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금, 그믐
생각나면 쓰는 부주의한 기록 / https://blog.naver.com/gibbs0929아이디어는 욕망에서 온다. 욕망은 그럼 어디서 올까? 타고난 기질이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의 욕망(*호기심)은 어디서 비롯되는걸까? 아, 그러면 기질은 어떻게 결정 되는지를 봐야하나. 그럼 부모님의 욕망과 기질, 조부모님의, 증조부모님의... (이하 가계도를 올라가며 반복)
성스러움은 곧 권력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성스러움의 반대 되는 이미지인 추악함에 권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둘 모두 욕망이 세워올리 제단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둘은 같은 상(*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해석자의 눈의 기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걸지도 모른다.
대학 강의 때 이런 얘기를 매학기 반복했던 것 같은데, 졸업하고 4년이 지나 서 또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이 같인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이야기 밖으로 나가려면 뭐가 필요하지?
미국은 여전히 꿈의 땅이다. 그 거대한 땅덩어리와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에서 마련 된 파괴적인 경제력, 혹은 그 막강함으로 이룩한 다양성의 나라라는 정체성이 미국의 아우라를 이룬다. 다만 지금은 미국 가면 부자가 된다는 리치한 아메리칸 드림보단 자유롭게 사랑하고 뽐낼 수 있을거란 베이직-휴먼롸잇-아메리칸 드림이 보다 만연한 듯 하다. 우리가 탐내는 것이 달라졌다.
너를 위해서야,
당신은 말했다
(중략)
나를 위해서야,
아주 먼 곳으로 간다
듣기만을 시키는 당신과는
공존할 수 없어요
-
내게 가한 위해를 되돌리는 일은 '회복'보다는 그 일이 있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회귀'에 가까운 일인가 싶다. 시의 제목 Undo가 그런 맘일까?
문명은 무릎 꿇고 신은 멀고 죽음은 더 가까워진 이 땅에서, 라는 문장 때문에 품고 사는 짧은 단편집. 원령공주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재앙은 사회에서 가장 유약한 존재부터 덮치고 으스러트린다. 아마 그래서 모든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힘들게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멍청한 펨벌리 땅을 절반이나 갖고 있는 다아시 씨를 제외하고.
평범을 누리는 사람의 지위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의 모든 싸움과 투쟁은 필요한 과정이구나. 그동안 열심히 소극적이었던 삶이 부끄럽다.
영화 ‘보통의 가족‘이 생각나는 맥베스. 24년 개봉한 영화에서 두 부부가 갈구하는 것은(아마도) 정의이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는 맥베스 내외가 권력을 욕망한다. 영화 속 두 가족은 정의와 평화를 두고, 맥베스는 욕망과 평화를 두고 갈등한다. 결국 욕망과 행동을 일치 시킨 쪽은 파멸하는 흐름까지 비슷하다.
우리의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마음이 욕망하는 것과 옳다고 여기는 것이 다를 때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고 걸어야할까? 답은 쉽지만 가끔 반항심이 든다. 까짓거! 어? 한 번? 어? 해봐? 어?!
그럼 안 되지 응
출근하자
박선영, 개인의 우주
"하지만 개인의 우주 속에서 어떤 무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누가 어떻게 알겠어요? 본인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요. 그리고 그 무한한 우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죠."
내 삶, 나의 우주 바깥에 누군가 흩뿌려 놓은 희망과 소원의 조각을 찾고 싶은 사람을 위한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