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증정]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2기

D-29
모든 장면이 마치 한 편의 시트콤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어요.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닌데,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서는 언제든 비인간생물체를 이용하려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들을 돕는 것 또한 인간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그래도 그렇게 돕는 인간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2-1 위원장님과 결혼하여 한 가족을 이루어가며 등장하는 대게의 이야기를 읽고 읽자니 웹툰처럼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대大자로 누운 전위원장님이나 비非로 누운 대게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대게다리에서 칩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대게를 다리를 먹는 장면까지 참 재밌었습니다. ㅎㅎ 하지만 대게의 처지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게되네요. 가족의 안전을 위해 다리를 희생하는 대게 짠했습니다.
검은 덩어리는 계속 등장하나보네요. 해양문제, 러시아 정책 등 다소 진지한 주제를 짧은 단편영화로 그리셨네요. '예브게니'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내용과는 관련없고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제일 먼저 작년에 사망한 러시아 거물급 인사가 떠올랐어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어머니가 등장하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저주토끼'에서도 느꼈지만, 이질적인 존재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등장인물들은 늘 신기한 것 같아요. 쏘주 한잔 내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나와 다른 존재에게 따뜻하게 베푸려는 어머니의 말씀이 꼭 작가님의 말씀처럼 다가왔습니다. 대게뿐만 아니고 검은 덩어리에게도 아침상에 한 자리 내어주려는 부분이 괜히 좋더라고요.
문어 편에 등장한 인물이 다시 나오는 점, 결국은 대게를 먹는 다는 점. 희생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대게의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생물의 의인화가 '문어'편보다 더 강해서 재미있었어요. 러시아어로 "도와주시오..." 처음 내뱉는 대사가 분명 슬픈 상황인데 왜 재미있죠. 미안하다 예브게니야. 독자 입장에서 검은 덩어리들 조직이 내 편인지 아닌지 아직은 혼란스럽지만 임무 수행 중에 민간인 집에서 대게 다리 뜯어먹는 사람들이 딱 내 편은 아닐지라도 빌런은 아니겠단 생각에 앞으로 더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의 시간대가 첫 번째 작품부터 쭉쭉 앞으로 흘러나가는 게 인상적이네요. 그믐에서 누군가가 시트콤이라는 표현을 쓰셨던 것 같은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연출 잘 된 독립 단편영화X시트콤 보는 기분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게, 아니 예브게니도 분명 조연상을 받아야겠지요.
부부가 된 두 사람과 검은 정장, 문어와 대게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데 시어머니가 대게와 검은 정장 등을 대하는 장면에선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 소설이 동일한 등장인물들의 연작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시어머니의 활약이 또 궁금해지더라구요:)
대게철엔 이 책이 생각날 것 같아요. 대게를 사러가면 발하나 떨어진 것은 좀 싸게 살 수 있거든요. 그런 대게에게 심지어 말도 하는데 일을 시키고 부득이하게 다리 하나를 내어놓아야하는 그 모든 상황이 참 기억에 남네요.
현실의 인물과 러시아와 대게 국제 문제가 부딪치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남편이 이길거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고, 도망칠 데가 항상 있으니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꾸려고. 한 말이 작가님이 하고픈 말이구나. 싶었어요.
언어적 "대게" 노동자 구조를 위해 나선 전 위원장님 현 남편과 아내라니요! 해양 수산물 좋아하는 위원장님도 검은 정장의 사람들도 왜 귀엽죠? 작가님의 귀한 재능(러시아 전문 배경지식 및 러시아어)을 이렇게 나눠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2.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적어주세요.
남자들은 어째 상대방이 자기와 같은 비장애인 성인 남성이 아니면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다들 아는 사실을 길게 설명하는 앙증맞은 버릇이 있다고 나는 조금 짜증스럽게 생각했다.
비인간 생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이 망쳐버려 살 수 없게 된 바다, 부서진 해저, 죽은 땅과 도망칠 곳 없이 좁아져버린 지구가 한없이 미안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p.84, 정보라 지음
이 문장도 공감됐어요. 허허.
엇 마키아벨리님 문장에 대한 답글이었는데요. 맑은주님이 공유해주신 문장도 와닿네요.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66쪽, 정보라 지음
비인간 생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이 망쳐버려 살 수 없게 된 바다, 부서진 해저, 죽은 땅과 도망칠 곳 없이 좁아져버린 지구가 한없이 미안했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p.84, 정보라 지음
"그러니까 싸워야죠."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중얼거렸다. "싸워서 못 하게 해야죠." "그렇지만 어떻게요? 게는 집게발이 전부인데 이걸 다 어떻게 막아요?"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남편이 돌아누우며 웅얼웅얼 대답했다. "도망칠 데가 항상 있으니까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럼 오빠는 왜 싸우는데요?" 세상을 바꾸려고,라고 그는 말했었다. 학생 시절에 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조직에 속해서 가장 험한 현장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이야기를 그는 자주 들려주었고 그래서 내가 언젠가 물어보았다. 세상을 바꾸려고. 그래서 그렇게 싸운 끝에 세상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그가 현장에서 30년을 보낸 지금, 그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자신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나마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이나 지나서, 눈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손목과 어깨와 허리가 수시로 아프게 된 지금에야 말이다. 싸워서 세상을 바꾼다는 건 그런 것이다. 주로 허리와 어깨가 아픈 작업이다. "안 싸울 수는 없잖아요." 남편이 돌아누워 나를 쳐다보았다. "열받으니까."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대게> p.66~67, 정보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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