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연습 자세히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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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젊은 친구들은 우리 같은 어른들보다 고통을 더 강렬하게 경험해. 감정의 고통을 말하는 거야. 네 고통은 기간과 강도가 더 크지. 견디기가 더 어려워........네 감수성은 부모나 교사들보다 우월해........이 극대화된 감정적 고통은 선물이야. 고달픈 선물.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선택받았다는 자부심, 짐작되는 선택받은 이유로 인한 굴욕감.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연기란 상상 속 상황에서 진솔한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진솔한 감정에 충실한 것은 감정을 옹호하는 것이다.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세상의 모든 '처음'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고통이든 희열이든 낙담이든. 학교 복도에서의 사건 이후 데이비드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세라는 동작 수업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세라를 따라 들어온 로조 선생은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너 같은 나이에는 고통을 더 강렬하게 경한다고 말한다. 극대화된 감정의 고통은 선물과 다름 없다고. 그것이 선물이었던가? 내가 느꼈던 그 강렬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누군가는 평생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훗날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배신감을 느꼈다. 저마다가 갖고 있는 가능성들의 한 끝 차이로 누군가는 강도 높은 굴욕을 느끼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본다. 어떤 선택권 없이 속수무책으로 감정에 압도되는 존재와 그런 그를 동정할지 다만 지켜볼지 선택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는 존재의 그 상반된 입장. 그 순간의 간격들이 모여 삶의 격차를 만든다. 그건 선물이 아닌 불운과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걸 선물이라고 무리하게 포장하는 말들은 그와 동일한 불운의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안도의 또다른 표현일뿐.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말들일 뿐. 그건 누군가의 불운에 무례를 범하는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르겟다. 누군가는 그것이 '처음'이기에 압도됐던 어떤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느슨해지는 경험을 할 지도. 그러나 나의 경우 '처음'이라서 강렬했던 감정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 감정이 발생하던 시기의 조밀함에 변함이 없다. 그 시절의 고립감에 직면할 때면 나를 벌주기로 결심한 미술선생의 얼굴이, 잘 조련된 개들처럼 권력에 쉽게 굴복하던 친구들의 얼굴이 소환된다. 나의 웅크린 몸과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파묻은 얼굴을 들지 못하던 그 열패감과 모멸감도. 그건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에게서나 나올 법한 몸짓이었다. 그때의 일은 훗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지표가 됐다. 모든 불미스럽고 불편한 일들에는 그 날의 사건이 소환됐고 고통과 번민을 거기에 견주었다. 그 정도로 그 날의 사건은 내 인생 전반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구체화되고 명료해졌다고 해야할까. 그 시점의 감정의 흐름을 개별적인 단위로 분리해서 해석하고 분석하기에 이르렀으니까. 그때의 그 압도적인 감각은 아주 일관되게 흐르고있고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 그러니 로조 선생의 저 말은 어떤 고통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같은 젊은 친구들은 우리 같은 어른들보다 고통을 더 강렬하게 경험하지. 그것이 처음이라서, 새것이라서. 생소함과 낯설음은 자극적이니까. 그러니 그것이 흐릿해지고 무뎌질 만도 하지. 자극은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떤 자극은 죽을 때까지 남는다. 문제는 한 존재의 내면에 가하는 타격감이지.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다. 어떤 극대화된 감정적 고통은 불운이자 재앙일 수 있다고. 그 재앙의 경험은 결코 공평하지 않을 거라고.
킹슬리 선생은 어째서 불우해서 남들보다 조숙함을 일찍 경험한 학생들을 선택했던 걸까? 로조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젊은 친구들은 고통을 강렬히 경험하기에 그것이 인상적인 연기의 토대가 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일까? 극대화된 감정들을 연기로 승화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불운과 고통이 연기력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절망과 낙담과 비관이 연기로 재현되는 현실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 거라고. 그러니 킹슬리 선생의 호출은 곧 자신의 그런 어두운 현실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세라가 굴욕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훗날 킹슬리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세라를 소외시키는 이유는 세라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연기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 시선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모습에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현실이 연기로 승화되려면 상황과 감정의 객관화가 선행되어야 하니까. 네모나고 견고한 액자 속에 박제된 희귀한 나비들처럼. 그러니까 킹슬리는 환멸을 일찌감치 경험한 사람 특유의 반감과 적의가 필요했던 것. 그가 그런 학생들을 선택한 것은 그 환멸을 가장 신랄하고 강렬하게 느끼며 그것을 가장 현실감있게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은 젊은 피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나는 나를 꾸미는 것에 능했다. 마음속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다가도 이해관계와 득실이 자각되면 주저없이 노선을 바꾸고 함부로 웃음과 공감과 호의를 흘렸다. 그러고선 그런 거짓 마음들이 효력을 발휘해 나의 입신이 전보다 드높아지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런 속된 바람들로 잠식된 내면이 감지될때면 씁쓸하면서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지 않던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며 애써 합리화했다.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때 ,기대했던 보답이 거부당할때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마치 나 자신이 썩어가는 시대에서 몇 남지 않은, 드물게 깨끗하고 청렴한 사람인 마냥 모든 세계를 싸잡아 공격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가담했으면서 그랬다. 나의 감정을 속인 것에 대한 결과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몹시도 못난 모습이었다. 진솔한 감정에 충실한것. 이건 솔직함일까? 그렇다면 솔직함은 감정을 옹호하는 일이겠다. 옹호된 감정은 표현되어야 할까? 그래야 비로소 그것이 진솔한 감정에 충실한 것이 되는 걸까?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야 하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생활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들의 숙명을 고려해볼때 표현될 감정과 그래선 안되는 감정을 분리해야겠지. 보통은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 가운데 진솔해서 옹호되어야 마땅한 감정들이 속해 있을 것이고. 나는 네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한다. 너의 그 위선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너는 사회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이러저러한 악담들은 역시나 위선적인 웃음의 장막에 가려져 마음 속에서 생동한다. 사회적 안위를 위해서, 무사함과 평온을 위해서, 사회적 위치의 보전을 위해서, 관계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차가운 시선을, 자꾸만 쥐여지는 주먹을 애써 숨긴다. 표현되지 않는, 표현되어선 안되는 이런 감정들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너에게 웃음을 흘리지만 사실은 너를 부정하는 마음들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매순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완전한 손상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감정을 숨기기로 마음먹은 나의 선택이 곧 나인 걸까. 형편없는 나 자신을 대변하는 것일까. 어떤 감정이 내면에 남아있든 그런 선택 자체가 나를 규정짓는 것일까.
난 너희가 부드러운 시선을 찾아내길 바란다.......중립을 말하는 거야. 수용하는 것.불안,비난,기대가 없는 중립적인 시선, 중립성은 우리가 상대에게 제공하는 자신이지. 주시하고 개방적이고, 얽매이지 않지. 감정의 앙금도 없고.우린 그렇게 무대에 오르는 거야.
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이런 연습을 하나보다. 중립적인 시선을 찾아내는 연습. 삶을 이렇게 살아낸다면 어떨까. 중립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상황을 객관화 시킨다는 것이겠지.무대에 올려질 연극에 속한 배우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할 거다.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에 감정을 과도하게 입히지 않도록 단속해야할 거다. 절제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 비어져나오는 순간 그 연극은 망한 것이리라. 프리모 레비도 수용소 안에서의 그 비관적인 상황을 유머로 객관화 시켰다. 그건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고 실제로 그는 몇 안되는 생존자 중 한명으로 기록됐다. 젊은 시절의 철없는 선택에서 비롯된 그 때의 상황은 재난과 다름없었다. 재난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객관화가 유일한 것 같다. 상황을 나와 분리하고 조금은 차가워진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 그것은 감정을 스스로 지정한 어떤 것에서 거둬내기로 결심하는 것. 선택적 감정 사용법이라고 해야할까? 감정을 쏟아야할 것과 제거해야할 것을 분류하고 감정이 필요한 곳에 그만큼 넉넉해진 감정을 쏟아내는 것. 그러니 그 어리석은 선택도,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후회와 자책 , 가끔씩 터져버리는 재난같은 상황들을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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