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책이 궁금합니다

D-29
제 경우에는 경향신문 원고를 쓸 때에는 ‘인생 책’이라는 말의 의미를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책’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가장 첫 번째로 『악령』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고 무신론자가 되었거든요. 지금 제 가치관의 가장 밑바닥을 결정한 소설인 셈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인생 책으로 『악령』을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 코너는 다른 매체에서라도 다시 부활시키면 좋겠습니다. 그믐을 구상하기 전에 김혜정 그믐 대표와 잠깐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생 책이 뭔지 묻고 촬영해서 그걸 올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어떨까. 사람들의 인생 책 이야기 재미있지 않나. 그런데 저희가 영상 편집을 할 줄도 모르고, 책 이야기를 유튜브로 한다는 게 좀 이상해서 더 이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생각이 돌고 돌아서, 그믐에서 회원들이 자기 소개를 출신 학교나 MBTI로 하지 않고 인생 책으로 하게끔 유도하자는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책을 말하는 공간이 1면에 있었다는 게 정말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네요. 한국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그걸 사라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게 아쉽기도 하고... 인생책 이야기를 할 때의 인간은 굉장히 신이 나 보여서 보는 사람도 즐겁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믐 들어올 때, 자기 소개 칸에 인생책이 있길래 그냥 그렇구나, 역시 책 나누는 곳 맞네.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당연하게 여겼는데.. 사실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대단하지요? 그걸 그렇게 1면으로 배치해서 10년 넘게 끌고 갔다는 게 참 좋았는데... 사라져서 많이 아쉬워요. 달리 생각하면 뭐 신문 1면을 매일 그렇게 꼭 정치 경제 뉴스 같은 걸로 꽉꽉 채워야 하나 싶기도 한데요. 지금은 아무 아이디어가 없지만 나중에 그믐에서 ‘인생을 바꾼 책’이나 ‘살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같은 키워드로 이벤트를 기획해보겠습니다. (제가 하지는 않고 김혜정 그믐 대표가...) 지금 이 ‘당신의 인생책이 궁금합니다’ 모임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독서클럽에서도 '인생의 책'을 주제로 회원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매우 다양했어요. 전 아인랜드의 마천루(The Fountainhead)를 대학 4학년에 도서관에서 읽고 푹 빠졌는데, 그 책을 생각하면, 다들 입사시험 공부하던 시기에, 이미 너무 놀아서 지금부터 입시공부를 해도 희망이 없으니 책이나 읽어야지 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고른 책이 너무 재밌고,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를 발견하고 건축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만든 책이어서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인랜드의 정치적인 이력때문에 인생의 책이라고 말하기가 약간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저는 아인 랜드를 욕하는 글은 많이 읽었는데 정작 아인 랜드 본인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까지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의 저자를 아인 랜드로 알고 있었습니다. 올리신 글 보고 아인 랜드 검색해보면서 관심이 생겨서 한번 읽어볼 참입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인생책 이야기 나오면 저는 의외로 당당합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책은 단편소설이기 때문이지요. 음하하핫! 짧습니다. 여러분. 금방 읽습니다. 비/교/불/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어느 고쿠라 일기 전>입니다.
인생이란 저에게 참 이해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착하면 살면 복을 받는다를 마지막으로 믿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구요. 그렇다고 사회적 금기나 도그마를 깨면서까지 하고 싶은 무언가도 딱히 없었고 그럴 배짱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살면 그만인걸까요? 안분지족? 그래도 저는 우리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인생이란 무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존재론적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최종적으로 흘러가는 곳은 종교의 영역이더군요. 혹은 어떤 의미의 영성.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아주 확고한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는 웬만하면 발길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예전의 우람님과 굉장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의 어느 날 하루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결정되어 있고,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 없는 것 같은 숨 막히는 패배감이 지배합니다. 그 다음 날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근거 없는 낙관론에 흥얼거리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주문을 외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다시, 내가 정말 인간인가? 로봇이 아니라는 증거가 무엇인가. 여긴 어디고 난 무얼 하고 있나..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은 이만하면 꽤나 행복한 삶이지, 모든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은… 흠.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저의 머릿속에는 늘 물음표가 일곱 개 쯤 떠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물음표가 열 두 개로 늘었습니다.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인간 승리 이야기도 아니고, 못되게 굴던 빌런들을 핵사이다로 때려 눕히지도 못하고, 묵묵히 무언가를 했더니 결국엔 세상이 알아주었더라 도 아닙니다. 물음표로 가득 찬 저에게 또 하나의 물음표를 더해 준 저의 인생책.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을 읽으며 저는 정확히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슬픔이 저에게는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 주네요.
책 내용이 정말 궁금하게 써주셔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오! 제가 영업에 성공했군요.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에는 어느 겨울날, 눈은 날리는데 하늘 한 쪽은 빛이 쨍한 그런 이상한 날. 저랑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책. 그것도 신기하네요. 인생책이라는 것이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해석도 마음에 드네요. 질문을 던지는 책은 개인적으로 종교 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찾아서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종교 서적은 정말 읽기 힘든 것 같아요. 번역의 문제일까요? 어떤 문장이 이해가 안 되서 다섯번씩 읽어보는데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한 페이지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 서적은 저도 즐겨 찾지 않게 되더군요.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예전에 했는데,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을 봐도 페이지가 안 넘어가는 걸 보면.. 그냥 이 분야 책들이 전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중에선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인생작으로 꼽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쿤데라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세련됐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천착한 소설의 주제인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 그리고 작가의 전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사유, 구성, 문체, 형식, 서술*묘사적인 등등 작품 내적인 모든 측면에서 크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선술한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사유는 가히 현대의 고전이라 부르기 아깝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습니다. 형식 면에서는 에세이즘 소설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위적이고 잘 다듬어지고 짜임새 있었습니다.
오.. 밀란 쿤데라 작품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네요. 확실히 느슨한 책보다는 더 촘촘하고 확실한 짜임새의 책이 더 '인생책'에는 맞는 거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인생작으로 꼽으신 건 완벽한 책이라고 생각해서인가요? 작품 그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겠지만, 왜 이 책이 선생님께 인생책이 되었는지는..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을 확실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원래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많으셨나요? 그리고 문학 중에서, 라고 한정하셨으니 비문학 책에서는 어떤 게 가장 좋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읽어본 가장 완벽한 책'도 인생책을 고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새로운 시각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에 너무 제대로 취해서 수동적으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그 책 안에 어떤 위험한 이야기가 있든, 논픽션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서 먹더라고요. 주인공에 이입하기 전까지는 뭐든 반(反)하고 보는 게 버릇이지만요. 오히려 그래서 '인생 소설'을 찾는 게 어렵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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