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금, 그믐
생각나면 쓰는 부주의한 기록 / https://blog.naver.com/gibbs0929<키다리 아저씨>의 매력은 서투른 저루샤 애벗양의 편지가 가진 매력이다. 아마 십수장의 편지가 작품에 실려있을테지만, 나는 딱 두 통의 편지만-그것도 전문은 아니고 키워드만 기억한다. 하나는 빨간 장미 꽃을 꽂고 앞 옆에 앉아 있어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 남은 하나가 바로 이 ‘레몬 젤리 수영장‘이다. ‘레몬 젤리 수영장‘은 어린 나에게 두 가지 욕망을 안겨주었는데 하나는 부자가 되고 싶단 욕망, 남은 하나는 명량함을 향한 욕망이다.
저루샤 애벗, 본인이 원하기를 ‘주디‘로 불리고 싶어한 이 말괄량이의 한여름밤 꿈 같은 신분 상승기는 어린 나의 신분 상승 욕구를 부채질했다. 대학이 뭔지는 모르지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안락한 공간 같아 탐이 났고, 혼날 걱정 없이 예쁜 드레스(*원피스와 드레스의 차이를 몰랐다)도 여섯 벌을 사고 싶고, 또 이 삽화처럼 잘생긴 남자를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수준의 욕망이었지만 훗날 이 욕망은 <꽃보다 남자>를 비롯한 숫한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로 점점 견고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수 없는 것은, 이성애적 욕망이 생길 수 없는 나이에 신분 상승 드라마에 노출 된 덕(혹은 탓)에 부잣집에 시집 갈 욕망 대신 ‘커서 엄청 부자가 되어야지!‘라는 욕망이 생긴 것이다. 물론 부자인 나와 결혼하는 남자도 부자여야한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명랑한 부자가 되어 번듯한 부자와 결혼하기. 저루샤 애벗양이 나에게 남긴 이 유산은 지금도 갖고 있다. 다행히, 상상.속 ‘부자‘의 자산 규모는 갈 수록 겸손해져 이제는 빚만 없어도 ‘부자‘라 불러준다.
보다 나의 자아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명랑하고픈 욕망이다. ‘레몬 젤리 수영장‘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지? 수영장에 찰랑찰랑 차오른 레몬 젤리 같은 이미지는 도대체 어떤 뇌가 만들어 낼 수 있는건지, 그 독특한 명량함이 너무나 탐이 났다. 저류사 애벗양의 매력은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상, 그리고 그를 부끄럼 없이 내뱉는 당당함에 있었다.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 나도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차마 어느 곳에도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내 유년 시절 흑역사의 뿌리는 아마 저루샤 애벗양의 레몬 젤리 수영장에 있을 것이라 짐작 된다. ‘엉뚱‘하고 싶은 욕망. 명량한 캔디 같은 여성 캐릭터를 향한 선망. 한국말로는 ‘오글거린다‘ 영어로는 ‘fake‘라고 손가락질 받는 그 욕망의 뿌리는 수영장을 가득 채운 찰랑거리는 레몬 젤리다.
다행히 나는 배움이 빠르고 또 어마무시하게 소심해서 타인에게 ‘공수치‘를 주는 짓은 금방 그만두었다. 남한테 보여주는 대신 미디어로 그 엉뚱한 명량함을 분출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일수록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코털의 힘으로 전세계를 대머리화 하려는 악당을 제압하는 ‘무적코털 보보보‘부터 감히 제 4의 페미니즘 물결의 일부로 비유되는 퀴어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으로 미디어를 즐길 수 있던 것도 레몬 젤리 수영장 덕분이다. 그런 미디어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 덕분에, 나는 어마무시하게 소심한 유년 시절보다는 조금 명량해졌다. 레몬 젤리 수영장 만큼은 아니더라도 답이 정해지지 않은 재미있는 질문을 생각하곤 한다. 대신, 아무에게나 들려주지는 않고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아무렇지 않은 척 툭- 던진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정도의 명량함. 키다리 아저씨는 없지만, 대신 나는 엉뚱한 질문에 곧잘 답장을 받는다.
「파워퍼프 걸」이 폭력성으로 비판 받았다니, 코웃음이 나온다. 나의 세대는 폭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여자 아이들을 보며 자랐다. 마법의 힘을 부여받은 소녀 영웅들 중, 폭력성이 없는 아이들은 손에 꼽았다. 비폭력 마법소녀 영웅은 기껏해야 마법당에서 패스튜리를 굽던 초등학생 ‘도레미‘양 정도.
심지어 케이블 채널 ‘니클로디언 코리아‘에서 방영하던 ‘아앙의 전설:아바타‘에는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종래에는 피(*액체인 것말고 도대체 물과 관련성이 어디있나)를 조종하기에 이르는 여자 아이 ‘카타라‘가 등장한다. 그리고 불의 제국에 부모님을 잃고 물의 힘으로 제국주의적 폭력에 맞서던 ‘카타라‘의 반대편에는 불의 제국 황녀 ‘아줄라‘가 있다. 아바타(*물, 불, 흙, 공기를 조종하는 메시아) 포획에 번번히 실패하는 오빠를 붉은 입술로 비죽 비웃는 사춘기 나잇대의 ‘아줄라‘는 그야말로 폭력 그 자체이다. 불의 제국 전통 무술 대련인 ‘아그니카이‘에서 무시무시한 푸른 불꽃으로 누군든지 굴복 시키는 힘, 잔인한 성정은 불의 제국 황제인 그 아버지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아쉽게도 아동청소년 타겟 만화 답게 ‘아앙의 전설:아바타‘는 카타라의 (*사실 남자 주인공인 아바타 아앙의) 승리, 그리고 아줄라의 몰락으로 막을 내린다. 아줄라가 실컷 비웃던 그의 오빠 ‘주코‘는 어느샌가 아바타의 편에 서서 ‘미치광이‘ 아줄라의 푸른 폭주를 카타라와 함께 무너트리는 대개혁의 상징이 되었다. 변발을 풀고 앞머리가 생기니 미모가 살아난 주코를, 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으로 정말 사랑했지만, 스물아홉이 된 지금도 카타라와 아줄라를 잊을 수가 없다. 힘을 가진 소녀의 매력은 대단해서였는지, 다음 아바타는 카타라를 쏙 빼닮은 소녀, ‘코라‘가 되었다. 나는 그 점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최근, 20주년인지 15주년인지를 맞아 새로운 아바타 시리즈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접한 코라의 근황은 충격적이었다. 코라는 남자 친척 어른의 흉계에 휘말려 수천년 간 이어진 아바타의 명맥을 잃었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가장 미움 받는 아바타가 되어 있었다. 코라가 악한 세계로 돌아선 것도 아니고, 믿고 있던 남자 어른에게 배신 당하고 힘을 빼앗긴 것이 왜 코라의 탓인지, 인터넷 논쟁 글을 정독하면서도 나는 아직도 이해 할 수가 없다. 왠지 세계는 아직 힘을 가지고 힘을 휘두르는 미숙한 여자들에게 아직 조금 냉담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이 문단을 만났으니, 내가 속된 말로 ‘급발진‘해서 이런 오타쿠 같은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점심은 포케였다. 포케 전문점에서는 포케의 베이스를 고르고 그 위에 올라갈 소스와 토핑을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메밀면 베이스, 스시라차 마요 소스, 그리고 비건 숯불 직화 미트를 골랐다. 숯불 직화, 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맛이었다. 짭짤하고 고소했고 약간 느끼했다. 질겅질겅 씹히는 맛(그러니까 식감)이 거의 고기였다. 동석한 동료는 내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권한 ‘미트‘를 한 번 맛보더니 익숙하단 듯이 “이거 콩고기네요!“ 외쳤다가, 몇 번 더 씹어보고는 갸웃하며 “아닌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만큼이나 고기 같았다.
나는 고기인 척 하는 비건 음식에 거부감이 없다. 사실, 일부의 사람들이 왜 ‘고기인 척 하는 가짜 고기‘에 분노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짜‘라는 점은 ‘비건 미트‘라고 명시 된 그 이름에서 합의 되지 않았나? 어쩌면 내가 ‘비건 미트‘에 관대한 이유는 생고기를 제외한 모든 육류 메뉴의 맛은 고기의 식감 뿐만 아니라 소스에 더 강력히 의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소스를 쓰고 식감이 유사하다면 ‘비건 미트‘나 생고기나 맛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나? (공감 받고 싶어서 자꾸 반문하고 있다.)
동석한 동료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정도면 콩 재배해서 콩고기 먹는 편이 낫지 않아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48시간 단식 이후로 첫끼를 메밀면 샐러드와 고기 토핑을 선택한 그는 끄덕거림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치고는 참으로 진보적인 답이라 좋았다. 그 짧은 끄덕임으로 나는 적어도 지구의 50% 정도 되는 우리(*가짜 고기에 분노하지 않는 법을 아는 우리)가 생고기를 언젠가 ‘비건 미트‘로 대체하게 되리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오후 3시! 계란의 공포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과연 계란을 대체 할 수 있을까. 평소 비건 요리 채널을 즐겨보기 때문에 몇몇 비건-계란 대체품을 알고 있지만, 계란 후라이를 대체 할 수 있는 대체품은 아직 내 기억 저장소에는 없다. 어제도 미고랭에 계란 후라이 하나를 올려 먹었다. 오늘 아침은 구운 계란이었다. 베이킹, 혹은 오믈렛에 사용 되는 풀어진 계란이야 대체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계란 후라이는? (*생각해보니 구운 계란 정도는 포기할 수 이겠다.)
정말 이대로 닭을 학대할 수 밖에 없는걸까?
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일생을 과체중으로 산 여러 사람이 아마 그럴 것이다. 전부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 세상 어딘가에는 먹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는 유년 시절을 가진 과체중, 비만인이 분명히 있다. 아마 내 생각보다도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정해진 갈 곳 없이 집안 여기저기를 부유하는 종이 쪼가리들을 정리하다가 정말 우연히 고3 시절의 건강검진표를 찾았다. 손에 그 에이포 사이즈의 종이 한 장을 들자마자 얘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잊었다. 10년 전의 나는 거의 100kg에 육박했다. 170cm 언저리의 키로,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키에 비해서도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 열아홉까지, 나는 평생을 뚱뚱하게 살았다. 다행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적은 없다. 하지만 되려 집에서 ‘불링 당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부모님 부터 친척 어른들까지, 나만 보면 살 얘기만 했으니 유약한 성격의 소유자면서 동시에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나에게 스무살은 나에게 원하지 않는 공부를 때려칠 자유, 그리고 먹는 것의 자유를 상징했다. 정크푸드를 막 입에 밀어넣을 자유가 아니라, 내 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 되)는 음식을 선택하고 구매하고 마침내 먹을 자유를 의미했다. 운 좋게 수시 합격하여 대학 입학 전에 많은 여유 시간을 획득했다. 의무교육기간 내내 성실하게 공부에 쏟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했다. 체중계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보세 옷을 사입을 수 있는 사이즈가 됐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먹는 내가 부끄러웠다. 남들이 내 두꺼운 다리, 투실투실한 볼, 그리고 남다른 하체를 보고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다 나를 멸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입생 시절 갑자기 곡기를 끊은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초절식에 가까운 식단이었을 것이다. 몸은 즉각 반응했다. 갑자기 여기저기 두드러기가 나고, 두드러기를 긁은 자리에는 밤새 진물이 흘렀다. 어디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소리로 잠을 설쳐가며 그 진물을 닦았다. 그러느라 한 시간도 채 못 잔 밤들의 흐린 잔상이 남아있다. 어쨌거나 그 기간 중에도 살은 스물스물 빠졌다. 아마 60kg 후반대로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인턴 기간 중에도 나는 먹는 일이 부끄러웠다. ‘너가 그렇게 먹으니 살이 찌지.’라는 말을 들을까봐 일부러 밥을 안 먹었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밥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안 좋아한다. 먹는 즐거움을 다시 받아들인 건, 괜찮은 직장에 자리잡고 난 뒤부터였다. 성장하는 회사답게 일이 많고, 일이 많으니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유능한 팀원이자 솔직한 막내로 사랑 받았다. 그래서 더이상 먹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다. 이 이유가 먹는 즐거움을 되찾아줬다.
회사를 다니며 스트레스성 야식으로 살이 쪄도, 또 어느 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되려 살이 빠져도 사람들은 날 여전히 좋아했다. 나는 여전히 유능한 팀원이고 솔직한 막내였으니까. 그 때부터 요리와 식기류 쇼핑이 취미가 되었다. 취미 생활에 돈을 많이 투자하는 타입은 아니고 아직 부모님 집에 더부살이하는 중이니, 내 취향의 아기자기 정갈한 식기류를 쌓아놓고 살지는 못하지만 여행 가서 이국적인 밥 그릇 하나, 귀여운 손잡이가 달린 컵 하나 사오는 일이 즐거워졌다. 나와 먹는 일을 연결짓는 물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내 세계가 그렇게 점점 넓어졌다.
퇴사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으니 몸무게가 80kg대였다. 충격을 받긴 했어도 슬프지는 않았다. 퇴사 후 다른 직장을 다니고, 또 그 직장을 퇴사하고 창업을 하면서 틈틈히 다이어트를 했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열심히 걸었다. 요리와 식기류 쇼핑이라는 새 취미로 내가 맘껏 걸으며 주변 구경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질 수록 나는 열심히 걸었고, 걸어서 멀리 있는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머얼리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로 목을 축이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두드러기도 진물도 없이 살이 빠졌다. 아마 8kg 정도가 빠져, 지금은 70kg 초중반의 몸무게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잘 먹는다. 기름진 음식도, 건강한 음식도 잘 먹는다. (여전히 밥류는 잘 먹지 않는다. 밥을 씹으면 올라오는 단맛에 거부감이 생겼다.) 먹는 일이 즐거워서 ‘먹음’을 주제로 한 책들이 좋다. 이 사람들이 뭘 좀 아는군,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먹음’ 세계에서의 내 식견을 넓혀줘서 고맙다는 맘도 절로 든다.
내가 이 긴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명확히 정리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먹기를 미워하지 않게 된 사람이, 먹기를 주제로 한 좋은 책을 발견 했을 때의 즐거움을 기록하고 싶었다- 정도로 요약하고 싶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흰'으로 시작하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고집을 부려 '채식주의자'를 선택했다. 친구가 선물했다는 점, 그리고 다들 만류한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왜이렇게들 뜯어말리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반항기 어린애 같은 맘이 들었다. '채식주의자'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그 어린맘을 가진 나를 맘껏 철없이 칭찬했다. 괴로운만큼 즐거웠다. '이런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쓰는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책을 읽을 때는 매번 이런 뿌듯함을 느낀다. 이 혼란 가득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그의 글을 골랐다는 자부심. 정말 철딱서니 없다.
반항을 다 즐겼으니 이제 '흰'을 시작하려고한다. 나보다 정석적으로 책을 읽는 동생이 책을 구매해둬서, 나는 반납 기한이 없는 도서관에 온 기분으로 '흰'을 동생 책장에서 가져왔다. p.11의 짧은 선언 같은 문단을 읽고 이번에는 입술이 말랐다. 이 책은 또, 나의 마음과 안전거리를 벌리지 못한 책일 것만 같다.
개인이 정치에 목소리를 높이고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할 모임을 적극적으로 찾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대변해줄 단 한 사람이라도 국회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앉아 투표를 할 권리를 획득한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나의 삶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같은 정당의 다른 대표자들을 설득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의 설득 권력으로, 그이는 그의 설득 권력으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여성 개개인이 가진 설득 권력은 당연히 여성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호명되지 않은 수많은 권리를 지키는 일에 사용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여성의 삶에 관련 된 수많은 비여성(*갖가지 명찰 아래 펼쳐진 스펙트럼 선상의 모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그 영향력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는 진실로 여성의 권리 증진이 여성 바깥의 세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여성의 권리 증진은 여성의 보살핌을 받는 모든 연령대/성별의 시민에게 보다 여유로운 삶을 허락할 것이고, 여성의 소비력에 의존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의 이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의 부족한 지식으로 외울 수 없는 여성의 삶에 걸쳐진 수많은 삶의 다리들이 더 두껍고 튼튼해질 것이며, 여성들은 그 다리를 건너와 우리와 교류하고자 하는 그 모두와 더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명제가 파괴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다른 명제를 찾을 것인가, 혹은 파괴된 명제의 파편을 긁어모아 파괴 이전의 믿음을 재현할 것인가. 나는 후자가 흔히 말하는 '고인물'이 되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에서는 '바깥에서 주어진 희망이 없음을 자각'하는 것을 새로운 희망 탄생의 유일한 필요조건으로 달았지만, 나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파괴된 믿음 이외의 선택지의 존재를 무의식 속에 심어주는 세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동청소년 문학 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의 존재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믿음이 파괴 당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떨어트린다. 일상이 파괴 될 염려 없이 우리는 마음껏 절체절명의 순간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마음껏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움에 떨며 정의롭거나 비겁한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비참하거나 황홀한 결말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선택지 바깥의 선택지들을 만날 수 있다.
문학 작품, 그리고 작가의 존재는 선택지의 존재와 같다. 지금 읽은 선택지를 무조건 지금 당장 고를 필요는 없다. 심지어 평생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 존재를 인지하는 것 만으로, 우리는 붕괴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삶의 연장술인 것이다. 세상에.
현대 인류는 너무 오래 산다. 20대 초반, 술을 잘 하지도 않는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실 기회가 생기면 우리는 꼭 "나는 그래도 70살 전에는 죽고 싶어."라고 장난 같은 말을 했다. 죽음을 학수고대한다는 충격적인 MZ세대의 절망적인 고백이기 보다는, 지금 당장 구직이나 직장 생활도 벅차 죽겠는데(과장), 이걸 몇십 년 반복해야 된다는 현실이 겁이 난다는 자조적인 고백에 가까웠다.
이제 겨우 20대 끝자락을 달리고 있는데, 고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기술과학의 진보로 조상님들은 꿈도 못 꿀 수명을 손에 넣은 우리의 의미는 아마, 기일게 늘어난 어른으로서의 삶을 '어른다움은 무엇인가?'를 더 깊게 고민하고 고민한 내용을 나누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과학의 진보는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 이상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우리는 점점 더 느리게 어른이 된다. (나를 포함한 운 좋은 다수의) 우리는, 앞자리에 3 혹은 4를 달 때까지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립의 시기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 머리만 큰 애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한다. 길어진 수명, 그리고 늦춰진 '어른'으로의 진입 시기. 이 좋은 시절을 단기 보상 도파민에 머리 박고 허비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안전한 이 시기에 '어른이란 뭘까?'를 열심히 고민해야겠다. 고민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에게 나누고 질문을 받고 질문을 해야겠다. 아직은 어떤 질문에 어떤 답을 줘야할지도 모르겠다.
일론 머스크가 국회의원 신분이 아님에도 ‘미국 국회 효율화‘ 프로젝트를 이끄는 명실상부 트럼프 정부의 마스코트이자 최정예 요원으로 활동하는 2025년. 1895년 H.G.웰스의 이 말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속담 그대로 ‘어른들 말씀에 틀린 점 하나 없다‘가 사실이다. 과학과 기술은 자본을 지배하고, 자본을 지배하는 개인은 동료 인간에 대한 승리를 아주 쉽게 쟁취한다. 아마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치명적인 단점일테다. 돈의 규모가 그 소유자의 권력을 결정한다. 다수결 민주주의는 아마 그 껍데기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이 거대한 힘에 어떻게 대항해야할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는 선택지는 무엇일까. 괴물이 되는 선택지가 꼭 배드 엔딩을 불러올까?
한국에서는 다양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다양성을 꽤 많이 외울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한국인, 한국인 부모님이 없는 한국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 여자이고 싶지 않은 여자, 남자이고 싶지 않은 남자, 여자든 남자든 그런 표현 자체가 싫은 사람, 친구를 입양한 사람, 친구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입양된 사람, 입양아를 키우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비가시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설움이 있는 사람. 이렇게 많은 이름 뒤로 또 얼마나 다양한 이름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내가 이만큼의 다양성을 외울 수 있다는 점은 그저, 내가 이만큼의 다양성까지만 열린 창문을 갖고 있다는 점만 시사한다.
다양성을 향한 열린 창문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한국인을 납작하게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칼로 잘린 두부처럼 우리는 뭉툭하게 텁, 텁 소리를 내며 우리 자아를 잘라 볼 수 있다. 칼이 쉽게 들어간다. 아주 쉽게 카테고리화 된다는 말이다. 20대, 여자, 직장인, 비장애인. 그리고 영원히 이렇게 잘린채로 부여 받은 카테고리 아래 살아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나이야 먹겠지만 영원히 여자일테고(다수가 아마 그럴 것이다), 은퇴 전까지는 직장인이며, 큰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비장애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아마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30대, 여자, 기혼자, 직장인, 비장애인. 으로 카테고리가 하나 더 추가되는 정도일 것이다. 우리의 카테고리에는 유동성이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다수성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여자임을 인정할 수 있는 여자이고,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여지까지 비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카테고리를 벗어난 소수를 본 적이 꽤 드물기 때문에.
한국은 다양성으로 향한 창문을 활짝, 더 활짝 열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선함을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른 우리가 모두 같이 선함을 추구하며 국가라는 시스템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조금 더 온 마음을 활짝 열어야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이웃을 지금이라도 반겨야한다. 그들이 비자발적으로 뒤집어쓴 투명 망토를 내려놓도록 따뜻한 햇볕을 내려야한다. "짱개" "화교" 라는 말로 비난 받는 우리의 이웃을, 내가 감히 입에 올리기도 싫은 비속어를 매일 버티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사무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는 직종의 사람들을. 내가 부족해서 호명하지 못한 수많은 이웃들을 우리의 광장으로 불러야한다.
우리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많은 이슈에서 다른 정답을 추구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대화를 하고 싶단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서로를 광장으로 이끌어야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조금 더 생생한 사회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