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먼의 삶 들여다보기

D-29
부친이 프로이센의 신교도였던 베테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유대인이다 보니 독일에서 그의 지위가 어떻게 변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베테는 갓 취임한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사상 최대규모의 이주를 시작했고, 베테도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75p, [로스앨러모스]중 '전함과 쾌속 어뢰정'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파인먼의 멘토가 되어주는 물리학자 한스 베테에 관한 사연입니다. 베테는 유대계 독일인이기도 하여 나치독일의 인종차별과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유대계 지식인들이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한 정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은 계산장치를 이용하여 수많은 문제들을 풀었지만, 내폭implosion에 관한 문제만큼 대규모 과학 시뮬레이션 시대의 도래를 예감케 한 것은 없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98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인류가 일으킨 전쟁은 숱한 비극을 낳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했던 아이러니가 있네요. 폭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했던 방사성 물질의 확산 diffusion 문제에 관여한 파인만의 업적도 책에 나오기도 하구요. 위에 수집한 문장처럼 폭탄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한 환경의 조건들을 계산할 업무의 필요성이 계산 기계의 개발 및 성능 향상에 큰 자극을 준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1944년 한 해동안 이론학자들의 계산에 큰 진전이 있었다. 당시 비상근 고문으로 활동하던 폰 노이만은 종전 후의 미래를 내다보던 인물이었다. 수학자, 논리학자, 게임이론가인 동시에 현대 전산학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폰 노이만은 파인먼과 함께 IBM 기계로 일을 하거나 협곡을 거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99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드디어 파인먼과 폰 노이만, 두 천재의 만남이 나왔습니다. 올해 폰 노이만에 대한 도서가 나온 것으로 아는데요, 두 사람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도 이렇게 긴밀하게 협력했는지 몰랐네요. 흥미롭습니다.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인간, 그리고 그가 만든 21세기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만에 비해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존 폰 노이만의 드넓은 학문적 성과와 그가 인류에 공헌한 업적을 재평가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20세기 과학사를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폰 노이만의 이야기 중에서 파인먼의 기억에 영원히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과학자가 온 세계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말로 사회적 책임에 둔감한 것이 합리적 자세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둘째는 카오스chaos라는 수학적 현상으로, 파인먼은 폰 노이만을 통해 카오스의 초기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299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이 책의 저자 제임스 글릭이 쓴 <카오스>의 바로 그 복잡계 이론을 설명하는 용어 '카오스'에 해당하는 개념이 바로 1944년 전 후, 그러니까 전쟁에 동원된 계산 연구로부터 태동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후손인 우리는 전쟁에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명을 살상하는 데 동원되는 연구에서 파생된 결과의 수혜를 후손이 모두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카오스 - 20주년 기념판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팔린 전설적 베스트셀러 <카오스> 20주년 기념판 완역본. 카오스를 한마디로 하면,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발견하는 질서 속에서 혼돈이 있으며, 혼돈 속에도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1944년 스물다섯 살의 파인먼은 막강한 청중(파인먼은 며칠 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물리학계의 대가들이 전부 참석했다고 썼다)을 앞에 두고 "기존의 수학 지식을 모두 버리고 제1원리, 특히 아이들도 다 아는 단위 셈법에서 출발해 보세요"라고 제안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300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파인먼이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가 계산의 고수가 된 과정에 특히 기하학적인 접근법을 잘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급수와 삼각함수를 능숙하게 다루게 된 것에서 그 출발점이 보이는 듯합니다. 278페이지에도 "수학 문제를 풀 때면 늘 그랬듯이 파인먼은 이번에도 기하학적으로 접근했다."라는 설명이 보이는군요. 어쩌면 이런 접근 방식과 앞에서도 계속 나온 '최소 작용의 원리'가 더해져 훗날 파인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파인먼 다이어그램'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네요.
파인먼은 어떤 내용도 당연시하지 않고 순전히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뺄셈, 나눗셈, 로그 취하기 등의 역연산을 설명했다. 파인먼은 늘 새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이 질문에 답하려면 새로운 산술적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300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파인먼을 단순히 '천재'라고만 부르는 것은 그의 독특한 면모를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계산에 탁월해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지식이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인지 의심하고 스스로 확인해보고 생각해보려는 부지런한 태도가 그를 천재로 만들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파인먼에게 항상 '제1원리'로부터 출발하려는, 스스로 정한 기준이 계속 보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파인먼이 로스앨러모스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물리학자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파인먼은 매력으로 똘똘 뭉친 성격과 인격의 소유자로, 매사에 지극히 합리적이고 분명하며 물리학을 열렬히 사랑하는 탁월한 교육자입니다. 이미 상당한 거물들이 파인먼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만큼 조만간 채용 제의를 할 것으로 보이니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302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오펜하이머가 파인먼을 평가한 대목이라 흥미롭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파인먼이 잠시 코넬 대학에 처음교수로 취직한 것을 알고 있는데, 아마 파인먼에게 눈독을 들였던 물리학계의 거물(?)들 중에서 코넬 대학에 있는 한스 베테가 파인먼을 스카운하는데 성공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서로 상극이나 다름없는 성격임에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해주는 학문적 동지로서 인간적인 신뢰가 형성된 정황이 보입니다. 두 사람(파인먼과 베테)의 별명이 '전함(베테)과 쾌속 어뢰정(파인먼)'이라고 불린 것을 보면요.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라 이런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엿보는 즐거움도 있네요.
오펜하이머가 언급한 '상당한 거물'이란 코넬의 베테와 프린스턴의 위그너였다. 베테는 "웬만한 물리학자 두 명을 줘도 파인먼 한 사람과 바꾸지 않겠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302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파인먼에게 평생 멘토나 다름 없는 사람이 되는 한스 베테의 파인먼에 대한 평가입니다. 알고보면 베테가 파인먼을 스카웃해가기 위해 정성을 많이 들였을 것 같습니다. ^^
위그너는 파인먼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는데, 이는 1940년대에 한 물리학자가 다른 물리학자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파인먼은 제2의 디랙이다. 게다가 파인먼은 인간미도 겸비하고 있다.
파인먼 평전 - 괴짜 물리학자가 남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이정표 302-303p [로스앨러모스]중 '기계로 계산하기'중에서,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 외 옮김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은 파인먼의 우상이었고, 당대에 물리학계의 천재라고 불린 사람이기도 하지요. 파인먼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와 관련있는 내용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그너 크리스탈'이라는 이름으로도 물리학 교과서에 길이 남아 있는 위그너 교수도 파인먼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파인먼은 이 칭찬이 그가 들었던 어느 칭찬보다 기분 좋게 들렸겠네요.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조금 긴 한 문장으로 남겨봅니다. '20세기의 초강대국 미국의 부상과 몰락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한 과학자의 연대기와 천재성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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