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

D-29
안녕하세요,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보니 더욱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 풍성하게 느껴지네요. 저는 평소에 줄 치며 책 읽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가제본이라 오롯이 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필로 밑줄 죽죽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줄치는 쾌감이 있는 책이었어요. 제 신랑에게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모든 걸 돈 때문이라고 돈의 탓으로 여긴다고 했더니 "빨갱이네~ 빨갱이 ㅎㅎㅎㅎ" 하는 농담도 했는데, 그만큼 고든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모든 것은 돈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걸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하여 사랑을 모르겠는가, 신경림의 시도 생각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하여튼 불편하고, 주인공이 영 못 마당한데도 어, 어, 하면서 빠져든 책이었는데요. 그런 기이한 매력을 지닌 다른 작품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폭풍의 언덕"과 "롤리타"가 그랬습니다. "폭풍의 언덕" 읽으면서는 뭐야 완전 정신병자들이잖아, 하면서 식은 땀을 흘렸고, "롤리타"를 읽으면서는 나보코프의 배짱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 원고가 출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보코프가 당연히 예상했을 거라고 봤거든요.
주인공이 못마땅한데도 빠져드는 소설의 원조는 "돈키호테"가 아닐까 싶네요. 스페인 사람들의 양면성이라는 카잔차키스의 재해석(?)을 보고 읽으면 더 파고 들 거리도 생기고요. 퇴폐적인 피츠제럴드나 기괴한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주인공들도 이런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아요.
돈키호테까지 시야를 넓혀 보니, 사실 흥부전 심청전도 등장인물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흥부, 놀부, 심청, 심학규, 다 싫네요. ^^
2022. 9. 20. 화 (읽은 부분 301~333) -돈 없는 사람은 돈이 생겨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른다. (309쪽) -그는 이 고난을 최대한 조용하고 수월하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313쪽) -로즈마리가 찾아와서 무의미한 감정들로 그를 흔들어놓지만 않았으면 (320쪽) -더이상 실패를 의식하지 않고, 그녀가 말한대로 돈과 노력과 도덕적 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조용한 세상으로 떨어져버렸으면 (330쪽)
저는 가제본인데도,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좋고 자간 및 글씨 그리고 무엇보다 밑줄 싹싹 그으면서 읽기 너무 좋아서 완성본이 너무 기대되네요:) 책도 너무 재미있구요!!
가제본 같다는 생각이 들지않는 멋진 책이예요. 저도 의외로 정독했는데도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그믐 덕분이겠죠😊
38-39p에 고든의 시집 이름에 이어 비용의 시를 읇는 부분이 참 좋습니다. 그놈은 권태 - 무심코 차오르는 눈물을 글썽이고 이 부분이 유독 좋네요. 저는 고든의 시집 이름이 <생쥐>라는 게 그의 정체성이나 특징을 일면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재밌다고 느껴집니다. 새벽까지 좀 더 읽고 잘 생각입니다.
만약 고든이 '돈과의 전쟁'같은건 선포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아마도 작중 등자하는 플랙스먼이나 '숨쉬러나가다'에 나오는 조지 볼링처럼 살았을 것같은데, 그런 삶은 과연 '돈과의 전쟁'보다 나았을까도 생각해볼만한 주제라고 봅니다.
그러게요. 나중에 중년 위기를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젊을 때 바닥을 한번 찍어보는 게 나으려나요?
하지만 이 세상은 잔인하게도 한번 바닥을 찍으면 계속 바닥을 찍게 되더라고요.
2022. 9. 22. 목 (읽은 부분 334~363쪽) *발췌 -올라가는 것 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어려울떄가 많다. -좀스럽게 숨어들기만 해서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자선 행위는 우정을 끝장내 버린다. -엽란은 결국 죽지 않았다. 시든 이파리들은 떨어졌지만, 밑동 근처에 연둣빛 싹 들이 두어 개 솟아났다. *단상) 고든을 이해해보려 애쓴다. 고든과 같은 생각으로 살아보지 않아서일까. 아님 같은 생각은 존재했으나 한번도 맞써보고나 늘 굴복해왔기 때문인건 아닐까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돈. 돈에, 이 자본주의에, 광고를 신뢰하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모른다. 조지오웰은 그런 내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과연 고든을 이해할 수 있냐고.. 참 무거운 질문이 아닐수 없다.
'엽란을 날려라'를 처음 읽으면 아마도 다들 결국 고든 콤스톡은 패배한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콤스톡이 현실에 일방적으로 굴종하게 되었다고 해석하게 되었지만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 비관적인 소설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엽란을 날려라 3장 마지막은 콤스톡 가문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합니다. 지만지본 113p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 중 누구도 영국을 떠난 적 없고,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고, 감옥에 간 적도 없고, 말을 타 본 적도 없고 결혼한 적도 없고, 물론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을 지속해서는 안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매년 콤스톡 가문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라고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선조가 이루어낸 부에 짓눌린 그들은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심지어 부를 쓰지도 못한 채 피폐해져가고 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고든과 줄리아의 아버지 존 콤스톡이지만 그의 자식들조차도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하여 고든은 부모에 의해서 자신의 가정환경에 걸맞지 않는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 결과 집안은 몰락하고 고든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자라나던 고든은 이것이 돈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인간은 그 자신이 가진 자산으로만 인정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든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결코 돈을 벌 수 없으리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82p) 그리하여 그는 세속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런 세상에서 벗어난 문학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고든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첫 작품인 '쥐'는 아무도 읽지 않고, 차기작인 '런던의 환락'은 완성될 기미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콤스톡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는 비참한 처지에 갇히게 됩니다. 고든은 래블스턴에게 이것을 간접적으로 고백합니다. "우린 틀림없이 죽어가고 있소. 다시 태어나는 징조가 보이지를 않네요."(161p) 그가 가혹하게 대하는 세 명인 래블스턴, 로즈메리, 줄리아는 고든이 '돈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유일한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고든의 비밀을 많든 적든 알아내고 있는 인물들이고 이런 자격지심이 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엽란은 1930년대 런던을 총칭하는 암울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눈 앞으로 다가온 '돈과의 전쟁'에서 파국이 닥치기 직전. 반강제로 관계를 가진 로즈메리가 아이를 가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세상에서 4펜스를 가지고 애인을 임신하게 만드는 공장의 청년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라! 적어도 그 자의 정맥 안에는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81p)" 그는 로즈메리와 자신과의 아이를 생각하며 공립도서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태아의 그림을 보게 되면서 한 가지를 결심하게 됩니다. "아이의 미래, 어쩌면 아이의 지속적인 존재는 그에게 달려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극히 미량인 그 자신의 일부가 아닌가-바로 그 자신이었다." (441p) 콤스톡은 마침내 런던의 환락을 대체하게 될 자신의 창조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일종의 희망이기도 한 법입니다. 콤스톡이 런던의 환락을 "병 속에 들어있는 가혹한 태아"라고 언급한 것을 생각하면 묘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런던의 환락은 일종의 치유라고도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이질적인 환경에 살면서 부유한 사람들과 그 인간들의 비열한 원천인 돈을 증오하게 된 소년은 부의 대한 증오를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든 콤스톡을 돕고 있습니다. 돈도 무엇도 없는 존재도 대접받을 가치가 있는가?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답변은 돈이 있든 없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고든은 마침내 그리하여 상처를 딛고 내일을 향해 살아갑니다.
"오, 엽란이여! 네가 승리했다"(453p)의 표현은 언듯 패배의 선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고든이 엽란을 찾는 것을 볼 때 '승리한 엽란'에는 그 자신도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엽란을 사러 갈 때 "병 속의 죽어있던 태아"는 살아있는 생명이 되어 작품의 대미를 끝마칩니다. 이로서 콤스톡 가문의 오랜 몰락은 종식되고 다시금 미래를 향한 열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엽란을 날려라'는 생각보다 희망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엽란을 사야 한다고 우기는 고든의 심리, 혹은 그 장면을 삽입한 오웰의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고든은 정말 해맑은 중산층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위악을 부리는 걸까요. 고든이 행복한 중산층이 되었다면 오웰은 그걸 해피엔딩으로 그리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이 장면에서 독자들이 지독한 패배감을 맛보게 하고 싶었던 걸까요. 1984에서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윈스턴을 보듯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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