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D-29
불과 3장만에 실비아 나사르 씨의 능수능란한 글솜씨에 휘둘리다가 지쳐 쓰러진 독자가 되었습니다. (3장 이후 다른 책만 읽고 있습니다) 시작은, 1장에서 돈에 쪼들여서 전전긍긍하는 마르크스 사정을 심각하게 읽어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예고없이 갑자기 훅 들어오던 한 문장이 있었으니..“다행히도 마르크스는 모래알을 진주로 만드는 굴같은 사람이었다.“ - 네? 굴이요? 하고 빵 터졌습니다. 오호, 나사르 씨 한 유머 하시는데? 이제 저에게 마르크스는 ‘대영 박물관 도서열람실 7G자리의 굴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굴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주 2장 읽는 중에 YG님께서 3장 재미있다고 몇 번 반복하신 것을 떠올리며, 그때 3장 중후반까지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3장에 들어서고 나니 멈출 수가 없는데 너어무 길어….비어트리스의 심경변화를 따라가면서 (”언니, 정신차려!” “그러지 마아아-”) 왜 내가 초조하지? 왜 내가 걱정되는 거지? 손톱이라도 물어 뜯을 기세.. 진취적인 비어트리스가 체임벌린에게 덜컥 먼저 결혼하자고 할까봐 왜 내가 심장 쫄깃쫄깃해지고 스트레스 받냐고요. 이 책의 장르가 서스펜스/스릴러물이었습니까? 한꺼번에 너무 많은 분량을 읽다가 지쳐서, 비어트리스 포터가 비어트리스 체임벌린으로 바뀌게 되는 지 알게 될 때까지만 읽자, 하게 되었죠. 그.런.데. 우리의 저자 나시르 씨는 독자와 밀당도 하는 고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체임벌린, 스펜서 이렇게 라스트 네임 또는 풀 네임으로 쓰면서, 비어트리스는 이 퍼스트 네임으로만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서술트릭도 쓰셔. 절대 힌트를 안줘. 중간에 비어트리스 라스트 네임이 뭔지 검색해볼까, 하는 충동을 억누르고, ”설마 비어트리스가 네빌 체임벌린의 친엄마 되심?“ 막 이러면서 핸드폰을 멀리 두고 계속 계속 읽었습니다 (라고 쓰지만 질질 끌려 갔습니다) 와아 정말이지, 결정적 순간까지 절대 비어트리스 라스트네임 안 까시는 나사르 씨 때문에 과도한 독서로 심신 건강을 해칠 뻔 했습니다. 지난 주에 YG님이 3장 공지 메시지에 비어트리스 웨브라고 떡하니 쓰셔서, 헉 스포일러 투척하시는 겁니까? 하고 울부짖으려다가, 벽돌책 모임 회원들의 스트레스 방지를 위한 YG님의 큰 그림인가 싶어 조용히 있었답니다. ^^ 암튼 비어트리스-시드니 웨브 부부, 이 파워 커플의 활약상에 여러 번 놀랐고, 비어트리스 웨브, 이 천재 이름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비어트리스 언니, 아무리 예쁘고 잘났어도 경험많고 지혜로운 누군가가 커리어에 대해 진심어린 조언을 하면 쫌 귀 기울여 듣지 그러셨어요오오. 마셜 이야기대로 여성 노동자 연구를 했으면 그게 또 얼마나 걸작이었겠으며, 클라우디아 골딘이 21세기의 비어트리스 웨브라고 불렸을텐데요…많이 아쉽네요.
아! 그런 서술 트릭이 있었네요. 그리고 공지에 스포일러(?)도 있었군요. (하지만 재혼하면서 성이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아주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넘어가면 안 돼요 비어트리스 누님! (누님은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네? 재혼이요? (<재수사>쓰신 분답게 여러 경우의 수를 던지시는군요^^) 저는 일개 독자로서 평소에는 작가가 의도하는대로 요리하는 대로 “날 잡아잡쒀요”하고 따라가는 편인데, 이 책은 끝까지 가기도 전에 난도질 당할 것 같아 몸사리는 중입니다. 호칭에 대해서는, 비어트리스 할머니보다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더 친근하지 않을까요?
아, 저는 저 당시 비어트리스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 제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런 고민도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거고... 분명 한참 먼저 태어나신 분이기는 한데... ^^
시드니가 비어트리스에게 자신의 전신사진을 보냈을 때 비어트리스는 “머리만 주세요. 나는 오직 당신의 머리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 이건 너무 흉하네요.”라고 답장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3. 포터양의 일과 사랑,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이 대목에서만큼은 시드니 웨브의 마음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그래도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좀 따뜻하게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모시모시 @장맥주 이 부분 너무 웃기지 않았어요? 저는 이거 거의 로맨스 코미디의 한 장면인데? 이랬다니까요.
정말 웃겼습니다. 체임벌린 너무 전형적으로 전형적인 나쁜 남자... 요즘 감각으로는 나이 차이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 지점들이 많으니 체임벌린이 어지간히 크게 회개하지 않는 한 로맨틱 코미디 소재로도 못 쓸 것 같기는 합니다(?). 비어트리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다면 이 시기와 체임벌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묘사될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비어트리스 포터, 정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인데. 왜 대중문화에서 조명을 받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제가 과문해서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OTT 미니시리즈로 만들기 딱 좋은 소재일 거 같은데 말입니다. 혹시나 해서 IMDB에서 검색을 해보니 동명이인의 무명 배우만 한 명 뜨네요. 단편영화 한 편에만 출연한 걸로 봐서 직업 배우도 아닌 거 같고...
전체적으로 비어트리스의 일기가 거의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수준으로 웃프고 재미있었어요. :)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의 내적갈등... ㅎㅎ
@모시모시 @장맥주 @YG 이 문장 너무 웃겨서 밑줄 그어야하나 3초 고민하다가 마음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그러게 왜 전신사진을 보내?”하고 시드니를 원망하다가, 그래도 얼굴 클로즈업 사진 안 보낸게 어디냐 싶었습니다. 장맥주님처럼 저도 비아트리스 일기가 궁금해서 3장 읽은 후에 좀 찾아봤거든요. 정말 저런 문장이 나오더라구요. It is only the head that I am marrying. 시드니를 생각하면 눙물이 ㅠㅠ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노년 사진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드니 웨브의 외모가 뭐 그렇게 비호감은 아니던데요... 그런데 비어트리스 여사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니 비어트리스 여사님 마음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고... 이런 얼평해도 되나...
2장 읽고 느낀 점입니다. 마르크스의 매우 인간적인 찌질함과 비교하면 마셜은 그리스 신화속 신같은 존재로 보일 정도고, 위에서 여러분이 말씀하셨던데 저자의 사심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진을 보니 그토록 찬사받을 만큼의 외모는 아니던데 말이죠. ^^; 다만 마셜이 뛰어나 보였던 점은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만 챙기는게 아니라 현장을 직접 다녀보고, 필드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무엇보다 제2 시민으로 생각되던 여성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바꾸려고 행동하는 부분이었어요. 미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것들이 그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외골수같았던 1장의 인물과는 대조되어 보였구요. 마셜의 결혼생활도 참 이상적으로 보여서 부럽더군요. 깊은 글을 읽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울만큼의 배경지식도 없고, 생각의 깊이도 모자라서 이 정도의 감상만 적을 수 있는 제 자신이 한심스럽지만, 그래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눈 하나 정도는 뜨이려나하는 기대감으로 계속 다음 장으로 갑니다.
Explaining how individual choices might add up to social good-the very thing that Carlyle denied was possible-Marshall defined two types of moral education. One was characteristic of England, where, he claimed, “the peaceful molding of character into harmony with the conditions by which is surrounded, so that a man…will without conscious moral effort be impelled on that course which is in union with the actions, the sympathies and the interests of the society amid which he spends his life.” In America, by contrast, mobility had opened up a second route to moral evolution, namely, “the education of a firm will by the overcoming of difficulties, a will which submits every particular action to the judgement of reason.”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p.78,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그들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를 둘 다 거부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사유재산과 국회와 자본가가 존재하는 사회주의, 마르크스나 계급투쟁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기업 체제라는 ‘프랑켄슈타인’을 살해하기보다 그것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것이었고, 부자를 제거하기보다 부자에게 과세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3. 포터양의 일과 사랑,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소피아 아, 의도치 않게 스포일러가 되어버렸네요. 아, 경제학 논픽션을 읽으면서 스포일러 되는 일까지 조심해야 될 줄은 몰랐어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자, 지금 3장의 히로인 비어트리스 포터를 놓고서 반응이 뜨겁네요. 재미있게 읽으시고요. 내일(1월 9일)은 4장 '부의 과학: 어빙 피셔와 통화 정책'을 읽습니다. 어빙 피셔는 현대적 의미의 통화 정책을 처음으로 고안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러니까, 중앙 은행의 통화량 조절을 통해서 거시 경제(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조절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중요한 경제학자죠. 그런데, 사실 어빙 피셔는 이런 엄청난 업적과는 달리 20세기 경제사에서 '바보' 혹은 '빌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경제 정책을 자문하는 지식인으로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1929년 대공황을 예측하지 못했고, 주식 투자 컨설턴트이자 주식 투자자로서 본인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거든요. 이 책에서 실비아 나사르는 어빙 피셔에게 그 업적에 상응하는 정당한 몫을 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피셔는 4장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나옵니다. :)
저도 3장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2장까지 읽고 관뒀었는데 왜 그랬나 싶어요...) 조셉 체임벌린과의 '을의 연애'에서 시드니 웨브와의 '갑의 연애'로 돌아서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여튼 이틀 공장체험한 게 하루도 안해본 마르크스와 큰 차이가 있었군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원형이 된 정책을 주조하고, LSE를 설립해서 수많은 엘리트와 싱크탱크 멤버들을 길러냈으니 현대 영국의 설계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3장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보니 4장은 다소 덤담하게 마쳤네요. 밑줄 한 곳 긋지 않고... 제가 경제학 문외한이라 객관적 업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탓도 크겠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힘이 막강하긴 한 것 같습니다. @YG 님 올려주신 글 읽고 어빙 피셔를 검색해보니 그의 매력적인(그리고 안쓰러운) 스토리는 4장 이후에 펼쳐질 것 같네요. 빌런만 해도 억울할 텐데 바보 취급까지 당하게 되다니... 돈도 다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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