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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생각나면 쓰는 부주의한 기록 / https://blog.naver.com/gibbs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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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 쓰는 하루키를 알아보고 싶다고 할 때, 하루키의 글을 알아보고 싶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글을 쓰는 하루키(같은 말 반복 같지만)와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이거나 둘 중 하나 일 것 같다. 전자는 <빵가게 재습격>으로 어느정도 맛을 봤으니,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는 후자를 살짝 ‘찍먹‘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늦게 시작한 그믐 모임, 오늘 열심히 따라잡기 위해 독서 중.


소설가
소설가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도서관

아빠는 건축을 하신다. 건축의 정확한 어떤 부분을 맡고 계시냐 묻는다면 대답해드릴 수 없다. 아빠의 책상에 늘 설계도면이 있고 헬맷을 쓰고 현장으로 출근을 하시며, 회사에서 제법 높은 직급을 맡고 계신지 모두가 아빠에게 ‘이래도 되나요?‘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계획도 짜고 실무도 볼 수 있는 대단해-엄청나-레벨의 건축 직장인이구나 짐작할 뿐이다. 이제 5년차 직장인인, 그것도 2년은 창업으로 채운 딸래미 눈에는 건축하는 아빠의 레벨을 짐작할 수 있는 미터기가 없다.


엄하던 아빠가는 나이를 드시며 물렁해졌다. 장녀가 앞장서서 본인 기대에 벗어나는 길만 선택하다보니 어쩔 도리가 없으셨을 것 같다. 아빠는 마케터인 나도, 창업하는 나도 낯설어하셨다. 나는 ‘어쩔 수 없네요!‘하고 내 갈 길을 가는 대신 애교를 많이 부리는 전략을 택했다. 물렁해진 아빠에게 잘 먹혀들어 다행이다. 아무튼, 아빠한테 친한 척을 하고 싶어서 건축 책을 골랐다는 얘기다.


아빠와 나는 서로 꿈 꾸는 집의 형태가 다르다. 당연히 은퇴를 앞두신 중장년의 희망사항과 감성추구 20대 후반의 위시리스트가 일치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독립할 때 ‘아빠 눈에도 좋아 보이는 집‘을 고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건축하는 아빠 눈에도 괜찮은 공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아빠가 날 더 믿음직하게 보지 않을까.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에 사는 삶을 꿈꾸는 바람에 이 소망은 이제 2025년 필수 도달 목표로 전환 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좋은 공간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길까? 언젠가 건축이 영화처럼 사람들의 여가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을 보면, 왠지 가능할 것 같기도하다. 원래 제일 좋은 선생님은 가르치는 과목과 열렬한 사랑에 빠진 선생님이니까.

스타벅
스타벅
특히 주로 외국에서 생활하게 된 뒤로는 곧잘 그런 생각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은 어디서 나오는가? 라는 질문에 작가 본인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코너. 일드 <고독한 미식가> 에피소드가 하나 끝나면 원작가 본인이 나와 에피소드에 등장한 식당을 소개하며 간단한 식사(와 반주)를 하는 코너가 시작 되는데, 딱 그 코너를 볼 때의 느낌이 들었다. ‘앗, 작가의 얼굴을 봐버렸다.‘하는 느낌.


<하이네켄 맥주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과한 단문>에 달린 하루키의 코멘트는 이렇다. ‘한 캔을 다 마시고 손으로 꾹 찌그러뜨리면서, 이걸 코끼리가 밟아준다면 더 납작하고 깔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엄마한테 말하면 헛소리로 끝났겠지만, 하루키는 어쨌거나 단편을 하나 펴냈다. 이 생각에 괜히 행복해졌다. 헛소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
이런 주도면밀한 시스템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불쾌함의 이유를 찾았다-그러니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외간남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데 그 사람이 직접 거기에 친절한 코멘터리까지 달아주는 기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읽어야만 이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1Q84>처럼 독립 된 세계를 갖고 있는 소설로 도망쳐야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글이 재미 없단 소리가 아니고, 그가 글을 못 쓴다는 말도 아니다. 되려 그보다는 그가 글을 군더더기 없지만 아주 혼란스럽게, 일반 사람의 뇌내 독백을 그대로 재현해서, 좀 너무 리얼하고, 남의 머리를 그대로 라이브 생중계로 관람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나는
쌍둥이는 내게 그것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몸 파는 여자가 나오는 소설을 쓰지 않는 남자 소설 작가는 어디에 가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남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이 하필이면 몸을 파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치욕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서 거부하고 싶은걸까? 전자와 후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까. 어쨌거나 후자로 묘사 된 내가 조금 더 혐오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여자만 그리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남자 작가의 소설에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생각한다. 당신의 창작 세계에는 왜 이 여성이 존재하는가? 나는 왜 ‘그들‘을 ‘창녀‘나 보다 익숙한 이름으로 부를 자신도 없을까. 나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분노하는가, 혹은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분노하고 있는가. 후자라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남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가?


아무튼 수집한 문장과 관련 된 이야기를 조금 남기자면, 나는 사람들의 첫인상을 아예 기억 못한다. 애초에 첫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 더 신기하다. 그래도, 한 사람과 왜 인연을 이어가길 그만두었는지, 그 이유는 잘 기억한다. 이것도 상실의 일종인가. 아니면 내가 끊어냈으니 상실보다는 ‘비움‘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나?


아니 왜 남자 소설 작가의 남자 등장인물은 슬픈 일이 생기면 창녀를 찾는가? 취미가 없나? 취미가 없을만큼 자아 존재감이 없다는 지점에서 그의 한심함을 부각하는건가? 아니면 현실반영인가?

상실한
상실한
코끼리의 소멸을 경험한 후로 나는 곧잘 그런 기분이 든다.

늙은 코끼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주머니 크기만큼 작아져서 사육사 노인의 주머니에 숨었을까. 왜 사람들은 코끼리를 찾는만큼 사육사 노인을 찾아보진 않았을까? 우리는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문제 중 가장 쉬운 문제에 집중한다. 나와 소통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나의 관심이 필요한 (혹은 내가 그렇다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완벽한 관심의 대상이다. 뜨뜨미지근한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 바글바글 끓을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어쨌거나 코끼리는 사라졌다. 어떻게, 왜, 언제. 아무런 답도 못 찾았지만 우린 신경을 끄고 살 수 있다.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열이 올랐던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아주 쉽게 꺼버릴 수 있다.

뭔가를
뭔가를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당신의 파트너잖아."

무엇이라 말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 문단에서 사랑을 느껴서 기록. 아,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구나. 새까만 공간의 실버스크린 안 쪽 세상에서 봤던, 빛나는 실이 두 사람의 가슴을 꿰는 듯한 환상이 보였어요.


물론 남편이 어릴 때 빵가게 습격해서 빵을 그닥 정당하지 않은 노동의 대가로 받아온 이야기 중이기 때문에 이 감상은 글의 맥락과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나서 느껴지는 공복감이라. 둘이 공유하는 저주가 그 완벽한 '구멍' 같은 감각이라니. 그렇잖아요.

그녀는
그녀는
후와후와스러운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잡문집 그믐 독서모임 시작을 한 주 앞두고 깨달았다. 아, 나는 하루키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구나. 그의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에세이며 기록물을 엮은 잡문집을 읽으려면 그래도 한 권은 읽어봐야 하지 않나?


<1Q84>로 시작하면 정석이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표 동화라니. 표지를 본 순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그대로 책장에서 빼왔다. 품에는 이미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초면의 제목을 가진 하루키 소설을 들고 있었다. 도서관 구석탱이 자리에서 <후와후와>, 그리고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를 읽고 집에 '빵가게 재습격'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하루키의 문장을 모른다. 그가 마라톤을 뛰고 굉장히 많은 외국어를 할 줄 알며 번역 경험도 있다는 작품 바깥의 하루키만 조금 안다. <후와후와>는 하루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나눈 반려묘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이 담겨있다. 그가 아주 고요한 공간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의 애정을 나누는 사람이었다는 아주 소중한 정보를 비롯하여, 또 작품 바깥의 하루키와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만, 색색 호흡하는 고양이의 배가 부푸는 모습을 '마치 갓 생겨난 지구처럼' 볼록해졌다가 꺼진다는 등의 표현에서 (내 기준으로) 좋은 작가, 그러니까 이미지에 꼭 맞고도 흥미로운 표현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일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간에, 이제 <빵가게 재습격>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만날 시간이다.

소리는
소리는
채식의 철학 - 동물권을 넘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음식과 동물에 관한 윤리

그렇다면 나와 공유하는 가치가 없는, 혹은 적은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까? 좌파는 우파에게, 서로 다른 인종에게, 그리고 다른 성별에게 ‘더 넓게, 혹은 좁게 보면 우리는 같은 편이에요!’라고 외치면 메아리처럼 그의 외침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내란사태 이후의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념간의 갈등이 심화 되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상대 진영의 이념 그 자체, 더 잦게는 그 이념 뒤에 숨은 진의를 의심하느라 바쁘다. 실상 내 편이 누군지도 모르겠는 지경이다. 진영 논리에 휩쓸려 벤다이어그램 모양 땅따먹기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한 달을 살고 있다.


꽤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를 그릴 수 있는 수많은 잣대와 언어를 만났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꽤 많은 조각으로 분리할 수 있다. 시스젠더 여성이자 (*어제는 시스젠더라는 표현을 쓰지말자고 주장하는 이를 만났다) 논퀴어, 20대, 서울소재 대학교를 졸업했고 사무직 일자리가 있는,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내가 이걸 주장씩이나 해야하나), 자가는 없으나 가족 소유 집이 있는, 그런 나. 그런 나와 같은 편이라면 나와 몇 조각이나 같아야 할까? 최소와 최대 기준이 있나?


조각이 많아질 수록 기준은 애매해진다. 그러면 가장 단순하게 돌아가야한다. 사람이신가요. (그리고 남을 해쳤거나 해칠 계획이 있으신가요?) 사람을 존중하시나요? 혹시.. 성별, 사는 곳, 인종, 나이, 장애 유무에 따라 다르다고 답하실 예정이시라면.. 도대체 뭐가 문제이신가요? (앗 처음 문제로 돌아왔다)

이러한
이러한
특별한 종류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이한 생활방식에는

유대에서 연대가 시작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남기는 문장(보다는 문단). 우리는 '각자 다른 종류의 바람과 필요'를 가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과 장애인, 어린 아이와 노인. 그리고 나열하지 않은 수많은 잣대로 나뉜 나와 상대방.


내가 연대하는 상대방이 요구하는 권리가 내가 이미 누리고 있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종류일지라도, 나는 아스팔트 위에서 목이 터져라 권리를 외치고 따가운 햇볕이나 살을 에는 추위에 얇은 비닐이나 은박지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면 (그 사람들의 주장이 사회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을 해치지 않는 이상) 왜 세상은 저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나 덜컥 억울해진다.


세상의 잣대로 나와 다른 편으로 나눠진 상대를 향한 유대는 어떻게, 그리고 어떻게 더 자주 느낄 수 있을까. 결국에는 애를 써서 나를 둘러싼 견고한 벽돌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수 밖에 없겠지. 어느 시민단체에서 오셨나요. 어떤 권리를 잃으셨나요. 마땅히 누려야하는 공간과 시간을 침해당하셨나요. 이 나쁜 새끼들! 지금 출동하겠습니다.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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