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인간의 얼굴은 모든 포유동물 중에서 가장 기이한 축에 속한다고 한다. 주둥이가 없고, 코가 축축하지 않고, 눈에 흰자위가 있고, 등등. 그뿐 아니라 엄청나게 모양이 다양하고 표정도 풍부하다. 얼굴 자체가 아주 정교하고 민감한 의사소통 도구로 진화한 것 같다고 한다.


공간이동, 텔레파시, 염력, 시간여행 등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언젠가 이뤄질 거라고 주장한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개념들을 소재로 삼아 현재 의 과학 이론과 가설들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교양서. 재미있다. 저자는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고 과학 다큐멘터리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 철학자와 사상가, 문인들이 삶에 의미에 대해 펼친 주장을 시간순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요약, 평가한다. 철학자인 저자의 결론도 있다.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좋은 책. 거실 탁자에 놓고 피곤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큰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정밀하지도 않고, 대단히 깊이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내 취향에는 꼭 맞았다. 특히 먼 미래에 지금의 문학, 록 음악, 미국 정치제도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시각이 참신하고 도발적이어서 그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지적인 자극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한다.


불멸을 추구한 인간의 역사를 영생, 부활, 영혼, 유산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푼다. 그 모든 노력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사회적으로는 과학과 종교, 문화, 번영을 발전시킨다. 그렇다면 문명의 활력을 위해 영생이라는 환상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부담 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포복 전진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도 포복 전진한다. 독자는 그 인물들과 함께 여러 밑바닥을 보게 된다. 때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고, 간혹 그 무거운 속도나 사방이 막힌 느낌이 갑갑한 순간도 없지 않다. 레이저 무기 같은 것으로 소설 속 도시 전체를 다 쓸어버리면서 멸균해버리고 싶다는 충동도 인다. 나는 작가가 세상을 포복 전진하며, 자기 살갗에 상처를 내며 소설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경찰 조직과 항구 도시의 범죄 생태계에 대한 지식들을 얻었을 거라 상상한다.


HJ가 가좌역에 있는 중소기업의 2차 면접을 치렀고, 다음날 사실상 합격이며 사장 결재만 남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서울 중심부의 아파트에 임장을 갔다. ‘여기 왜 이렇게 싸?’ 하고 기대와 의문을 동시에 품고 버스를 올랐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답을 알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이 서 있었다. 1980년대 이후로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은 듯한 아파트 건물과, 2층 위로는 아무도 입주해 있지 않은 상가 건물들이 보였다. 홍콩 슬럼가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느낌.
그 중에 가장 상태가 심한 지역은 언젠가 재개발이 될 것을 노리고 땅과 집 주인들이 일부러 방치한 곳이었다. 건물주와 정부가 누가 이기나 하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셈이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개발될 수밖에 없는 땅 아니냐는 게 주민들의 논리였다.
주변 땅들도 각자 사연이 있었다. 어느 단지는 땅은 서울시가, 건물은 주민들이 갖고 있었다. 주민들이 시에 땅 소유권을 넘기라고 수십 년이나 요구했고, 말이 안 되는 주장이었으므로 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서울시가 토지 소유권을 주민들에게 매각하겠다고 한 발 물러나자 이번에는 주민들끼리 땅을 어떤 비율로 나눌지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 식으로 그곳의 아파트와 주택은 하염없이 낡아가고 있었다. 습하고 꾀죄죄하고 금이 간 건물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우중충해졌다. 게다가 근처에 노숙자와 부랑인이 너무 많았다. 나도 그 앞에서 약간 겁을 먹게 되는 상태 안 좋은 남자들이 있었는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근처 공원을 걷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우리는 카페에 들어갔다. 거기서 핫도그를 시켜서 점심으로 먹고 하이네켄과 코로나 엑스트라를 마셨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꼭 이걸 다시 마시며 자축하겠어”라고 말하며 마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이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 맥주가 더 나은 것 같다.
정말 몰랐지
이렇게 길게 갈 거라고는
끝나도 축하 안 할래
분위기 괜찮은 카페였으나 맥주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 카페를 나와 조금 떨어진 다른 카페에 가서 맥주를 계속 마셨다. 이번에는 코젤 다크를 마셨다. 안주로는 닭다리와 닭꼬치와 김밥과 과자를 먹었다. 카페 주인아주머니가 무척 살갑고 친절했는데, 우리에게 닭꼬치를 서비스로 하나 더 주셨다.
술 냄새가 나든 말든 동네를 한 바퀴 더 살피고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았다. 중개사가 자리에 앉은 채로 레이저 포인터로 설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귀찮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이 지역이 재개발이 언제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법도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살 수 있을 때 사라. 중개사는 그렇게 말했고, 나도 HJ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걸어왔다. 그러면서 나는 ‘이 동네에서는 못 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지도로는 10~15분 정도 거리 같았지만 실제로 걸어 보니 그보다 훨씬 멀었다. 게다가 길이 아주 안 좋았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서 자동차를 피해 걸어야 했다. HJ는 그런 길을 질색했다. 그래서 마포구 현석동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런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지적해줬음에도 불구하고 HJ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았다. 나는 그 동네에서 참고 살 수 있다. 주변 환경에 그렇게까지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HJ는 매일 울면서 살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빔 프로젝터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봤다. 지난해 그렇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봤다. 30분쯤 보고 나서 내가 “이제 일본 애니메이션은 안 봐도 될 거 같네”라고 말했더니 HJ도 동의했다. 한 업계 전체가 퇴보했구나. 줄거리에서 작화까지 전부 다.
물론 우리가 그 만화 원작을 잘 모른 탓도 있을 거다. 그리고 뒤에 가면 점점 더 재미있어지기는 했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바로 MZ 세대의 특징 아닌가 짐작했다. 그러고 보니 작품 전체에 배인 패배적 정서도 다르게 보였다. 나중에는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을까’ 분석하는 것이 작품 자체보다 더 재미있었다.


뉴 사이언티스트 편집국장인 저자가 과학 저술가들에게 ‘없음’(無)을 주제로 청탁해서 진공, 숫자 0, 절대영도, 빅뱅, 나무늘보, 마취약 등에 대한 에세이를 받아 엮은 책. 인간이 의식적인 활동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디폴트 네트워크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인 노시보 효과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현재의 소셜미디어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19~20세기 미디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17세기 소책자나 18세기 커피하우스와는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로마의 두루마리나 벽 낙서, 16세기의 필사본 네트워크와도 닮은 데가 꽤 있었다. 하지만 저자와 달리 나는 현대의 소셜미디어는 전례 없는 특징과 해악 역시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1992년 1월 8일, 독감을 앓던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TV로 중계되던 국빈 만찬 중 구토하며 쓰러졌다. 1938년 3월 1일,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자신이 창조한 슈퍼맨 캐릭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단돈 130달러에 팔았다. 미국의 첫 다섯 대통령 가운데 세 명이 공교롭게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사망했다.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은 1826년에, 제임스 먼로는 1831년에.
논픽션 작가 마이클 파쿼의 『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추수밭)은 704쪽을 이런 에피소드들로 가득 채웠다. 당연하게도 1년 365일 모든 날이 누군가에게 최악의 하루 기념일이다. 로마에서 순교자 텔레마코스가 검투 경기를 말리다 관중의 돌에 맞아 죽은 1월 1일부터(404년), 미국 정부가 산업용 알코올에 섞는 메틸알코올 양을 배로 늘려 밀주를 마시는 국민을 사실상 독살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12월 31일까지(1926년).
읽으면서 인류애가 샘솟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어떤 인물이 겪은 불운을 냉소적으로 서술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정부나 기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때로는 어떤 날 발생한 사건이 인류 전체에게 불운이었다고 선언한다. 얄밉지만 고약한 재미는 있다. 악명 높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가 2007년 그날 방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10월 14일은 최악의 날이라는 문장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피식 웃게 된다.
저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웃음 외에도 독서의 기묘한 순작용이 또 있었다. 인간 사회에는 불운과 어리석음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우리 시대라고 예외일 수는 없음을 책장을 넘기는 동안 새삼 깨닫고 차분해졌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2024년을 보내고 2025년을 맞이하려 한다. 내가 겪은 어떤 불운한 날도 수리남의 육상 선수 지그프리트 빔 에사자스의 9월 2일처럼 기가 막히지는 않았다. 1960년 수리남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에사자스는 그날 경기 시간을 잘못 통보 받아 뛰지 못했고 이후 45년 동안 ‘늦잠 자느라 대회를 놓쳤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