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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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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김영준)

한겨레신문 연재할 때부터 언제 책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기다렸다. 예술과 윤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에서 균열을 포착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결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글이 아니건만 읽고 나면 어쩐지 나는 그 전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는 작가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원북성북과 독서공동체


  ‘한 도시 한 책(One City One Book) 운동’은 1998년에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서이자 작가인 낸시 펄이 ‘만약 시애틀 전체가 한 책을 읽는다면?’ 하고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고 하지요. 이후 다른 도시들이 이 운동을 따라했고, 시카고에서 선정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책 홍보와 판매에 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충남 서산시립도서관이 처음 시작한 걸로 압니다. 지금은 여러 지자체에서 한 도시 한 책 운동을 벌이고 있죠. 도서관이 주도적으로 하는 곳이 많고, 교육청이나 지역 언론사가 참여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개 도서관 이용자들이 책을 추천하면 책 전문가들로 이뤄진 선정위원회가 한 권을 고르는 방식입니다. 이후 그 책 저자를 불러 강연을 듣고, 독서 토론을 벌이고, 독후감 쓰기 대회 같은 행사도 합니다.

 

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논픽션을 쓰면서 출판 관계자 7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문학공모전 제도와 한국 독서생태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책이었는데 취재를 시작할 시점에는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 전혀 몰랐습니다.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성북문화재단을 찾아갔을 때입니다. 성북구는 서울에서 한 도시 한 책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구이고,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 한 도시 한 책 운동을 가장 잘 하는 곳입니다.

 

『당선, 합격, 계급』을 위한 취재를 할 때에도 한 도시 한 책 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헤롤드 블룸이 이 운동을 두고 ‘모든 사람이 같은 책을 읽어야 한다니’라는 식으로 공격한 말이 기억에 남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지금도 ‘서울대생이 읽어야 할 100권’ 유의 권장도서 목록은 혐오합니다). 혹은 여러 지자체에서 선정한 한 책이 결국 다 똑같은 베스트셀러인 경우를 많이 봐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 선정위원이 겹치기도 하고, 도서관에 보드를 세워 놓은 뒤 스티커를 붙이는 식으로 주민 투표를 할 때 참여자들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름은 들어본 책’에 투표하는 경향 때문에 결국 베스트셀러가 선정되곤 하지요(서점에서 적립 포인트를 증정하며 독자 투표를 독려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성북구의 한 도시 한 책 운동인 ‘원북성북’은 다르더군요. 원북성북은 한 책을 선정하고 난 다음이 아니라 그렇게 한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 정성을 쏟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후에 운영방식은 다소 달라졌지만 핵심은 성북구 주민들이 후보 도서를 열심히 읽고 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관심사와 고민이 반영된 책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4강’ 후보 도서가 정해졌을 때부터 한책추진단 소속 주민들이 성실하게 독서 토론을 벌입니다. 최후의 한 권을 뽑는 분위기가 대단히 치열해서, 오프라인 대토론회 주민 참석자만 100명이 넘습니다. 한책추진단 소속 주민이 3000명, 독서 동아리는 226팀(1957명)이나 될 정도로 ‘독자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들으니 성북구 사서 분들이 사서계의 드림팀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소년이 온다』를 추천하더라도 50대 문학평론가와 1980년 광주를 모르는 성북구의 고교생이 추천하는 이유가 다르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호응도 다르다”는 얘기를 성북문화재단에서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빌려가는 책은 바로 직전에 누군가가 반납해서 반납 도서 서가나 카트에 실린 책이라는 얘기도 그즈음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즐기는 것을 궁금해 하고, 같이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책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책이 더하지요. 책은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이 큰 재화입니다. 사람들은 독서를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그래서 자기와 고민이 비슷한 사람이 고민해서 고른 책을 더 믿고 선호합니다. 학교에서 권해주는 ‘권장도서 목록’, 전문가가 뽑은 ‘올해의 책’은 그래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책은 어렵거나 지루해서 독서를 실패할 것 같고, 지금 내 이야기로 다가오지도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다듬어 『당선, 합격, 계급』의 결론을 ‘독자들의 문예 운동’이라고 적었습니다. 작가와 출판사의 문예 운동보다 독자들의 운동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계속 제 머리에 남았고 이후에 쓰는 책에서도 다른 표현으로 언급합니다. 『책, 이게 뭐라고』에서는 ‘읽고 쓰는 사람들의 세계’라는 표현을 썼고,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라고 적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책으로 읽고 내 생각을 책으로 표현하는, 책으로 소통하자는 꿈입니다. 『아무튼, 현수동』에서는 도서관이 만드는 독서 공동체가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할 거 같습니다. 하느님도 안 믿고 백마 타고 오는 초인도 안 믿고 인과응보도 안 믿는 제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딱 하나 굳은 믿음이 있는데, ‘책 읽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자기가 10년 동안 번 돈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쓰겠다며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회사를 차리기도 했고요.

 

성북문화재단 사서님들도 뒤에 『당선, 합격, 계급』을 읽고 좋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지난해 성북문화재단의 TF팀에 초대해주셨어요. 여태까지 문학 부문만 했는데 앞으로는 비문학 부문에서도 한 책을 선정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한 해 다른 TF팀원들과 ‘원북성북 비문학 한 책’ 선정 과정을 설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문학 부문 한 책 선정 과정 기본 디자인이 잘 되어 있고, 사서님들이 유능하시고, 독자 인프라도 탄탄하니까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TF팀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 보태기는 했는데, 이런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좀 더 성북구민들이 자기들의 삶에 가까운 책을 발견하게 할 수는 없을까?

 

TF팀이 낸 아이디어는 먼저 성북구의 고민과 숙제를 담은 문구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 맞는 책들을 추천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5년 이내에 발간된 국내 저자의 책’이라는 조건도 달기로 했습니다. 20년 전, 30년 전의 고전들도 좋지만 지금 살아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저자를 응원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두 조건을 달면 후보가 될 책들의 범위가 상당히 좁혀집니다. 그만큼 다른 지자체가 뽑는 한 책과는 다른, 좀 더 뾰족한 책이 나올 테지요. 그런데 범위를 너무 좁힌 것은 아닌지, 괜찮은 책이 아예 추천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컸습니다.

 

비문학 부문 한 책을 뽑을 기준이 되는 문구는 ‘우리의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으로 정했습니다. 성북문화재단 산하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주민 토론회 ‘마을in수다’의 기록들, 2022년에 성북구민 105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록한 『성북소곡집』 1, 2권을 검토해서 도출한 문구입니다. 평지가 적고 골목이 많은 성북구의 특성과, 건강한 연결을 바라는 주민들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문구에 어울릴, 5년 이내에 나온 책들은 얼마나 될까.

 

걱정이 무색하게도 120권이 넘는 책을 추천 받았습니다. 한국에 책이 참 많이 나오더군요. 대부분은 이름을 못 들어본 책이었고요. 선정위원들이 마지막 한 권을 선정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성북구에서는 선정위원들이 최종 도서가 아니라 후보 도서를 선정합니다. 그렇게 후보가 된 책은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 2023), 『동물권력』(남종영, 북트리거, 2022),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이인규, 마티, 2023), 『같이 가면 길이 된다』(이상헌, 생각의힘, 2023)였습니다. 특히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다른 지자체에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면 발견되기 어려웠을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성북구민들이 후보 도서로 그믐에서 벌인 온라인 독서 토론을 보고 가장 놀란 사람들은 작가들이었습니다. 이인규 작가님은 독서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믐을 소개하시면서 “이제 살 것 같다”고 하셨지요. 김희경 작가님은 “독서 토론을 통해 내 책에 실린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큰 이야기로 확장되고 퍼져가는 모습에 저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고 쓰셨습니다. 그믐의 독서 토론 링크를 저장해두고 이후에도 가끔 들어가서 보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느라 진이 빠지셨지요. 그리고 이 글을 쓴 이유도 이제 다들 짐작하셨겠지요.

올해 성북구 비문학 한 책 선정을 이제 막 시작했어요. ‘우리의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이라는 문구에 어울릴 책을 다시 추천 받으려 합니다.

5월 12일까지 이 링크에서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 방법은 복잡하지 않으니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gmeum.com/meet/1387

성북구민이 아니어도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 권 추천하셔도 됩니다. 한 권만 추천하셔도 됩니다.

추천 사유 짧아도 됩니다. ‘좋아서’라는 한 단어여도 됩니다.

자기가 쓴 책, 자기가 편집한 책 추천하시는 것 아주 환영합니다.

읽지 않은 책을 추천하셔도 됩니다. 선정위원들이 책을 읽고 후보를 추립니다.

 

후보 도서 4권 중 한 권으로 뽑히면 한책추진단 3000명에게 지속적으로 문자, 카카오톡 등을 통해 후보 도서 관련 알림을 보냅니다. 성북구 독서 동아리 226팀이 후보 도서를 읽고 책을 소개하는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하려 합니다. 성북구내 16개 도서관에서는 후보 도서를 추가로 구입합니다. 성북문화재단 예산으로 작가와의 만남, 줌 라이브, 유뷰브 채널 등 다양한 책 홍보 행사를 진행합니다.

성북구는 국내 시군구 중 가장 대학교가 많은 지자체이며, 올해부터는 고려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한성대 등과 함께 한 책 후보 도서 홍보에 나설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온라인 북클럽 플랫폼 그믐도 회원 1만 명에게 뉴스레터,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로 2024년도 사업 기간 내내 후보 도서를 지속적으로 홍보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여기저기에 퍼 날라 주셔도 좋습니다.

스크린샷은 김희경 작가님이 원북성북에 참여한 소감을 쓰신 글입니다.

 

990. 어떤, 작가 (조영주)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살의, 불면증, 자살, 우울, 백내장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와 당황했다. 『나를 추리소설가로 만든 셜록 홈즈』에 대해서도 내가 ‘때로는 애틋하게 읽었다’고 썼었구나. 작가님, 그런데 저도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 정말 좋아합니다. 제 인생 곡입니다.

어떤, 작가
어떤, 작가
989. 어떤, 클래식 (차무진)

따뜻하고 어렵지 않고 기품 있는 책. 삭막한 심성의 막귀 독자도 약간 설레게 해주는 책. 책에 나오는 곡들을 스포티파이로 찾아듣고 있다. 책이 좋아서 음악도 좋은 건지, 책도 좋고 음악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 슈만의 유령 이야기는 너무 신기해서 인터넷을 검색했고, 세간의 해석을 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클래식
어떤, 클래식
‘월급사실주의 2024’ 표지 공개


‘월급사실주의 2024’ 표지입니다. 작가님들 멋지지 않습니까? 제목도 멋지지 않습니까? 내용도 멋집니다. 이번 주 금요일 즈음부터 서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988.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 가기 직전에 예습을 할 겸 읽었다. 박상영 작가가 만난 청년들을 만났고, 그가 봤던 고양이와 지네도 봤다. 나는 지네는 나름대로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먹바퀴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박 작가보다 친구가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외로워졌는데, 나는 외로움을 좋아하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도 이 책은 내게 가파도 생활과 함께 기억되겠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987. 동물권력 (남종영)

동물 역시 정서적인 주체이며 인간에게 정동(affect)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공장식 축산은 그런 힘을 지우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법을 어기며 논란을 일으키는 방식을 고집하는 일부 동물권 운동가들의 ‘혁명적 낭만주의’ 노선에 대한 비판에 동의한다. 며칠 뒤 동아일보에서 ‘논픽션 저자가 되자’는 주제로 강연을 해야 하는데, 기자에서 논픽션 작가로 성공한 가장 바람직한 사례로 남종영 선배를 들려 한다.

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동물권력 -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최근 소설 출판계약서에 등장한 새로운 조항에 대하여

 

지난해 A 출판사와 소설 계약을 할 때 어떤 조항 하나를 처음 봤습니다. 당시에 저는 이 조항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수정했는데, 올해 B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 정확히 똑같은 조항을 마주했네요. 아마 최근에 여러 문학출판사들이 이 조항을 계약서에 넣기 시작한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작은 문제 하나, 따져볼 문제 하나, 그리고 거의 독소조항으로까지 느껴지는 큰 문제 하나, 이렇게 세 가지 문제입니다.

 

누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며, 출판계와 소설가들 사이에 논의가 필요하다 싶어 글을 올립니다. 출판 관계자나 소설가 분들이 이 게시물을 퍼 가셔서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업계 합의가 제대로 생길 때까지 소설가 분들은 계약서를 쓰시면서 이 조항을 맞닥뜨리시면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문제의 조항은 [본조 ①항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자’는 직접 저작물의 2차적 이용에 관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익배분의 비율은 ‘저작권자’ 90 %, ‘출판사’ 10 %로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출판계의 변화로 인해 생긴 조항입니다. 나날이 책 판매량은 줄어드는데 반해 영상화 판권 판매가 잘 되면서 작가의 2차 저작권 수익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작가와 영상 제작사 사이를 연결해주는 2차 저작권 에이전시들이 등장했고, 그런 에이전시들과 전속 계약을 맺는 소설가들도 늘어났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에이전시에 속한 작가들이 낸 책에서는 출판사들이 2차 저작권 수입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약서에 등장한 것이 위의 조항입니다. 풀어 쓰자면 ‘작가가 작품 영상화 권리 판매 중개를 우리 출판사가 아닌 에이전시에 맡겨도 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우리 출판사가 판권 수입의 10%는 가져가겠다’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조항에 작은 문제, 따져볼 문제,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1) 작은 문제

 

2차 저작권 판매 수입을 작가와 9대 1로 나누겠다는 조항은 의미가 모호해서 분쟁의 소지가 있습니다. 2차 저작권 판매 수입을 에이전시와 7대 3으로 나누기로 한 작가의 사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영화 제작사가 지불한 금액을 작가, 에이전시, 출판사는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언뜻 떠오르는 대로 60:30:10로 하면 되는 걸까요?

 

아니면 영화 제작사에 작품을 판매한 에이전시가 먼저 30%를 갖고, 나머지 70%가 작가의 수익이니까 그걸 다시 9대 1로 나눠서 최종적으로 63:30:7의 비율로 갖자는 말일까요?

 

혹은 에이전시는 작가를 위해 일하는 업체이니까 저 조항에서 수익을 에이전시와 작가 몫을 합한 개념으로 보고, 출판사가 10%를 가진 뒤 나머지 90%에서 작가가 에이전시에 자기 몫의 30%를 줘야 하는 걸까요? 그러면 비율은 63:27:10이 됩니다.

 

해석에 따라 작가, 에이전시, 출판사의 몫이 전부 제각각이 되어버립니다.

 

(2) 따져볼 문제

 

과거에 소설가들이 2차 저작권 판매 중개를 출판사에 맡겼을 때 출판사들은 판매 수익의 10~50%를 요구했습니다(30%가 가장 흔했습니다). 이때 그런 요구의 명분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작가의 책을 영화업체들에게 홍보하고 필름마켓에서 피칭하는 데 출판사가 공을 기울인다는 것이었습니다(실제로 그런 업무를 적극적으로 하는 출판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계약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법률 검토를 하는데 들이는 비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문 에이전시가 그 두 가지 업무를 도맡아 할 때조차 출판사가 10%를 요구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제가 문의하니 “책이 출간됐기에 영상업계가 해당 IP의 존재를 알게 된 만큼 출판사도 영상화 권리 판매에 기여했다고 본다”는 답변이 왔는데 다소 군색하게 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관심 있는 소설가들에게 “요즘 무슨 원고 쓰느냐, 초고 완성되면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PD나 감독들도 꽤 많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출판사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많은 문학출판사들이 대부분의 신간에서 손해를 보다가 책 한 권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그렇게 손익분기점을 넘는 책들이 가끔 나와야 계속 다른 저자들을 발굴하고 새 책을 낼 수 있습니다. 책들이 손해를 본다고 그걸 작가에게 배상하라고 하는 출판사도 없고요. 이런 구조에서 역할을 하던 2차 저작권 수익이 줄어드니 출판사로서도 대응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저렇게 출판사가 수익을 가져가는 게 길게 보면 소설가들, 특히 신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출판생태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다만 출판사들의 사정이 그러한 것과는 별개로 소설가들 입장에서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두면 저 조항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 같은데, 적어도 2020년대 초반까지는 이 조항이 흔치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이 글을 씁니다. 다른 소설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3) 큰 문제

 

OTT 시대가 되면서 2차 저작권 수익이 아주 소액으로 길게 들어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2044년에 어떤 사람이 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넷플릭스로 보고 다음 달 저에게 10원 정도의 금액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뮤지션들이 여러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그렇게 소액으로 돈을 매달 받습니다.

 

저 조항에 따르면 저는 그렇게 10원의 수익을 받았을 때에도 거기에서 출판사 몫을 떼어줘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횡령이 됩니다. 특히 (1)에서 ‘수익’을 에이전시와 분리해서 작가가 받는 돈이라고 봤을 때 출판사에 돈을 줘야 할 의무는 온전히 작가가 지게 되지요. 죽을 때까지 여러 OTT 플랫폼에서 들어오는 수익을 각 작품별, 출판사별로 정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간과 노력을 굉장히 잡아먹을 일일 텐데, 제가 늙고 병들어 그 일을 까먹으면 저는 횡령범이 됩니다. 실제로 그런 고발을 당할 가능성이야 높지 않겠습니다만,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하겠죠.

 

출판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저 조항을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최소한 저 조항에서 ‘수익’은 ‘계약금 수익’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986. 게임의 여왕 (시드니 셀던)

 시드니 셀던표 똑똑하고 의지와 욕망이 끓어 넘치고 돈과 권력을 지닌 인물들이 우르르 나와 막장 드라마를 펼친다. 케이트 블랙웰의 아버지나 케이트 본인의 젊은 시절 이야기까지는 흥미진진한데 불쌍한 아들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 가능하고, 사이코패스 손녀는 현실감이 없다.

게임의 여왕
게임의 여왕
985. 꽃은 알고 있다 (퍼트리샤 윌트셔)

 식물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저자는 우연한 계기로 범죄 수사를 돕고, 법의생태학 분야를 개척했다. 25년 간 참여한 사건이 300여 건이라고. 어린 시절과 노년의 감식 작업 활동을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인데 CSI 같은 자극적인 내용은 없어도 무척 몰입해 읽었다. 저자의 곧은 마음이 느껴진다. 문장도 유려하다.

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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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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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무는 [비욘드북클럽] 에서 읽은 픽션들
[책 증정]  Beyond Bookclub 12기 <시프트>와 함께 조예은 월드 탐험해요[책 증정] <오르톨랑의 유령>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9기 [책 증정] <그러니 귀를 기울여>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3기 [책 증정]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2기
연뮤클럽이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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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클래식] 1월1일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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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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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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