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좋아서 2> 고영범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D-29
<서교동에서 죽다>에 관한 어떤 이야기라도 좋고, 참여하시는 분들 각자의 '서교동'과 '화곡동'에 관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문학이 되기 전의 이야기, 되고 있는 이야기, 되고 난 다음의 이야기, 모두 좋습니다. 같이 이야기해요.
들어오기는 했는데, 어떻게 시작하는 건가요?
선생님, 여기서 또 뵈니 새삼 반갑습니다. 다른 방들 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혹은 실시간으로, 혹은 시차를 두고 나누는 거 같아요.
안녕하세요. 고영범 작가님. 윤병룡입니다. 여기서 뵈니 더 반갑습니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배경이 같은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던 소설입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윤병룡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랑 동년배이시군요. 선생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첫날이고 하니까, 제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를 좀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라고 첫줄을 써놓고 보니 그 얘긴 후기에 다 썼던 거 같고...
사실은 소설의 배경은 서교동이 아니라 동교동입니다. 성산로를 건너서 서쪽으로 넘어가면 거기부터는 서교동이죠.
서교동은 원래 '세교동'에서 왔다고 하죠. 세교는 작은 다리들을 말하는 거고, 그래서 원래 지명은 '잔다리'였다고 합니다.
동교동 서교동은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 두 가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금 '걷고 싶은 거리'라고 관에서 이름을 붙여놓고 버스킹 같은 걸 많이 하는 넓은 길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동교로'라고 불리우는 넓은 길입니다. 동교동과 서교동은 계획 주택단지라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한데, 지도에서 보면 그 두 길만 유난히 넓고 불규칙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 얘기해주신 것 보고 위성 지도를 열어서 동교로를 검색했더니 불규칙한 선이 눈에 띄네요. 서교동이 원래 세교동이었다는 얘기도 얼핏 들은 적 있었던 것 같아요.
예. 그 불규칙한 선이 망원동을 관통해서 한강까지 가죠. 그게 원래 물길이었습니다.
아마도 세교동이 서교동이 된 건 동교동 쪽이 개발되면서 행정구역을 나눌 필요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동교동이나 서교동은 두 개의 개천이 동에서 서로 길게 관통하고 있어서 문자 그대로 잔다리, 그러니까 작고 좁은 다리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런 하천과 다리들은 서울시내 여기저기에 많이 있었는데,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에 대부분 덮였습니다. 이런 하천들을 '복개천'이라고 불렀죠.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말이죠. 이 말 자체는 무언가로 덮인 개천을 일컫고 있는데, 그러나 무언가로 덮였기 때문에 그 개천은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거기에 개천에 있었다는 소문을 지칭할 뿐인 거죠.
잔다리 찾았습니다. 성미산도 찾았구요. 성미산이 야트막한 산이라고는 하셨는데 저는 거기 지나다니면서 산이라고 생각해보지를 않았네요. 생각 없이 지나가면 언덕인 줄도 모를 정도잖아요.
예. 성미산은 저 어릴 적에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홍익사대부속여고가 그리로 옮겨갈 때 분란이 일면서 처음 이름이 알려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뒤로 상당히 강력한 지역공동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죠.
몇 해 전에 서울에 갔을 때(저는 십 몇 년 전부터 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써보겠다고 기억에 남아있는 길들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화곡동에도 하천이 있었는데, 그 하천, 혹은 하천의 흔적은 결국 못찾고 말았습니다. 덮여서 사라진 하천을 찾아다니면서 다른 기억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모하비라는 이름의 사막이 있습니다. 네바다 주로 이어지죠. 최인호 작가의 빼어난 중편 <깊고 푸른 밤>에 등장하는 Death Valley가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아무튼, 모하비 사막에는 공중전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예전에 그 사막에 채광굴이 하나 있었고, 그곳의 광부들을 위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가 채광굴은 폐쇄되었고, 그래도 공중전화는 남아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서교동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전 이 동네 토박이? 입니다. 합정동에서 태어났고, 서교초등학교 다녔고... 대학교도 근처에서 다녔고요. 책 제목에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제 이력을 읊고 있네요.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모하비 사막의 공중전화 이야기를 좀 더 할게요.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시작한 거긴 하지만, 이 이야기도 언젠가 쓸 생각이니까, 일단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미국의 공중전화는 수신도 가능합니다. 전화번호가 전화기 전면에 부착되어 있죠. 누군가가 그 전화번호를 보고 가서 소문을 퍼뜨렸고, 사람들이 재미삼아 그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중전화를 구경하러 갔던 누군가가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아서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전화는 때로는 독일에서, 스페인에서 걸려오기도 하고, 전화를 받는 사람이 멕시코에서 온 사람인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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