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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생각나면 쓰는 부주의한 기록 / https://blog.naver.com/gibbs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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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꼼수, 라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생각한다. 옛날에는 어떤 잘못을 '꼼수'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반칙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으니 괜찮다고, 오히려 조금 눈치 좋게 요령을 피워서 효율성을 높이는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콕 집어서 예를 들 수 없는데, 이게 내가 생각보다 '꼼수'를 고른 일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그 '꼼수'에 대한 죄의식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내 선택에 대한 무서움이 있다. 투표권 부터 시작하여 내가 남기는 덧글 하나까지. 누군가의 1분, 혹은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나비효과의 일부라는 생각을 항상 안고있다. 나의 선택이 나 뿐만 아니라 그 바깥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상상만으로 무시무시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라는 말의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나는 돌이 될 생각이 없는데, 그것도 심지어는 흉기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는데 내가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든 남이 다칠 수 있다.


결국엔 항상 나와 남을 동시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남을 나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두지 않고 꼭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어른으로 기능하기가 이렇게 겁나고 까다롭고 무섭다. 그래도 어른으로 기능하고 싶은 이유는, 나와 남을 동시에 고려하는 개인이 많은 사회가 내가 살고 싶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내 손
내 손
나는 맨발로 막 나가요.

손톱이 꺼매지는 것도 모르고 틱, 틱, 틱. 작은 틈을 벌리려고 기를 쓰는 욕망이 느껴져서 ‘박쥐‘를 좋아한다. 적나라한 이미지 때문에 영화 화면은 자주 못 마주보더라도 박쥐 각본은 자주 읽는다. 태주는 정말... 정말 귀한 캐릭터다.

이 지
이 지
삶은 생각보다 길고,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Orla Gartland의 "You're not special, babe"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 문단을 읽고 생각나는 노래가 이 뿐이라 꼭 적어두고 싶었다.


Life is short until it's not

Honestly, it's kinda long

And it takes a while to come around

People always let you down

Find the ones that get you

Stick to them like hot glue

Dance if you want to


인생은 지루하게 짧아

사실, 벅차게 길지

제정신으로 살기 너무 벅차

항상 사람이 제일 아파

맘이 맞는 사람을 찾아

껌딱지처럼 달라 붙어

괜찮으면 춤도 추고


-


내년이면은 (아마) 스물 아홉. 어떻게 살아야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요새는 하루 중 재미와 뿌듯함을 느끼면 그만이다.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의 하루가 결정한다. 계획은 없지만 막연한 시각은 있다. 나는 사업을 계속 할 테고, 이 사업의 좋은 끝과 나쁜 끝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 그럼 그냥 흐름에 맡기고 그 날의 위기에 대응하고 행운에 기뻐하면 되는 거 아닐까.


치열하기 정말 싫다. 열정적인 자세와 치열함은 다르다. 치열함은 전투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열기와 열기가 서로 맞붙어 불꽃을 튀기며 날붙이 튕겨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치열함이다. 나는 그렇게는 살 수 없다. 나는 긴 하품과 적당히 쿠션감 있는 의자, 지나치게 길고 푹신한 담요와 햇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You're not special, babe"의 한 대목처럼 인생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거니까 맘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손을 붙잡고 춤 추면서 살고 싶다. 비유적인 포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서른
서른
당신 스승처럼 살면 당신 스승처럼 죽어요.

공부도 잘 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장난꾸러기 눈을 가진 언니가 나랑 상의도 없이 덜컥 프랑스 수녀원에 몸을 던졌다. 그냥 공부를 좀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싱크홀 '무간'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웜홀임을 증명한 세계적 석학인 언니가. 부모도 친척도 없어 세상에 단 둘 뿐인 나를 두고서는!


단편 '대화'는 그런 언니를 향한 일종의 복수심을 가진 동생의 시선으로 흐른다. 무간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동생 '효미'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와 언니의 믿음을 무너트리고 싶다. 언니의 믿음을 무너트려 나의 언니를 되찾고 싶다. 신의 아들이라니, 그런 걸 정말 믿을 셈인가?


자매의 (*일방적인) 갈등은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수세기 간 진행 된 논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랑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무간을 뛰어넘어 만난 예수는 효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언니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은 적은 있나? 지금 당신의 태도는 언니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무간 너머의 예수의 말이 맞다. 효미의 언니는 스스로 그 삶을 선택하고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예수의 말은 효미의 언니가 안전한 선택지를 골랐기에 '참'이 될 수 있다. 언니가 만약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이비 종교에 들어갔다면? 광신도가 되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백악관을 정복하고 모든 밀을 파스타로 바꿀 것이라고 외치고 다닌다면?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어떡해야할까?


세상이 안전하지 않아서 진리의 힘이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어
그 어
과거를 인용해 엄마를 비난하지 않을 것.

나는 아들과 아빠의 관계는 영영 딸과 엄마의 관계를 닮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직도 여자와 남자가 유별하기에, 재학생 동의 없이 여대를 공학으로 전환하려하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는 뉴스가 나오기 때문에.


엄마가 엄마이기를 거부할 때 받는 비난과 아빠가 같은 일을 할 때의 비난은 그 정도가 다르다. 그래서 엄마는 할머니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또 존중하기로 한다. 단편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은 배정심 여사, 나의 할머니가 엄마이기 앞서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로 결심한 그 시간의 외로운 각오를 짐작하며 흘러간다.


엄마를 사랑하기도 또 미워하기도 잘 하는 딸을 위한 단편.

각자의
각자의
저런,

시는 어떤 장르인가, 어떤 형체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군집단(?) 같은건가. 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데도 시에 대한 고민을 그보단 많이 해봤다. 왠지 모르겠는데 시 안 쓰는 사람들이 유난히 시에 대한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이건 너무 유치하고 저것은 나무를 낭비한 것이고 나무야 미안해. 잘 쓴 시에 대한 정의를 다루지 않고 못 쓴 시를 까내리는 의견을 너무 많이 봤다.


김은지 시인의 이 시집이 그 줏대 없이 정답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향한 다정한 교정 같다. 문장의 형태나 길이, 소재가 중요할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읽고나서 무언가 느꼈는가. 남에게 꺼내보이기 부끄러워 아래로 아래로 눌러두었던 감정이나 다들 평범하다고하는데 정작 나는 잘 느껴본 적 없는 그 특수한 일상적 감흥이라던가. 뭐라도 느꼈으면 되는거 아닌가.


‘늘픔‘이라는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다가가는 어떤 세계에선

모두가 시를 좋아해

간호사
간호사
상그리아의 어원은 ‘피’라는 뜻의 ‘상그레(sangre)'.

얼마든지 떠나도 좋으니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말이 좋다. 얼마든지 기다릴 자신이 있다는 각오가 담겨있어서 좋다. 얼마든지 기다릴 자신이 들도록 함께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전제가 쓰여진듯 해서 든든하다.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기억하자.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 해 사랑하자.


모든 좋은 말은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로 귀결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현재를 사랑하는 건 너무 어렵다. 당연한 일은 왜 당연할만큼 쉽지 않을까??

잊어버
잊어버
너를 좋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you and me.

태생적으로 태양을 닮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의 태양계를 만들만큼 강렬한 반짝임과 끌어당김을 갖고 있는 사람들. 테츠야와 수민은 작은 태양들이다. 미노리와 희주는 그 따스한 반짝임에 끌려들어가 그 다정한 궤도에서 빙빙 돌다가 어느 순간 그림자를 인지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 비극, 혹은 깨달음의 싹이 되는 이야기.


나도 중고등학생 때는 남 부러워하기 바빴다. 친구를 잘 사귀는 아이들. 뭐든지 두 번생각하지 않아도 안전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친구들. 무난하고 둥글둥글해서 사랑스러운 사람들. 지금은 모르겠다. 지금은 작은 섬 같은 내가 좋다. 육지도 아니고 섬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여기저기 연결 되어있어 필요하면 다시 궤도에서 빙빙 돌 수 있다.


그럼 날 필요에 의해 만나는거야?! 라고 머리 속 목소리가 시비를 건다. 중고등학생 때는 걔가 날 끌고다녔지만 지금은 내가 어, 맞아. 라고 말문을 닫아버리는 법을 터득했다.

미노리
미노리
도움도 신의도 사랑도, 그 무엇에 대한 권리도 없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방탕했고 경제 관념이 적었으며, 관심종자였고 자기에게 쏠린 관심으로 남의 기분을 해치는 재주가 탁월한 당나귀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이 노래하는 듯한 음악을 써내려가는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고 한다).


책은 사후에 더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음악가의 사랑, 콘스탄체만을 조명한다. 노래를 부드럽게 부르고 그보다 더 부드럽게 웃는 재주가 있어 사랑 받는 언니 알로이지아를 질투하던 어린 동생. 세간의 환대와 증오를 동시에 받는 모차르트를 누구보다 사랑한 아내.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콘스탄체 베버 본인으로서의 삶을 더 행복하게, 더 말이 되는 방식으로 꾸려가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책은 역사적 기록에 살을 덧댄 방식이라 소설이고 다큐멘터리다.


얼마 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발표 된 몇 개의 곡이 그의 누나인 난넬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글을 읽었다. 볼프강은 난넬의 작품을 발표하고 받은 돈으로 뭘 했을까? 그 돈은 둘의 아버지인 레오폴트의 지갑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볼프강의 집세나 게임비로 탕진 되었을까. 콘스탄체 베버가 끊임없이 모차르트의 경제적 어려움을 주도한 ‘방탕하고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는 몰상식한 여자‘라고 비판 받은 것처럼, 볼프강의 후광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파묻힌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있을 것만 같다.


그 사실을 제하고도, 레아 징어의 문장이 담대해서 좋다. 아름답고 끔찍한 감정들이 잘 느껴진다. 책은 어린 콘스탄체가 부모의 관심을 갈구하며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콘스탄
콘스탄
그가 말하는 전인류의 위협이

유전자 편집 기술에 도태 된 비-편집인의 순응적 열등감 속에 좀비물에 흔히 등장하는 ‘면역인‘의 기운이 느껴지는게 짜릿하다. 주인공은 바트 심슨처럼 자기 목욕물을 치료제로 파는 뻔뻔한 짓을 저지를 위인은 못 되겠지만, 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살아남은 걸 보면 만만한 상대도 아닌 것 같다.


유전자 편집으로 신체/정신적으로 우수하며 성격까지 우아하신 유전자 편집 인류만 공격하는 유전병과 편집인이 될 자본이 없단 이유로 사회 끝자락까지 당연스레 내몰리는 운명과 죽음에 순응하던 주인공의 조합은 아이러니하지만 현대사회에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익숙하다. 언더 더 독의 세계가 어떻게 전개 될지 기대된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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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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