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

D-29
김 훈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기로 합니다. 장편소설에 최적화된 작가의 단편을 읽는 건..... 깊은 숲으로 들어가 잔디 위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데 천문학자가 제 옆에 누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별은 이름이 뭐고 얽힌 이야기가 뭐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이가 몇 살이고 그 옆에서 추위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별은 언제 태어났고 밝기가 얼마이고.... 조잔조잔 설명해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장편이 크루즈 유람선이라면 단편은 노 젓는 나뭇배라고 생각하는데, 김훈 작가의 단편은 나뭇배에 우선 발코니 넣고 24시간 열려 있는 식당 두어 개, New Year 파티를 위한 높은 기둥과 알록달록 예쁜 카펫을 깔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는 짧고 전문 지식이 넘쳐나는 까닭에 단편으로는 너무도 과하고 또 과하지만 그런 그의 글솜씨가 저는 좋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시작된 그의 글잔치에 실시간으로 초대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글이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기도 하고 가만히 물 속에 가라앉아 있기도 하는 지라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재작년 여름 친구가 책선물을 준다길래 얼른 골라 얻은 종이책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읽지 않은 걸 골라 읽고 있습니다.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는 재작년 선물을 받았는데 그 해에 선물 받은 책이 제법 있어 읽기를 미뤄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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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고래> 1. 차가운 물속에서 명태, 가자미, 도루묵, 양미리가 우글거렸는데, 명태, 가자미.... 는 그것들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었고 지금도 이름이 없다. >> 이 대목에서 저는 나라를 이루는 서민들을 떠올렸습니다. 나라가 혹은 수사관이 이춘재를 '간첩죄, 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으로 잡아 가두기 전까지 그가 그랬듯이 그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시대 변화에 맞춰가며 살아가는 1인들.... 2. 섬이 하얘서 지도에는 백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새똥섬이라고 불렀다. 미역바위 다섯 개는 새똥섬 주변에 박혀 있었다. 새똥섬 미역은 끓일수록 국물이 뽀얘졌고 오래 끓여도 향기는 풋것으로 남아 있었다. 소출이 많아서, 미역바위는 어촌계가 공동관리했다. 마을 여자들이 순번을 정해서 미역바위까지 헤엄쳐서 건너가 미역을 땄다. 등대가 없던 시절에 저물어서 돌아오는 목선들은 새똥섬의 흰빛을 보고 방향을 가늠했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들어선 포구마을들이 다 똑같은 지형과 구도였는데, 하얗게 빛나는 새똥섬은 멀리서도 향일포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였다. 죽은 노인들은 향일포를 백포라고도 불렀는데 새똥섬을 귀하게 여기는 뜻이었다. 3. 이춘개는 고기잡이의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가자미는 어두운 물, 광어는 모래, 우럭은 바위틈에 모이고, 꽁치 멸치 고등어는 초봄에 난류를 따라 올라오고, 명태 가자미 홍어는 초겨울에 한류를 따라 연안으로 내려오는데, 촛대바위와 거북바위 사이를 기점으로 해서 동북쪽으로 이 킬로미터쯤 올라가면 해류가 느려지는 자리가 명태와 고등어의 길목이라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산맥 쪽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은 아침에 시작해서 해질녘에 그치는데, 먼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은 들고 나는 때를 알 수 없고, 북서풍과 북동풍이 부딪치면 바다가 뒤집혀서 파도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사방에서 들이닥치게 되니까 겨울 바다에서는 늘 북서풍에 의지해서 북서풍이 시키는 대로 배를 부려야 하며, 북동풍의 조짐이 있으면 서둘러 포구로 돌아와야 한다고 먹통노인은 말했는데, 바다가 나가보면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4. 먹통노인이 죽었을 때 이춘개에겐 다섯 살 난 딸과 세 살 난 아들이 있었다. 그때가 서른여덟인가 마흔인가, 바다에서 이춘개는 제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스무 살인가 싶기도 하고 쉰 살인가 싶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 살이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왔던 것 같기도 했다. 바다에서 시간은 구획되지 않았고, 북서에서 남동으로 풍향이 바뀌어도 바람은 늘 물위를 달려가서, 물은 제자리에서 출렁거렸다. >>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독자의 귀에, 명태와 고등어에 대해, 먹통노인의 놀라운 바다지식에 대해, 그리고 바다에 의지해 사는 사람은 나이도 결혼도 자식도 그저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는 삶을 산다고 알려주는 작가의 자상함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런 이들 중 무작위로 집어내 삶을 휘젓고 망가뜨립니다만 아무도 미안해하거나 반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춘재가 돌아갈 곳은 가족이 모두 떠나버린 향일포였고 먹통노인처럼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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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모처럼 친절하지 않은 소설입니다.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앞부분부터 살펴봐야할 만큼 인물들과 주제에 대한 작가의 구상을 알아채기 어려웠습니다. 제목과의 연계성을 찾으면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살기 위해 구조자를 꼭 잡은 연옥의 '손'입니다. 하지만 주제를 흐릴 만큼 화자와 화자의 개인적 삶 그리고 연옥의 아버지의 모습은 작가가 말하려는 '손'보다 두드러집니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정상범위'를 벗어난 듯한 등장인물들의 사회성이나 공감능력의 부족이 독자의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하면, 대단한 애착이나 목표나 열정 없이 다만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조차 아니 누구라도 막상 죽음을 맞닥뜨리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도움을 얻기 위해 손을 내밀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철호는 말을 늦게 배웠다. 두 돌이 지나서도 엄마 소리를 하지 못했고 말을 겨우 배운 후에도 한동안 말을 더듬었다. 속에서 말을 거꾸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철호는 하려던 말을 삼켰고, 말을 하다가도 중간에 멈추어버려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더 자라면서 말더듬증은 없어졌지만, 철호는 늘 말이 적었다. 철호는 말로 표현되거나 말로 구성되는 자리가 아닌, 다른 감각의 세계에서 사는 아이 같았다. 철호는 후각과 청각이 짐승처럼 날카로웠고, 감각의 영역이 넓었다. 중학교 때 철호는 어슴푸레한 새벽에 일어나서 공원과 야산을 쏘다니다가 돌아오곤 했다. 돌아와 다시 잠들어서 학교에 자주 지각했다. >> 엄마인 화자는 타인처럼 철호의 어린 시절을 진술합니다. 화자는 철호의 성장과정에 거의 관여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화자와 그녀의 아들 철호는 가족이지만 타인처럼 한 집에서 지내다가 결국 타인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2. 연옥이는 철호 밑에 깔려서 강간당할 때 겁에 질려서 똥을 쌌다고 여자 수사관에게 진술했다. 어둠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는데, 아랫도리가 풀려서 똥이 쏟아져나왔다고 했다. 그때 빈 아파트 옆방에서는 나중에 잡힌 공범 한 명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아이도 똥냄새가 났다고 진술했다. 똥냄새에 대한 진술은 범인과 피해자와 공범이 일치했다. 철호는 똥에 뒤엉킨 연옥이의 가랑이 속에 사정했다. 연옥이의 질 속에서 똥이 검출되었고, 파열상이 남아 있었다. >> '과연 이 소설에 꼭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한 편으로는 연옥 또한 삶에 대한 의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인가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너무 쉽게 삶을 놓아버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서입니다. *윗글을 쓰고나서 책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가의 <군말>을 읽었습니다. '오영환 소방사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손의 느낌을 더 자세히, 더 육감적으로 말해보라고 다그쳤는데 그는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세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글을 써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로 했다. 나는 오영환 소방사가 전한 느낌을 등대처럼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지어내어 그 등대에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니, 나의 이야기는 꿰맨 자리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이 세마디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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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내기 장기> 사람 사는 이야기, 아니 하루 하루 견디며 사는 이웃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마른 하늘 아래서 벼락을 맞듯 IMF를 겪고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두 서민과 그들 중 한 명과 지내는 개의 일상을 대화 없는 무성 영화처럼 작가는 그리고 있습니다. 짧기 그지없는 그들의 대화는 그저 그들 사이의 행동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합니다. IMF로 인한 직접적 경험이나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어 당시 시민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이 짧은 글을 통해 그로 인한 가족의 분열과 개인의 추락 그리고 헤어나지 못하는 가난을 추측하게 됩니다. 1. 공원 매점 옆 소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판이 벌어졌다. 구경꾼들이 빙 둘러섰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기판은 여름에는 그늘을, 겨울에는 햇볕을 따라갔고 비 오는 날에는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아무나 짝을 지어 장기를 두었고, 며칠씩 함께 장기를 두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행방을 묻지 않았다. >> 장기판처럼 사람들의 생활도 그렇게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 살 에이는 추위를 피하고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2. 이춘갑은 오개남과 통성명했지만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고, 오개남도 마찬가지였다. >> 취미가 아니라 할 일이 딱히 없어 시간 때우기로 두는 장기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몇 날 며칠 같은 상대와 장기를 두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3. 멀리서부터 한 걸음씩 다가오는 초졸들을 이춘갑은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졸들은 한 칸씩 기어붙었고 좁은 길을 뚫어서 복병을 불러들였다. 장기판에서는 갈 수 없는 길들이 빤히 보였다. 갈 길은 못 갈 길 뒤에 숨어 있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비로소 보였고 보이면 갈 수 없었다.' >> 바둑이나 장기 두는 사람들이 하는, '판 안에 세상이 있다'라는 말은 과연 그러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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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내시경 검사> 삼 년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화자는, 수면 내시경으로 인한 회복과 후유증으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해 검사 당일 보호자를 대동해야 합니다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자식이나 퇴직한 회사 동료 혹은 친구에게 부탁하기가 참 난감합니다. 이혼한 전처는 더욱 그러합니다. 결국 집안 청소를 해주는 도우미에게 일당을 주고 보호자로 함께 병원에 가줄 것은 요청하고는 마취가 끝나자 도우미에게 일당을 계산해 주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옵니다. 칠십이 넘은 노령자에게, 삼 년 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일은 어쩌면 삼 년마다 죽음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라는 작가의 설명을 듣는 기분입니다. 1948년에 태어난 작가가 한창 자랄 때인 1960년대 한국의 평균 수명은 53.7세로 채 60세를 넘기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과 시대에서 성장한 세대가 과연 2022년 평균 수명인 85세까지 살아갈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까요. 그저 열심히 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저절로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해 은행빚을 갚고 작은 평수로 옮기기 위해 부동산에 내놓은 집값도, 사십 년만에 연락 온 첫사랑의 아들 취업 부탁도 사흘 후에 있을 대장 내시경 검사 후에 방향을 정하려던 화자는 검사 결과를 근거로 다시 삼 년의 유예기간을 통보받습니다. '삼 년 전엔 용종 세 개를 제거하고 이번엔 다섯 개를 제거했다고 하니 삼 년 후엔 또 몇 개의 용종을 발견하고 제거할까. 그때까지 아무 일 없이 살아 있을까....' 화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과연, 기대 수명 85세가 모두에게 행복한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1. 나은희의 편지를 받고 나니까, 구석기 지층에서 돌연장이 나오듯이 자니간 것들의 부스러기들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나은희와 마지막 밤을 보낸 여관의 이름은 남북여관이었다. 현관에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었고 골목에서 지린내가 났고 불씨가 덜 꺼진 연탄재가 쌓여 있었다. 나은희의 머리카락 냄새와 함께 먹던 우동의 조미료 냄새, 대화의 토막들, 과거의 바탕해서는 살길이 없다는 막막함과 그 막막함의 다급함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 이토록 너무도 생생한 삶을 살았던 화자의 한 순간을 보게 되어 뭉클합니다. 2. 결혼은 물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신랑 신부가 안정된 수입의 바탕을 확보하는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힘으로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 >> 화자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던 S교수의 말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의 힘'이라니요. 오 년전 이혼을 한 화자는 S교수의 주례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3. 딸은 제 남편이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했다면서 어쩌면 뉴욕 지사로 발령이 나서 남편과 함께 삼 년쯤 뉴욕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아마도 확정된 것을 통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떠날 생각을 하면 아빠가 걱정돼요. -걱정 마라. 난 혼자서 잘 살아. 가볍고 홀가분해. '걱정 마라. 난 혼자서 잘 살아. 가볍고 홀가분해.' 이 말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 대목이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의 가장 평범한 칠십 대 남자의 일상을 그린 소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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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서너 평의 오피스텔과 길거리 컵밥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몰려다니던 고시생들이 그득하던 노량진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는 소설로 제목 '영자'는 화자의 동거인 이름입니다. 80년대 노량진을 다만 지나가는 풍경으로만 간직한 제게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화자는 노량진에서 영자와의 동거를 끝내고 마장면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아 업무를 시작합니다. 단풍이 고와도 외지 방문객 하나 찾아오지 않는 구석진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큰 희망은 없지만 늘 북적거리고 생동감있던 노량진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삼수를 하고 있을 영자와의 동거 시절도 그렇습니다. 아르바이트 서너 개를 하며 관리비를 내고 값싼 음식으로 끼니를 잇는 영자의 고달픔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어선까지 팔아버린 아버지의 등골을 빼내 노량진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던 화자는 헤어지고 나서야 그녀의 위축된 모습을 잔잔히 살펴 봅니다. 영자.... 그녀는 그 나이 또래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매달리던, 어쩌면 별스럽지 않은 9급 공무원 준비생이라는 입장을 부러워했지 싶습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하찮은 한 끼라도 부모라는 언덕에 기대어 지내는 그들 속에 머물면서 자신을 옥죄이는 현실에서 조금은 떨어져 지내고 싶었을까요. 변기 속의 단풍잎..... 이 기억에 남습니다. 1. - 어땠어? 라고 어둠 속에서 물으면 영자는 - 말해줘도 넌 몰라. 넌 니 꺼만 알게 되어 있잖아. 라고 대답했다. 나는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나는 무참해서 겨우 중얼거렸다. - 그래.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내가 생각해도, 껌 씹는 소리만도 못한 말이었다. 영자가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 후반이 답답했어. 뭐가 얹힌 것처럼, 팍 터지지가 않았어. 후반이 답답했다는 말은 축구 경기 해설자들이 월드컵 때 TV에서 하는 말인데, 영자의 그 말이 어떤 느낌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말해줘도 넌 몰라, 라던 영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2. - 내년부터는 다달이 돈을 보내줄 수가 없으니 9급인지 10급인지 빨리 붙어서 너의 두 발로 서는 꼴을 보여다오, 네 아비 등뼈 휘는 꼴이 네 눈에는 안 뵈냐? 3. 나는 동거녀를 구할 때 추접스런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여자의 고향이나 가족관계, 장래희망, 취미, 월수입, 체중, 몸 사이즈,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성형을 했는지, 무슨 직종 지망인인지, 몇 수인지를 묻지 않았다...... 지하철 전조등이 어둠을 훑고 지나가는 밤에 몇 마디 말을 나눌 수 있고 몸을 잘 대주기만 한다면 동거녀가 지잡대건 지잡퇴건 나는 상관없었다...... 되어가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 관리비를 책임지는 대신 오피스텔 공간을 공유할 동거인을 찾으며 연애 혹은 결혼 상대로서의 조건을 내민다는 건 참으로 거추장스럽습니다. 하지만, 별스럽지 않은 일에 그보다 더 거추장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조건들이 많이 제시가 됩니다. 이를 테면, 내국인보다 외국인 고객이 많은 호텔에서 프런트 직원을 모집하면서 토익점수 700을 필수조건으로 기입해놓고도 면접 때 담당자나 책임자가 영어 한 마디 못해 면접자의 실질적 영어 소통 능력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 말입니다. 토익 점수 800으로 취업에 성공한 직원이 간단한 영어 소통조차 할 수 없어 고객을 앞에 두고 허둥댄다면, 우리 주변의 그 많은 '스팩'들이 과연 취업 혹은 구인의 기본 조건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 생각이 듭니다. 4. 저녁 여섯시 무렵에 노량진에서 시간은 시들었다. 시간은 메말라서 푸석거렸고 반죽되지 않은 가루로 흩어졌다. 저녁이 흐르고 또 익어서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말라죽은 자리를 어둠이 차지했다. >> 제가 한국에서 느끼던 저녁과 작가의 저녁에 대한 표현이 너무 달라 밑줄을 친 문장입니다. 제가 느끼는 저녁은 밀도가 높아 갑갑하고 미끄덩거리거나 살짝 끈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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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GOP> '이런 일이 있다고? 이럴 수가 있다고?'할, 군대의 생활과 상황을 알려주는 소설입니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는 작업을 시작한 육군과 오십 년전 전사자로 알려진 할아버지 유해를 찾지 말라는 임하사의 할머니가 품으신 바람의 이유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무게를 달리하는 행위와 사물에 대한 의미에 대해... 1. 새벽의 최저기온은 영하 십오 도였다. 달이 밝았고, 별이 가득했다. 시야가 넓어서 추위는 끝이 없었다. 초소에서 적은 추위와 시간이었다. 추위는 가늠쇠 구멍에 잡히지 않았고 시간은 조준되지 않았다. >> 군대에서의 겨울을 아주 명확히 설명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2. 망원경을 대지 않고 육안으로 관찰한 기록도 있었다. >> 망원경을 통한 관찰기록은 대부분 북한군의 수와 총기등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육안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글은 겨울 두루미에 대해, 모포를 터는 북한군들의 행위에 대해, 북한군의 체형과 소변을 누는 모습에 대해서 입니다. 긴장과 압력 외에는 아무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상상력과 추측으로 하루를 채우고 메웁니다. 3. 임하사의 고향은 반농반어하는 서해안의 작은 포구마을이었다. 고향이라기보다는 태어나서 결박된 자리였다. 반농반어라지만, 농업에도 어업에도 생활을 의탁할 수 없었다....... 임하사의 아버지 임창수는 배도 농토도 없었고 읍내 버스터미널 옆에서 잡화상을 했다. 임창수는 잡화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한평생을 가게에 매달려 살았다. >> 번지르한 어휘로 포장된 잔혹한 현실입니다. 출생과 성장 과정이 사슬이 되고 철창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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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집에 29일이라는 긴 기간이 주어진 까닭에 실컷 게으름을 부리며 읽었습니다. 이제 새로 읽을 책을 찾아 책장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저만치 혼자서> 이 소설집의 제목이 왜 '저만치 혼자서'인지 깨닫게 되는, 잔잔하고 은은한 향을 지닌 소설입니다. 종교에는 영 관심이 없는 편이라 별 흥미를 갖지 않고 시작한 소설입니다만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내용의 순서를 두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은 너무도 매끄럽고 아름답고 자연스럽습니다. 성당마다 김요한 주교님들과 김루시아 수녀님들이 계신다면 천주교는 너무도 아름다운 종교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1. - 김루시아 수녀님의 빨래를 수거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인간의 예절이며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죄를 고백하는 것도 죄의 사함을 받는 것도 개별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로 수녀님의 결벽과 수줍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녀 마가레트의 뜻을 기억하십시오. 김요한 주교는 김루시아 수녀와 손안나 수녀가 쓰는 방을 목욕실 가까이로 옮겨줄 것과 그 방을 자주 문안할 것을 간호 수녀들에게 지시했다. 2. 김루시아 수녀의 사물함 서랍에서 은박지에 싼 약봉지가 발견되었다. 봉지 안에는 수면제 몇 알과 도라지 씨앗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김루시아 수녀는 수면제를 반 일씩 먹었는지 한 알 반씩 먹었는지 세 개는 온전했고 나머지는 반쪽이었다. 수녀원 직원이 수면제와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안을 소독했다. >> '성녀 마가레트 수녀원'이 도라지수녀원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밝혀지며 동시에 그녀의 작은 소망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도라지 씨앗은 김루시아 수녀의 무덤 한 귀퉁이에 뿌려져야 했고 오래 오래 뿌리를 내리며 아름답고 수줍게 피어나야 했습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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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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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 5월 7일 그믐달이 뜨는 날, 온라인 그믐밤 채팅 함께 해요.
[그믐밤] 22. 가족의 달 5월, 가족에 관한 책 얘기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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