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D-29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을 쓰다가 그게 독자로 하여금 지루해질 즈음엔 다시 확실하고 선명한 현실 얘기를 들려준다. 이러면서 페이지를 채우는 거 아닌가.
일본인은 고기는 잘 안 먹는 것 같은데 닭튀김은 잘해 먹는 것 같다. 그러나 치킨이 워낙 발달한 한국을 맛이나 종류에서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본인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성적인 표현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잘 하나? 그래도 뭐라는 사람 없나? 우라나라에서 보면 좀 문란한 성문화인데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섬나라라서 중국의 유교문화를 우리나라처럼 잘 받아들이지 못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것도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인 것이다. 문화 같은 것 사실 상대적이라 절대적으로 좋고 나쁨을 가릴 수가 없다.
여자를 더 그리워한다 세상엔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공기같이 당연한 거지만 문득 어느 날, “이건 왜 이런 거지?” 하며 그 이유를 나름, 없는 상상력을 동원해 파고들 때가 있다. “이건 왜 이럴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여자를 더 많이 기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으면 어머니를 딸이든 아들이든 더 많이 기억한다. 어머니가 더 일찍 죽으면 대체로 남아 있는 남자는 더 일찍 죽는다. 어머니만 남아 있으면 더 오래 산다. 이런 걸 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의지하며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 생활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더 의지하는 것이다. (처음엔 기댈만한가 여자가 판단해 같이 살지만, 살다 보면 오히려 남자가 더 기대는 결과가 된다. 대개는 그렇게 된다.) 그리고 혼자 사는 동안에도 남자가 여자를 더 그리워하며 납골당에 더 잘 찾아간다. 어머니가 죽은 아버지 얘기하는 것보다 남아 있는 아버지가 죽은 어머니 얘기를 더 많이 한다. 그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멈추는 법이 없다. (속으로 “그때만큼 좋았을 때가 없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 아마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여자들 특유의 친밀감이나 가벼운 집착, 관계지향형 때문일까? 서로 얽히고설킨 애증(愛憎) 관계 때문일까? 남자는 주로 과거를 먹고 살고 여자는 현재를 살아 이미 지나간 것보단 현재에 더 충실한 것 같다. (여자처럼 체념하며 현실에 적응하며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과거에서 못 벗어나니 지금 더 그리워하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건 사람으로 잊어야 하거늘.)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상대적으로 더 말투부터 무뚝뚝하고, 여자처럼 같이 하는 게 아니라 혼자 처리하려고 덤벼서? 지금까지 쌓은 게 부족해서? 있을 때 잘하지 못해서? (남자는 골치 아픈 일은 그냥 혼자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자는 그런 일일수록 같이 해결하려 하고, 그걸 함께 이루었을 때 뭔가 뿌듯함을 느낀다. 남자는 목적 자체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지만, 여자는 함께 하지 않은 것엔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러니 어떻게 남자가 기억에서 이길 수 있겠나? 이게 게임이라면 백전백패다. 승산이 없으니 다른 길을 택하는 게 옳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렇다.)) 결국 남자는 남과 같이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만나도 별 얘기도 없고 그냥 술이나 좀 취해야 시끄럽게 대화하지만 다음날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술을 마시며 여자와 비슷한 시간을 앉아 있었어도 기억나는 건 별로 없고, 그것도 안 좋은 기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사(酒邪) 부린 시간! 그러나 여자는 식당에서 그냥 밥이나 먹으면서도 아주 장시간 대화의 꽃을 피운다. (그리고 엄마가 자식에게 전화를 10번 한다고 했을 때, 아빠는 1번 정도밖에 안 한다. 통화도 짧고, 내용도 딱딱하고 용건만 간단히 주고받고 끊기 일쑤다. 서로에게 남는 게 없다.) 남녀 간의 목적에서도 차이가 난다. 남자는 ‘만남(얼굴 한 번 보는 거)’을 위해 대화 핑계를 대는 거고, 여자는 ‘대화(수다 떠는 거)’를 위해 만남 핑계를 댄다. 또, 여자가 더 현실적이란 말은 들어봤다. 아, 그래서? 여자는 현실에,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쏟는데, 남자는 현실에만 있는 게 아니고 과거도 그리고 또 다른 엉뚱한 생각(여자처럼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우선해서 모든 게 수렴(收斂)되어야 하는데, 남자는 그것 외에 -그게 실은 그들의 기억에서 유리한 건데도- 정치 문제나 세계 평화 같은 거창하기만 하고 생활 밀착이 아닌 허황된 것을 추구해서)을 해서, 결국 그 누구에게도 덜 기억되는 인류의 반쪽이 된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여자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걸 남겼기에 그렇게 된 것 같다. 그게 뭐든.
우리는 안정보단 당장은 유전자 때문에 이성의 설렘을 택한다. 그러나 이런 유전적 원인은 나의 앞날을 파괴할 수 있다.
늙은이만 득시글거리면 한국은 이제 잃어버린 40년이 된다. 늙은이들만 있어서 변화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렇게 된 것은 인구 중 늙은이 비율이 월등히 많아 그리 된 것이다. 나는 이 대열에 이미 진입했다. 중늙이이가 되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읽고 쓰는 걸 좋아해 그런 것이다. 좋아하고 그것에 미쳐 그런 것이다. 그 속에 행복도 있다. 희열도 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을 것이다.
일본은 결혼하면 그렇게나 많이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면서 왜 그렇게나 많이 또 성적인 호기심은 또 왕성한가.
일본인은 뭔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고지식함이 있고 불법을 안 저지르고 절서가 있고 그런 것 같다. 남에게 우선 폐를 안 주려고 한반도 주변 어장에서 중국 어민은 싹쓸이를 하는데 일본 어민이 그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뭔가 믿음이 간다. 요즘엔 제주도나 한국 국내로 여행가는 것보다 일본에 그 돈으로 가고 싶다. 한국 국민도 아직 시민의식을 높으려면 멀었다. 우선 맛집이라면 불친절하고 바가지 요금이고 비좁고 줄 서고 하는 게 싫어 가기 싫다. 그 대신 친절하고 믿을 주는 일본으로 가고 싶다.
이스라엘이 히틀러에게 인종 청소를 당한 것을 잊었는지 지금은 마치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 청소하듯 다루고 있다. 역시 인간은 사악하다. 자기가 당한 것을 잊지 않지만, 아니 못 잊지만 가한 것은 곧 잊는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자기가 관계되어 있는 것에서 균형을 잃는 것일까? 고질병이고 유전적이라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인가?
친밀하진 않고 그렇게 해야만 내가 밥 벌어 먹는 사는 사람에겐 겉으론 무척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나 진짜 나에게 위안이 되고 친밀한 사람에겐 겉으로 안 그렇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사람 사는 게 모두 그런 것 같다.
일본은 근성이니 장인 정신 같은 것을 신봉하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걸 좋아한다.) 자기가 좋고 미치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따르는 분위기다. 그래서 동양에서 그렇게나 많이 노벨상이 나왔나?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사람은 지금 자기 모양과 자기가 앞으로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을 더 따른다. 따름을 당하는 삶은 사회에서 잘 적응하며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고생을 안 하고 무난하게 주로 살기 때문이고 부모 자신도 자식 걱정을 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특징이 없고 그 수도 많아 누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비슷비슷하고 많아 기억 못 하는 것이다. 특이하지 않아서. (비슷비슷한 게 많은데 그 하나하나를 어떻게 기억하나. 하나가 전체 같고, 전체가 하나같은데. 나는 그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자기 위치를 정확히 하고 거기서 살라는 것이다. 남의 위치가 아닌 자기 위치에서. 더 나아가 남이 만든 틀에 자기를 끼워 맞추지 말고, 자기가 자신에게 맞는 틀을 만들어 거기에 최적화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맘껏 활동하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규율과 루틴을 만들어라.” 사람들은 남이 만들어놓은 툴(Tool)과 프로그램을 익히고 그걸 자기와 자기 일에 적용하느라 평생을 보낸다. 거기서 오류라도 나오면 그 툴의 잘못은 따지거나 생각도 못 하고 자신이 실수했다며 오류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 구조적 문제인데도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다며 자신을 더 닦달한다. 그 툴에 이미 내가 매몰되어 거기서 나올 생각을 못 한다. 개발자가 유저를 리모콘으로 원격 조정하는 셈이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솔직히 공격을 덜 받는다. 이미 다수에 속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집단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그 다수에게 더 공격을 받는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자신을 모르면, 자신을 공격하기도 한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기억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적인 어떤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매력은 무엇인가?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이다. (자기를 맘껏 살린) 불안하다고 다수에 들어가 색깔 없이 살지는 말아야 한다. 그럼, 그 속에서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도 허하고 다 살고도 여전히 허하다.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태어나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을 가능하면 일찍 포기하고 자기 뜻에 따라 사는 길을 택하는 게 낫다. 그런 사람은 자기 색깔이 뚜렷해 사람들이 더 잘 기억하기도 한다. (이게 안 맞는 사람은 또 그 안에서 살면 된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바깥의 사람에게 더 편을 드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데 그들은 다수가 있는 안에서만 살아야 잘 사는 거라 착각할 수 있고 공격을 받아 상처 입기 쉽고 자신에게도 확신이 안 서 자신조차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수이면서 공격받기 더 쉬운 편을 들고 싶다. 이건 내가 무슨 튀고 싶은 공명심(功名心)에서 억지로 그러는 게 아니라 단지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진정으로 사는 것이고, 그런 생활 속에서 뭔가 다수가 바라는(부수적으로) 사회적인 성취를 이룰 가능성도 더 높아지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자신이 아주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봐서 죽은 나를 평가할 때 두세 줄이면 끝난다. 아니,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그게 억울하면 글을 써서 자기를 거기에 집어넣어라.
생을 운명적으로 보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려고 하고 좀 고지식하고 안 변하는 사람들이 점을 잘 보고 미신을 더 잘 믿는 것 같다. 보수 지방인 경상도에서 그런 사람이 많고 점집이 많은 것 같고 그 지방 사람들이 더 잘 점을 자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인이 더 생을 운명적으로 보고 신사가 많고 밥 먹기 전에 신에게 고맙다고 하고 하여간 일상에 이런 미신적인 게 더 많이 스며 있는 민족이 일본인 같다. 아마도 사무라이에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태풍이 많고 지진이 많아 잘못하면 금방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의식 안 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바로 심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여당 지도부가 험지 출마를 거부한 것은 자기 혼자만 희생양이 안 되겠다는 거고 그것은 그들에게 대통령실에서 뭔가 대안을 전혀 안 주고 대통령까지 믿지 않고 겉으로만 아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정권이 절대 믿을 건 못되는 정권이고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자기의 희생을 없었던 것으로 여길게 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은 정책이나 뭐 하는 일에 대한 지지층이 너무 빈약하다. 누구 하나 확실하게 믿는 사람이 없다. 실속도 없게 요란하게 왔다갔다만 하지 제대로 진득하게 챙기는 게 없다. 한 마디로 생각을 안 하고 움직인다. 그래 절대 믿음이 안 가고 나라의 국격은 계속 추락 중이다.
작가는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일본 작가는 성에 대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마치 불륜이 보편화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에다 펼쳐 놓는다. 우리나라라면 자기 검열에 걸려 표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것도.
대개 소설에서 주인공은 평범하다. 뭔가 이상하거나 뚜렷한 개성이 없는 무난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아마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그런 것 같다.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소화시키느라 머리로 갈 에너지가 배로만 가서 머리가 안 돌아 글이 안 써진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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