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

D-29
아마 그런 단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마침 같은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임대주택과 자가주택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일이 잦다고하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다룬 단편 소설도 보았습니다. (김혜진의 『미애』)
아, 추천 감사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김혜진 작가님이 한국 경제나 노동 문제를 잘 다뤄주셔서 속으로 흠모하고 있어요. 지향점이 비슷해 보이는 소설가들끼리 그런 테마로 앤솔로지를 내면 어떨까 생각도 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지난해 말 최양선 작가님의 『세대주 오영선』을 읽었는데, 무척 좋았습니다. 부동산 문제가 이제 한국 소설의 소재가 됐구나 싶어 반가웠고요. 얼마 전에는 최하나 작가님이 『강남에 집을 샀어』라는 책을 내셨는데 부동산 문제를 다룬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그런데 저는 이런 책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 다 못 읽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조남주 작가님의 『서영동 이야기』도 나왔네요. 서점 홍보 문구에는 ‘부동산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약간 와닿았습니다. (지만지본) "돈은 낙관주의의 대가요. 분명히 말하지만, 주당 5파운드씩 내게 주면 사회주의자가 되겠소." -168p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극빈층에게 이외로 사회주의는 와닿는 단어가 아닙니다. 당장 하루의 일과, 일주일의 계획, 한 달의 지출을 생각하면 이데올로기적 문제는 공허할 뿐이죠. 오히려 상류층이라 할만한 레블스턴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이상한 장면까지 나옵니다.
76쪽, [좋아, 그렇다면 ‘성공’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리라. ‘성공하지’ 않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으리라. 천국의 노예가 되느니 지옥의 왕이 되겠다. 열여섯 살에 이미 고든은 자신이 어느 편인지 알았다. 그는 돈의 신과 그 야비한 사제들의 적이 되었다. 돈에 선전포고를 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혼자 선전포고를 한 대상이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20대 시절에 거의 폭압적으로 느껴지던 수많은 긍정론들에 질려서 혼자 전쟁을 선포했지요. 절대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지 않겠다고. 20년 동안 비관적인 견해를 쌓아올린 끝에 장렬히 패배했습니다(우울증 걸림). 사람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하더라고요.
요즘도 혼자 선전포고를 한 대상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소셜미디어입니다. 책도 홍보해야 하고, 그믐 이벤트도 홍보해야 하니까 이용은 합니다만... 싸울 방법을 이것저것 모색하고 있고 그믐 활동도 그 중 하나입니다. 소셜미디어를 상대로 나 홀로 선전포고를 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숙적이 생기니까 좋더라고요. ‘사람은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새뮤얼 헌팅턴의 말입니다. 제가 데뷔작에서도 두 번인가 인용했습니다.
그믐 자체도 소셜미디어의 정의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네, 맞습니다. 자의식 과잉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석면이나 DDT에 분개한 사람이 독성 없는 건축 자재나 환경에 타격을 주지 않는 살충제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고 저희들은 여기고 있어요. 지금의 소셜 미디어들에는 몇 가지 독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IT 업체들이 의도적으로 중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설계하는 게 대표적이고요.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거나 쉽고 빠르게 여론 재판이 일어나게 하는 것 등등도 문제라고 보고요.
저희는 소셜 미디어도 살충제나 건축 자재, 자동차처럼 순기능과 부작용이 있는 기술이라고 보고 있어요. 동시에 이미 없앨 수는 없는 기술이 됐다고 보고요. 그렇다면 보다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듯이 사람들이 보다 맥락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Social Network Service가 아닌 Subject Network Service라는 말도 만들어 봤고요.
‘소셜 미디어가 저의 숙적’이라는 저 위의 말 자체가 좀 부정확했고, 구멍가게 직원이 거시경제 정책 비판하는 꼴 비슷해서 여러 모로 부끄럽기는 합니다만... (게다가 사실 저는 한 발만 걸친 상태이고 실제로는 별 일 하지 않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쨌든 생각 자체는 그러합니다. 솔직히 그믐이 잘 될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
p.234_이것 좀 보라지! 또 돈이 문제다! 인생의 가장 은밀한 행위를 할 때조차 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돈 때문에 지독하고 냉혹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돈, 돈, 항상 돈이 문제다! 돈의 신은 신방에까지 침범해 들어온다! 높은 곳이나 깊은 곳이나 그는 항상 존재한다.
식사할 곳을 찾아 들어간 호텔 식당. 직원은 입성만으로 고든과 로즈메리를 하찮은 손님으로 여기고, 고든은 이에 질세라 웨이터에게 팁까지 주며 허세를 부리는데요, 덕분에 전 재산을 변변치 않은 한 끼 식사에 다 쓰고 말았습니다. "정말! 너무 답답해!" (p243) 로즈메리가 고든에게 한 말인데,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88쪽, [누군가가 잡지에 실린 고든의 시를 우연히 보고는 “우리 회사에 시인이 있네”라며 떠들고 다녔다.] 이 기분 제가 아주 잘 압니다. 하하하.
91쪽, [그래서 고든은 래블스턴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일자리를 얻어달라고 말이다.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그의 영혼을 완전히 잡아먹지 않고 육신을 지켜줄 일자리를.] 요즘 같은 시대라면 ‘N잡러가 되세요’라고 조언을 들었을 텐데요. 카피라이터 하면서 시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제가 소설가라서 하는 속 편한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전에 젊은 시인들과 이야기하다가 “전업 소설가는 있어도 전업 시인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시로는 도저히 밥벌이가 안 되고, 시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직장을 구했고, 그래서 오히려 젊은 시인들이 소설가보다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고. 나중에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젊은 전업 시인도 있고, 젊은 전업 평론가도 있지만, 확실히 젊은 전업 소설가보다는 드문 거 같았습니다.
96쪽, [하지만 가난을 자처했으니 가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빤한 거짓말이었다. 고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2파운드를 벌면서 몸이 고생할 일은 별로 없다. 설사 고생스럽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난이 정말 해치는 것은 인간의 뇌와 영혼이다. 정신적 무감각, 영적 불결함―수입이 일정 지점 아래로 떨어지면 이 두 가지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신앙, 희망, 돈. 성자가 아닌 이상 돈이 없으면 앞의 두 가지도 가질 수 없다.]
101쪽, [하지만 헤밍웨이, 당신은 누구인가?] 조지 오웰이 헤밍웨이 만나러 갔다가 본명을 대는 바람에 문전박대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게 1945년이니까 『엽란을 날려라』 발표 이후이겠습니다. 오웰과 헤밍웨이는 서로 멀리서 모르는 채로 흠모하는 사이였다고 하지요. 유명하기로는 헤밍웨이가 훨씬 더 유명했는데(특히 1930년대에는), 오웰이 헤밍웨이를 존중하는 것보다 헤밍웨이가 좀 더 오웰을 존중한 것 같다고 합니다.
119쪽, [여자들은 돈 한 푼 없는 남자를 택하느니 남자 없이 사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91p~139p 모든 예술가가 가끔 자신의 작품을 떠올릴 때 그러듯, 고든은 경멸과 공포에 휩싸였다. 누구보다도 시와 예술에 진심인 주인공,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출판계의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그의 모습이 무엇보다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이후 그의 감정변화가 더욱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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