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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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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 | 송미경, 메리 소이 이야기

읻다 넘나리 2기 (240510~240511)


❝ 별점: ★★★★☆

❝ 한줄평: 믿음, 기다림, 진짜와 가짜, 그래서 이상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 키워드: 동생 | 진짜 | 가짜 | 슬픔 | 고통 | 기다림 | 믿음 | 만남 | 사랑 | 의심 | 속임수 | 삶 | 허상 | 개연성 | 우연 | 기억 |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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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 넘나리 2기 마지막 도서로 송미경 작가님의 첫 소설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완독은 금방 했는데, 이야기를 자꾸자꾸 곱씹게 되어 세네 번쯤 더 읽게 되었어요.


✦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이랑 다르게 (긍정적인 의미로) 좀 이상해요. 읽는 사람이 가장 궁금해할 ‘제리미니베리가 진짜 메리 소이인지’, ‘화자인 ‘나’의 엄마가 동생인 메리 소이를 잃어버린 과정은 진실인지’, ‘눈 깜빡이 인형 미사엘은 ‘나’에게 왜 중요한 존재인지’, ‘‘나’는 엄마, 아빠의 친딸이 아닌데 어떻게 이 집에 오게 되었는지’ 등 다른 소설이라면 당연하게 풀릴 이야기들의 실마리가 전혀 풀리지 않아요. 그저 메리 소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과 기다림,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만나게 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수많은 메리 소이들, 그리고 아나무스 씨, 마로니, 제리미니베리까지. 자꾸 글 안으로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 소설 같으면서도 소설 같지 않은 이야기. 책 소개의 ‘작은 어른들을 위한 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이라는 문장이 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내내 꿈을 꾸는 것 같이 몽환적이다가도 어느샌가 현실로 돌아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원더타운이라는 이름의 마을부터가 그런 환상의 세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고요.


✦ 마지막에 ‘나’는 ‘어쩌면 자신은 메리 소이를 기다리긴 했지만 정말로 메리 소이가 돌아올 것이라 믿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우리 곁에 있는 메리 소이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내게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믿음, 기다림, 진짜와 가짜, 그리고 진실과 거짓.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이상한 일을 잔뜩 겪은 ‘내’가 기다리는 한 번의 이상한 일. 그리고 원더타운을 떠나는 ‘나’의 가족들. 이 소설은 정말 ‘이상한’ 소설입니다.


✦ 진짜와 가짜가 중요하지 않고, 진실과 거짓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래서 슬프고 아름다운 환상 같은 이야기. 그런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어보시지 않으실래요? 분명 이 ‘개연성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실 거예요. [📝 24/05/19]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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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건 너희 가족에겐 삶이었으나 타인에겐 일종의 놀이였던 거지. 원래 사람들은 주인공이 고생하는 이야기를 좋아해. 계속 더 고통받으며 기다리는 걸 보고 싶어 하고. 그러다가 결말에서 빵, 하고 한 번에 그걸 해결해주면 더 좋아하고.” (p.44)


✴︎ 

 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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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메리 소이 이야기
24-049 | 정재율,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민음사 (240501~240509)


❝ 별점: ★★★★★

❝ 한줄평: 찾았다 내 여름 시집

❝ 키워드: 사람 | 사랑 | 영원 | 마음 | 물 | 나무 | 죽음 | 빛 | 여름 | 슬픔 | 투명 | 구멍 | 바다 | 천국 | 밤 |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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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온다는 믿음』을 먼저 읽었었는데,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며 아껴두었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꺼내 읽었어요.


✦ 죽음과 가까운 이미지들이 흩어져 있지만, 결국은 살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모두와 슬픔을 나누어 더 슬퍼지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 모인 시집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 서로를 잘 보듬고 슬픔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려주는 시들이 참 좋았어요.


✦ 너무 좋은데 어떻게 더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슬프네요... 제발 읽어주세요... 🥹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 읽으면 더없이 좋을 시집입니다. 첫 시를 읽는 순간 정재율 시인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될 거예요! 💚 [📝 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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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창문을 닦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써진 편지를 발견했다


 턱을 너무 오래 괴어

 팔꿈치가 아파 왔다


 새 구절을 발견할 때까지


 사랑에 관한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 「사랑만 남은 사랑시」 부분 (p.43)


✴︎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물음에 나는 물을 담듯이 두 손을 모아 내밀어 보여 주었다

/ 「영화와 해변」 부분 (p.74)


✴︎

 빛은 점점 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아주 작게 물결이 일었다. 처음 듣는 언어로 투숙객들이 우리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제 우리는 낡고 좋은 호텔에서 3박 4일을 더 보낼 것이다. 맛있는 조식을 먹으면서 이곳을집이라고 생각하고 어디를 갈지 한참을 고민할 것이다. 너는 거짓말을 잘 못하니까 정말 너의 말대로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낡고 좋은 우리의 홈 스위트 홈으로.

/ 「선샤인 호텔」 부분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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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작은 유리알 파편처럼

✎ 「투명한 집」

✎ 「개기일식」

✎ 「축복받은 집 - 숲」

✎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

✎ 「빛을 내는 독처럼」

✎ 「매미 소리와 빗소리와 망치 소리가 들리는 여름」

✎ 「사랑만 남은 사랑 시」 ⛤


2부 | 사랑했던 것을 조금 남기는 기분으로

✎ 「축복받은 집 - 레밍」

✎ 「끝과 시작」

✎ 「0」

✎ 「홀」

✎ 「레몬과 회개」

✎ 「프랑스 영화처럼」

✎ 「영화와 해변」 ⛤⛤


3부 |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 「고해성사」

✎ 「여름은 온통 내가 사랑한 바깥이었다」

✎ 「굴뚝 집」

✎ 「공」

✎ 「축복받은 집」

✎ 「로즈메리」

✎ 「여름 일기」

✎ 「사슴의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


4부 | 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서

✎ 「밤」

✎ 「생활」

✎ 「입석」 ⛤⛤

✎ 「선샤인 호텔」 ⛤

✎ 「부표」 ⛤⛤

✎ 「온다는 믿음」

✎ 「라인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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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24-048 | 양안다, 작은 미래의 책

현대문학 (240323~240429)


❝ 별점: ★★★★☆

❝ 한줄평: 영화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시들

❝ 키워드: 마음 | 숨 | 춤 | 침묵 | 사랑 | 빛 | 죽음 | 밤 | 꿈 | 미래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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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영화 속이라는 걸 알아채는’(「전주곡」 부분, p.9) 시의 구절로 시작해 ‘영화가 끝나고 극장이 밝아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에세이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 부분, p.115)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 마치 영화 한 편처럼 느껴지는 완결성 있는 시집이었어요. ‘영화 같은 사건’을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극장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일까요? ‘미래이며 사랑이고, 우주이면서 우리인 것’(「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부분, p.57-58)을 찾아 헤매는 이들. 절망스러워 가끔은 좌절하더라도, 위로를 주고받으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고 말하는 듯해서 좋았어요. [📝 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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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을 걷다 보면 달이 뜨고 달빛이 수면 위에서

반짝이고 나는 그것을 조약돌이라고 착각했다 작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마다 너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 「오전 4시, 싱크로니시티, 구름 조금, 강수 확률 20%」 부분 (p.14)


✴︎

 때로 선생은

 입김을 불어넣은 창문에 여러 수식을 그리며

 전위서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것은 미래이며 사랑이고

 우주이면서

 우리라고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부분 (p.57-58)


✴︎

영화가 끝난다. 극장이 밝아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음악이 흐른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난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침묵한다. 곧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질 것이다. 좋았어? 무엇이 좋았냐는 질문인지도 모른 채 좋았어, 대답할 것이다. 잘 가. 다음에 봐. 인사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영화가 끝났으므로. 극장이 밝아졌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누군가가 죽거나 사랑하거나. 영화 같은 사건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들은 모두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 에세이: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 (p.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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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전주곡」 ⛤

✎ 「오전 4시, 싱크로니시티, 구름 조금, 강수 확률 20%」 ⛤

✎ 「루저 내레이션」 ⛤

✎ 「이상 기후는 세계의 조울증」 ⛤

✎ 「처방」

✎ 「레몬 향을 쫓는 자들의 밀회」 ⛤

✎ 「펀치드렁크 드림」

✎ 「조직력」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상)」 ⛤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중)」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하)」

✎ 「불가능한 질문」 ⛤

✎ 「작은 미래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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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래의 책
작은 미래의 책
24-047 |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시인선 184 (240424~240427)


❝ 별점: ★★★★☆

❝ 한줄평: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고명재 시인이 말했지

❝ 키워드: 사랑 | 사람 | 삶 | 사라짐 | 죽음 | 꿈 | 빛 | 어둠 | 얼굴 | 몸 | 마음 | 이야기


✦ 시집을 읽기 전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먼저 읽었었는데요. 산문집이 무채색의 향연이었다면,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은 싱그러운 봄과 여름의 색채를 가득 머금은 노랑과 연둣빛의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어요.


✦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연육」, p.29)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시인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지금은 사라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은 사람 속에서 흐르고 굴러야 사랑인거’(「페이스트리」, p.32)라는 말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사랑이 시집 곳곳에 펼쳐져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았어요.


✦ 마음에 드는 시가 너무 많아서 다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 ㅠㅠ 꼭 시집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


✦ 박연준 시인의 발문도 정말 좋았어요. 진심으로 감탄하고 찬미하는 발문이 이 시집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봄이면 읽고 싶은 시집을 찾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 시집은 매해 새싹이 움트는 봄이 돌아오면 다시 읽고 싶어요! [📝 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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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행복해야 당신의 흑발이 자라난다고 거대한 유칼립투스 아래에 누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를 건다 사랑은? 사랑은 옆에 잠들었어요

 / 「청진」 부분 (p.10)


✴︎

 어떤 기사는 풍차를 보고 돌진했다고 한다 그의 돌진을 솔직이라고 한다 솔직한 눈 꼭 잡은 손 솔직히 말하면 첫눈을 핥고 당신과 강물에 속삭이는 거예요 어떤 이들은 그 풍경을 소중히 여겨서 강가의 조약돌이며 반짝임까지도 모두 모아서 도서관으로 보낸다

/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부분 (p.65)


✴︎

 님아 그 강 그 강 모두 강 때문이죠

 번들거리는 몸도 마음도 강 때문이죠

 수영을 시작한 건 귀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죽을 것처럼 보고플 때 빠지지 않고

 숨을 색색 쉬며 용감하게 나아가려고

/ 「자유형」 부분 (p.82)


✴︎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라는 문장 앞에서 결국 셋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랑을 주는 일과 헛물을 켜는 일과 등불을 켜는 일이요. 그건 시를 쓰는 삶과도 닮아 있을까요?

/ 발문: 미친 말들의 슬픈 속도 | 박연준(시인) (p.104)


✴︎

 “어둠의 입장에서는 빛이 밤의 구멍”이라는 놀라운 통찰을 방에 들어온 반딧불이 바라보듯 봅니다. 눈이 환해지는 사유지요. 나방이 “기꺼이 저 먼 시간을 날아가 밤의 상처에 날개를 덮는”(「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 존재라고 쓴 당신을 생각합니다. 세상을 돌보듯 말을 돌보는 당신의 다정함을 생각합니다.

/ 발문: 미친 말들의 슬픈 속도 | 박연준(시인) (p.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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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 「청진」 ⛤

✎ 「수육」

✎ 「환」

✎ 「아름과 다름을 쓰다」 ⛤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 「시와 입술」

✎ 「연육」

✎ 「페이스트리」 ⛤


2부 |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 「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 ⛤

✎ 「일흔」

✎ 「둘」 ⛤

✎ 「소보로」

✎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 ⛤

✎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3부 |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내 안의 송아지를 사랑해

✎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 「몸무게」

✎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

✎ 「노랑」 ⛤

✎ 「등」 ⛤

✎ 「사이 새」

✎ 「우리는 기온이 낮을수록 용감해진다」 ⛤

✎ 「얼얼」

✎ 「자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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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24-046 | 강성은,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현대문학 (240419~240423)


❝ 별점: ★★★★☆

❝ 한줄평: 별일 없다기에는 조금 큰 별일

❝ 키워드: 겨울 | 눈 | 빛 | 기차 | 밤 | 거울 | 우울 | 돌 | 잠 | 그림자 |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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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 핀 서재 팝업스토어에서 눈여겨본 시집인데 나중에 사야지 하고 말았었는데요. 자꾸 생각나서 결국 위트앤시니컬에서 구매해 왔습니다.


✦ 별일 없다고 말하는 화자가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 나의 얼굴을 훔쳐가고’( 「손님」 부분), ‘모두 잠들어 있는 객차에 나 혼자 깨어 있는데 가도 가도 깨어 있는 사람은 나 혼자고, 기차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도 알 수 없는 겨울밤’( 「객차」 부분), ‘이제껏 본 적 없는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으나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이는 일요일 오후’( 「재난 방송」 부분), ‘동생들이 굶고 있어 떡을 훔쳐왔는데 세상은 망해버리고 동생들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잠든 얼굴로 울고 우는 얼굴로 잠드는 일’( 「제사」 부분) 같은 것들이 별일이 아니라고 할 순 없으니까요. 


✦ 에세이가 시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이어서 더 좋았어요. ‘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희고 불투명한 베일 같은 안개가 짙게 깔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생함에 안개가 글을 읽는 제 곁에도 다가온 것 아닐까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 겨울에 읽으면 더욱더 좋을 것 같은 시집입니다. 이제 겨울 하면 생각나는 시집은 많아져서 봄, 여름, 가을에 읽고 싶은 시집들도 찾아봐야겠어요. [📝 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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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 배를 가르자

흰 솜뭉치가 끝없이 나왔다


겨울이면 옷 속에 새를 넣어 다닌다는 사람을 생각했다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 「소설小雪」 (p.9)


✴︎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 「Lo-fi」 부분 (p.19)


✴︎

네가 태어나던 날과

네가 죽은 날 모두를 기억하는 건

행복이겠니? 불행이겠니?

그걸 행복으로 여긴다면

우린 행복해서 매일 울 거야

/ 「향이」 부분 (p.44-45)


✴︎

그것은 안개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베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밤의 거대한 장막을 걷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새벽의 침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안개는 오랫동안 펼쳐져 있던 허공과 골목과 학교와 은행과 공터와 빈 다락 안까지 스며들었다. 구름과 햇살과 나뭇가지를 B시를 그 베일 속에 숨겼다. 희고 불투명한 베일은 폭이 한없이 넓어서 아무도 그 시작과 끝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 에세이: 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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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소설小雪」 ⛤

✎ 「첫아이」

✎ 「손님」

✎ 「객차」 ⛤⛤

✎ 「Lo-fi」 (p.18) ⛤

✎ 「재난 방송」

✎ 「Lo-fi」 (p.26)

✎ 「녹음綠陰」

✎ 「상속자」

✎ 「향이」 ⛤⛤

✎ 「말년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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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24-045 | 프리드리히 횔덜린, 생의 절반

읻다 넘나리 2기 (240410~240419)


❝ 별점: ★★★★

❝ 한줄평: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몰락하는 조국···」, p.251)

❝ 키워드: 분열 | 신 | 밤 | 그리스 신화 | 고전 | 비가 | 송가 | 찬가 | 낭만주의 | 고전주의 | 종교 | 영감 | 계시 | 예언자 | 합일 | 영원 |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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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 넘나리 2기 세 번째 도서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집 『생의 절반』을 읽었습니다.


✦ 『생의 절반』은 읻다에서 출간된 은유 작가님의 번역가 인터뷰 산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번역가 중 한 분인 박술 님이 번역하셨는데요. 그 책의 인터뷰에서 ‘시 번역은 결과물이 시여야 하죠. 결과물이 아름답지않으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원본보다 아름다워도 돼요. (p.236-237)’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집을 읽는 게 기대되었어요. 독일어는 알지 못해서 독일어 원문과 비교하며 읽을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요. (참고로 은유 작가님의 책 해외문학을 즐겨 읽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 문학 번역이라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요!)


✦ 읻다 시인선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이번 시집은 다른 시집들에 비해 쉽게 읽히는 시집은 아니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그리스 고전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오랜만에 운율과 형식이 있는 시를 읽은 느낌이라 재미있기도 했어요! 독일어를 전혀 알지 못해도 단어를 보며 운율을 찾고, 또 번역된 단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읽는 게 좋았어요.


✦ 저는 횔덜린이 탑에 갇혀 스카르다넬리라는 서명을 남긴 최후기 시들에 가장 마음이 가더라고요. 현재 시제만 있고, 특정 인물이나 신이 등장하지 않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이름도 시간도 없지만’(p.366) 계절의 흐름만은 알 수 있는 시들. ‘서른일곱의 나이로 탑에 들어와 일흔셋의 노인이 된’(p.368) 횔덜린이 탑 안에서 ‘내다본’ 것은 아마 계절의 변화였겠지요. 그야말로 ‘생의 절반’을 탑 안에서 보내며 횔덜린은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해진 ‘영원’에 가까운 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에 머무르며 삶과 죽음의 구분조차 무의미해 결국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p.251)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구절이 더 와닿았어요. 횔덜린을 광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는 시대를 너무도 앞서 간 예언자이자 선지자였던 것은 아닐까요. 『횔덜린 서한집』을 함께 읽으면 더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읽어보고 싶어 졌어요. [📝24/04/23]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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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이러하다. 재화가 주어지고, 어느 신이 

몸소 은총을 내리더라도, 그는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직접 짊어져야만 하는 것. 이제 그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부르려니,

이제 마침내 그를 위한 말들이 꽃처럼 피어나야 한다. 

/ 「빵과 포도주」 부분 (p.21, 23)


✴︎ 

헤라클레스처럼 신과 싸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고통이다. 또한 이 삶을 질투하는 불멸도, 또 불멸을 나누는 일도 고통이다. 그러나 인간이 여름의 얼룩으로 뒤덮이는 일도 고통이다, 어떤 얼룩에 완전히 가려지는 일은! 이는 아름다운 태양이 행한 바, 그녀는 만물을 기른다. 장미를 들어 그리하듯, 빛살로 돋우며 젊은이들을 인도한다. 그러니 오이디푸스가 겪은 고통은 마치 가난한 남자가 무언가 부족하다며 탄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오스의 아들이여, 그리스의 불쌍한 이방인이여!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다.

/ 「몰락하는 조국···」 부분 (p.249,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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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완결작

✎ 「운명신들에게」

✎ 「빵과 포도주」 ⛤

✎ 「도나우강 원류에서」

✎ 「디오티마를 잃은 메논의 비가」 ⛤


2부 | 찬가

✎ 「생의 절반」 ⛤

✎ 「추억」 ⛤

✎ 「그리스」


3부 | 파편

1장 찬가 파편들

✎ 「언어」

✎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


2장 핀다로스 파편들

✎ 「진리에 대하여」 ⛤

✎ 「세월」


3장 시학-철학적 파편들

✎ 「몰락하는 조국···」


4부 | 메아리

✎ 「사랑스러운 푸르름 속에서···」

✎ 「봄」 (p.263)

✎ 「봄」 (p.267)

✎ 「가을」 (p.291)

✎ 「우정」 ⛤

✎ 「내다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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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절반
생의 절반
24-044 |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난다 (240302~240413)


❝ 별점: ★★★★★

❝ 한줄평: 너무 아름다울 땐 눈물이 난다

❝ 키워드: 사랑 | 돌봄 | 그리움 | 슬픔 | 단어 | 이야기 | 마음 | 무채색 | 흰색 | 회색 |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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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저는 시인이 쓴 산문집에 속절없이 스며들고 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도 그렇게 제 마음에 스며들어버린 한 권이었습니다. 


✦ 무채색의 단어들이 무지갯빛이 되어 마음에 꽃을 피우는 산문집이었어요. 이번 산문집도 아껴 읽느라 완독도 오래 걸렸고, 필사도 많이 하면서 충분히 정리하고 탐미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글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뿐 아니라 글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어요.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제목처럼, 너무 아름다울 땐 눈물이 나더라고요.


✦ 읽으면서 이렇게나 좋았는데,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 생기면 시인의 마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오더라도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습니다. [📝 24/04/19]


+ 이번엔 산문집 먼저 읽은 후에 시인의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고 있는데 이 순서도 좋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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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성분은 뭘까. 왜 빛이 났을까. 어쩌면 사람도 아주 더디게 녹고 있는 눈송이가 아니었는지.

/ 「눈」 (p.48)


✴︎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잠든 엄마를 옆에서 꼭 끌어안을 때 그 부피, 그 형상, 엄마의 골격. 그 순간 나는 출렁이는 물의 마음이 되어 엄마를 위해 쏴쏴 나를 버릴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부피와 질량 너머에 있다.

/ 「욕조」 (p.173)


✴︎ 

이런 것들은 생존과는 거리가 멀지만

때때로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걸 시라고 부를 수밖에. 무용하고 아름답고 명랑한 것을. 사랑스럽고 환하게 세상을 흔드는 것을. 파도를, 율동을, 운동을, 드가를, 춤과 리듬을, 시라고 뭉뚱그려 부를 수밖에.

/ 「시─이야기 1」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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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글


들어가며 │ 색색마다 거두는 게 사랑이라


1부 │ 많이 깎을수록 곡물은 새하얘진다

✎ 「검은 닭」

✎ 「눈」 ⛤

✎ 「눈사람」

✎ 「능陵」 ⛤

✎ 「돌부처」 ⛤


2부 │ 무의 땀은 이토록 흰빛이구나

✎ 「막걸리」

✎ 「목덜미」

✎ 「목화」 ⛤

✎ 「백묵白墨」


3부 │ 너무 보고플 땐 도라지를 씹어 삼킨다

✎ 「비구니」 ⛤

✎ 「빛」

✎ 「설맹雪盲」 ⛤

✎ 「수국」


4부 │ 날 수 있음에도 이곳에 남은 천사들처럼

✎ 「욕조」 ⛤

✎ 「윤 3」 ⛤⛤

✎ 「윤 4」

✎ 「시─이야기 1」 ⛤

✎ 「메뉴─이야기 6」

✎ 「입술」 ⛤⛤


5부 │ 조끼는 뚫린 채로 사랑을 해낸다

✎ 「지방紙榜」 ⛤

✎ 「편지지」 ⛤⛤


나가며 | 볼 수 없어도 계속 사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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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24-043 | 최진영, 오로라

위즈덤하우스 (240407~240407)


❝ 별점: ★★★★

❝ 한줄평: 겨울바람을 따라 자유로이 흐르는 마음

❝ 키워드: 이별 | 믿음 | 사랑 | 마음 | 외로움 | 혼자 | 바람 | 망각 | 기억 | 비밀 | 거짓 | 새 | 기다림 | 끝


✦ 제주의 겨울을 온몸으로 느낀 것 같은 작품이었어요. 최유진, 오세정, 오로라, 혹은 전혀 다른 그 어떤 이름을 가지든 화자가 ‘가장 적합한 혼자의 상태’를 찾아 ‘사랑에 이기거나 지지 않고 화합’할 수 있기를. 자유로워지기를.


✦ 너무나도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사랑’은 어쩌면 오로라를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올 겨울엔 이 소설을 들고 겨울 제주를 만끽하고 싶어 지네요. [📝 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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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무언가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믿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믿음은 둘째 또는 셋째구나. 어쨌든 첫째는 될 수가 없구나. 믿음은 사랑보다 슬프겠구나······ 생각하며 믿음, 믿음, 믿음 중얼거리다 보니 믿음과 미움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p.6)


✴︎ 

너는 천천히 창으로 다가간다. 먼바다로 나간 어선의 집어등이 가로등처럼 늘어서 있다. 너는 발코니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밤의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모호하고, 너는 거짓말의 자유를 생각한다. 이 섬에 너를 아는 사람은 없다. 네가 거짓을 말해도 거짓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너는 이 섬에서 최유진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물어본다면 ‘오로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로라는 한때 네가 무척 갖고 싶었던 이름.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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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24-042 |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240401~240404)


❝ 별점: ★★★★

❝ 한줄평: 친애하는 나의 엄마에게,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 키워드: 죽음 | 이별 | 추억 | 그리움 | 가족 | 엄마 | 불안 | 불확실 | 이해 | 사랑


✦ 항상 백수린 작가님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지난주 목요일 현대문학 핀서재에서 진행한 백수린 작가님과 안희연 시인님의 북토크에 가게 되어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게 되었어요. ‘엄마’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책을 읽었는데 이 책으로 작가님 작품을 처음 읽게 되어 더 좋았습니다.


✦ ‘사랑’보다 뭔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친애’라는 단어.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애틋함과 뭉클함을 느꼈어요. ‘엄마’라는 단어는 항상 눈물 치트키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엄마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데, 어쩐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아 꾹꾹 눌러써서 편지를 마무리했어요. 문득 사랑과 고마움을 더 자주 표현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이 될 것을 짐작하고 예분과 현옥, 인아가 화단에서 찍은, 꽃이 보이지 않는 그 사진 한 장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아요.


✦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작가님의 낭독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조금 눈물이 날 것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면.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모래를 밟다 짙푸른 파도를 향해 달려가는 한 여자, 그리고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 아이는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또 그 아이가 자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일.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같지만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건 모두 기적 같은 일. ‘엄마가 된다는 것이 자유의 가능성을 낳는 일’(신샛별, 「작품해설」)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여성들이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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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날에는 삼계탕을 나눠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지어 먹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함께 먹는 사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날 같이 보낼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라고 할머니는 언젠가 내게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할머니를 살게 했던 사람들은 나나 엄마가 아니라 아가다 할머니와 글로리아 할머니였는지도 모르겠다. (p.91)


✴︎ 

“그 바닷가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어.” 

나는 아랫배를 노크하는 것 같은 규칙적인 태동을 느끼며 할머니가 기억하는 완벽한 여름, 그러니까 공기는 뜨겁고 향기로웠으며 짙푸른 파도가 곧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래밭 위로 부러진 나뭇조각과 깨진 조개껍데기가 나뒹굴던 그 여름을 상상했다. 그런 완벽한 여름의 어떤 날, 연노란색 태양이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을 때,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밟고 걷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옷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알몸의 여자와 그 옆에 서 있던, 세월이 좀 더흐르고 나면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를.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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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
친애하고, 친애하는
24-041 | 구현우,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

현대문학 (240304~240330)


❝ 별점: ★★★★★

❝ 한줄평: 시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마음

❝ 키워드: 슬픔 | 꿈 | 빛 | 밤 | 어둠 | 따뜻함 | 눈 | 어른 |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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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사단으로 필사를 하며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은 시집입니다. 제 취향의 시집은 천천히 한 편씩 꼭꼭 마음에 새긴다는 느낌으로 읽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아요.


✦ 쓸쓸하고 슬픈 듯하면서도 그 안에 스민 다정함과 따스함에 읽는 내내 마음이 충만해졌어요. 이 시집은 딱 너무 춥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연한 봄이 찾아오지 않은 초봄에 생각나 다시 읽게 될 것 같은 시집입니다. 


✦ 마지막 에세이는 공감 가는 문장이 참 많았는데요.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고 잘 즐길 수 있게 된 후에 읽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 ‘연한 노을빛에서 한달음에 짙어지는 밤하늘 같이 조금씩 진해지는 얼그레이’( 「얼그레이 그리고 둘 이상의 이야기」 부분)처럼 천천히 우려낸 얼그레이 티 한 잔을 곁에 두고 읽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 24/04/04]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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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들이 한창 바쁠 오후 두 시에 잠에서 깨곤 합니다 정신을 차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불은 계속 덮은 채고요 오늘의 날씨를 검색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약속이 없어서 그런 건 상관이 없는데

저는 당신이 걱정한 것보다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분 (p.10)


✴︎

네가 나오는 꿈은 모두 나쁜 꿈이지만

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꿈이 되지도 않는다

/ 「무의식적으로」 부분 (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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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나는 번갈아 발을 내딛는 법을 까먹곤 합니다.

남들처럼 하면 된다는데, 남들만큼 하기 버겁습니다. 친구는 내가 그럴 만한 나이라는데, 조숙한 아이라기보단 모자란 어른이 된 기분입니다.

/ 「악천후」 부분 (p.113)


✴︎

나타났을 때처럼 그는 말도 없이 떠났습니다. 머리맡 조명을 조금 더 아늑한 색으로 바꾼 날부터였습니다.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해주지도 맛있는 것을 같이 먹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가장 슬플 때 울도록 두었습니다. 기쁠 때도 웃도록 두었습니다. 그 점이 좋았습니다. 내게 동조하지 않는 나만의 실루엣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아마 언제나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내 곁에 있을 것입니다.

/ 에세이: 아주 오래된 대화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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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
반가운 이 사람의 블로그 : )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함께 조용한 질문 하나씩[n회차 독서기록]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를 다시 펼치며, 두 번째 읽는 중간 단상
내일의 고전을 우리 손으로
[도서 증정] 내일의 고전 <불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내일의 고전 소설 <냉담>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8) [제발트 읽기] 『이민자들』 같이 읽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예제가 뭐에요?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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