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먼의 삶 들여다보기

D-29
파인먼은 장의 개념에서 적어도 '파동을 실어나르는 자유매질'이라는 낡은 관념만큼은 제거해 버렸다. 파인먼은 장을 파생개념으로 규정하며 이렇게 적었다. "실제로 장은 입자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 장은 단지 수학적 구성물일 뿐이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41p, [프린스턴], '논문 마무리'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진동자로 연결된 두 역학계가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에 진동하는 장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는 두 입자가 나타났다. 진동하는 장은 이번에도 제거되었고 마침내 빈 서판blank slate상태의 새로운 양자전기역학이 탄생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42p. [프린스턴], '논문 마무리'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특히 이론학자들은 추상적인 칠판과학 blackboard science의 타당성을 궁극적으로 검증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를, 이제는 불을 얻었다. 결국 그것은 일종의 연금술, 즉 금보다 더 희귀한 금속을 납보다 더 유해한 원소로 바꾸는 연금술이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4p, [로스앨러모스] 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이 부분은 로스앨러모스에서 인류 최초의 원폭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 이후, 이 실험의 역사적인 의의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실용학문으로서 과학의 힘을 압도적인 주목거리로 과시한 사건이 아닐까 싶은데요, 냉전 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후에 이데올로기와 접목되며 기획되는 '거대과학'의 예고편이기도 하겠지요. 인간이 환경을 이용하고 경관을 바꾼 최초의 도구이자 원리로서 '불'을 꼽을 수 있다면, 원자폭탄은 인류에게 또 다른 종류의 '불'을 가져다준 셈이겠네요.
오늘은 어디에서 이 책을 읽었나요?
<파인먼 평전>은 무겁다보니 항상 집에서 읽게 됩니다. 다른 일에 온 신경을 쓰다보니 며칠이 휙 가버렸네요. 어서 ‘로스 앨러모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봐야 겠습니다. ^^
마음에 드는 문장을 수집해 주세요.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이미 오래전부터 호르나다 델 무에르토 Jornada del Muerto, 즉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려 온 이 지역에 동이 트기 직전, 한 줄기 아침햇살 대신 원자폭탄의 섬광이 번쩍였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2p, [로스앨러모스],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불덩어리가 하늘을 5km쯤 뒤덮었을 때(파인먼이 '뭔가가 구름을 만들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는 이제 죽음의 신,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노라.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5p, [로스앨러모스],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원폭실험 책임자인 케네스 베인브리지Kenneth Bainbridge가 오펜하이머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린 모두 개새끼가 된 거야." 라비는 뜨거운 구름이 가시자 오싹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쌀쌀한 새벽공기 때문이 아니라 고향의 목조주택이 불타는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5p, [로스앨러모스] 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하지만 파인먼의 기억에 의하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파인먼을 맨해튼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던 장본인, 로버트 윌슨이었다. 그는 불쑥 이런 말을 내뱉어 파인먼을 놀라게 했다. "저 끔찍한 걸 우리가 만들었다네." 폭탄 개발자들이 그 순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5p, [로스앨러모스] 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을 테스트하는 트리니티 실험 장면이 떠오릅니다. 책에 나온대로 파인먼은 차유리가 자외선을 막아줄 수 있다고 여겨서 차 안에서 보호경을 벗고 유일하게 맨눈으로 원자폭탄의 폭발 장면을 보는 장면이 나오죠. 차 밖에서 보호경을 쓰고, 두껍게 자외선 차단제를 얼굴에 바른채 앉아 광경을 지켜보던 에드워드 텔러의 모습과 함께 나옵니다. 에드워드 텔러는 훗날 오펜하이머의 뒤를 이어 수소폭탄 개발을 지휘한 인물입니다. 오펜하이머를 주저 앉혔던 안보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여 그의 부인인 키티가 텔러의 악수도 거부하고 경멸하는 심정을 억누르는 표정 연기를 하는 장면이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한 후 모든 사람이 성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파인먼도 20대의 젊은 치기가 보일 정도로 흥분하며 좋아하죠. 영화에서는 파인먼의 트레이드마크인 봉고드럼을 치는 장면도 나오는데, 제가 알기론 그가 봉고드럼을 치기 시작했던 것은 교수가된 이후였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파인먼이 로스앨러모스에서 봉고드럼을 친 것은 파인먼임을 보여주려는 영화적 장치가 아닌가 싶은데, 시기적으로 이십대에 봉고드럼을 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원폭실험은 인류가 새 시대의 문턱을 넘어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인류의 의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서막은 '과학을 이용한 자연 정복'이었다. 영원히 뒤집히지 않을 자랑스러운 승리인 것 같았지만 가공할 규모의 무력행사와 살육이 뒤따랐다. 새로운 빛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퍼져나가는 순간, 인간은 엄청나게 강력한 동시에 엄청나게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56p, [로스앨러모스] 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파인먼 평전>의 저자 제임스 글릭은, 말하자면 백인 사회의 기득권에 속한 사람임에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이런 평가를 진지하게 썼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문장입니다. 어쩌면 과학자가 이 평전을 썼다면, 이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쓸 수 있었을까 긍금해지기도 합니다.
군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을 민간인 책임자로 뽑았다. 그는 바로 J. 로버트 오펜하이머였다. 오펜하이머(오피, 오파이, 오피에)는 유대인, 탐미주의자, 격식주의자, 날카롭고 다분히 좌익성향을 지닌 과학자로 종국에는 자멸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인물이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60p, [로스앨러모스]중 '까만 서류가방을 든 남자'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 집단을 이끌었던 오펜하이머에 관한 인물 정보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러고보니 오펜하이머를 비롯하여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중에는 유대인이 특히 많네요. 리처드 파인먼, 한스 베테(어머니가 유대인) 등등. 아마도 유대인을 위협했던 나치 독일이 자체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것을 절실하게 막을 만한 이들로 유대인 과학자들을 많이 활용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건 공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길 절실하게 바랐던 이들 역시 유대인이 아닐까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이 유대인 과학자를 특별하게 찾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정황을 활용한 측면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저널리스트인 카이 버드와 영문학과 미국 역사학 교수인 마틴 셔윈 두 사람의 저자가 25년 동안 답사와 인터뷰, FBI 문서 열람 등 자료 수집을 거쳐 쓴 오펜하이머 일대기의 결정판이다. 2005년 출간되자마자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전기 부문을 수상하고 2006년에는 퓰리처 상 전기·자서전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오펜하이머는 세련된 취향을 가진 심미주의자였다. 과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고상한 멋을 추구했다. 양복은 어깨를 강조하고 옷깃이 넓게 접히도록 맞춰 입었다. 마티니, 블랙커피, 파이프담배를 무척이나 아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61p, [로스앨러모스]중 '까만 서류가방을 든 남자'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오펜하이머는 1904년 뉴욕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실 파인먼처럼 맨해튼의 안락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윤리문화협회라는 독특한 신앙조직에서 설립한 윤리문화학교에 다녔다. 그 후 새롭고 실용적인 미국식 물리학 사조에 동화된 파인먼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대서양을 건너 케임브리지와 괴팅겐으로 유학을 떠나 영국과 독일에서 지적인 유럽식 스타일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그는 현대어를 숙달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까지도 익혔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61p, [로스앨러모스]중 '까만 서류가방을 든 남자'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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