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

D-29
비치보이스 이야기, 가슴 아프네요. 예술적 경쟁심과 그 노력 끝에 마주한 절망 때문이었을까요? 때론 끊임없는 나르시즘이나 무념무상으로 툭 털어낸 제로 베이스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도 하나 봅니다. 작가님이 더 많이 고민해보신(?) 분야일테지만요.
저는 동방불패에서 임청하님이 종이로 입구를 막은 동그란 술독을 손으로 종이를 툭 쳐서 열고 벌컥 벌컥 마시는 장면에 치여 한동안 그 분이 나온 모든 영화를 보았었어요. 그 술이 궁금해서 본토(중국) 갔을 때 찾아 봤는데 무려 40- 50도를 오가는 독주였던 것이에요. (순수 알코올과 뭐가 다른 건지? 🤣) 그렇게 아무 정보도 없이 본게 동사서독 였는데 여기서 제가 또 양가휘님에게 반했다지요 (왜 이렇게 청승맞은 인물을) 망각은 인간에게 축복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만약에 황약사가 “취생몽사“를 건넨다면 마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과거에 얽매여 자유로워질 길이 그 뿐이라면 저는 기꺼이 마실 것 같아요. 이런 맥락으로 ”이터널 선샤인“이 문득 떠올라요. (영화)
취생몽사 정말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장치이지요. 저는 《동사서독》의 주제가 ‘회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테마가 사물의 형태로 형상화된 게 취생몽사라고 생각해요. 《동사서독》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그런 회한을 뼈아프게 품고 있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자존심이나 최고의 고수가 되고 싶다는 욕망, 자신을 배신한 배우자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감 등등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 유일한 예외가 홍칠공인데 그래서 홍칠공의 에피소드가 상쾌합니다. 장국영과 장만옥의 사연을 소개하기 전에 ‘회한 없는 사람’을 보여줘서 대비시키기 위한 에피소드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살다 보니 회한 한두 개 정도는 생겼는데 가끔은 그냥 떨쳐버리고 싶어서 괴롭습니다. 그런 때 취생몽사가 옆에 있다면 마실 것인가. 머리로는 그게 슬픈 일이며, 흉터도 제 개성의 일부라고 여기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켜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상처도 삶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이터널 선샤인》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취생몽사라는 사자성어는 전혀 다른 의미더군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 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그런 회한의 감정을 잘 묘사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에 얼굴을 대고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이는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고요. 영화 자체는 별로였지만 《일대종사》에서 장쯔이가 “만일 인생에 후회가 없다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없을까요?”라고 하는 대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046》에서 양조위는 취생몽사가 없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회한에 몸부림치는 것 같았습니다. 종종 왕가위와 하루키가 비교되는데, 하루키의 ‘상실감’은 왕가위의 ‘회한’에 비하면 다소 나른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홍콩과 중국을 아우르는 영화와 소설들의 대가들이 찐 내공을 겨루시어 무협을 능가하는 천하의 대결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님은 느려터지기는 커녕 몇개의 산을 뛰어 넘으시고 사계리 서점님도 서점과 비디오 대여점서 쌓으신 내공으로 천하를 주유하십니다. 조용한 가운데 깊은 내공 쌓으신 헨리님 계시고요. 마디마디홉~~~
《동사서독》에서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장면이 하나 있는데... 양조위가 죽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양채니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잖아요. 이 장면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가물거리긴 하는데... 제 기억으로는 다른 사람(아마도 황약사)을 사랑하게 되버린 아내를 닮은 여인, 양채니를 아내로 여기며 죽으러 떠나기 전에 키스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양조위를 보며 양채니가 흐느껴 울기도 한것 같은데, 그건 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에는 양채니가 운 것은 그냥 성추행을 당한 분함에 운 거 같았습니다. ^^
부끄러움도 없이 이걸 여기에 올려봅니다; https://youtu.be/kaWj0kr1dlQ?feature=shared
우오ㅓ아.. 너무 잘들엇어요!
감사합니다 👍 동사서독이 그런 깊은 영화였군요
오, 멋집니다. 영웅본색 영화는 안 봤지만 저 음악은 자주 들어서 익숙하네요. 그런데 저 악보를 아직도 가지고 있으시다는 점이 제일 신기합니다. ^^
아아 이 노래! 이 노래에요! 이걸 피아노로!
어제도 내친 김에 문득 쳐보았어요~ 마침 비도 오고 말이죠^^ 그런데 피아노를 쳤음에도 왜 스트레쓰가 안 풀리지;; 공무원 사회 적응하기 힘든가 보다 ㅋ 싶었어요.
@느려터진달팽이 앗 ^^ 이탈리아그림책방 뚜띠(=다국어 도서관 안디아모)에서 달팽이님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앗 역시 그때 오셨었죠? 제가 그 전해 그믐날에 그믐밤에 처음(이자 마지막 at present)으로 갔었을 때 팥죽을 안드셔서 얘기도 잠시 나눴던 것 같은데, 그 때만 해도 우린 마스크를 쓰던 시절이었고 마스크를 벗으니 그 분이신가 아리까리 했었다는.
저는 동사서독 영화가 나온 때보다 몇년 더 지나 태어났어서.. 아무래도 옛날 배경 중국 무협 영화에 쉽게 몰입하기 어렵겠거니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근데 왠걸.. 임청하가 너무 예뻐서(남장한것도 ㅠ ㅠ) 그리고 장국영이 초반에 ‘죽이고 싶은 사람 없었냐’며 묻는 대사들이 강렬해서 술술 봤습니다. 타락천사도 그렇고 동사서독도 그렇고, 시대는 다른데 왕가위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고독하고 쓸쓸해보여요. 말 쓰다듬는 유가령?이나 혼자 나와 떠도는 양조위니, 사랑한다 말못한 장국영이나, 사랑한다는 말 안해줬다고 끝내 고집부린 장만욱이나. (그 와중에 홍칠공 따라온 부인 귀여우심. ) 그래서 좋았다 싫었다 그런 구분보단, 그냥 사는 게 그렇구나.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고,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다가, 어떤 시기가 지나면 궁금하지 않아지기도 하고,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곳을 다시 가기도 하고. 이기려고 했던 것들이 언제 보니 진 것이고.. 변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을 고지식하게라도 지켜야 좋은 걸까, 오락가락하는 요즘 저에 대한 고민이 영화 보며 겹쳐진 것 같습니다. 제가 꼭 말 잘 못하는 장만옥 아들 같더라구요!
*좋았던 씬 “좌절을 맛본 사람은 어떤 핑계로든 자신을 숨기려한다. 사실 모용연과 여동생 모영언은 한 몸에 깃든 두 인격이었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두 인격으로 감춘 것이다. ” “모용언? 모용연? 말해줘요. 당신이 사랑하는 건 누구죠?”라고 묻는 임청하에 구양봉(장국영)은 그냥 “당신이에요.”하고 답한다. *배경 아름다움. 사막이며 밤하늘, 물가?, 바다 배경들이 다 헤어질결심 생각도 나고 모네 풍경화랑 윈도우 배경화면 재질 사진들 생각이 났어요. 넘 예쁘더라구요.
저는 이제 동사서독의 대사들보다 사막 풍경이 더 잘 기억 나요. 사막이 가장 아름답게 나오는 영화 아닐까 생각해요. 드니 빌뇌브의 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요. ^^
도저히 기억이 안나서 동사서독 다시 보는데 질문입니다. 임청하는 푸퉁화하고 장국영은 광둥어 하는거 맞죠? 전에 2046에서도 장쯔이랑 양조위랑 얘기할때 장쯔이는 푸퉁화하고 양조위는 광둥어하는데 쟤들은 왜 말이 통하는겨? (꼭 푸퉁화가 아니어도 제가 중국어라고 학교에서 배웠던 그 말로 얘기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아님 제가 두 언어를 잘 몰라서 똑같은 언어 쓰는데 다르게 들리는겨?란 생각이 들었지만 두 언어 아시는 분들 계심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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