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준이 이자율을 인하하자 경제가 반등했다. 레이건은 축배를 들었다. 대통령은 1983년 1월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이라는 오랜 악몽이 이제 끝났습니다"라고 선언하며 곧이어 "미국의 아침"을 외쳤다.
하지만 통화주의는 이 축배를 들고 쓰러졌다. 연준이 소리 없이 통화 목표 관리를 포기하고 다시 이자율을 겨냥하는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이 내리는 지시가 간단하더라도 밝혀졌다시피 따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주장 가운데 한 가지가 틀렸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정책 입안자는 통화 유통 속도의 안정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돈이 이용되는 빈도를 가리키는 이 속도는 사실 1948년에서 1981년 사이에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연준이 통화공급을 정책 대상으로 삼자 이 속도가 껑충 오르기 시작했다. 얄궂게도 프리드먼이 당연히 여기던 안정성이 토대부터 흔들린 이유는 자신이 불필요하다고 본 규정이 풀렸기 때문이다. 금융 규제 완화로 통화 사용 형태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정성은 곧 중앙은행이 경제 상황에 미치는 영향력을 프리드먼이 과대평가했다는 의미였다. 또 프리드먼이 재정 정책이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었다. ”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 155-156 ch.3,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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