내내 약간 헷갈렸다. 결론은 우리는 ‘공포 마니아’보다는 ‘공포 애호가’라는 것!
🖋️ 겁쟁이야말로 진정한 호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호러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르다. (...)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함정에 충실히 빠지고,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에 실눈만 겨우 뜬 채로 비명을 지르는 겁쟁이들이야말로, 어쩌면 호러라는 장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p.22)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목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오히려 겁쟁이야말로 호러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색다른 관점이었다.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무서우라고 만든 작품을 보며 무표정한 관객을 보면 제작자들은 매우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은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호러 관련 에피소드를 가득 담고 있다. 어릴 적 귀신을 본 경험담,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오프라인 공포체험, 괴담, 게임, 고어 등 내가 봤던 콘텐츠들도 꽤나 많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2. 나를 보는 그 눈, 그 눈! 파트에서 자세히 서술되는 게임은 나도 직접 하긴 무섭고 게임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영상으로 감상했는데 같은 게임인데도 작가님은 ‘시선 공포’로 인해 공포를 느끼신 게 재미있었다.
3.우리 집은 안전해? 파트에 나오는 영화 <컨저링>도 너무 반가웠다. 제임스 완 감독이 만든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 시리즈를 좋아해서 영화가 개봉하면 꼭 영화관에 관람하러 가곤 했기 때문이다. 같은 감독은 아니지만 이번에 <인시디어스>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 개봉하는데 작가님도 보러 가실지 괜히 궁금해졌다.
9.공포 게임의 맛 파트에 나오는 게임들도 대부분 내가 게임 스트리머의 플레이 영상을 봤던 것들이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아웃라스트>와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서술 부분! 게임의 특징을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설명하시는지 게임 플레이 장면이 눈앞에 생생히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4.우리는 누구를 무서워하는가 파트에서 ‘호러물을 즐겨 보는 애호가에서 호러물을 쓰는 창작자의 역할’을 겸하는 사람으로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고민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적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노력’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공포에 취약한가 생각해 봤는데,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류는 ‘소리‘로 공포를 조성하는 콘텐츠인 것 같다. 시각적인 공포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참을 수 있는데, 청각적 공포는 유독 견디기 힘들다. 어떨 때는 귀신이나 괴물의 몰골보다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곤 한다. 하지만 귀를 막진 않는다. 무서워도, 그 무서움을 즐기는 게 너무 재미있으니까!
🖋️ 세상의 모든 겁쟁이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공포를 사랑하기를, 그래서 더 무섭고 더 끔찍한 공포물이 계속 쏟아지기를 바란다. 겁쟁이들을 향한 나의 애정은 앞으로도 우리가 가늘고 길게 유지되길 바라는 동지애에 가깝다. (p.202)
‘세상의 모든 겁쟁이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공포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 아마 나 같은 겁 많은 호러 애호가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켜질 것 같다.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허블 (e-book) (230707~230713)
❝ 별점: ★★★★★
❝ 한줄평: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 키워드: #SF #우주 #차별 #혐오 #사랑 #공존 #그리움 #이해
❝ 추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아련하고 그리운 미래가 궁금한 사람
📝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을 아직 많이 읽진 못했지만, 소설 속 ‘떠나는 장면’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인지 공간」에서도 그랬고,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단편은 ‘떠남’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 어떤 진실들은 떠나야만 알 수 있다는 것. 해설에서 ‘김초엽의 소설에서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다.’라고 인아영 문학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각각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직접 떠나거나, 혹은 떠난 이의 흔적을 따라가며 진실을 찾아 나선다.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아련하고 그리운 미래를 다루고 있는 단편들. 배제와 차별, 혐오가 없는 세상, 그리고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들. 이 소설은 어쩌면 정말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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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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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가설」
🖋️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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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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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물성」
🖋️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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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분실」
🖋️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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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