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잡음의 위험성, 결정 위생, 기준과 규칙의 차이 등 책이 소개하는 개념들은 재미있었고, 정책 목표를 제대로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알아야 할 내용임이 분명하다. 당장 지금 쓰고 있는 논픽션에도 이 개념들 중 한두 개는 인용하면서 써먹을 예정.


수상한 질문을 좋아하고 위험한 생각들에 끌린다. 나 역시 그런 질문을 종종 던지고(전보다는 조심스럽게) 속으로 아주 위험한 생각들을 품고 있다. 독자를 청소년층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어른에게도 유익한 내용. GM 먹을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책도 여러 권 추천 받았다.


휴대전화기를 거의 종일 비행기 모드로 해둔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귀찮아서다. 전업 소설가의 특권이다. 전화 통화로 강연 요청이나 원고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기도 힘들다. 가끔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그 사이에 온 메시지나 메일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러면 ‘전화기가 꺼져 있네요, 시간 날 때 통화 바랍니다’ 같은 메시지도 자주 받게 된다. 그런 메시지에도 거의 답하지 않는 편이다. 한동안 이렇게 살면 중요한 연락을 놓치는 게 아닐까 염려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급한 용건이 있는 사람들은 그 용건을 문자메시지나 메일로 설명한다.
A 선배가 용건이 있으니 전화해 달라고 문자를 남겼을 때에도 나는 한참 미적거렸다. 결국에는 통화를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 캠프로 가기로 결심했다며,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대변인을 맡아 달라며.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거절했는데, ○○○이고 누구고 간에 어느 대선후보 캠프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정치를 할 마음도 없고, 어느 정당이나 조직의 대변인을 할 뜻도 없었다. 대변인 그거 엄청나게 바쁜 일 아닌가. 비행기를 탈 때 외에는 전화기를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면 안 되고.
그래도 A 선배에게는 진심으로 응원의 말을 건넸다. A 선배의 마음은 확고한 것 같았다. 그런 결심이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전해졌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나도 그렇고 A 선배도 그랬다. ○○○이 그런 의미에 부응하는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와 소속감을 주자.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통화를 마치고 HJ가 만들려 하는 그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한국이 싫어서』 드라마 판권을 스튜디오N에 팔기로 했다. 이 소설 영화 판권을 판 게 5년 전이다. 영화화 프로젝트는 한동안 투자를 받지 못하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제작이 중단되었다. 그 사이에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생기면서 영화보다 드라마로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제작자들이 하게 되었다.
처음 영화 판권을 사간 제작사에서 드라마 판권도 사겠다고 해서 우선 협상을 했는데, 그들이 약속한 돈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 잡음도 다소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느긋해서, 알아서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영화 판권을 사간 제작사가 아닌 스튜디오N이 드라마 제작사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기타 레슨을 받고, 전화 영어 수업을 듣고, 공원을 산책했다. 식당에서 피순대국밥과 돈가스 곱배기를 사 먹었고, 빵집에서 고급 빵을 쓴 샌드위치를 사와서 먹었고, 에어프라이어로 치킨 텐더를 조리해 먹었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오리고기를 밥과 섞어 바비굴링처럼 만들어 먹기도 했다.
HJ는 매생이떡국을 끓여 주었다. 이상할 것 같았는데 맛있었다. 한강공원을 접한 강북 아파트단지를 임장하러 가려 했으나 번번이 비가 오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비가 거의 매일같이 왔다. 어느 기자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대해 묻기에 오프더레코드로 설명해주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론에 이름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초여름을 보냈다.
A 선배와 통화를 한 날 라이거 바이젠을 마셨다. 『한국이 싫어서』 드라마 판권을 네이버 자회사에 넘기기로 한 날에도 라이거 바이젠을 마셨다. 이 제품도 벨기에 마튼즈에서 만든다. 캔 라벨에는 울부짖는 라이거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마튼즈 브루어리의 다른 저가 맥주들처럼 무난한 맛이다.
수상한 시기
어디를 보고 있나
그림 속 맹수여


현대와 전혀 다른 윤리관을 지닌 고대 신라는 매혹적인 시공간이었고, 거기서도 보통 사람들의 윤리관을 뛰어넘은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선을 넘고 번민 없이 힘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인물을 쫓아가기는 버거워서 후반까지는 심리적 거리를 두며 읽었다. 그러다 미실이 마지막으로 왕궁을 나올 때 마음의 벽이 큰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게이고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몰입력이 엄청난데 특히 도입부의 속도감은 배우고 싶다. 결말도 저 릿했다. 제목도 멋지고, 그 제목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멋지고.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뿐이고 소설에서 흐르는 시간도 하루에 불과한데 한 인생을 살고 나온 것처럼 뻐근하다. 진상과 트릭은 솔직히 억지스럽지만 게이고의 작품을 읽을 때 늘 그렇듯 큰 문제는 아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모았다는 레이코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읽는 재미는 확실하고 캐릭터들도 개성 있지만 진상과 결말은 평가가 갈릴 듯하다. 나는 시 리즈를 계속 쫓아 읽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위기, 비디오게임과 젊은 남성의 문제, 기본 소득 도입 등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탄탄하다. 저자는 2020년에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2021 년에는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이 정도 고민을 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게 한국 정치의 진정한 비극이다.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부제에 눈길 이 가고, 인류의 기억과 지적 재산을 디지털에 맡겨도 될지 묻는 서문도 훌륭하다. ‘디지털 기억’은 다른 물리적 저장들과 달리 자꾸 변하고 그 변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기억과 닮았으며, 그런 면에서 물리적 저장의 큰 이점 한 가지를 결여했다. 저자는 문화사학자이자 디지털 콘텐츠 큐레이터.


비주류경제의 기업인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 2024년 말 현재 미국 대통령도 돌아이고, 세계 최고의 부자도 그 못지않은 돌아이인데 그 둘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양쪽을 엄청나게 발휘하고 있으니까 돌아이들의 시대라는 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초점이 다소 흐릿한 느낌도 들지만 소말리아 해적, 미국 마약조직, 중국의 짝퉁 산업 등을 다룰 때는 재미있음.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근미래의 풍경 7회 #맞춤형 CF 모델>
한때 ‘CF 퀸’이라는 말이 있었다. 상품 판매 효과가 뛰어나 광고주가 선호하기 때문에 여러 CF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을 가리켰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그런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2020년대 후반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이 ‘리캐스팅’ 기술을 상용화하며 사라졌다.
리캐스팅은 사실 어감이 나빠진 딥페이크라는 단어를 대체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했다. 네카팡의 진짜 혁신은 아무나 합성을 하지 못하게 하고, 원본과 합성을 완벽하게 구분하고, 합성물의 제작자를 금세 찾아내는 등의 안전장치 강화에 있었다. 아마추어 합성물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겨우 합성을 영상예술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네카팡은 영화나 드라마 제작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을 노렸다. 광고 시장이었다. 호감 가는 사람, 권위자로 보이는 사람이 물건을 사라고 권하는 게 많은 CF의 본질이다. 그래서 광고회사들은 거액을 들여 연예인 선호도 조사를 벌인다. 한데 소비자의 스마트폰 저장 공간이나 웹서핑 기록을 분석하면 그가 누구에게 호감을 품는지, 누구를 권위자로 인정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주 들여다 본 사진이나 동영상 속 얼굴이 누구 것인지 파악하고 디지털 초상권을 사서 CF에 합성하면 어떨까?
네카팡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각종 서비스 무료 쿠폰을 뿌리면서 이용자를 모집했다. ‘리캐스팅 CF’를 보기만 해도 시청자는 포인트를 받았고, 그가 본 CF 영상에 합성된 모델도 소액을 벌었다. 상품을 사면 구매자는 일정 비율로 돈을 돌려받았고, 모델로 선정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네카팡의 홍보 문구는 이랬다. ‘CF 보면서 할인 받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후원하자! 보기만 해도 포인트가 팡팡!’ 이후 CF 퀸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00만 명이 같은 내용의 광고를 봐도 영상 속 모델은 모두 달랐다.
얼마 뒤 네카팡의 홍보 문구는 이렇게 바뀌었다. ‘나도 CF 스타! 온 가족이 다 네카팡 모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가족이나 친구가 훨씬 효과적이다. 가족과 친구의 얼굴 이미지도 휴대폰 저장장치와 소셜미디어 기록에서 추출할 수 있다. 무료 쿠폰을 뿌리고 지급액을 높이겠다고 하니 너도 나도 소셜미디어 사용 기록과 초상권을 제공하겠다고 동의했다.
키우는 반려견이 CF 영상에 나와 먹고 싶은 간식을 말할 때 거부하는 견주는 없었다. 노인들은 손자손녀가 권하는 제품은 뭐든 사들였다. ‘썸’ 타는 이성이 어떤 향수나 옷, 차량을 칭찬하면 젊은 남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제품을 이야기하면 효과가 엄청났다.
“어제 네가 광고에서 치약 추천하더라. 주문했어.”
“나한테 50원쯤 들어왔겠네. 치약 말고 TV 같은 거 살 때 잘 부탁해.”
이런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리캐스팅 CF의 수익분배 시스템이 빈부격차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장님, 오늘 신문 칼럼 보셨나요? 부자들은 광고에 자기 얼굴을 잘 허락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가끔 비싼 물건을 사면 친구들이 덕을 본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정반대 상황이라고 하네요.”
‘네카팡 온라인-이메리 의장이 말한다’ 프로그램 사회자를 맡은 아나운서가 물었다. 최고경영자가 현안에 직접 답하는 네카팡의 자제 제작 프로그램이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죠. 리캐스팅 CF로 손해 보는 사람이 누군가요? 전문 CF 모델들뿐이에요. 나머지 사람은 모두 이익 아닌가요? 자기 얼굴을 빌려주는 거나 지인 얼굴을 광고에서 보는 것 모두 당사자들이 동의한 사항이고, 언제든 쉽게 탈퇴할 수 있어요.”
“의장님은 지인이 생뚱맞은 제품을 광고해도 괜찮으세요?”
“저는 추가 금액을 내고 광고를 아예 안 보는데, 어쨌든 이참에 시스템을 다듬으려 해요. 지인 얼굴이 CF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편한 상품들이 있긴 하죠. 그런 상품을 광고하는 기업에 부담을 더 지우려고요. 광고주들이 그렇게 더 낸 돈은 이용자에게 돌려주고요.”
“그런 광고에 얼굴을 빌려줄지 말지는 각자 정하고요?”
“고객은 늘 옳다는 게 제 경영 철학이에요.”
리캐스팅 CF는 패키지-A, 패키지-B, 패키지-C, 하는 식으로 세분화됐다. 한 푼이 아쉬운 저소득층과 청년층은 가장 보수가 높은 패키지-Z를 선택했고, 자기 친구들이 대출과 온라인 게임, 건강보조식품을 광고하는 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봤다. 그즈음 한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20대 여성은 “리캐스팅 CF로 용돈을 번다”고 고백했다.
“제 친구들은 전부 가입했어요. 서로 도와야죠. 저는 친구한테 암호화폐 권하고, 친구는 저한테 전자담배 권해요. 리캐스팅 CF가 인간관계를 착취한다고 떠드는 인문학 꼰대들보다 네카팡이 훨씬 고마운데요. 몇 푼이라도 생계에 보탬이 되니까요.”
#근미래의풍경 #STS_SF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23/FKF7GWSGX5BKTPCWRJEYPU5TB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