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한국 관료 사회는 2010년대 어느 즈음 카프카의 소설 같은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부조리하다 못해 기괴한 조직 내부를 차분하게 비판하는 생생한 르포르타주이고, 그 안에서 무력감에 시달리다 결단을 내린 한 인간의 울림 있는 고백록이다. 큰 전환을 요구하는, 통찰력 있는 정책 제안서이기도 하다. ‘국가 주도’ 이후의 한국 사회와 거버넌스를 고민하는 분들께 추천. 정치인과 보좌진, 공무원이 되려는 분들은 꼭 읽으면 좋겠다.


2021년 5월과 6월에 우리 부부의 화두는 두 가지였다. 지식공동체 그믐, 그리고 이사 갈 집. HJ는 종일 네이버 지도와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서울 전역의 매물과 가격 추이를 살폈다. 열심히 찾으니 또 이곳저곳에 우리가 가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아파트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서울 중심부에 있는 한 동네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아파트는 우리의 경제력 밖이었고, HJ는 빌라에서 사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빌라에서 산다면 그럭저럭 전망도 괜찮고 교통도 나쁘지 않고 평수도 넓은 곳을 구입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특히 만약 그녀가 가좌역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근처에 당분간 머물 곳을 구해야 하고, 내가 한동안 레지던시 생활을 한다면, 빌라가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애초에 그녀는 혼자 산다면 고시원에서 살겠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건 말이 안 된다며 원룸을 고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빌라와 아파트의 가격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 궁금해졌다.
관련 기사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개발 시기, 한 동네에 필요한 여러 제반시설을 한국 정부가 아파트 단지에 떠넘긴 것이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와 닿았다. 그러고 보니 HJ가 내가 거주지에 대해 원하는 바도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 있는 게 은근히 많았다. 넓고 깨끗한 보도, 나무가 있는 조경, 도심공원과의 연계성 등.
그런 면에서는 지금 사는 동네가 참 좋은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자전거를 탔다. 한강에서 자전거 체인이 벗겨져서 고생한 날도 있었다. 새롱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심장사상충 약을 발랐다. 하루는 공원 선베드에 새롱이 목줄을 묶어놓고 나는 거기서 달콤하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제주도 여행을 하던 즈음부터 약하게 불면증을 겪었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새벽잠이 준 걸까.
카르스텐 두세의 『명상 살인』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올해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는 최고. 블랙 유머와 사회 풍자가 내 취향에 아주 딱 맞아서, 이 작가의 책이라면 다 읽어볼 마음이 생긴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일본어판 출간을 앞두고 일본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썼다. ○○○○와 초단편 계약을 했는데,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원고료를 늦은 날짜에 비례해서 삭감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일본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을 쓰고 ○○○○에 계약서를 보낸 날에 부두 레인저 캡틴 다이너마이트 IPA와 버드와이저를 마셨다.
부두 레인저는 팻 타이어로 유명한 미국 뉴벨지움 양조장의 시리즈다. 여러 종류의 IPA를 이 시리즈로 내는 모양이다. 부두 레인저 캡틴 다이너마이트 IPA에는 모자이크, 심코, 캐스케이드 홉을 써서 파인애플과 구아바 향을 냈다고 한다. 꿀떡꿀떡 잘 마셨다.
집 걱정 따위 하지 않고
부두 레인저와 모험을 떠나고 싶어
아내와 강아지와 함께


‘K-’가 열풍이라고 하는 작금, 21년 전에 나온 이 책 제목에 묘한 기분이 된다. 저자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우주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나사에서 일하다 AT 커니를 세우고 베인 앤드 컴퍼니 코리아 대표가 된 사람. 귀담아 들을 지적도 많지만, 한국 대기업 내부의 문제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는 다르다. 생산성 향상이 곧 해결책인 장소도 기업 내부뿐.


오에 겐자부로나 앨리스 먼로가 퇴고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하는 걸 읽으니 퇴고에 더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로가 평론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는 없고 꽤 큰 상처를 받을 수는 있다’고 말한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잭 케루악은 똥폼 잡는 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글쓰기를 배우는 것과 골프를 배우는 게 비슷하다며, 전문가가 어떤 부분의 결점을 지적해줄 수는 있다고 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질문자를 존중 하고 대답이 솔직해서 호감이 갔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반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인터뷰 중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지나치게 방어적. 인터뷰어의 질문도 별로이긴 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은 한 편도 못 읽었는데 문학에 자신을 바쳤다는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래도 자신이 술 취해서 보낸 시절에 대해 후회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는 했다. 소설과 저널리즘에 별 차이가 없다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의견에는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헤밍웨이는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걸 알게 되면 집을 나가서 목을 매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멋있긴 하네.


SBS 라디오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에 출연해 <킬러 문항 킬러 킬러>를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12월 29일자 방송입니다. ^^
https://programs.sbs.co.kr/radio/book/main


비평보다는 문학 에세이에 가까운데 그래서 더 좋다. 소개하는 책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전해진다. 선정한 책들도 단순한 고전의 나열이 아니고 저자가 아끼고 그에 대해 할 말 있는 작품들로 골랐다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목록들이 있다. 이 큐레이션의 테마는 여성, 그리고 스릴.


아주 유명한 그림책이라는데, 그믐에서 추천 받기 전까지 존재조차 몰랐다. 그림책이라는 형식으로만 전할 수 있는 울림. 그 형식에 꼭 맞는, 운문의 속도와 감흥으로 한 자 한 자 여러 심상을 감각하며 읽어야 하는 산문. 어렵지 않은데 참 깊구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시즌 2 7회를 올렸습니다. 이번 주제는 ‘가오 없이 쓰는 소설’입니다. 이번에도 ‘각오’가 아니라 가오입니다. ^^
https://tobe.aladin.co.kr/n/3042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