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

D-29
오늘부터 25일까지는 《화양연화》와 《2046》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 감상과 비평, 명대사, 명장면, 배우 이야기, 연출 이야기, 제작 뒷이야기, 모두 환영합니다. 다른 영화 이야기하셔도 물론 좋습니다. ^^
<화양연화>를 벼르고 별러서 드디어 극장에서 봤습니다. 역시 영상미는 기대했던대로 만족스럽게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서사의 부재의 단점이 두드려져서 주인공 두 배우가 저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나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영화의 영상미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게 홍콩 중산층의 생활상이었어요. 젊은 부부 두 사람이 사무직으로 일해도 단칸방에 세를 들어서 살고 음식도 주인집과 같이 해먹고, 그 좁은 공간에도 살림을 맡아서 하는 식모가 있고, 같은 층 이웃과 네집 내집 헷갈릴 정도로 섞여지내는 모습이요. 장만옥이 일하는 좁은 사무실 모습도 비슷하게 개인적인 일이 눈치채지않고 일어날 수 있다는게 허락되지 않는 환경이죠. 그 와중에 다른 사람 얼굴 다 보여주면서 장만옥 남편과 양조위 부인 얼굴 끝까지 안 보여주는 장치도 참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제가 본 극장 상영판에서는 마지막 남자아이의 존재에 대해 별 의미없이 '아... 여자는 자기 자리 지키며 애 낳고 잘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그게 헤어지기 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화양연화' 노래처럼 한 때 아름다웠던 흘러간 좋은 시절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던 것 같아요. 양조위도 그래서 앙코르와트 벽에다 털어놓고 묻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왕가위 감독이 서사를 잘 짜는 사람은 아니라고 보는데 오히려 저는 작품에서 서사를 이 정도로 지우다 보니 더 영화의 ‘무드’가 잘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영화의 영어 제목에도 ‘무드’라는 단어가 나오죠). 말씀대로 서사의 빈 부분을 배우들이 채우고 있는데 ‘눈빛으로 말을 한다’는 표현이 이 영화를 보면 납득이 가더라고요. 대사로 두 인물의 감정이나 상세한 상황이 설명되었더라면 분명히 작품의 감흥이 반감되었을 것 같아요. 관객이 어두운 골목이나 식당에 숨어서, 끈적끈적한 음악을 들으며, 배우들의 표정을 훔쳐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상상해야 하는데, 그래서 저는 이 영화야말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어느 정도나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워낙 간단하고 전형적인 줄거리라서 그게 왕가위의 제작 스타일과 잘 어우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홍콩 영화를 보면서 저는 늘 홍콩 시민들의 갑갑한 생활에 놀라면서 폐소공포증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느낌이 유독 심했습니다. 낮 장면, 개방감이 드는 탁 트인 풍광이 거의 나오지 않고, 누추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화려하지도 않은 생활 공간의 비중이 높고요. 그런 느낌이 사회 관습과 전통 윤리 속에 갇힌 두 기혼 남녀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장만옥의 아이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느꼈어요. 장만옥은 꿋꿋하게 잘 사는데 양조위는 휘청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것 같았어’ 하고 혼자 웃기도 하고요. 그래도 《2046》에서 망가진 양조위의 모습은 편치 않더라고요. ^^
저는 <2046>에 대해서는 몰랐는데, 음... 별로 보고싶지 않네요. <화양연화>의 감성이 무너질 것 같아서요. 다 말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어요.
네, 저는 무척 실망한 작품이었어요. 특히 "화양연화"랑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그랬어요. "화양연화" 결말이 딱 좋은데요.
공간도 갑갑했고, 장만옥님 입은 옷도 너무 예쁘지만 몸에 대고 그린 옷 같아서 숨을 못 쉴 거 같더라고요. 이것도 답답했고요. 제가 지방에서 생활해서 서울 가면 인파에 갑가압한데요. 홍콩은 진짜 폐소공포증에 인정합니다. 그 습해보이는 날씨에 번잡한 유동인구에 뜨거운 국수가게에 포장하러 다니다니 전 못 가요. 뒷북이지만 <회양연화> 여담을 덧붙입니다. 최근에 부모님께 고스톱을 배웠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마작도 고스톱 같은 걸까, 얼마나 재밌길래 이 사람들이 날을 새고 매번 할까 궁금해졌답니다.
20년전쯤에 홍콩에서 한 결혼피로연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요. 피로연이 6시인데 4시부터 모인대서 왜?라고 했더니 어르신들 마작하셔야 한다며....저흰 3시 30분쯤인가 가서 준비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더 일찍 오셔서 굉장히 초조한 표정으로 왜 마작 안 시켜 주냐며...혼자서는 운신도 제대로 못하시고, 지팡이 짚고 허리 못 펴시던 분들이 마작하실 땐 어찌나 활기차시던지..... 피로연 시작한다고!!! 그만 하시라고!!! 끌어낼 때까지 하시더라고요. 버둥거리시기까지 했어요. 우리나라도 명절 때도 여기가 하우스냐고! 신고해야겠다고! 소리 질러도 소용 없잖아요?
마작을 잘 알면 《색, 계》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던데... 저도 좀 궁금합니다. 마오쩌둥도 못 막은 그 게임.
<색, 계>를 이미 언급 하셨군요 ㅎㅎ
이쯤에서 나와야 할 거 같았습니다. ^^
안 나오면 아쉽지요. 나와도 아쉽기도 하고요 ㅎㅎ;;
탕웨이 배우님도 이쯤에서 나와야 할 거 같은데요? ^^
마작 하니 생각나는 두가지 컨텐츠가 있습니다. 예전에 봤던, 양조위도 나왔던 <색, 계>의 마작 씬들과 최근 넷플릭스에서 봤던 양자경 주연의 <선 브라더스>의 마작 씬들이 그것들입니다. 두 영화 모두, 그 지역의 거의 모든 정보가 유통되는 곳으로 그려지는 마작하는 공간에서 중국(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느낌으로 느껴졌던 거 같습니다.
또다른 양자경의 글로벌 히트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도 주인공 여자와 마작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 장면에서 마작을 이해 못해서 내용 자체가 이해 안 갔던 게 참 답답했었습니다. 오래된 히트작, 에이미 탄의 <조이 럭 클럽>에서도 마작하며 뭉치는 여인들 나왔었고... 마작은...음... 딱 하루 해보고 배우고자 마작 패이며, 책이며 다 샀는데요, 같이 칠 사람이 없어서 못 익혔습니다. 이게 고스톱보다 더 하게 네 명의 짝이 있어야 하는 게임이라 마음맞는 그룹이 없으면 못 배우고 못 쳐요. 게임의 묘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일단 물리적으로 손으로 만지는 마작패의 촉감과 달그락하는 소리가 고스톱의 플라스틱 패가 담요 위에 딱 맞게 떨어지는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중독성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룰은 생각보다 쉬워서 어릴 때부터 돈 안 걸고 그냥 가족 게임으로 즐기며 자란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단지 게임 자체로는 재밌고 여러 사람이 멤버를 바꿔가며 함께 즐기기 좋은 게임인데 너무 재밌다보니 중독성이 지나쳐서 아예 나라에서 금지하는 게임까지 되었나봐요.
중독성은 정말이지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중국계 문화에 이리도 착붙인걸 보면 말이지요. 그나저나 <조이럭클럽>도 다시 보고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박쥐》에도 마작 장면이 중요하게 등장하네요. 저는 마작과 비슷하게 궁금한 게임이 브리지입니다. 이것도 보통 4명이 하는 거죠? 문외한 눈에는 테이블에 앉은 모양이나 카드를 늘어놓은 모양이 마작과 약간 비슷해 보이고요.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브리지를 한다고 나올 때마다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가 궁금했어요.
저는 그 더위에도 보온병들고 사러 가는 국수는 얼마나 맛있길래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주인공을 엮어주는 계기가 신문에 연재되는 '무협지'라는 사실이 좀 우스웠어요. 서사가 약한 감독이 두 주인공을 엮는 도구는 중독성 강한 서사의 무협지라니.... 홍콩의 분위기와 무협지의 맛을 모르는 관객이 과연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홍콩을 2010년 이후에나 가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아주아주 특별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 사라져가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 같아서 참 슬픈 눈으로 지켜보게되는 곳이예요. 참, 홍콩 배경으로한 러브스토리가 더 고프신 분들은 장아이링의 'Love in a fallen city'라는 소설집의 단편소설들 추천합니다.
왕가위 다른 영화들 이 기회에 보려고 했는데 벌인 일들이 많아서 또 미뤄지고 있네요.. 크흑. 저는 작년에 <화양연화> 를 재개봉 때 보고 이 영화 명작 맞구나! 싶어서 <왕가위>라는 책도 도서관에서 찾아서 훑어본 기억이나네요 ㅎㅎ(책 무게와 크기에 압도돼서 막상 빌리니 손이 잘 안 갔지만요) <화양연화> 토크 기대중입니다.
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8,90년대 홍콩 영화 뉴웨이브를 이끌었으며 특유의 영상 미학과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살아 있는 거장 왕가위의 인터뷰집이다. 왕가위가 영화평론가 존 파워스와 자신의 영화와 인생에 대해 나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양연화》에서 저는 양조위와 장만옥이 육체관계를 맺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헤어짐이 더 애절했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사실 육체관계를 맺었고 마지막에 나오는 꼬마아이가 양조위와 장만옥의 자식이라고 해석을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어떻게들 보셨나요?
저도 그 마지막 장면 보면서 "어어? 어어어?" 했습니다. 아니 안 했는데...? 어라? 하면서. 하지만 전 역시 안 했다 쪽이 훨씬 더 애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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