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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문학동네 (e-book, 241223~241227)
❝ 별점: ★★★★☆
❝ 한줄평: ‘마음 읽기의 실패는 사랑’(해설 「마음 이론」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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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에 대해. 먼 곳에 있는 너를 당겨 이곳에 놓고 살피고 싶었다. 그 욕망은 더 잔잔히 끈질겨져서 결국엔 너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너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너를 좋아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위선인지 위악인지 가릴 수 없었다. 다만 이것은 이상한가? 라고 물었다. 아닐 거라고, 똑같은 상황에 데려다놓으면 나와 똑같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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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해본 것’ 리스트를 적는 일만큼 재인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마음으로 모르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으므로. (「근육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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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공룡의 이동 경로』를 읽는 일이 마음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따라가는 일 같았다면 신춘문예 당선작 「나주에 대하여」가 실린 첫 번째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읽는 일은 타인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마음을 통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속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 같았어요. 아직 읽지 못한 김화진 작가의 장편소설 『동경』이 매우 기대됩니다! [📝 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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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e-book, 241222~241222)
❝ 별점: ★★★★☆
❝ 한줄평: 눈물에도 빛깔이 있다면 우리의 눈물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을까
❝ 키워드: 눈물 | 빛깔 | 감정 | 순수 | 마음 | 그림자 |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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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가님의 어른을 위한 동화 『눈물상자』를 읽었습니다. ‘참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글과 그림이었어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가 참 잘 어울리는 책이란 생각을 했어요. 눈물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는 팔기도 하는 ‘아저씨’가 들려주는 다채로운 눈물의 빛깔에 담긴 눈물의 의미들을 생각하며 눈물방울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았고, 아저씨가 찾고 있는 ‘순수한 눈물’의 의미도 정말 뭉클했어요. 순수한 눈물엔 가장 눈부신 밝음만 담기는 게 아니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긴다는 것,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이 담길 때 진짜 빛이 어린다는 것.
✦ 기쁠 때, 슬플 때, 화가 날 때, 후회될 때, 미움을 느낄 때, 가여움을 느낄 때, 저마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그 눈물은 그 순간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 작가의 말에서 ‘때때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는 말이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 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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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이 도는 이 눈물은 화가 몹시 났을 때 흘리는 눈물······ 회색이 감도는 이 눈물은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 연보랏빛 눈물은 잘못을 후회할 때 흘리는 눈물······ 진한 보랏빛 눈물은 부끄럽거나 자신이 미워서 흘리는 눈물······ 검붉은 눈물은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할 때 흘리는 눈물······ 분홍빛 눈물은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 연한 갈색의 저 눈물은 누군가 가엾다고 느껴질 때 흘리는 눈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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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은 작아서 곧 삼킬 수 있었지만, 어떤 눈물은 덩어리가 커서 오랫동안 머금어 녹인 뒤에야 삼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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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24 (241201~241221)
❝ 별점: ★★★★★
❝ 한줄평: 여전히 사람, 삶, 슬픔, 그리고 사랑
❝ 키워드: 외로움 | 슬픔 | 마음 | 사랑 | 꿈 | 삶 | 빛 | 이야기 | 별 | 헤어짐 | 시간 | 행복 | 희망 | 기억 | 상처 | 답 |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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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수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를 읽었어요. 첫 번째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와 이어 읽으니 사람, 삶, 슬픔,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건 비슷하지만 ‘사랑도 들어보고 슬픔도 들어보고 마음도 들어봤다 잠시 놓쳐도 보기도 하고 충분한 휴식 후에 다시 들 수 있을 거’(「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부분)란 믿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깨지진 않으니까, 던져져도 다시 일어나긴 하니까, 금간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희망」 부분)는 마음을 보여주기도 해서 저는 이 시집이 좀 덜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시인의 두 시집 다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다음 시집이 벌써 기대됩니다 🥰
✦ 시인의 미니 인터뷰도 좋더라고요. 시집의 2부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들의 시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요. ‘행복이란 뭘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시들을 모아보니 그건 답을 찾는 게 아니라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거라는 걸 알게 되셨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서 피고 지는 모든 게 다 행복 같았다는 답변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 미니 인터뷰 마지막에 ‘우리의 꽃길은 어쩌면 흉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키울 거름은 우리가 떨군 사랑일 거예요. 그러니 부디 사랑의 실패를 사랑의 끝으로 생각하진 말아주세요.’라고 말씀하신 게 좋았어요. 사랑에 실패가 있다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사랑이 내가 원하는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해도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삶도, 사람도, 사랑도 계속될 거니까. 그래서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나봐요. [📝 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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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랑할 수 없는 건 없고 사랑하고자 하면 다 사랑할 수 있는데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급 욕심이 들어 운동을 하러 갔다 하나둘 하나둘 바벨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바벨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사랑도 들어보고 슬픔도 들어보고 사람 마음이 제일 어렵네 잠시 놓쳐도 보았다 쉬지 않고 들면 가벼운 것도 다시 들기 어렵고 충분한 휴식 후엔 더 많은 바벨을 들 수 있다 그럼 이 마음도 잠시 쉬어볼까 이 사람도 나중에 들 수 있을 거야 (...)
/ 「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부분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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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간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쁘게 사는 삶도 있는 거겠지
괜찮다 말해줄래?
나는 깨지진 않는 거잖아
길바닥에 던져져도 다시 일어나긴 하잖아
/ 「희망」 부분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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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도 오래 따뜻할 수 있다
뜨겁지 않은 체온으로
사람을 데울 수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삶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서른」 부분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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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네가 웃으니 내 세상이 위로가 돼
✎ 「정중하게 외롭게」 ⛤
✎ 「형 물이잖아」
✎ 「습작」 ⛤
✎ 「우리의 허무는 능금」 ⛤
✎ 「가로수」 ⛤
✎ 「수석」 ⛤
✎ 「슬픔이 익을 동안 나눠 잊을까요」
✎ 「걱정」
✎ 「스스로」 ⛤
✎ 「우리는 시간을 사랑으로 바꾸며 살았고 누가 먼저였을까 사랑과 바꾸긴 아깝다 생각한 사람은」
✎ 「사랑은 잊히고 근육은 남는다」 ⛤
✎ 「선선한 슬픔」 ⛤
✎ 「소양강 소로우」
2부 | 느슨히 묶어두었지 잃어도 울지 않으려
✎ 「행복을 위하여」
✎ 「행복의 한계」 ⛤
✎ 「희망」 ⛤
✎ 「행복의 태도」
✎ 「행복한 나물」
✎ 「제철 행복」 ⛤
✎ 「조용한 열정」
✎ 「행복 1」
✎ 「행복 2」 ⛤
✎ 「마지막 행복」
3부 | 아직 선량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네
✎ 「서른」 ⛤
✎ 「당기시오」 ⛤
✎ 「기계가 기도하는 세계에서」
✎ 「방심」 ⛤
✎ 「감염」 ⛤
✎ 「수거」
✎ 「사람은 상상하는 걸 다 만든다 만들 수 있는 정도만 상상해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왜」
✎ 「온라인 열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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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85 (241211~241218)
❝ 별점: ★★★★★
❝ 한줄평: 사람, 슬픔, 그럼에도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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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수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를 구매하고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궁금해져서 먼저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마음에 들어온 시가 너무 많아서 감동의 눈물 🥹 특히 1부와 4부의 시들이 정말 정말 좋았어요.
✦ ‘사람이기에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을 슬픔이라고 불렀’(「도리어」, p.54)으나, ‘슬픔이 꼭 슬픔으로 되돌아오진 않는’(「신도시」, p.49) 것처럼, ‘슬픔을 가두는 건 사람의 일이었고, 사람을 겹겹이 쌓는 건 사랑의 일’(「시인의 말」)이기에 슬픔은 사람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이어져, 절망하는 대신 슬픔을 사랑해 보자고 다짐하게 되는 듯해요. 어서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도 읽어야겠어요 🥹 [📝 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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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티고 있다
그거 하나쯤이야
사는 데 문제없으므로
나를 버리고 싶은 생각을 겨우 참아본다
/ 「믿음 조이기」 부분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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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 모양대로 언 얼음이 있었죠
그걸 잠시 녹이기 위해 안고 있던 거라면
조금 사랑이 될 수 있을까요
/ 「유니폼」 부분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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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발버둥은
어떤 파장이 될 수 있다
깊어지려 하지 말자
깊이 없는 다짐이
나를 살리고 뭍으로 인도한다
/ 「생각 믿기」 부분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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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제일 아팠던 말을 잊지 않아
꼭 그 말로 다른 이를 찌르고 싶어 해
너는 녹을 때까지 안아보자 했다
서로를 깊숙이 찌르며
온몸이 젖을 때까지
/ 「고드름」 부분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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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제1부 ㆍ 계신다 생각하면 계신다
✎ 「직성」 ⛤
✎ 「믿음 조이기」 ⛤
✎ 「생각 담그기」 ⛤
✎ 「생각 만지기」
✎ 「생각 연습」
✎ 「보호자」
✎ 「공양」
✎ 「유정」
✎ 「생각 나가기」 ⛤
제2부 ㆍ 사람을 하는 중이다
✎ 「유니폼」 ⛤
✎ 「조가만가」
✎ 「에티켓」 ⛤
✎ 「분신」
✎ 「신도시」 ⛤
✎ 「도리어」
제3부 ㆍ 그 생각이 대신 가고 있다
✎ 「자율」
✎ 「교대」 ⛤
✎ 「생각 믿기」 ⛤
제4부 ㆍ 사랑에 개연성이 있겠습니까
✎ 「유지」 ⛤
✎ 「서가를 지키는 이」
✎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
✎ 「어둠은 미안해」 ⛤
✎ 「기계 차이」 ⛤
✎ 「고백」
✎ 「고드름」 ⛤
✎ 「애인」
✎ 「수련이 피기까지」 ⛤
✎ 「새로운 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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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41207~241213)
❝ 별점: ★★★★☆
❝ 한줄평: 다정의 온도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 키워드: 사랑 | 다정 | 자유 | 온기 | 삶 | 흔적 | 시인 | 슬픔 | 돌봄 | 중력 | 일상 | 이해 | 인정 | 마음 | 선물 | 얼굴 | 그리움 | 길 | 기억 | 글 | 열매 | 시간 | 작별 |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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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다연 시인이 2023년 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주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 50편을 묶어 낸 에세이 『다정의 온도』를 읽었습니다. 때로는 잔잔한 웃음이 나게 하고, 때로는 뭉클한 마음이 들게 하고, 때로는 은은한 슬픔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따뜻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시인의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를 품은 사랑을 건네받는 기분이었어요.
✦ 3주에 걸쳐 정다연 시인님이 보내주신 세 편의 편지도 함께 읽어보았는데요. 책을 다 읽고 편지 세 통을 다시 천천히 읽으니 글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시인과도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좋더라고요.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했던 시인의 어머니의 예물 사진도 볼 수 있었고, 곧 있을 낭독회에 이 예물을 착용하고 오신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어요.
✦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돌보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게 받은 다정한 온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도 아끼지 않고 내어줄 것을 다짐하는 사람. 시인이 쓴 시도 궁금해져서 시집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더 추워지는 이 겨울,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다정의 온도’를 나누고 싶은 이와 이 책을 함께 읽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 [📝 24/12/15]
(*현대문학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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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이 불확실해지지만 여전히 내가 믿고 있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의 불완전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의 불완전함도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것.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매몰찬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으니까.
/ 「윤주에 대하여」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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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순전한 마음은 없을 거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도 알고 있을 거다. 돌에 소원을 빌고 탑을 쌓는다고 해서 바라는 것들이 그리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기도를 한다. 더 현명하게 세상을 살 용기를 달라고 빌기도 하고 누군가의 안녕과 평화를 빌기도 한다. 그렇게 돌을 쥐고 빌면 세상이 그 마음을 듣고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의심을 거두고 희망한다. 진심으로 순수하게.
/ 「진심으로 순수하게」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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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농이 타고 스스로 꺼진 자리. 매끄럽지만 울퉁불퉁한 표면을 만져보았다. 뜨겁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뜻한 온도가 느껴졌다. 이제 막 새로운 모양을 다 만든 참이라는 듯이. 하나의 사물이 만들어낸 끝. 그 끝이 따뜻했다는 게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면 허무맹랑해 보일까. 어떤 일의 끝이, 무언가가 떠나고 딱딱하게 굳은 자리가 매번 따뜻할 리 없지만, 이토록 따뜻하기도 하다는 것. 그렇다면 손이 얼얼해지도록 차갑고 뾰족한 끝이 나를 베어낼 때 그래도 다음, 다음 장면을 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초는 다 탔는데, 그것을 받치던 그릇에는 여전히 남은 것이 있으니. 전혀 다른 모양으로 여전히 있으니.
/ 「굳는 자세」 (p.134-135)
✴︎
꽝꽝 얼어 투명하게 빛나던 얼음. 그 위를 걸으며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꽉 잡아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 「크리스마스의 기억」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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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글
1부 | 사랑하려고 한 게 아닌데 사랑하게 된다면
✎ 「빈티지」 ⛤
✎ 「시인은 어딘가 좀 슬픈 사람」 ⛤
✎ 「윤주에 대하여」
✎ 「중림동 시절」
✎ 「선물하는 기쁨」
✎ 「얼굴 생각」
2부 | 괜찮아 나도 그랬는걸
✎ 「시 창작 교실」
✎ 「서유리 찾기」
✎ 「블루베리 따기」
✎ 「진심으로 순수하게」 ⛤
✎ 「버리는 마음」
✎ 「손끝 물들이기」 ⛤
✎ 「굳는 자세」 ⛤
✎ 「뒤돌아보기」
3부 | 내 글은 공룡
✎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사람의 이야기」 ⛤
✎ 「좋아한다고 해서 믿는다는 건 아니야」
✎ 「지하철 작업실」 ⛤
✎ 「은행나무」
✎ 「영원히 자고 싶어요」
4부 | 넘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꽉 잡으며 나아갔다
✎ 「몸의 용도」
✎ 「괜찮다는 느낌」
✎ 「크리스마스의 기억」 ⛤
✎ 「조금 더 껴안아줄걸」
✎ 「생일 축하해, 미린 언니」
✎ 「같이 살자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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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241201~241207)
❝ 별점: ★★★★
❝ 한줄평: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가고 싶은
❝ 키워드: 싸움 | 도망 | 차별 | 인종 | 공동체 | 다름 | 부당함 | 사랑 | 우정 | 증오 | 혐오 | 경멸 | 희망 | 침묵 | 복수 | 반전 | 삶 | 죽음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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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좋아하는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작은 자비들』을 읽었어요. 1974년 버싱 정책⛧의 도입을 앞두고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아슬아슬한 인종차별의 광기로 가득 휩싸인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딸을 잃은 메리 패트의 분노와 복수의 질주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버싱 정책: 1974년 보스턴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기 위해 백인 거주 구역과 흑인 거주 구역 간에 학생들을 맞바꿔 버스로 서로 통학시키기로 한 것
✦ 초반부터 욕설이 난무해서 사실 읽기 조금 힘들었는데, 그 욕설은 후반부의 잔인함에 비하면 약과였네요. 메리 패트의 처절한 울부짖음과도 같은 이 복수극은 아주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꺼림칙하기도 했습니다. 메리 패트와 딸 줄스는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의 가해자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러한 인종차별의 문제는 메리 패트와 줄스 등 개인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문제, 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 더 나아가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요. 1974년에 비해 2024년의 세계는 인종차별 문제에서 조금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 이 소설은 개인이 단순히 선인 혹은 악인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보여주고 있어요. 메리 패트, 줄스뿐만 아니라 프랭크 투미 등의 마피아들 또한 어떤 면에선 아주 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님이 소설에서 꾸준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던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어요.
✦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 소름이 돋아 다시 소설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서 읽고 싶어 지더라고요.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제야 책의 제목과 책의 표지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자비들. 우리는 어떤 ‘작은 자비들’을 건네고, 또 받고 있을까요. 이 세상은 증오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희망 또한 존재한다는 믿음.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것 같아요.
✦ 쉴 새 없이 몰아치다 마지막에 찾아오는 고요함이 또 다른 시작 전, 폭풍전야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이 엄청난 페이지터너 소설. 곧 드라마화될 예정이라고 하니 영상화 전 꼭 소설을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에 더욱 몰입해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 24/12/12]
(*황금가지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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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 아들을 죽이지 않았어요.”
“아니라고요? 당신은 아이를 신이 만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키웠어요. 당신이 그 증오를 허락한 거라고요. 어쩌면 당신이 가르친 걸 수도 있죠. 당신 자식과 꼭 당신 같은 인종 차별주의자 부모에게서 자란 그 인종 차별주의자 친구들은 자기들이 가진 증오와 어리석음을 이 세계에 수류탄처럼 내던졌던 거예요.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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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지킬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아는 만큼 널 가르쳐 줄 수 있어. 하지만 세상이 널 해치려 할 때 내가 그곳에 없다면, 내가 그걸 막아 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심지어 곁에 있더라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지.
난 널 사랑해 줄 수 있고, 지지해 줄 수 있지만 안전하게 지켜 줄 순 없어.
그래서 내 심장은 떨어져. 매일, 매분, 호흡하는 매 순간.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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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41117~241130)
❝ 별점: ★★★★☆
❝ 한줄평: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결국 사람이라서
❝ 키워드: 재난 | 여행 | 상품 | 프로그램 | 휴가 | 출장 | 사막 | 싱크홀 | 낙오 | 탑 | 사고 | 시나리오 | 학살 | 이슈 | 스토리 | 경쟁 | 삶 | 죽음 | 침묵 | 후회 | 분업 | 두려움 | 운명 | 사랑 |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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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과 여행’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마지막으로 달려갈수록 엄청난 전율을 일으키는 책입니다.
✦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재난 여행의 윤리적 문제, 재난의 정의, 재난의 피해자와 수혜자, 희생자의 이야기, 우연과 필연, 삶과 죽음 등 생각해 볼만한 점들이 정말 많은 소설이라 더 좋았어요. 동시에 분명 이 이야기는 허구지만, 지구 어디에선가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을 떨쳐내기 어려웠어요.
✦ 윤고은 작가님 책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또 다른 재난, 또 다른 시작, 그리고 또 다른 여행.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결국 사람이라서, 우리는 한평생 ‘재난’을 두려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 재난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말이에요. 아마 이 소설을 읽은 분이라면 고요나라는 사람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 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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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 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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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하인리히 법칙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발생에 주목한 것일 뿐, 재난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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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41122~241128)
❝ 별점: ★★★★
❝ 한줄평: 투르게네프와의 기분 좋은 첫 만남
❝ 키워드: 산문시 | 풍경 | 자연 | 도시 | 꿈 | 친구 | 가난 | 공포 | 종말 | 어둠 | 죽음 | 사랑 | 눈물 | 추모 | 화해 | 회상 | 용서 | 바위 | 내일 | 항해 | 영원 | 불멸 | 인생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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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전 ‘독자여, 이 산문시를 단숨에 읽지 마시오. 단숨에 읽으면 아마 지루한 마음에 그대의 손에서 멀어질 것이오. 오늘은 이 시, 내일은 저 시, 마음 가는 대로 읽으시오. 그러면 그중에 어느 시인가 그대의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을 겁니다.’라고 독자에게 전하는 말처럼, 천천히 마음 가는 대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시집입니다. 시보다는 산문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어요.
✦ 이반 투르게네프는 소설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로 처음 읽어보게 될 줄 몰랐네요.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시를 많이 만나서 작가와 기분 좋은 첫 만남을 할 수 있었어요 🥰 [📝 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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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 버린 날들 하루하루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무기력할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얼마나 미미한가!
무수한 시간들은 얼마나 의미 없이 헛되이 지나가 버렸는가!
그런데도 인간은 살기를 원한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삶에, 자신에게,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본다······.
/ 「내일, 내일!」 부분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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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마을」 ⛤
✎ 「대화」
✎ 「노파」
✎ 「거지」 ⛤
✎ 「세상의 종말」 ⛤
✎ 「마샤」
✎ 「두 편의 사행시」
✎ 「참새」 ⛤
✎ 「장미」
✎ 「Yu. P. 브레브스카야 부인을 추모하며」
✎ 「마지막 만남」
✎ 「자선」 ⛤
✎ 「벌레」 ⛤
✎ 「양배추국」
✎ 「두 명의 부자」 ⛤
✎ 「신문기자」
✎ 「에고이스트」
✎ 「적과 친구」
✎ 「그리스도」
✎ 「내일, 내일!」 ⛤
✎ 「그의 목을 달아매라!」
✎ 「무엇을 생각할까?」 ⛤
✎ 「항해」
✎ 「멈추어 주오!」
✎ 「또 싸울 날이 올 것이다!」
✎ 「만남」
✎ 「불쌍히 여기노라」
✎ 「둥지도 없이」
✎ 「잔」 ⛤
✎ 「처세술 2」
✎ 「높은 산들 사이를 걸었다」
✎ 「나 죽으면」
✎ 「모래시계」
✎ 「사랑으로 가는 길」
✎ 「단순」
✎ 「그대가 울었지······」
✎ 「사랑」 ⛤
✎ 「진리와 정의」
✎ 「응애,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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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옆의자 (e-book, 241126~241126)
❝ 별점: ★★★★☆
❝ 한줄평: 희망이라곤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
❝ 키워드: 간병 | 돌봄 | 삶 | 죽음 | 가족 | 일상 | 붕괴 | 현실 | 불행 | 절망 | 생존 | 연대 | 희망 |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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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 부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간병과 돌봄이라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주제의 이야기. 엄마의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고,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명주와 아버지 문제로도 모자라 개인의 불행까지, 눈덩이처럼 계속해서 불어나는 현실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준성의 모습에 마음이 쓰여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가 없었어요.
✦ 희망이라곤 한 조각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한 줄기의 희망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또 그것이 삶이 아닐까요. 누군가는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비현실 한 스푼 정도는 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고, 이 소설을 떠올리면 마지막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아요.
✦ 눈 내리는 도로를 달리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명주와 준성의 뒤로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라는 가사가 담긴 백예린의 노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가 재생되는데요. 추천의 말에서 ‘각자도생, 각자도사. 각자 열심히 산 대가가 불행의 거미줄에 포박당한 채 범법자가 되거나 패륜아가 되는 일뿐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까 공동체의 실패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라고 쓰신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듯 그 모든 일이 명주와 준성만의 잘못이라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명주와 준성의 일은 얼마든지 우리, 공동체, 그리고 사회의 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잡고,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눈을 맞추고,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요. [📝 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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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는 법은 없다. 인생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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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는 황망해하던 702호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무언가 거침없는 물살이 그의 인생을 할퀴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명주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인생을 좀 더 살았다고 해서 그 물살에 언제나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었다.
︎✴︎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
아버지는 그렇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당신의 삶을 조용히 홀로 삭이다 부지불식간에 가셨다. 이제 준성은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네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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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17 (241105~241125)
❝ 별점: ★★★★☆
❝ 한줄평: 너무 환해서 더 슬프지만, 그래도 괜찮아질 것을 알고 있기에
❝ 키워드: 물 | 물속 | 물고기 | 식물 | 풍경 | 슬픔 | 손 | 작약 | 나비 | 죽음 | 끝 | 버드나무 | 바람 | 강 | 배 | 사랑 | 마음 | 벽돌 | 벽 | 여름 | 이별 |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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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의 첫 번째 시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는 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서 먼저 만났었어요. 그 시집에서 이승희 시인이 ‘시란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버틸 힘을 주고, 버틸 힘을 <버릴> 힘을 주는 것, 살아 있으라고 속삭이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속삭이고, 절망과 슬픔을 정직하게 통과하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하신 게 인상적이어서 필사도 했었거든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딱 ‘절망과 슬픔을 정직하게 통과’할 수 있게 기다리고 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토닥여주는 느낌이었어요.
✦ 이 시집을 읽고 좋으셨다면 시인의 미니 인터뷰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읽으면서 시들이 시어, 시구와 제목 등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시가 연결되듯 읽히는 구성을 의도하셨다고 해요. ‘시는 영화의 프레임처럼 시인의 연속적 세계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렇게 쓰는 시가 있을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벌써 다음 시집을 기다립니다... 🥹
✦ 미니 인터뷰 마지막에 독자에게 건네는 인사에서 ‘걸어서 국경을 넘어가는 마음, 한 번쯤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은 마음, 끝이 보이면 어때, 그래도 가는 거지, 지금은 여름이니까, 그런 마음. 그런 여름을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신 게 너무 좋았어요. 여름에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 내년 여름에 꼭 다시 꺼내 읽고 싶어요. 그때의 물속 작약은 얼마만큼 환할까요. [📝 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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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전히 버드나무 아래에서 버드나무 잎사귀에 부서지는 햇살을 보고 있다. 눈부셨다. 눈부신 이것이 아름다운 것일까 생각했다. 한 번도 눈부 신 적 없는 생이 자꾸 어딘가로 가려 했을 때 나는 햇살을 보고 아팠고, 바람을 보고 슬펐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나눌 수 없으니까. 누구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니까. 아직도 아름다움이 뭔지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은 내 것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는 어떻게든 있고 싶었는데 나는 어떻게도 없었다. (...)
/ 「버드나무는 잠을 자고」 부분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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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살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평생을 죽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모두 벽돌을 쌓는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묻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다
그래도 쌓아간다는 건 좋은 일 같아
좋았던 날들을 기억하려는 마음 같아서
/ 「벽돌을 쌓는 사람들」 부분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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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로만 걷는 습성처럼
뭘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쏟아진 우유처럼
울고 싶은 마음들만 자라고
상처와 불행처럼 가까운 게 또 있을까
/ 「복도의 마음」 부분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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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슬픔밖에 가진 게 없다는 말은 하는 게 아냐
반쯤 사라진 것들은 또 반쯤 생겨난 것들
진화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마음이 잠시 따뜻해지기도 하니까
그건 너무 쉬운 일이기도 하니까
/ 「외딴집」 부분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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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어떤 식물은 멜로디처럼 흔들렸다
✎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
✎ 「헤어진 후」 ⛤
✎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
✎ 「나비가 왔다」 ⛤
✎ 「슬픔은 다할 수 없어」
✎ 「버드나무는 잠을 자고」 ⛤
2부 | 이제 막 물속으로 잠기려는 잎사귀
✎ 「밤배」 (p.38)
✎ 「망자들」 ⛤
✎ 「어떤 마음에 대하여」
✎ 「벽돌을 쌓는 사람들」 ⛤
3부 |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여름이 발달하는 밤이었고
✎ 「여름밤의 캐치볼」
✎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 「여름이니까 괜찮아」
✎ 「즐거운 우리집」
4부 | 한번 더 넘어져요 파도처럼 마지막처럼
✎ 「복도의 마음」 ⛤
✎ 「여수고등학교 가는 길」
✎ 「그러니까」
✎ 「유령에게」 ⛤
✎ 「외야수의 기분으로 서 있는 밤」
✎ 「오늘 별이 뜨는 이유에 대해」
✎ 「외딴집」 ⛤
5부 | 돌본다는 것은 그 옆에서 함께 잠든다는 것
✎ 「해국과 바다」
✎ 「식물과 라디오」
✎ 「해국」 ⛤
✎ 「코로키아」
✎ 「백합의 일상」
✎ 「올리브나무는 나의 뒤에서 오래 울어주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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