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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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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 | 듀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읻다 넘나리 2기 (240311~240328)


❝ 별점: ★★★★

❝ 한줄평: 듀나에 대한 편견을 깨준 재미있는 단편들

❝ 키워드: 나비효과 | 시간여행 | 타임머신 | 로봇 | 함정 | 도플갱어 | 상상 | 원칙 | 평행우주 | 살인 계획


❝ 컴퓨터가 신문물이었고 인터넷은 아직 대중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았으며 한국 SF의 계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천진난만한 그 시절에, 장르소설을 갖고 놀던 듀나란 사람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만큼 좋은 선택지가 또 있을까? 마감일이 없어도 폭포수처럼 작품을 쏟아내던 ‘90년대 레트로 듀나’를 다시금 만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

/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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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 넘나리 2기 두 번째 도서로 듀나의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 단편집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를 읽었습니다.


✦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듀나라는 사람을 영화 평론가로 먼저 접했고, 그동안 그에게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는데요. 이 단편집에는 작가의 초기 단편 21편과 함께 21편의 코멘터리가 실려 있어서 처음 듀나를 접하는 사람도 작가와 작품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 저는 이 책의 메인 테마로 꾸려진 ‘하이텔’을 접한 적이 없는 독자고, 듀나의 작품은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좋아하는 SF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들이 웃기고 재미있어서, 때론 오싹하고 소름 돋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작품 공개일을 가리고 읽는다면 30년 정도 전에 쓰인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트렌디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 특히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미메시스〉, 〈바벨의 함정〉, 〈도플갱어〉, 〈렉스〉, 〈원칙주의자〉, 〈꼭두각시〉였어요. 재미있게 읽은 단편들의 공통점이라면 반전과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직접 읽어보시면 전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ㅎㅎ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길지 않은 단편이 여러 편 실려 있어 어렵지 않게 페이지를 넘기실 수 있어요!


✦ 듀나라는 거장의 초기 작품 세계가 궁금하신 분은 미발표 데뷔작뿐만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득한 코멘터리가 실린 이 단편집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특히 하이텔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24/03/29]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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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런 렉스의 존재를 떠받쳐 준 것은 사람들의 믿음이었어요. 공포와 미신의 대상이었을 때만, 존재와 비존재의 어정쩡한 사이에 있을 때만, 렉스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p.158)


✴︎ 

 “ (...) 판사님, 저는 원칙주의자입니다.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원칙을 잘 알고 원칙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판사님도 법률가이시니 여기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요.” (p.209)


✴︎ 

사실 따져보면 자유의지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을 선택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주변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우리의 행동 패턴, 취향들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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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24-039 | 나쓰메 소세키, 마음

문학동네 특별판 (240304~240316)


❝ 별점: ★★★

❝ 한줄평: 술술 읽히지만 와닿지는 않았던 한 사람의 ‘마음’

❝ 키워드: 마음 | 사랑 | 행복 | 고통 | 모순 | 고백 | 죽음 | 악인 | 속죄 | 인간다움


✦ 선생님이란 인물을 이해할 순 있었으나 공감은 가지 않아서 기대한 것에 비해선 아쉬웠던 작품이네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순, 그리고 인간다움과 악인의 기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 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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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던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했던 것 같다. (p.17)


✴︎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 (p.43)


✴︎ 

노기 대장은 삼십오 년간이나 죽자 죽자 생각하며 죽을 기회를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에게는 살아 있던 삼십오 년간의 세월이 고통스러웠을까,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순간이 고통스러웠을까,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해봤습니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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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양장)
마음 (양장)
24-038 | 이제니, 새벽과 음악

시간의흐름 (240223~240312)


❝ 별점: ★★★★★

❝ 키워드: 새벽 | 음악 | 글쓰기 | 시론 | 기억 | 마음 | 고독 | 사랑

❝ 한줄평: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도, 내내 무탈하기를, 내내 아름답기를.’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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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하고도 고유한 리듬으로 흘러가는 산문집이었어요. 아끼고 아껴 읽느라, 마음에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 정말 많아서 필사노트에, 아이패드에 필사하느라 완독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마음의 울림은 정말 큰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왜 좋았는지 설명하기에 제 언어가 너무도 부족해서 많은 말을 보태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말 정말 좋았어요.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이 책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당분간은 천천히 에세이랑 시 위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산문집이에요. 언제 읽어도 정말 좋겠지만 추운 겨울에 더 생각날 것 같은 책입니다. 책에 수록된 QR 코드로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들으며 읽으면 더더욱 좋습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을 많이 만나 행복한 독서였어요. [📝 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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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림은 계속된다. 작은 사각의 공간 속에서 하나인 채로 여럿으로 울리고 있는. 영원이 영원히 나아가는 것을 본다.

/ 「내 방 여행 — 천장과 바닥 사이에서 일주일」 (p.117)


✴︎ 

마침표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결국 나에게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에게로.

/ 「미지의 글쓰기」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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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글


I. 음악 혹은 고독, 어쩌면 사랑이라고 불렀던 순간들

✎ 「체첵 — 꽃의 또 다른 이름」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 「그 빛이 내게로 온다」

✎ 「꿈은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 새벽 일기 2016년 2월 7일 01시 31분」 ⛤

✎ 「사물에 익숙한 눈만이 사물의 부재를 본다 — 새벽 일기 2016년 9월 2일 04시 27분」

✎ 「내 방 여행 — 천장과 바닥 사이에서 일주일」

✎ 「마전 — 되풀이하여 펼쳐지는」 ⛤


II. 다시 밝아오는 새벽의 리듬으로부터

✎ 「미지의 글쓰기」

✎ 「꿈으로부터 온 편지 — 천상의 음(音)을 노래하는 당신에게」

✎ 「새벽녘 시를 읽는 그대에게」 ⛤

✎ 「이미지는 언어를 요구한다」

✎ 「종이의 영혼」

✎ 「백지는 삭제된 문장을 품고 있다」 ⛤

✎ 「묘지 산책자의 편지」

✎ 「아침의 나무에서 새벽의 바다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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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음악
새벽과 음악
24-037 | 안 세르, 가정교사들

은행나무 (240307~240307)


❝ 별점: ★★★★

❝ 한줄평: 다채로운 색깔을 품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소설

❝ 키워드: 가정교사 | 파티 | 사냥 | 욕망 | 감시 | 관찰 | 관음 | 시선


✦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렵고 섬뜩하기도 한 이야기. ‘시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 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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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 이네스가 돌아올 것이다. 셋이서 카드놀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일, 아니면 한 달 뒤, 혹은 일 년 뒤, 또 다른 낯선 남자가 그들의 내밀함 속으로, 갑자기 마법처럼 열리는금빛 철문 뒤에 놓인 밤처럼 감미로운 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될지. (p.33)


✴︎ 

그리하여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 이 집 위로 떨어져야 삶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고, 철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들이 뽑히고, 집이 자리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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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
가정교사들
24-036 | 김이듬,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문학동네시인선 204 (240228~240303)


❝ 별점: ★★★★★

❝ 한줄평: 영원히 알 수 없을지라도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묻고 궁금해하고 들여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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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여는 첫 시부터 시집을 닫는 마지막 시, 그리고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해설까지 완벽했던 시집. 현실의 슬픔과 맞닿아 있으나 그럼에도 사랑을 향하며 본질과 존재에 관해 질문하고 탐구해 나가는 화자. 그렇기 때문에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을 혼동하지 않을 때까지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가진 양면성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24/03/04]


(*문학동네 우필사 특별반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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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이 내 삶의 절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미래에도 더 아래로

사람들은 모든 서사에 절정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강렬한 클라이맥스 없이도 아름다운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단조롭거나 자연스러워도 좋을 텐데

자연사처럼 쉽지 않겠지

/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 부분 (p.69-70)


✴︎

서로에게 묻지 않았다

너의 본질은 뭔지

자신다워지는 게 뭔지

자신이 꼭 있어야 하는지 

네가 사랑하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 「올스파이스」 부분 (p.115)


✴︎

사망자 대부분이 이십대였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조율하고 연습만 했던 이들이 많았다 생애 동안 준비만 했던 이들이 많았다


객석의 사람들이 구경만 한 건 아니었다 몇몇 부상자가 있었다 별로 실력도 없는 교향악단 연주회에 왜 갔느냐고 비난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다 나는 계속 야상곡을 틀어놓은 채 선잠이 들었었다 눈물을 닦는다 꿈이 아닌 것 같다

/ 「신년 청춘음악회」 부분 (p.141)


✴︎

한 사람의 삶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계속 살아나가게 하는 무언가가 사랑일 수 있을 거란 낙관적인 믿음은 어쩌면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본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무엇으로 ‘나’의 실존을 회복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이듬의 시는 아직 쓰이지 않은 사랑의 본질을 향해간다.

/ 해설: 복행(復行)의 시 | 소유정(문학평론가)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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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여기 내 살갗의 무늬가 있다

✎ 「폐가식(閉架式) 도서관에서」 ⛤

✎ 「법원에서」

✎ 「간절기」 ⛤

✎ 「저지대」

✎ 「다행은 계속된다」 ⛤

✎ 「사랑의 역사」


2부 | 우리의 몸속엔 각자의 바다가 있다

✎ 「십일월」 ⛤

✎ 「저속」 ⛤

✎ 「카프리치오」 ⛤

✎ 「귓속말」

✎ 「당신의 문」


3부 | 나는 내 생애 최고의 시를 쓰고 있어요

✎ 「내일 쓸 시」 ⛤

✎ 「후배에게」 ⛤

✎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 ⛤

✎ 「드라이클리닝」 ⛤

✎ 「내가 던진 반지」

✎ 「필균의 침대」

✎ 「문라이트」 ⛤

✎ 「여름 효과음악」


4부 | 아직 나의 영혼은 도착하지 않았다

✎ 「두 유 리드 미」 ⛤

✎ 「도로시아」

✎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

✎ 「너는 여기에 없었다」 ⛤


5부 | 악몽은 잘 이루어진다

✎ 「사악한 천사의 시」 ⛤

✎ 「올스파이스」 ⛤

✎ 「조용한 겨울」

✎ 「현지인」


6부 | 어쩌면 시에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 「신년 청춘음악회」 ⛤

✎ 「켤레」

✎ 「모르는 지인」 ⛤

✎ 「그림자 없는 여자」

✎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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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것과 없는 것
투명한 것과 없는 것
24-035 | 안담, 소녀는 따로 자란다

위즈덤하우스 (240229~240229)


❝ 별점: ★★★★

❝ 한줄평: 비밀을 품은 여자애 혹은 소녀 혹은 여자

❝ 키워드: 학창 시절 | 사춘기 | 과도기 | 고민 | 단짝 | 우정 | 소녀 | 비밀 | 초대 | 원망

❝ 추천: 비밀스러운 소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저 남자애는 알까? 팔짱을 끼는 여자애들은 잔망 떠는 연습을 내게 다 한 뒤에 진짜로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선보이러 떠난다는 걸. 나하고 연습했다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 (p.55)


💖 첫 문장: 나를 곁에 두길 즐겼던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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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픽 역대 조회수 1위라는데 홈페이지에 공개되었을 때는 아쉽게 놓쳐서 읽지 못했는데요. 단행본 출간 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 보니 많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이유가 이해되었습니다. 여자애도, 남자애도 될 수 없어 교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아이. 교실 어딘가에 있었을 그 아이를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그 아이에게서 자신을 본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저학년도 고학년도 아닌 어중간한 학년,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여자애도 여자도 아닌 어중간한 소녀. 애매모호한 과도기의 어떤 심리를 정말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밀’ 이야기와 놀이를 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함께 비밀스러운 여정에 동참한 것처럼 숨을 죽여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 ‘비밀이 고여드는 우물’인 ‘나’. 기억은 나지 않아도 누구나 어릴 적 친구와 속삭인 비밀 한 개쯤은 있겠죠. ‘비밀은 누군가에게는 말해야 비로소 비밀인 걸까?’(p.45)라는 ‘나’의 물음처럼 그때는 왜 그렇게 비밀을 만들어 서로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걸까요. 그 시절의 교실로 돌아간 듯한 생생한 느낌이 생경하면서도 또 그립기도 했습니다.


✦ 지금까지 읽었던 위픽 시리즈 중에 가장 짧았던 것 같아요. 위픽 시리즈는 단행본마다 분량 편차가 좀 있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올해 홈페이지에 공개된 시즌 2는 분량이 좀 더 긴 거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중편 정도의 볼륨이면 책 구매 의향도 더 높아질 것 같습니다. [📝 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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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곁에 두길 즐겼던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길 좋아하고, 업신여기는 표정이 기본인 애들. 그런 얼굴을 하도 많이 하다가 코도 조금 들창코가 된 것처럼 보이는 애들. 눈치도 안 보고 분홍이거나 주홍인 물건을 고르는 애들. (p.5)


✴︎ 여름방학의 어느 날 저들은 모두 한 번씩 혼자서 나를 찾아왔었다. 서로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뒷문으로만 내어놓는 비밀들이 고여드는 우물이다. 마음속에서 그 비밀들이 서로 닿지 않도록 분류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짜릿하고 누군가에게는 잔인할 그 작은 접촉이 내게 간접적으로 미칠 영향을 가늠해본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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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따로 자란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
24-034 | 황인찬, 희지의 세계

민음사 (240216~240228)


❝ 별점: ★★★★

❝ 한줄평: 설명하기 어려운 ‘좋음’

❝ 키워드: 사랑 | 인간 | 슬픔 | 영혼 | 빛 | 거리 | 죽음 | 마음 | 꿈 | 아픔 | 생각

❝ 추천: ‘황인찬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


❝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

/ 「종로사가」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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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의 시’ 시리즈의 시집은 처음 읽어보는데요. 민음북클럽 잡동산이를 읽으면서 민음사에서도 국내 시인들의 시집을 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난 패밀리데이 때 궁금했던 시인들의 시집을 구매했었어요.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그때 구매했던 시집 중 한 권입니다.


✦ 황인찬 시인은 문학동네의 시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즌 2의 필진으로 참여하셔서 알게 되었는데요. 2주에 한 번 받아보는 글이 정말 좋아서 시집을 읽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가 엄청 난해하진 않은데 뭔가 알듯 말듯한 어려운 느낌이었어요. 왜 좋은지 딱 짚어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는 그냥 좋았어요. 종로 시리즈 중에서는 「종로사가」라는 시가 제일 좋았는데, 언제부터, 얼마만큼 오래 계속된 것인지도 모른 채 거리를 끝없이 헤매는 두 사람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 겨울 느낌의 시들도 많았지만, 여름 생각이 나는 시들도 많아 언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겨울 느낌의 시들에서 좋았던 구절이 많아서 다음 겨울에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민음의 시 189 『구관조 씻기기』와 최근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94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도 궁금해지는 시집이었습니다 🥰 [📝 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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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 새하얀 것들은 무엇일까 저걸 뭐라고 부르나 나는 대체 무엇으로 창을 닦은 걸까 또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모두 하얗다 보이지 않는다 눈은 내리지 않는 것이다 겨울은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인 것이다 그렇다면 저 새하얀 것들은······

/ 「이 모든 일 이전에 겨울이 있었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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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 「건축」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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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녹는다는 것을 알아 버린 눈이 전력을 다해 서서히 녹아내릴 때, 유리는 생각을 했다 다 녹고도 남아 있는 눈의 흰빛을 받으며 생각을 했다


유리가 보는 것은 유리에 비친 것들에 대한 생각이고

유리의 마음속에는 고통이 있다

/ 「무정」 (p.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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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두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알았다 내 사랑의 미래가 거기에 있고 지금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


나는 깜짝 놀라서 집을 나왔고


이제부터 평생 동안 이 죄악감을 견딜 것이다

/ 「인덱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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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실존하는 기쁨

✎ 「새로운 경험」

✎ 「희지의 세계」 ⛤

✎ 「조물」

✎ 「이 모든 일 이전에 겨울이 있었다」 ⛤

✎ 「종로사가」 ⛤⛤

✎ 「혼다」

✎ 「저녁의 게임」

✎ 「종의 기원」


2부 | 머리와 어깨

✎ 「다정과 다감」

✎ 「조율」

✎ 「소실」

✎ 「물산」

✎ 「건축」 ⛤

✎ 「유사」

✎ 「무정」 ⛤

✎ 「지국총」 ⛤


3부 | 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

✎ 「이것이 시라고 생각된다면」

✎ 「기록」

✎ 「영원한 친구」

✎ 「너의 아침」 ⛤

✎ 「인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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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의 세계
희지의 세계
24-033 | 안미옥, 힌트 없음

현대문학 (240224~240225)


❝ 별점: ★★★★

❝ 한줄평: 힌트 없음, 그러나 희망은 있음

❝ 키워드: 사람 | 미래 | 시간 | 빛 | 희망 | 삶 | 벽 | 질문 | 대답 | 의문

❝ 추천: 힌트는 없어도 질문과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삶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


❝ 나는 이제 ‘나’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부분을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의 방식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지점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 ❞

/ 에세이 | 후추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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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마지막’에 있는 희망. 그렇지만 ‘가장 마지막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무거운 사람들의 뒤통수’(「가장 마지막 수업」 부분, p.39). 판도라의 상자에 가장 마지막에 남아 있던 것이 희망이었던 게 떠올랐어요. ‘가장 마지막’은 어디일까, 또 희망이 정말 ‘가장 마지막’ 순간에 찾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할까. 우리에겐 그 답에 관한 아무런 힌트도 없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믿고 나아가야겠죠. 


✦ 시도 시지만 에세이가 참 좋았던 시집입니다. ‘나무’처럼 가지를 뻗어나가며 연결되고 확장되는 지점을 보고, 또 그런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시인의 에세이가 좋아서 시인의 다른 시집이 궁금해졌어요. 문학동네의 시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로 알게 된 시인인데, 핀시리즈에 안미옥 시인의 시집이 있길래 이 시집을 먼저 읽게 되었는데요.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힌트 없음』 다음에 출간된 시집인 문학동네시인선 187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가 엄청 궁금해졌고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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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향해 복을 빌어주는 일을 배워서

 너의 시간을 축복해야지 

  

 네가 어딘가에 도달할 때까지 

  

 너의 흰 재의 시간

 마른 장미의 시간을

/ 「애프터」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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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독이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서려 할 때

 대체 희망은 어디 있는 거지? 물음이 들려올 때 

  

 옆에 앉은 사람이 작게 말했다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있다고 

  

 가장 마지막은 어디일까 알 수 없어서

 돌아가려던 사람들의 뒤통수가 무거워졌다

/ 「가장 마지막 수업」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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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초. 오랫동안 삶은 밀고 나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했고. 1초. 왜 한 방향의 질문만 갖고 있었을까 생각했고. 1초. 이제부터 삶은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아서지 않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가능하고 무섭다.

/ 「렌탈 테이블」 (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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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래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쓰는 미래는 언제나 과거에 있었다 마치 태어나는 일처럼

/ 「공 던지는 사람들」 (p.61)


✴︎

 진짜 옆에 있는 것은 가짜가 아니다. 진짜 옆엔 아무것도 없다. 부를 이름이 부족해서 진짜라고 하는 것. 진짜는 무수한 다른 것들의 이름. 안으로 들어가면 넓고 깊다. 알게 된다. 커지는 알갱이. 많아지는 알갱이.

/ 「힌트 없음— 질문과 대답」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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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좋은 후추가 되고 싶다는 말과 얼마나 다를까. 예전엔 무턱대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단어나 문장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위선은 아닐까. 그 문장이 나의 테두리가 되어 나를 가두고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그 테두리를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다. 매일 만들고 깨닫고 그리고 다시 부수면서 살고 싶다. 말에 갇히지 않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함몰되지 않고. 쓰는 일이 그것을 조금은 가능하게 해주지 않을까.

/ 에세이: 「후추」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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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조망」

✎ 「아주 오랫동안」 ⛤

✎ 「애프터」 ⛤

✎ 「모빌」

✎ 「펭귄 섬에 있다」

✎ 「가장 마지막 수업」 ⛤

✎ 「렌탈 테이블」 ⛤

✎ 「기시감」

✎ 「해운대」

✎ 「변천사」 ⛤

✎ 「공 던지는 사람들」 ⛤

✎ 「핀트」

✎ 「그런 것」

✎ 「파이프가 시작되는 곳」

✎ 「힌트 없음— 질문과 대답」 ⛤

✎ 「미래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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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없음
힌트 없음
24-032 | 박상수,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현대문학 (240223~240224)


❝ 별점: ★★★★☆

❝ 한줄평: 실패는 끝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떤 사람

❝ 키워드: 마음 | 꿈 | 슬픔 | 기분 | 어둠 | 실패 | 마지막 | 끝 | 이야기 | 존재

❝ 추천: 좌절하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그 이후의 삶을 이어나가는 화자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어쩔 수 없는 실패, 그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증명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에도 조금 울겠지. 그러나 훨씬 담담하게 울 수 있게 되겠지. ❞

/ 에세이 | 나의 디바 주동우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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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목소리를,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나를 혼잣말로 두지 않아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 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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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웃는다 너는 바보처럼 웃는다 너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는다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지옥,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실패, 너는 실패의 지옥에서도 지키려고 애를 쓴다 부서져도 전부 부서지지는 않으려고 어딘가 안쓰럽게 애를 쓴다 다시 붙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완전하게 웃지는 않고 버틴다

/ 「한 줌의 사람」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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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는 빛에 대해 생각하면 미래에 도착한 것만 같다 미래에 도착해서 나는 과거를 지켜본다 이미 도착해서 과거의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무미건조하게,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이, 그러면 실패한 기분이 사라질까,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 나는 타인에게 말을 건넨다 타인에게 말하면서 타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오방을 돌아본다

/ 「증명할 수 없는 사람」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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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지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단다, 내겐 부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부리로 네 깃털을 가다듬고 윤을 내어줄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는 거니까, 그 일들이 너를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니까,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벌주려 하지 말아, 올겨울에는 연탄난로 곁에서 같이 얼린 홍시를 나눠 먹어야지.

/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p.59-60)


✴︎

건너간 다음에야 내가 건너온 것을 돌아볼 수 있겠지 건너왔지만 건너온 것을 모르기도 하겠지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사각 행거에 달아놓은 소원 쪽지들이랑 라탄 바스켓에 담아둔 마른 옷들을 매만지며 아직도 이런 것이 남아 있구나, 꿈속에서는 내가 아직 없어지지는 않았구나 옷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기도 하겠지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조용히 흘려가는 꿈, 사람들은 일을 하고 철근 공은 움직이고, 하나의 꿈을 열고 또 하나의 덧문을 열면서 나는 자꾸자꾸 흘러가고 있었어.

/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 (p.77)


✴︎

여기 남기로 선택해서 너의 목소리는 이야기가 된 거야, 여전히 너는 어둡고, 마침내 실패했고, 실패한 것은 작은 사건일뿐 눈을 가리는 진실은 아닌 거라고, 내가 여기 있을게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흘러가겠지만, 이제 우리 이 긴 겨울을 같이 흘러가자 오각형으로 팔각형으로, 꺾어지고 굽혀지다가 다른 세계와 섞이고 가늘어지고 결정이 되고 눈발이 되어서 다 잊어버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조금씩 흩날리기로 하자 웬 검은 눈이 내린다고, 아주 긴 오지의 시간 여행을 해온 눈이라고, 사람들은 입술을 모으겠지만 볼주머니에 도토리 열 개는 집어넣은 다람쥐의 마음으로 울지도 웃지도 않으면서 내가 너의 목소리에 목소리를 덧댈게 너를 절대 혼잣말로 두지는 않을게. 

/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p.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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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기차를 타고 밤 약속」

✎ 「안개 숲」

✎ 「무호흡」 ⛤


2부

✎ 「작은 선물」

✎ 「한 줌의 사람」 ⛤

✎ 「윤슬」 ⛤


3부

✎ 「증명할 수 없는 사람」 ⛤

✎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

✎ 「다하지 못한 마음」 ⛤


4부

✎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 ⛤

✎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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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24-031 | 이제니,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현대문학 (240205~240222)


❝ 별점: ★★★★★

❝ 한줄평: 시의 제목들을 모으면 또 한 편의 시가 되는 시집

❝ 키워드: 울음 | 슬픔 | 고독 | 물결 | 어둠 | 기억 | 노인 | 죽음 | 빛 | 영혼 | 밤 | 음악

❝ 추천: 음악을 닮은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싶은 사람


❝ 그리하여 중요한 말은 종이 위에 쓰인 말이 아니라. 쌓이고 쌓이면서 지워지고 지워지는 말들. 그렇게 지워짐으로써 종이 위에 다시 드러나는 말들. 그렇게 말과 말 위로 어떤 겹과 겹을 만들어주는 말들이다. ❞

/ 에세이 |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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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이 참 좋다는 분들이 많길래 산문집을 읽기 전에 핀시리즈 시인선 013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를 읽어 봤어요. 제 인생 시집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


✦ 목차를 읽는 순간부터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시들의 제목을 쭉 읽다 보니 그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에세이까지 모두 읽으니 이 시집의 제목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가 정말 와닿았어요. 시집에 실린 시들과 시집 제목이 딱 어울릴 때 더 감동받는 편 🥹


✦ 저에게는 어둠과 고독, 기억과 망각, 밤과 물결, 슬픔과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시집이었어요. 「사막의 말」과 「현악기의 밤」이 특히 좋았는데요. 시를 읽다 보면 모든 시인 각자의 언어는 참 독특하고 그래서 유일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 다름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요.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을 읽으며 시인은 ‘시를 쓰고, 쓴 것을 쌓고, 또 지우고 지우며 그렇게 드러나는 말들을 남기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이지 않는 말의 흔적을 쌓아가는’ 사람의 산문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


✦ 밑에 좋았던 시의 제목들을 쭉 써두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시가 좋았어요.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시집을 만나는 일은 뜻밖의 행운이자 행복 🍀 [📝 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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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 것은 철 지난 노래를 부른 뒤의 일이었다. 벽과 벽을 물들이는 것은 꽃과 나무의 그림자였다. 타오르면서 스러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눈빛과 눈빛 사이의 간절함으로 이해했다.

/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p.13) 


✴︎

너는 어떤 질문 하나를 남겨둔 채 사막으로 떠나 두 번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깨달음이 후회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 「사막의 말」 (p.15)


✴︎

이 어둠이 걷히면. 이 기억이 스러지면. 어제의 양떼구름을 잊어버렸듯 오늘의 나무둥치의 상처도 잊게 되겠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기억할 것도 잊어야 할 것도. 간직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구해야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먼지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p.28)


✴︎

  너는 녹아내린 얼음 위에 다시 문장을 새기고 있었다. 읽히지 않는 무늬를 쓰다듬듯 어둠을 만지고 있었다. 투명한 사각형에서 드넓은 표면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저편에서 너를 부르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이름을 불러내고 있었다.

/ 「이누이트 이누이트」 (p.33)


✴︎

  너와 나는 재빨리 멀어져 갔다

  서로가 서로의 어둠에 물들지 않도록

  

  각자 등을 돌리고 열심히 걸어갔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막이 되어주려고

/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p.34)


✴︎

익숙하지 않은 배웅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에 문득문득 슬픔이 끼어들면서. 너를 너로서. 나를 나로서. 있는 그대로 그 자리로부터 울리면서 물들어가는. 어두운 밤이다. 밤의 노래를 듣고 있다.

/ 「현악기의 밤」 (p.48)


✴︎ 

  공작이 있다. 공작은 오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빛을 끌면서 걸어가고 있다. 하나의 영원처럼. 나는 그 공작 앞으로 다가가 구슬 하나를 굴려서 넣어준다. 어린 시절 그토록 꺼내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바로 그 유리구슬을.

  

  빛나라고. 

  같이. 더욱 빛나라고.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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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울고 있는 사람」 ⛤

✎ 「숨 쉬기 좋은 나라에서」

✎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

✎ 「사막의 말」 ⛤⛤

✎ 「처음처럼 다시 우리는 만난다」

✎ 「보이지 않는 한 마리의 개」

✎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

✎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 「이누이트 이누이트」 ⛤

✎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 「마른 잎사귀 할머니」

✎ 「우주의 빈치」

✎ 「높은 곳에서 빛나는 나의 흰 개」

✎ 「현악기의 밤」 ⛤⛤

✎ 「무언가 붉은 어떤 것」

✎ 「모나미는 모나미」

✎ 「달 다람쥐와 함께」

✎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 「흰 산으로 나아가는 검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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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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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기] 갈증, 예수의 십자가형이 진행되기까지의 이틀간의 이야기이수호 선생님의 교육 에세이 <교사 예수> 함께 읽기[올디너리교회] 2025 수련회 - 소그룹리더
인터뷰 ; 누군가를 알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그믐클래식] 1월1일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6월의 그믐밤도 달밤에 낭독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수북탐독을 사랑하셨던 분들은 놓치지 마세요
[📚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플러스] 1. 두리안의 맛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 벽돌책 같이 격파해요! (ft. YG)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
반가운 이 사람의 블로그 : )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함께 조용한 질문 하나씩[n회차 독서기록]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를 다시 펼치며, 두 번째 읽는 중간 단상
내일의 고전을 우리 손으로
[도서 증정] 내일의 고전 <불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내일의 고전 소설 <냉담>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8) [제발트 읽기] 『이민자들』 같이 읽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예제가 뭐에요?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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