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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아침달 시집 19 (240714~240717)
❝ 별점: ★★★★
❝ 한줄평: 단 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
❝ 키워드: 여름 | 잠 | 꿈 | 바다 | 해변 | 파도 | 사랑 | 이름 | 순간 | 운명 | 시 | 개 | 물방울 | 거울 | 우리 |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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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과 영원. 그 사이의 계절들. 사랑.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라져도 남아 있을 이름.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읽다가도 종종 내려앉는 묵직한 여운. 이 초록빛의 시집이 참 좋네요. 민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모 네모 청설모』를 몇 달 전 읽었었는데 그때 이름과 별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 「별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 에세이가 떠오르는 시가 있어 더 반가웠어요. [📝 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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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바다가 한 줄씩 차오르고
당신은 파도 너머로 튀어 오르는
서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신작」 부분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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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쪽이 지는 거야
더 사랑하는 사람이
가라앉는 거라고
사랑을 하지 않는데도
내기에서 지고 회사에서 지고
학을 접을 줄도 모르면서
이번 생은 다 접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 「유일」 부분 (p.38)
✴︎
주머니 안에는 한 알의 사과가 있었다. 그것은 값을 치르고 그림을 본 사람들이 받는 일종의 기분이었지만 세잔의 것과 달리 말랑말랑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자식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활을 쏜 빌을 생각하며 봄의 광장에서 부서지는 빛을 보았다.
/ 「정물」 부분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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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신작」
✎ 「여름」 ⛤
✎ 「일 분이 되기 전 영원한 오십구 초」 ⛤
✎ 「그는 거기에 있겠다고 했다」
✎ 「메모리얼 스톤」
✎ 「백조의 호수」
✎ 「영구 없다」
✎ 「핸드 프린팅」
✎ 「유일」 ⛤
✎ 「나의 시인」 ⛤
2부
✎ 「이어달리기」
✎ 「증발하는 세계」 ⛤
✎ 「정물」
✎ 「머랭」
✎ 「사이드웨이」 ⛤
✎ 「거울」 ⛤
✎ 「우리」 ⛤
✎ 「가을 다음 여름」
3부
✎ 「평범」
✎ 「누군가」
✎ 「8월의 크리스마스」 ⛤
✎ 「도서관은 나른해」
✎ 「계절」 ⛤
✎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을 거야」
✎ 「당신의 옥수수」
✎ 「악몽」 ⛤
✎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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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숲 (e-book, 240712~240714)
❝ 별점: ★★★☆
❝ 한줄평: 결말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 키워드: 드루리 레인 | 배우 | 셰익스피어 | 탐정 | 독순술 | 추리 | 미스터리 | 스릴러 | 살인 |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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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 마지막 책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멱살 잡고 왜 이렇게 마무리 지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 비극 시리즈 중 세 권의 책은 ‘XYZ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서 판매하면서 이 책은 왜 같은 시리즈인데 배제됐나 궁금했는데요... ㅎㅎ 작품 내의 사건 추리 과정의 완성도와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운 결말이었어요. 물론 만족하시는 분도 있겠지만요.
✦ 다른 아쉬운 점 한 가지. 네 권 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오탈자가 종종 눈에 띄더라고요. 대여해서 읽은 거라 굳이 출판사에 문의하지는 않았는데 종이책도 이렇다면 소장이 고민될 것 같네요.
✦ 비극 시리즈 마지막 책의 아쉬움과 별개로 X, Y, Z의 비극은 읽어볼 만한 고전 명작이라 생각해요! 이미 엄청나게 유명한 Y의 비극도 재미있지만 X, Z의 비극도 매력적인 작품이니 한번쯤 읽어 보시길 추천해요! [📝 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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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의 맑은 눈 깊숙한 곳에서는 불가사의한 승리의 빛이, 아니, 환희에 가까운 광채가 빛났다. 레인이 입을 열려는 순간, 경감이 먼저 기묘한 어조로 “3HS, 소문자 w에 대문자 M······.”이라고 중얼거렸다. 마치 소리를 내어 읽으면 그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기라도 할 듯이······.
✴︎
“도끼를 휘두른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기의 비밀을 드러내버린 꼴이 되고 말았어요. 그 자신은 까맣게 몰랐겠지만 분명한 실수를 저질렀던 거예요. 말하자면 운명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요. 운명이란 것이 싸구려 자명종시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났던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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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40701~240712)
❝ 별점: ★★★★★
❝ 한줄평: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칠월」, p.77)
❝ 키워드: 지옥 | 삶 | 죽음 | 비 | 희망 | 꿈 | 절망 | 좌절 | 분노 | 사랑 | 자유 | 빛 | 어둠 | 슬픔 | 외로움 | 소년 |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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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월」이라는 시가 실려 있어 매년 칠월에 꼭 읽고 싶은 시집. 김경주 시인의 발문에 있는 ‘시인은 외사랑을 하는 자다. 외사랑은 상대에게 자신이 사랑하는지를 모르게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외로운 사랑이다.’(p.121)라는 문장처럼 이 시집의 화자는 세상을 향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아직 희망을 품고 있기에 세상을 향한 외사랑을 하고 있는 듯했어요.
✦ 시인은 첫 시집인 이 시집을 출간한 후 13년의 긴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출간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 한 권의 동시집, 한 권의 시선집 등을 내며 꾸준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아직 다섯 번째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와 이 시집만 읽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이 너무 궁금해요. 최근 시집으로 올 수록 ‘나쁜 소년’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을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합니다.
✦ ‘쏟아지는 여름날의 비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과, 또 땅바닥을 구르는 지옥 같았던 눈물.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속에서도 얼마나 여름을 사랑하는지’(「칠월」, p.76-77) 말하는사람. 이 슬프지만 찬란한 구절들 때문에 칠월이면 이 시를, 그리고 허연 시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 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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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채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불태우거나 묻어 버리며 여기까지 이 빗속까지 왔네. 하나같이 가슴 뜨겁게 했고 대가를 치른 사랑이었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기도 했네
/ 「장마ㆍ장마ㆍ장마 — K를 추모함」 부분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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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완행열차가 가슴으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고 크고 작은 별들이 음표처럼 머리맡으로 쏟아지곤 했다. 온갖 빛깔의 꿈들이 야간 비행에 열중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때로는 인간의 사랑이나 신념이 아름답기도 했지만그건 언제나 검은 여백이었을 뿐 눈이 떠지질 않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연어 떼 같은 사랑을 적는 게 고작이었다 강물도 기차도 다시 오지 않던 그날 저녁 나는 세상의 옆구리를 뚫고 일어서고 싶었다
/ 「경원선」 부분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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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달리는 모든 건 숙명이다.
/ 「Midnight Specialㆍ2」 부분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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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너에게, 말 없는 눈발로 내 옆에 서 있었던 쓸쓸함을 묻지 않으리라. 어느 날 막막한 강변로에서 다시 너를 잃어버리고 창문 틈에 너를 기다린다는 연서를 꽂아 놓을 때까지, 네가 내 옆에 없음을 알고 전율할 때까지
낡은 자명종의 태엽을 감으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준다고 했다」 부분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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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 「내가 나비라는 생각」
✎ 「장마ㆍ장마ㆍ장마 — K를 추모함」
✎ 「무반주」
✎ 「경원선」 ⛤
✎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 ⛤
✎ 「K」
✎ 「그날」
2부
✎ 「권진규의 장례식」
✎ 「구상(具象)」
✎ 「공작 도시 — 손상기의 그림에서」
✎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가장 희망적이셨습니다」 ⛤
✎ 「손상기는 곱추가 아니다」
✎ 「GOGH」
✎ 「대화」
✎ 「오 샹젤리제」
✎ 「Midnight Specialㆍ1」 ⛤
✎ 「Midnight Specialㆍ2」
✎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 「이사」 ⛤
3부
✎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
✎ 「저녁, 가슴 한쪽」
✎ 「참회록」
✎ 「별곡ㆍ2」 ⛤
✎ 「교정(校庭)」
✎ 「칠월」 ⛤
✎ 「내 사랑은 언제나 급류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 「진부령」 ⛤
✎ 「나를 가두지 마」
✎ 「내 사랑은」 ⛤
4부
✎ 「거미와 나」
✎ 「벽제행」 ⛤
✎ 「편지」 ⛤
✎ 「나무」
✎ 「그해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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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240707~240707)
❝ 별점: ★★★★☆
❝ 한줄평: 축축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비밀스럽고 매혹적인 붉고 푸른빛의 세계
❝ 키워드: 장마 | 비늘 | 지느러미 | 수족관 | 목소리 | 사랑 | 꿈 | 현실 | 죽음 | 뼈 | 물비린내 | 금기 | 인어 | 황홀함 | 욕망 | 허밍 | 노래 | 배신 | 분노 | 허무 | 집착 | 환상 | 슬픔 | 잔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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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읽었던 조예은의 글 중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 조예은 표 잔혹동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환상과 매혹, 달콤함과 황홀함을 맛본 선형의 선택이 놀라우면서도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다는 생각. 저 또한 읽으며 선형처럼 피니에게 속절없이 매혹되는 기분이었어요. 터닝북과 한겨레출판에서 올려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와 꼭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 [📝 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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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의 귀를 거친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달콤함이었다. 외이도와 고막을 지나 부드럽게 뇌를 쓰다듬는 곡조. 묵은 피로가 사라지고 약이라도 한 것처럼 구름 위를 뒹구는 기분. 황홀함을 맛본 귀는 뇌와 심장에 새로운 욕망을 전달했다. 허밍으로는 부족하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다음이 필요했다. 가사가 필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귀를 선물하고 싶었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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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이 그토록 바란 노래였다. 피와 살로 생명을 얻은 노래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귓바퀴를 빙그르르 돌아 외이도를 헤엄쳐 왔다. 피니의 입안에 돋아난 건 혀이자 미지의 바다를 헤엄치는 지느러미. 선형의 어둡고 깊은 바다에서 지느러미가 춤췄다. 춤이 끝나는 순간 자신의 바다 역시 사라져도 좋다고, 설령 세상이 끝난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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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숲 (e-book, 240701~240706)
❝ 별점: ★★★★☆
❝ 한줄평: 마지막 범인 추론 장면 하나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
❝ 키워드: 드루리 레인 | 배우 | 셰익스피어 | 탐정 | 독순술 | 추리 | 미스터리 | 스릴러 | 살인 | 범인 | 복수 | 교도소 | 범죄자 |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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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두 편에서 10년 후, 은퇴한 섬 경감의 딸 페이션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 세 번째 책 『Z의 비극』을 읽었습니다.
✦ 앞선 두 권의 책과 다르게 새로운 인물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참신했고, 특히 드루리 레인의 마지막 범인 추론장면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포셋 형제 살해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논리와 함께 지워나가다 단 한 명, 범인만이 남았을 때의 전율...! 마지막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도 얼른 읽고 싶네요 ㅎㅎ [📝 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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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뛰어들었을 때 그 죽음의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엄청난 경악의 표정을 나는 평생 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
흥분으로 질식할 것만 같았으므로, 나는 그런 광경이 아마도 합법적인 사형 집행장에서는 이제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며, 우리가 형법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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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 모여 있는 스물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이 포셋 형제를 살해한 범인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스물여섯 명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오직 하나, 그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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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240706~240706)
❝ 별점: ★★★★☆
❝ 한줄평: 사랑은 흘러오고 또 흘러간다
❝ 키워드: 아일랜드 | 막달레나 세탁소 | 아버지 | 운 | 사랑 | 삶 | 세상 | 수녀원 | 침묵 | 생각 | 고뇌 | 고통 | 두려움 | 설렘 | 용기 | 구원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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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펄롱이 보여준 사랑에 경의를 표하며.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작가 클레어 키건. 어떤 사소함은 누군가에게 위대함일 수 있다는 것. [📝 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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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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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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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설렘과 함께,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맞닥뜨릴 것이 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솟았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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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07 (240624~240702)
❝ 별점: ★★★★☆
❝ 한줄평: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시는 그림이며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다.’ (해설_김지은, 시가 기르는 작은 시, p.89)
❝ 키워드: 꿈 | 밤 | 어린이 | 동물 | 사랑 | 빗방울 | 해 | 눈송이 | 파도 | 슬픔 | 행복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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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지은 시인의 첫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을 읽었어요. 제목을 봤을 때는 몽글몽글하고 동화 같은,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같은 시가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의 시도 많았지만 아프고 슬픈 시들도 있었어요. ‘그림 없는 그림책’이라는 시와 시집의 제목은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집에서 가져왔다고 하네요. 시집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지은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시는 그림이며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다.’ (p.89)라고 말하는데요. 시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미지로 떠올리고 읽으면서 시를 더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저는 이 말이 정말 공감됐어요.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라는 표현이 정말 아름답네요. 시가 어려우신 분들은 시를 이미지처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시집의 마지막 시는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라고 말하지만 그런 심정은 이내 비워내고 마음을 새롭게 채우며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마트료시카」 부분, p.86)이라는 구절로 끝나는데요. 가끔은 슬프고, 쓸쓸하고, 외롭지만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힘이 나더라고요.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행복을 찾으셨으면 해요.
✦ 벌써 남지은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지네요. 기대되는 시인이 있다는 것도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중 하나겠지요. [📝 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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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한 다리를 갖고 싶어요
이 밤을 정중겅중 건너뛰고 싶어요
지난밤
지지난밤
멀고먼 밤에도
그건 작은 토끼의 꿈이었다
숨죽이고 지나는 밤이
어린 토끼들에게 있는 일이다
/ 「비상계단」 부분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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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 갈까
울고 싶은 사람을 울게 하는 약은 어디 있을까
어른들의 기도는 깊어지고
햇님의 토사물이 색유리에 튑니다
/ 「말하기에 대한 강박」 부분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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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이고
파도를 이고
너는 돌아오곤 했다 마주보면 평원보다 넓게 열리던 것을 믿자고 했다 먼 곳을 보듯 나를 보는
너를 망치고 싶지 않아
더는 웃을 수만은 없는 순간이
기어코 오고야. 노을과 함께이다
너와 누우면
기울면 쏟아지던 파도들
왜 이런 슬픔은 누워서야 알아차리나
/ 「헹가래, 헹가래」 부분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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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 「마트료시카」 부분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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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어린 독일가문비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쓰인다
✎ 「귀신의 집」
✎ 「비상계단」 ⛤
✎ 「모조」 ⛤
✎ 「흉」
✎ 「도마뱀」 ⛤
✎ 「일치」 ⛤
✎ 「호각」
✎ 「오르간」 ⛤
유리 그리기
✎ 「잼잼」 ⛤
✎ 「넝쿨장미」
✎ 「말하기에 대한 강박」 ⛤
✎ 「재생」
✎ 「코스튬」
✎ 「커터」 ⛤
그럼에도 흰 눈이 그리는 곡선
✎ 「성호를 그으며」 ⛤
✎ 「헹가래, 헹가래」 ⛤
✎ 「전염」 ⛤
✎ 「캄파눌라」 ⛤
✎ 「수평의 세계」 ⛤
✎ 「기척」 ⛤
✎ 「복기」 ⛤
✎ 「그림 없는 그림책」 ⛤
✎ 「크로키」 ⛤
✎ 「새벽 탈출」
✎ 「테라스」 ⛤
✎ 「혼자 가는 먼 집」
✎ 「마트료시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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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40607~240630)
❝ 별점: ★★★★
❝ 한줄평: 마음을 오리고 이어 붙여 연장하는 일
❝ 키워드: 마음 | 연장 | 듣기 | 말하기 | 빛 | 어둠 | 금 | 균열 | 불행 | 슬픔 |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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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사단으로 필사를 하며 차근차근 읽은 시집. 「뒤로 더 뒤로」 라는 시에 나오는 ‘삶이란 / 앞뒤로 잘 구워 놓쳐도 깨지지 않게 / 같은 자리에서 단단해지는 것’이라는 구절이 마음을 오리고 이어 붙여 연장하면 다다를 수 있는 자리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놓쳐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삶이 단단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정말 그런 자리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요.
✦ 사실 시집 속 한 편의 시의 제목처럼 ‘알다가도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시들이 많아서 시집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다음에 읽을 때는 시들에 좀 더 귀를 잘 기울여서 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24/07/01]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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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일이다 내일은
가봐야 하는데 뜬다는 게
세상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지
문을 열어두면 때 이른 애도가 되지
죽는 게 죄가 될 수 있냐고 묻던
구상나무는 서늘한 기운에 취해
지난날을 겹쳐 보았다 솔방울이 적잖이
큰 것은 위로 향한다고
산꼭대기에서만 볼 수 있다고
그 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 「알다가도 모르겠는」 부분 (p.54-55)
✴︎
나를 / 작게 / 쪼개면 / 더 / 작게 / 쪼개지는 / 내 아이들
혼자 떠도는 행성이 있다
그 행성의 이름은 므두셀라다
/ 「므두셀라」 부분 (p.69)
✴︎
깨어도 깰 수 없는 것, 종이 운다
그것에 매달린 방울이 없었다면 종은
울어야 할 까닭이란 없지 삶이란
앞뒤로 잘 구워 놓쳐도 깨지지 않게
같은 자리에서 단단해지는 것
/ 「뒤로 더 뒤로」 부분 (p.72)
✴︎
사그라지지 않는 잔불처럼 오늘이 비슷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게 나 자신 아니겠니. 옆구리 터진 김밥이라도 더 좋다거나 나쁜 게 없지 않겠니. 구김 없이 살고 싶다가도 자꾸만 구겨지게 된다. 구겨지면서 기어코 그 주변까지도 구겨지게 만들면서. 살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것이 저기에도 있다고, 덜컥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인간이 되었나. 내가 뭐라고.
/ 에세이: 기만한 습관들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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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어떤 꿍꿍이」
✎ 「집 연장하기」
✎ 「텅 빈 중심」
✎ 「알음알음」 ⛤
✎ 「시간 싸움」 ⛤
✎ 「접혀 있는 것들」
✎ 「알다가도 모르겠는」 ⛤
✎ 「작은 것과 둔한 것」
✎ 「므두셀라」 ⛤
✎ 「뒤로 더 뒤로」 ⛤
✎ 「긴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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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숲 (e-book, 240626~240630)
❝ 별점: ★★★★☆
❝ 한줄평: 알고 읽어도 소름 돋는 범인 추리 과정
❝ 키워드: 드루리 레인 | 배우 | 셰익스피어 | 탐정 | 독순술 | 추리 | 미스터리 | 스릴러 | 살인 | 독살 | 범인 | 도덕 | 죄악 |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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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루리 레인이 활약하는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 두 번째 책 『Y의 비극』을 읽었습니다.
✦ 『X의 비극』보다 훨씬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다시 읽어도 정말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드루리 레인의 눈을 따라가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범인에 대한 힌트를 하나하나 살펴보니소름이 돋더라고요. 드루리 레인의 고뇌도 『X의 비극』과 비교했을 때 한층 더 깊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Z의 비극』과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도 너무 기대돼요 ㅎㅎ [📝 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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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만족의 빛도 승리의 빛도 없었다. 이제까지 펼쳐온 명쾌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뭔가 고뇌가 있는지 태도가 침착하지 못했다. 웅변의 열기가 식은 지금, 그에게는 우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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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과학을 알거나 혹은 양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해터 집안의 어느 누구에게도 그 범죄의 도덕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두뇌는 끔찍한 유전적 질환에 의해 비뚤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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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06 (240624~240627)
❝ 별점: ★★★★☆
❝ 한줄평: ‘살아 있자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 (「유실물」, p.83)
❝ 키워드: 재생 | 도망 | 마음 | 죽음 | 사랑 | 미래 | 비 | 빛 | 쉼 | 여름 | 반복 | 탈출 |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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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휘석 시인의 첫 시집 『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를 읽었어요. 잔잔하지만 종종 퐁당 조약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사라지는 여운들을 마음에 남기는 시들이 많았던, 그래서 참 좋았던 시집이었어요.
✦ ‘살아 있자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 (「유실물」, p.83)라는 구절이 마음에 확 와닿더라고요. 희망을 잃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그래도 살아 있자고,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고 말하는 화자가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면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다’라는 구절처럼 ‘너’와 ‘내’가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쓸쓸하고 외롭지 않을까요. 우리 함께 살아 있자, 사라지지 말자, 이렇게 말해주고픈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 곧 장마철인데, 비와 장마 이야기가 나오는 시도 좀 있어서 이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 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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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은 것들로 잘 살아볼 생각입니다. 흰 물컵에 따듯한 물을 붓고 옷장 속에 두었던 편지를 꺼내봅니다. 보관의 매뉴얼은 늘 건조하고 서늘하므로 우리는 빛도 없이 멋지게 갈변해 잘 말라 있습니다. 바깥에 수북이 쌓인 눈도 결국 녹아, 마르고 따듯한 날이 오겠지요. 말린 계절을 다 더하면 우리가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볕 고르기」 부분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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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갑게 식었다가 금세 녹아내리는 손을 몰래 털어내면서
어디론가 돌아가고 있었다
손잡을까?
여름이잖아
/ 「물의 과녁」 부분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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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선택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거리로 나와 사랑을 외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지구에서만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나는 텅 빈 소행성이고
지구에는 물과 사람과 사랑이 가득하다
/ 「거울에는 내내 텅 빈 것이 비치고」 부분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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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환한 어른이 되자 하루빨리 이곳을 탈출하자
작고 가벼운 우리를 더 잘게 부숴 타지 않는 연습
우리의 유일한 슬픔은 우리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야
/ 「체득」 부분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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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면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다
✎ 「재생」 ⛤
✎ 「유기」
✎ 「우리가 상상했던 저녁은 옥상에 없겠지만」
✎ 「마지막 타자」
✎ 「Zoomb:e」
✎ 「포코 아 포코(poco a poco)」 ⛤
✎ 「도시괴담」
2부 | 모르는 사람들이 우산을 나눠 쓰기도 합니까
✎ 「도랑의 빛 다량의 물」
✎ 「가만하기 기억되기」
✎ 「믿음」
✎ 「볕 고르기」 ⛤
✎ 「물의 과녁」 ⛤
✎ 「거울에는 내내 텅 빈 것이 비치고」 ⛤
✎ 「유실물」 ⛤
✎ 「신기록」
✎ 「생일 편지」
✎ 「홀」
✎ 「시소」
✎ 「애칭」
✎ 「편도」
✎ 「원래 엔딩은 다 슬퍼」
3부 | 선망은 반쯤 부서진 작은 석상 같고
✎ 「실내등과 마른미역」
✎ 「새 인형 공장」
✎ 「빈 저택」
✎ 「역할극」 ⛤
✎ 「체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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