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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의 기록민음사 (e-book, 240121~240220)
❝ 별점: ★★★★★
❝ 한줄평: 나는 왜 소설을 사랑하고 쓰는가
❝ 키워드: 소설 | 작가 | 문학 | 글쓰기 | 믿음 | 질문 | 답 | 인물 | 앎 | 말 | 언어 | 이야기 | 사랑 | 마음
❝ 추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정용준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 준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믿는 그것을 언제나 소중히 간직하세요.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살며 자신 있게 만세!를 외칠 수 있는 행복한 날들 되세요. ❞
/ 작가의 말 | 함께 쓰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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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북클럽 잡동산이를 읽으면서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책들이 몇 권 있는데, 그중 한 권이 정용준 작가님의 『소설 만세』였어요. 청년서가에서 열린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이 책을 구입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 소설은 ‘단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설명하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말에 반해 읽게 되었는데, 정용준 작가님의 소설에 관한 애정과 믿음, 열과 성을 다해 쓰는 마음, 인물을 살피는 법 등을 읽다 보니 정용준이라는 작가가 더더욱 궁금하고 빨리 알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정용준 작가님 책을 다섯 권이나 읽었어요. 원래는 장편 소설 『프롬 토니오』가 제일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 단편 아니면 중편을 읽게 되었네요. 여운을 조금 더 간직한 후에『프롬 토니오』도 읽어 보려고 합니다! 🐋
✦ 북토크에 갔을 때 작가님이 책에 사인을 해주시면서 ‘자유롭게 사세요. 행복해주세요.’라고 적어주셨는데요. 이 책의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날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쓰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사랑인 것, 사랑과 고통이 하나가 되는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셨는데요.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곁을 서성이고 움켜쥐려 노력한 사람’은 벌써 열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상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아직도 ‘소설에 대한 믿음이 없고, 항상 의심하고, 그래서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그냥 소설을 쓰고 싶다’는 사람. 저는 앞으로도 정용준 작가가 어떤 소설을 쓸지, 인물을 어떻게 살필지가 궁금해서 그의 글을 계속 읽을 것 같아요. [📝 24/02/21]
ꕤ 사실 책 내용으로 할 말도 정말 많은데 그러면 글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짧게 쓴다고 쓴 건데도 길어졌네요... 정용준 작가님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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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면 알수록 재밌고, 놀랍고, 슬프고, 먹먹해지는 단 하나의 이야기 속 단 한 사람. 자칫 뻔하고 상투적일 수 있는 평범한 삶이 특별해지는 것은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함이 적절하게 이야기될 때다.
/ 「단 한 사람의 세계」
✴︎ 쓰기의 욕망은 그리고 이해를 향한 노력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과 포기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나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것을 향해 자꾸만 다가서려는 걸까. 모순이다. 하지만 그 모순이야말로 소설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깨달음이라는 것을 안다.
/ 「「떠떠떠, 떠」와 『내가 말하고 있잖아』」
✴︎ 내버려두면 마음은 사라진다. 아무리 소중하고 중요하고 내게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두면 약해지고 작아지며 결국 소멸되고 만다. 좋아하는 마음, 열정, 흥미, 다 똑같다. 계속 좋아하고 싶으면 노력해야 한다. 줄어들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 계속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문학은 좋은 것이구나.’ ‘아름답고 멋진 것이구나.’ ‘이런 걸 느끼려고 내가 소설을 읽는 거였어.’ 이런 마음이 계속 있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읽고 문장을 휘감고 있는 매력을 발견하고주기적으로 감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문장과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가 공산품 같은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 「노력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원한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그냥 바라고 느끼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기도하는 순간까지도 플래너리 오코너는 알았던 것이다. 은혜를 구하기 전에,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것을 원해야 한다는 것을. 진짜 원한다면 작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원할 것.’ 당분간 내 좌우명.
/ 「구하기 전에 먼저 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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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 (240219~240219)
❝ 별점: ★★★★
❝ 한줄평: 부유하는 말들 사이에 홀로 서 있던 이들이 만나
❝ 키워드: 틱 | 병 | 말 | 마스크 | 버튼 | 흉터 | 악마 | 폭력 | 괴롭힘 | 혐오 | 마음
❝ 추천: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그런데 회복될 수 없는 조건을, 사라지지 않는 흉터 같은 것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인생도 있다. ❞
/ 작가 인터뷰: 그를 대신해 뭔가 말하고 싶었다 | 정용준 (p.81)
✂️ 첫 문장: 오후 2시 40분 한산한 역사.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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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Take Out) 시리즈 열여덟 번째 책인 정용준 글, 무나씨 일러스트로 구성된 단편소설 『이코』를 읽었어요. 틱 장애로 인해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말을 제어할 수 없어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고 말문을 닫아 버린 주우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다른 존재’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붙여 줬던 미이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데요.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재갈을 물어서까지 말하기를 거부하는 주우가 오래전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과 상처를 알아주고 공감해 줬던, 그래서 지금도 ‘치즈’가 하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짜 주우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미이를 통해 다시 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읽어본 정용준 작가님 소설 중에선 『유령』만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정용준 작가님 책을 읽다 보면 말의 무게나 대화와 소통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분명히 누군가를 아프게 할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입히기 위해 내뱉는 나쁜 말에 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주우와 미이가 더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괴로워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안 좋아하는 것은 더 슬프니까’요. [📝 24/02/20]
ꕤ ‘이코’라는 제목의 의미가 짐작 가시나요? 🧐
ꕤ 주우, 미이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이미, 우주인데 작가님이 인물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신 건지 궁금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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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불쌍하지 않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해도 난 진짜 괜찮아. 그랬는데 그들의 환대에 마음의 문이 열린 뒤 다시 닫혔을 땐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기어이 난 불쌍해진 거야. 그래서 마스크를 쓰기로 결심했어. 괜찮았어. 정말이야. 거추장스러운 것들 다 버리고 나니 고요하고 좋아. 세상 일을 어떻게 다 따지고 들겠어? 그런데 미이야. 너에겐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모습 보이기 싫었어. 하지만 미이야, 날 이해해 줘. 적어도 너만은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 (p.46, 48)
✴︎ 네가 키운다는 치즈. 그게 뭘까? 그 고양이도 이름이 있었을까? 미이야. 나는 그런 것도 하나 모른 채 널 잃어버렸어. 나중에 이야기해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넌 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지. 나는 네 고양이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어. 다만 알겠는 건 내게 치즈가 그러했듯 네 고양이도 널 힘들게 할 거란 거야. (p.52-53)
✴︎ 그동안 약하고 불쌍한 것들에 끌려왔어. 연민이랄까. 그 끔찍하고 무력한 성정이 내 안에 있는 게 싫어. 지긋지긋해. 정말.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걸 개라고 불렀어.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도 사랑하게 만들지. 나는 원치 않았는데도 개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 난 결국 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말았지. 힘드니까. 비참하니까. 그것을 사랑이라 그냥 믿어 버리는 거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엄청 편하단다.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그림자 밑으로 쑤셔 박을 수 있거든. 주우야. 난 그렇게 살아왔어. (p.67-68)
✴︎ 난 네가 괴로운 걸 원치 않아.
난 괴롭지 않은 것보다 그냥 너를 좋아하고 싶어.
그래라. 네 맘대로 해라.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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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arte) (240218~240218)
❝ 별점: ★★★★☆
❝ 한줄평: 우리 모두는 각자 ‘세계의 호수’를 품고 있어서
❝ 키워드: 여행 | 이별 | 재회 | 작별 | 대화 | 소통 | 마음 | 감각 | 용기 | 사랑 | 감정 | 선 | 기억 | 단절
❝ 추천: 이별에 관한 기억이 있는 사람, ‘소통의 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어쩌면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슬프게도(다행스럽게도) 작별을 이별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건 이별에서 작별뿐. ❞
/ 작가의 말 (p.140)
🫧 첫 문장: 다음 날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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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 한국소설선 작은 책 다섯 번째 책인 정용준 작가님의 『세계의 호수』를 읽었어요. 윤기가 7년 전 헤어진 연인 무주와 낯선 이국에서 재회하고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이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 윤기의 마음도, 무주의 마음도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누구 한 명의 편을 들 수도, 탓을 할 수도 없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이별이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p.139)이 든다고 말하는데요. ‘이별을 작별로 바꾸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쓰다 보니 작별을 이별로 바꾸려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p.140)는 말로 짐작해 보면 윤기와 무주는 ‘작별’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정용준 작가님의 에세이 『소설 만세』에 이별과 작별의 의미 차이가 나오는 글을 먼저 읽었는데, 거기서는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뜻한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이 문장으로 생각했을 때는 둘이 처음에 한 건 이별이고, 재회해서 한 게 작별이 아닐까 합니다.
✦ 세계의 호수, 그리고 세 개의 호수. 우리 모두 ‘세계의 호수’를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아닐까요. ‘잘못된 소통으로 만들어진 허상’(출판사 서평)이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한다면 존재하는 곳. 그래서 더 비밀스럽고 소중한 ‘나만의 호수’. 다들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세계의 호수’가 있으신가요?
✦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잊어버린’ (p.98) 사랑했던 이의 표정. 설명할 필요 없이, 소통할 필요 없이 모든 걸 다 안다는 게 과연 좋은 걸까요?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게 나쁜 걸까요? 마음을 들여다보며 만남과 이별,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소통의불가능성’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께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24/02/19]
+ 『소설 만세』와 『저스트 키딩』을 읽은 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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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는 목소리, 눈빛, 한숨, 웃음만 보고도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았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의 다름과 뉘앙스의 차이를 짚어냈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서 내 마음에 맞게 문장과 이야기를 고쳐주기도 했다. 무주와 헤어진 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지금 하필 느닷없이 오스트리아에서 콰콰콰 소리를 내며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올 수 있으면 와? 뭐?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이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나는 손을 비벼 뜨거워진 손바닥을 눈가에 댔다. (p.36-37)
| 무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무주는 마음을 말하지 않았고 묘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무슨 말을 하더라도 눈동자와 표정에서는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보였다. 말해보라고, 설명해보라고 채근하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그저 나를 꼭 안아줬다. 걱정 마. 괜찮아. 이런 말만 했다. (p.101)
| 감춘 마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 마음이 품고 있을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고 감춘 게 아니라 몰라서 감추고 있는 것. 사라지지도 소멸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모르는 마음.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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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240217~240217)
❝ 별점: ★★★★★
❝ 한줄평: 사랑을 듬뿍 ‘담은’ 따뜻한 이야기
❝ 키워드: 가족 | 겨울 | 밤 | 소원 | 꿈 | 해결사 | 기억 | 시간 | 비밀 | 괴물 | 주문 | 바다 | 사랑
❝ 추천: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찾는 사람,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로 힐링하고 싶은 사람
❝ “좋아해!를 다섯 번 더하면 사랑하는 거예요.” (p.72) ❞
🐚 첫 문장: 나나는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아 항상 늦잠을 자는 일곱 살 여자아이입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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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에서 출간된 정용준이 쓰고 고지연이 그린 동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를 읽었어요. 사랑스러운 아이 나나의 탐험기이자 성장기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아빠의 마음속 깊은 곳 봉인해 두었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기도 해요.
✦ 책을 펼치면 ‘정담은에게’라는 문구가 보이는데요. 정용준 작가님의 첫째 딸 이름이라고 해요. ‘담은이를 보며, 생각하며, 상상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님. 담은이를 향한 사랑이 눈에 보이는 듯한 책이었어요. 고지연 작가님의 그림이 나나의 세계로, 그리고 아빠의 세계로 생생하게 빠져들게 해 주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 나나와 아빠의 대화는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슬프기도, 때론 포근하기도 해요. 어른에게 어른의 힘듦이 있듯 일곱 살에게도 일곱 살의 힘듦이 있는 거겠죠. 아빠가 나나의 힘듦을 모두 알지 못하고, 나나가 엄마와 아빠의 힘듦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고 서로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해서 뭉클했어요.
✦ 여러분은 일곱 살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 괜찮아진 일이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만약 아이가 있으시다면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음속 깊은 곳 숨겨두었던 서로의 비밀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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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야 그러면 사랑한다는 것은 뭐야?”
나나는 손가락을 한 개씩 펴며 말했습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나나는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손을 번쩍 들었어요. 치즈가 멍! 하고 짖었습니다.
“좋아해!를 다섯 번 더하면 사랑하는 거예요.” (p.72)
| “아빠는 상자에 어떤 나쁜 기억을 넣었어요? 기억나요?”
“글쎄······”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아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쁜 꿈을 꿨지만, 그것 때문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지 않지만,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해요. 그리고 아빠는 생각했습니다. 나쁜 일을 상자에 넣고 바다에 던지는 것이 좋은 걸까? (p.81)
| “나나야. 전에 아빠에게 나쁜 기억을 상자에 넣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고 했지?”
나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든 기억은 소중해. 그러니까 바다에 집어넣지 마. 라라는 이마를 다쳤지만 언니하고 즐겁게 놀았던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아빠도 엄마도 때론 힘들어서 나쁜 말 하고 무섭게 대할 때 있지만 사실은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할 테니까 아빠와 엄마를 계속 기억해줘.”
사실 나나는 어떤 기억도 상자에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의 머리를 꼭 껴안고 뽀뽀를 해줬어요.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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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240215~240216)
❝ 별점: ★★★★
❝ 한줄평: ‘우리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
❝ 키워드: 재난 | 아포칼립스 | 바이러스 | 인간 | 죽음 | 이별 | 불행 | 상처 | 마음 | 삶 | 꿈 | 희망 | 기적 | 가족 | 사랑
❝ 추천: 폐허가 된 세상에서도 살아남은 사랑이 궁금한 사람
❝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한 줌 재로 돌아갈 그날에도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아주 많은 이들이 남긴 사랑의 말은 고요해진 지구를 유령처럼 바람처럼 떠돌 것이다. 사랑은 남는다. 사라지고 사라져도 여기 있을 우주처럼. ❞
/ 작가의 말 (p.192)
🌅 첫 문장: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 (프롤로그, p.9)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Ma rendi pur contento (이탈리아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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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6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었어요. 정체 모를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이 파괴되고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사랑’을 하는 여러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책입니다.
✦ 최진영 작가님의 담담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을 좋아해요. 이 책에서도 그런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다른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은 개인적으로 조금은 아쉬웠던 부분이 있긴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좋았어요. 도리와 미소, 지나와 건지, 그리고 류. ‘사람이 사람 같지 않아’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끔찍한 재앙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사랑을 하고, 사람답고 싶어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않고자 하고, 해가 지는 곳을 향해 끝없이 걸어갑니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p.18)하려는 이들. ‘서로를 지금 그대로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쌓을 수’(p.40) 있다고 믿는 이들. 이들이 보여주는 마음과 사랑은 ‘우리가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은 도리였어요. 도리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소를 지키려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에게도 도리처럼 절대 홀로 남겨 두지 않고 살아남아 지키고 싶은 미소 같은 사람이 있고, 만약 이 소설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도리에게 가장 감정을 이입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떤 인물에 가장 마음이 갔는지도 궁금하네요.
✦ ‘작가의 말’과 해설도 정말 좋았습니다. ‘사랑은 남는다. 사라지고 사라져도 여기 있을 우주처럼.’이라는 문장이 이 책의 여운을 더 짙게 만들어주었어요. 작년 민음북클럽 선택 도서는 세계문학 위주로 골랐었는데 올해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서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 미루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할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제일 와닿았던 말들인데요. 전자는 당장 실천하기 어려워도 후자는 지금 당장 할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미루지 말고 사랑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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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희망은 내가 움직여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 아니라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가 태양을 돌다 보면 나타나는 밝고 따뜻한 계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서 그 계절을 맞이하는 것뿐인지도.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겠지. 희망은 시간처럼 머무르지 않고 오고 가는 것. (p.23)
|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도 견뎌 낼 수 없다. (p.37)
| 나는 도리의 상처를 모르고 도리는 나의 상처를 모르고, 그러니까 서로를 지금 그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로 쌓을 수도 있을 것이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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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 | 넘나리 2기 (240212~240214)
❝ 별점: ★★★★☆
❝ 한줄평: 12라는 숫자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 키워드: 12 | ‘토끼’ | 감정 | 꿈 | 헤어짐 | 새로고침 | 희망 | 증오 | 변이 | 행복 | 인과관계 | 재난 | 구원
❝ 추천: 12라는 숫자와 얽힌 열두 편의 짧은 이야기와 열세 번째 세계가 궁금한 사람
❝ 열두 가지의 새로운 관점으로, 현실의 테두리 바깥에서 현실을 응시하는 작품. 이산화 작가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다. ❞
/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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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읻다 서포터즈 넘나리 1기에 이어 2기에도 선정되었어요! 앞으로 네 권의 책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읻다 선생님들!
✦ 읻다 출판사의 포션 시리즈 여섯 번째 책, 이산화 작가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는 작가가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했던 열두 편의 짧은 글들을 수정하여 엮은 초단편 소설집이라고 합니다. 단편도 아닌 초단편?이라고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정용준의 짧은 소설집 『저스트 키딩』을 읽으면서 짧은 소설도 충분히 짜임새 있게 완벽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오히려 초단편이란 점이 흥미롭고 기대되었어요.
✦ 〈토끼 굴〉, 〈그땐 평화가 행성들을 인도하고〉, 〈위에서처럼 아래에서도〉, 〈이무기 시절도 한때〉, 〈새로고침〉, 〈지구돋이〉,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에〉, 〈샛길의 독사〉,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 〈1324〉,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새끼고양이였다〉, 〈구세주에게〉까지! 초단편이라 소재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전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포션을 꿀꺽꿀꺽 들이켜듯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들이 가득해요!
✦ 특히 좋았던 단편은 〈지구돋이〉,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에〉, 〈1324〉, 〈구세주에게〉였어요. 이 단편들이 좋았던 이유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마지막 문장’ 또는 결말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운도 남고, 생각할 점도 많았던 단편들이라 더 애정이 가네요 🥰
✦ 이 책의 하이라이트! 바로 〈열세 번째〉와 〈작가의 말〉입니다. 각 단편과 12라는 숫자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짐작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열세 번째〉와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12’라는 숫자로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짐작은 맞았고 어떤 것은 완전 헛다리 짚은 거란 걸 알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연재 시작 전에 이미 단편 열두 편의 소재를 미리 다 정해두셨다는 작가님... 파워 J의 면모에 파워 P 인간인저는 그저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 단편 다 읽고 꼭!!! 〈열세 번째〉와 〈작가의 말〉까지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ㅎㅎ
✦ ‘때론 입천장에 와 닿는 그런 숨결 하나가 구세주의 도래보다도 절실할 때가 있다’라는 작가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이야기들이 ‘희망찬 이야기’들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보듬고 위로해 주는 ‘포션’ 같은 이야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만난 후 각자 열세 번째, 열네 번째, 더 나아가 그 너머의 세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 24/02/14]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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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우리가 명예라고 생각했던 건 전부 얄팍한 착각에 불과했지요. 그 착각이 비극을 낳았고, 훨씬 평화롭게 손을 맞잡을 수 있었을 두 집단이 서로를 오래도록 적대할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그런 일에는 어떤 명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에〉, p.87-88)
| 차례로 녹아드는 초콜릿을 타고 비로소 뚜렷한 행복이 몸 전체에 퍼졌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좋아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먹고, 그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다시 메아리처럼 느끼는 일. 옛날 사람들의 거추장스러운 몸은 꿈에도 몰랐을 감각. 이래야지. 사람은 역시 이렇게 살아야지. (〈행복이란 따스한 반죽〉,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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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200 (240208~240212)
❝ 별점: ★★★★☆
❝ 한줄평: 시란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가 줄 50명의 시인
❝ 키워드: 시 | 시인 | 의미 | 생각 | 신작시
❝ 추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50개의 답변이 궁금한 사람
❝ 언어로 이루어진 탈것 — 쓰는 자와 읽는 자를 생각의 외계로 데려간다. ❞
/ 시란 무엇인가 — 이혜미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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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50명의 시인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김연덕, 유형진, 이영주, 이승희, 이혜미, 전욱진 시인의 답이 좋았다!
✦ 제일 좋았던 시는 안희연 시인의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 이승희 시인의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혜미 시인의 「얼음잠—ASLSP」! 이 세 편은 전문을 필사할 만큼 정말 좋았다. 사실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많이 발견해 필사도 엄청 많이 했는데 사진 열 장밖에 못 올리는 게 아쉬울 정도 🥹
✦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시인을 많이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시 싫어 인간이 시 사랑 인간이 되다니.... 참 신기한일이다. 이 시집에서도 다들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었다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씩 건져가시길 🥰[📝 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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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고선경, 「파르코 백화점이 보이는 시부야 카페에서」 ⛤
✎ 김연덕, 「사랑을 초청하고 밤낮으로 살펴」 ⛤
✎ 김이듬, 「후배에게」
✎ 류휘석, 「도량의 빛 다량의 물」
✎ 박형준, 「밤의 소리」
✎ 안도현, 「물음과 무덤」
✎ 안희연, 「구스베리 구스베리 익어가네」 ⛤
✎ 이승희, 「물속을 걸으면 물속을 걷는 사람이 생겨난다」 ⛤
✎ 이은규, 「밤의 대관람차」
✎ 이혜미, 「얼음잠—ASLSP」 ⛤⛤
✎ 임유영,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
✎ 전욱진, 「기억극장」
✎ 정다연, 「부재중 전화」
✎ 조혜은, 「손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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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 (240208~240208)
❝ 별점: ★★★★
❝ 한줄평: 서로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서로를 구원하고 사랑하는 일
❝ 키워드: 신 | 악마 | 인간 | 떠돌이 개 | 구원 | 내기 | 소원 | 기억 | 사랑
❝ 추천: 가슴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위로받고 싶은 사람
❝ 그래, 그럼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 거야. ❞
✨첫 문장: 옛날 옛날에 신과 악마가 인간 하나를 두고 내기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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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사이의 이야기 책이라는 말처럼 그림책이라기엔 분량이 꽤 되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글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이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근데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책! 『긴긴밤』보다 좀 더 어두운 분위기였다.
✦ 버림받은 떠돌이 개의 모습으로 변한 악마 메피스토와 귀가 들리지 않는 외톨이 소녀. 소녀가 뒤를 돌아봐 준 그날, 개에게도 처음 자신의 편이 생겼지만 소녀에게도 처음 자신의 편이 생겼을 것이다.
✦ 자기 자신을 미워해 지옥에 가면 가장 미워했던 존재인 자신의 모습으로 지내게 될 것 같다는 개와 소녀는 천국에 가면 가장 좋아했던 존재의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며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그걸 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둘의 시간, 어느새 나이가 훌쩍 든 소녀의 기억은 하나둘 사라져 버리고, 금지된 마법을 써서라도 개는 그 기억들을 되돌려주고 싶어 한다.
✦ 다시 마주 잡은 둘의 손. 서로를 아끼고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둘은 지지 않았다. 서로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서로를 구원하고 사랑하는 일, 그게 마법이고 기적이지 않을까. 모든 사랑이 언제나 이길 수 있기를. [📝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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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또 혼자 남았어.
그래서 너에게 매달렸지. 제발 기억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어. 제발 도와 달라고.
가지고 싶었던 것들, 원했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면서.
그렇게 마지막 남은 소원을 빌었어.
|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저는 궁금했어요. 이렇게나 슬프고 괴로운데, 왜 그렇게까지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지. 저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고, 어쩌면 오래도록 그 이유를 알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서 온 힘을 다해 살아 낸 그 모습이, 저 역시 온 힘을 다해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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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40204~240205)
❝ 별점: ★★★★★
❝ 한줄평: ‘과거는 꿈이 아니다. 나의 미래는 나.’ (p.97)
❝ 키워드: 죽음 | 이별 | 존재 | 지금 | 시간 | 비밀 | 편지 | 진실 | 행복 | 불행
❝ 추천: ‘사라지는 지금 속’ 나라는 존재 혹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 (p.99)
📮 첫 문장: 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차가운 수요일 오후 2시경, 할머니는 엄마가 쟁반에 차려 온 미음도 약도 마다하고 창을 조금만 열어달라고 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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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아직 2월이지만 2024 올해의 책 중 한 권이 되지 않을까 싶다.
✦ -, +, ÷ 세 기호를 사용해서 시간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과거는 +. 현재는 -. 편지가 등장하는 장면은 ÷. 우리는 ‘0의 자리’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죽음의 순간에는 0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나라는 존재를 쪼개고 나누기도 하며 덜어낼 건 덜어내고 보탤 건 보태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 편지를 쓰면 그 편지에 담은 마음들을 받는 사람만 갖는 줄 알았는데, 쓸 때의 마음을 나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는 나의 마음, 1년 후의 나에게 편지 쓰기를 한번 해봐야겠다.
✦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죽고 못 살 것 같던 관계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영원한 게 절대 없진 않겠지만 거의 없다고 믿는 나는 순간의 행복과 관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의 좋은 순간을 담아 둔 사람을 지운다 해도 그 시절까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태희도 좋았던 순간과 시간의 기억은 잘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 ‘이거 야광이다. / 말해 주려고.’(p.192)라는 별 거 아닌 이 한 마디가 왜 이렇게 눈물 나게 하는 걸까. 어린 태희도, 어른 태희도 모두 꼭 끌어안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은 자기 자신을 모욕하지 않고, 참고 견디지만 말고,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 정용준 작가님이 발문을 쓰셨다는 걸 발문 페이지로 넘기면서 알았는데 깜짝 선물 같아서 더 좋았다. ‘이것이 증명인 줄도 모르고, 내가 이미 내가 됐다는 것도 모르고, 꿈을 곁에 두고 사는지도 모르고, 이토록 용감하고 대범하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쓴다.’라는 문장이 태희를 보듬어주는 것 같아 참 뭉클하고 따뜻했다.
✦ 종종 재독 하고 싶은 책이다. ‘나의 미래는 나,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으며,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 이런 문장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만 같다. [📝 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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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썼고 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전부 말했다. 이제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된 거다. 우리는 서로에게 버린 거다. (p.136)
|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p.170)
| 한때 나는 우리 모두 지옥에서 왔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할 수도 있다. (p.209)
|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p.210)
| 나는 다시 빠르게 일기를 훑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모와 속초 바다를 보고 왔다’라고 시작하는 일기에서 멈췄다. 그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나는 나만 될 수 있다. 나는 남이 될 수 없다.’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 지난 번 카페에서. 1년 후에 정말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은 부분은 존재할 테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마치 만난 것만 같았다. 문장 속에서. 과거의 나를.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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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e-book, 240203~240204)
❝ 별점: ★★★★
❝ 한줄평: 이래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 키워드: 스릴러 | 사이코패스 | 범죄소설 | 진실 | 거짓 | 애증 | 연기 | 살인 | 죄
❝ 추천: ‘리플리 증후군’의 리플리가 궁금한 사람
🚢 첫 문장: 톰은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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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 5권 중 첫 번째 책인 『재능 있는 리플리』를 읽었다. 출판사 소개에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라고 되어 있어서 토마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한니발 렉터 같은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 디키 그린리프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톰 리플리. 디키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에게 우정, 애정, 부러움, 질투, 증오, 고통, 실망, 슬픔, 절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다가 마침내는 그를 죽이고 디키 그린리프가 되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 톰 리플리의 살인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모든 일의 시작일 뿐이다. 그가 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른 거짓말을 낳고, 얼마나 치열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던지 그가 지어낸 이야기는 빈틈없이 훌륭해 자기 자신도 진짜라고 믿을 정도다. 디키 그린리프라는 역할을 소화하는 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는 톰 리플리라는 역할을 미워하고 끔찍하게 싫어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지경이다.
✦ 자신의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필연적으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 행동을 하길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톰은 가슴이 불타올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일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정말 끔찍한 놈이다. 사실 톰의 내면을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구역질이 절로 나온다.
✦ 배우가 되고 싶었던 톰 리플리. 만약 그가 꿈꿨던 대로 배우가 되어 성공했다면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사이코패스 본능은 내재되어 있으므로 어찌 됐든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IF 세계의 톰 리플리가 어땠을지도 궁금해졌다.
✦ 불쌍한 디키 그린리프와 아들을 잃은 그린리프 부부. 다른 책에 그들의 이야기가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영원히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 다음 책도 어서 읽어봐야겠다. [📝 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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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톰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의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머리보다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가 먼저 냄새를 맡고 그 기회를 덥석 문 것이다. 현재 무직. 톰은 어쨌든 이곳 뉴욕을 조만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떠나고 싶었다. “휴가를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톰은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신중히 대답을 건넸다. 그를 옥죄고 있는 수천 개의 걸림돌을 살피는 척하면서.
| 디키의 다리와 그 옆에 올려진 자기 다리를 보자 톰은 거울을 보는 듯했다. 키도 몸무게도 둘이 똑같았다. 디키가ㅍ약간 더 무거울까? 목욕 가운이며 양말도 그렇고, 아마 셔츠도 같은 사이즈를 입으면 될 것 같았다.
| 톰은 다시 토머스 리플리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게 싫었다. 묵은 습관을 다시 몸에 들이는 것도 역겨웠고, 남들이 깔보는 것도 메스꺼웠고, 그가 익살꾼 노릇을 할 때만 빼고 따분한 인간 취급을 받는 것도 불쾌했다. 그때그때 잠시 남들을 웃기는 재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자기 자신도 미웠다. 자신으로 되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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