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D-29
두 가지는 너무 분명하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저절로 미니멀라이즈가 되는 것 같고 책상과 책꽂이(책이 너무 많으니까 안 꽂고 다 읽으면 바로 팔아버린다. 지금 꽂혀 있는 건 읽고 있는 책과 앞으로 읽을 책)와 글을 쓰기 위한 노트북, 조명등(밝으면 더 좋고) 그런 것 말고는 다 필요 없다. 그리고 칸트처럼 내 루틴을 너무 엄격하게 지킨다. 다 내가 읽는 책을 위한 거고, 글을 잘 쓰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게 다.
날 사로잡은 눈살 살기 어린 눈을 뜨는 여자들이 좀 있다. 눈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 그 서슬에 사람들이 그녀의 나아갈 방향을 자동으로 열어준다. 그들의 나이는 아직 푸르다 못해 새파랗다. 전에 이런 눈을 어른들이 독살 맞은 눈이라고 한 것도 같다. 그 강한 레이저에 황소 같은 내 선한 눈이 멀 것도 같다. 그 빛과 조우(遭遇)하는 순간, 내 눈은 절로 땅으로 꺼진다. 눈길만은 절대 나를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정면이 아니라 팔짱을 끼고 옆으로 나를 쫓고 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그 사선의 눈화살을 등 뒤에서 그대로 맞이면 옆구리가 움찔하며 욱신거린다. 더이상 발을 뗄 수 없다. 배에 칼을 맞은 것처럼 헉, 하고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을 것만 같다. 확신에 찬 그녀의 눈빛은, 나를 순간 움찔하게 해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과거의 조그만 죄라도 스스로 이실직고하고, 야무지지 못하고 물러터진 나를 순식간에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다. 그때 그녀가 말을 꺼내면 분명 날 혼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야단치는 말보다 그 눈화살이 상대를 나무라는데 더 효과가 큰 것 같다. 차라리 말로 하면 그 시선의 강렬함이 덜해 숨이라도 좀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눈의 힘이 20대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다가 나이 들면서 서서히 연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좀 자기 외의 다른 인생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모를 땐 자기 맘에 못마땅한 것 천지라 그 살기와 독기 서린 눈빛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다가 “아, 그땐 상대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깨닫고 그 독살(毒煞)스러운 눈빛을 서서히 거두고 좀 다감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퍼렇게 날이 선 눈을 아무에게나 내뿜는 여자들은 대개는 자타공인 예쁜 여자들이었고, 나름대로 매력도 넘쳤다. 그래 그런 눈살도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그 눈은 어쩌면 결기로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눈이다. 나도 덩달아 그 눈에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 속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솔직히는 나를 혼내는 그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혼냄은 자기 일에 왜 협조 안 하고 동참하지 않느냐는 거다. 그 눈길의 범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마조히즘적으로 여기저기 생채기 나고 싶었다. “전부 바보들만 모였나, 왜 나처럼 안 해?”라고 그때는,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신만만한 강렬한 눈빛도 한때고, 눈에서 힘이, 사라져 부드럽고 연해져 남을 베는 일은 이젠 잘 없지만 그때도 나름 매력 넘쳤던 한 시기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는.
하루키는 현실이라는 허물을 벗고 자유로운 영혼(어디든 갈 수 있다)이 되어 맘대로 생각했던 것을 기록하고 읽고 꿈을 가진 그런 이상적인 곳을 원했던 것이다.
젊으면 기분 좋을 때가 많다. 늙으면 이게 사라지고 가끔 기분 좋음이 오지만 전의 것과는 그 질이 너무 나쁘다. 늙으면 롹실히 삶의 질이 떨어진다. 나쁜 ㄳ만 지금 잔뜩 지니고 있다. 이건 자연이 법칙 같다. 현실이 이렇게 고달픈데도 계속 살려고 버틸 거냐고 자연의 법칙이 엄하게 묻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이 세상을 하직하라고. 그만 좀 버티라고.
자연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젊으면 기분 좋을 때가 많다. 진짜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나를 찾아온다. 늙으면 이게 사라지고 가끔 기분 좋음이 올 때도 있지만 그건 젊을 때의 그것과 비교가 안 된다. 그 질이 너무 나쁘다. 늙으면 확실히 삶의 질이 떨어진다. 나쁜 것만 잔뜩 지니고 있다.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세상에 대한 못마땅함, 우울증, 수면 부족, 날씨가 궂으면 소화 불량, 몸이 약해져서 오는 이유 모를 불안감 등. 이건 자연법칙 같다. 현실이 이렇게 고달픈데도 계속 살려고 버틸 거냐고, 자연의 법칙이 내게 엄하게 묻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세상을 하직하라고. 그만 좀 버티라고. 그만 죽으라고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살 만큼 살았다고.
매력적인 여자의 말을 그대로 다시 듣고 싶다. 그래 그녀의 말과 언어를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모든 진정한 글은 이리로 향하는 게 아닐까. 본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 이 세상에 자신이 온 역할을 본질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쳐라. 즉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장 큰 가치 같다. 그 무엇보다도.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하려는 나를 그냥 현실에 사로잡혀 나를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래 자아 실현이 쉬운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볍률적으로 나의 자유로운 실현을 막는 요소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 이게 너무나 중요하니 자기만의 벽을 쌓고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 그곳에서나마 자기의 고유한 몫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글의 궁극 목적 같가도 하다.
결국 글이 향하는 곳은 진정한 모든 글은 이리로 향하는 것 같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이 세상에 자신이 출현한, 자기만의 유니크한 역할을 본질적으로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온통 바치라고. 즉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장 큰 가치 같다. 그 무엇보다도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하려는 나를 그냥 현실에 사로잡혀 나를 온전히 실현 못 하게 방해한다. 그래, 자아실현은 어렵다.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나의 프리 스피릿을 막는 요소가 너무 많다. 자아실현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변의 방해 요소를 배제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나로 무한히 다가가는 행위이다. 그래야 뭔가 뿌듯하고 행복하리라. 빈 곳이 차츰 메워지면서 한껏 충일하리라. 동시에 현실에선 나의 이 자연스러움을 옥죄는 것을 물리쳐야 한다. 거기에 붙잡히지 말고 진정한 나에게 점점 다다라야 한다. 자신의 자연스러움으로 가려는 자에게 방해 요소와 물리칠 게 많아 거기에 그의 에너지를 쏟을 게 많은 사회일수록 진실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곳이다. 현실에서 이들에게 방해 요소가 너무 많을 때, 이게 너무나 중요하니 자기만의 벽을 쌓고 자기만의 틀을 만들어 그곳에서나마 자기의 고유한 몫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글의 궁극 아닐까. 현실에서 뜻이 맞아 그 벽과 틀에 함께 갈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는 행운아일 것이다. 그곳에서 그 둘은 공동 작업한다. 서로 힘을 합치면서 그는 나를 돕고, 나는 그를 돕고 그러나 또 글을 쓰는 자는, 혼자하기가 그의 기질에 맞고 글이란 또 본질적으로 혼자 하는 작업이므로 서로 돕고 격려하는 선에서 그치고, 대부분의 작업은 결국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그의 천직이고, 이 세계에서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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