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ㅎㅎㅎ 이미 많은 지탄을 받았던 터라...
저는 다만 주성치 팬이 등장하지 않기만을 바라겠습니다.
[장맥주북클럽] 2.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함께 읽어요
D-29
맑은주

장맥주
천만 주성치 팬이 몰려와도 진실은 죽지 않습니다. ㅎㅎㅎ

산새
와 정말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네요. 조금(?) 늦었지만 밀린 방학 숙제를 끝내는 기분으로 짧게 적어 보았습니다 ^^;
1. 보통은 밤에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가끔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때, 걱정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아예 걱정을 잊기 위해 다른 놀이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앞두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굳이 잠을 자려고 하기보단 책을 다시 펼쳐서 공부하거나, 가까운 사람의 건강이 나 빠져 걱정이 되면 게임을 하면서 그 걱정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식으로요.
2. 인도 영화 RRR에서 나온 Let's Naacho! 라는 춤을 재밌게 봤어요. 두 주인공이 친구였다가, 적이었다가, 또 다시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인도 특유의 과장도 함께 ㅎ) 영화입니다. https://youtu.be/_pFWWmp24YM?si=QFuEN039TMyY0-_i
3.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를 읽으면서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처용이 춤을 춘 이유에 대해 스스로의 (아마도 작가님의) 생각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한 부분이 참 '친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정말정말 어려웠거든요 ㅠㅠ 이렇게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너무 좋았습니다. 더 깊은 속내가 작품 속에 있는지까지는 찾지 못했지만요.
4. 가까운 가족분들이 돌아가셨을 때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확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해서 가끔은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다만 그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여전히 너무 먹먹합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보이려고 노력한 건 아니지만, 슬프지만 일반적인 슬픔의 표현 방식이 아닌 저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제 속에 담아두는 사람인가봅니다, 저는.

장맥주
아이고, 링크해주신 영상 재미있습니다. 멜빵 춤이 인상적이네요. 그런데 저 춤을 오래 추면 한쪽 다리만 너무 혹사당하는 거 아닌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는 훈련을 10년 이상 받았어요. 쉬운 글을 쓰는 게 어려운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현학적인 표현이 뜻을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발화자의 무지함이나 혼란스러움을 감추느라 그렇게 된 거더라고요. 문학 글쓰기는 저널리즘 글쓰기와 다르지만 평론가들을 알게 되면서 무지함이나 혼란스러움, 할 말 없음을 감추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 모습을 자조하는 평론가도 있었고, ‘요사스럽다’고 표현하는 문학 기자도 있었어요. 저는 문학계 종사자들이 텍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 ‘나도 모르겠다, 나도 혼란스럽다,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솔직히 말한다면 독자들이 문학을 더 사랑하고 글을 더 열심히 읽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제가 소시오패스인가 하고 걱정합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과공감, 과몰입이 점점 심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반대 걱정도 합니다.
쩡이
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늘 우울했어요. 그런데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나마저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죠. 그럼 엄마가 더 마음 아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밝게 웃고 밝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현실은 시궁창인데 얼굴은 꽃밭이라니, 나중 친구들이 저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전부 오열했다는 ㅠㅠ 하도 밝아서 부잣집 딸인 줄 알았다고 ㅠ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어린 나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요...그 어린 내가 너무 가여워 울었어요 ㅠㅠ

장맥주
어린 시절의 쩡이님을 가엾게 여길 수 있는 어른이 되신 것 아닐까요. 어린 시절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럴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 어린 시절에도 어른스러우셨던 거 같습니다.

임쿨쿨
쩡이님!!! 잘 버티셨어요!!!!!! 우울하기보다 웃기를 선택하신 쩡이님의 과거에 박수를 보냅니다 ㅠㅠ

바나나
어이쿠...이 글을 읽다가도 눈물이 핑 했는걸요. 잘 지내오셨어요. 그시절의 쩡이님을 안아드리고 싶네요.
쩡이
감사합니다 😊

지호림
최근에 배삼식 작가의 희곡 <화전가>를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어째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극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화전놀이 장면을 뺀 걸까. 제목과 다르게 희곡에는 인물들이 화전놀이를 하는 장면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전을 부치고, 한복을 차려입고, 꽃단장하는 모습은 나오지만 정작 아침이 되어 화전놀이 하러 가는 장면만 쏙 빠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앞으로 돌아가 작품의 배경이 1950년 봄이라는 걸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인물들에게 그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 닐까 하고요. 작가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빈칸으로 둠으로써, 인간은 삶에서 어떤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을지도요. 정작 순간 속에 있을 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인물들이 보낸 시간이 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만 같은 시간으로 여겨지기에 안타까움이 극대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슬픈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보이려는 작품이 훌륭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도 마찬가지였고요.

화전가 - 배삼식 희곡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두루 얻고 있는 작가 배삼식 희곡. 한국전쟁 발발 두 달을 앞둔 1950년 4월, 경북 안동 김씨댁 여성들의 하룻밤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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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사실 배삼식 작가님도, 『화전가』도 몰랐어요. 검색을 해보니 작품의 시대 배경이 1950년 4월이라고... 배 작가님이야말로 가장 슬픈 이야기를 삼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슬픈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보이려 애쓰는 작품도 훌륭하게 느껴지고, 가장 슬픈 순간을 해부하듯 낱낱이 보여주는 작품도 저에게는 큰 감동이자 성취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제 슬픔에 대해서는 한사코 감추고 살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가리봉탁구부
슬픔을 나누는 법이 익숙하지 않거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기에 더 슬퍼 보이는 것 같아요. 요즘 '눈물의 여왕'이라는 로맨틱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요. 여주인공이 많이 힘든 상황인데 강한 척하고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참 슬퍼 보이더라고요. 좀 다른 얘기지만 여주인공이 김지원 배우인데요. 나의 해방일지에 나왔던 그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변신이 놀라워서 무척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거북별85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반갑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도 정말 좋았구요^^
슬픔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실제로 인정하는 느낌이 들어서 일까요?? 아니면 자존심이 세서 일까요??(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전 힘들면 힘들다고 하는 편이라서..^^;;(친한 분들에게만, 다른 분들에게는 피해를 주는거 같아 내색하기 힘들더라구요..ㅜㅜ) 그런데 아예 힘듦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가리봉탁구부
와, 반갑습니다! TV 자체를 잘 안 보는데 어쩌다 보니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눈물의 여왕을 홀린 듯 보고 있습니다. 저는 딱히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혼자 산책하고 이렇게 책도 읽으면서 견디는 편입니다. 부럽습니다~ 눈물의여왕은 4편까지 다 봤는데 얼른 주말이 와서 5편 보고 싶네요.

도리
4. 발산되지 않고 감춰진 건 끝내 해소될 수 없어서 더 슬픈 것 같습니다. 저도 자주 슬프지만 슬프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요. 슬픔을 나약하게 보거나 외면하도록 종용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안 그런 척하는 일이 많네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승윤님이 지금 떠오릅니다. 싱어게인1의 우승자였던 이승윤님도 눈물이 많은데, 아무래도 경쟁프로그램이기도 하니 눈물로 호감을 산다는 비난이 있는지 이후 감격할 때 최대한 참으려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에 얽힌 것들이 많아지니 감정 자체가 억압되는 것 같고요. 맘 편히 엉엉 울어도 괜찮은 공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도리
저도 책 잘 받았습니다. 실물이 훨씬 예뻐요~


borumis
이런 헌책방 아저씨 만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냥 슬픔을 드러내는 것은 그래도 당당하고 슬픔을 호소함으로써 해소라도 될 것 같은데.. 묵묵히 슬픔을 감추는 건 슬픔을 계속 키워두고 곪게 하는 거죠.. 게다가 그만큼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연이 더해져서 슬프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테니..
이전에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에서 아들을 위해 계속 죽을 때까지 필사적으로 코믹한 연기를 하고 밝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 슬픈 게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임쿨쿨
'모른다'와 '미워한다'는 말은 서로 다른 의미인데,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p.17, 정진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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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쿨쿨
그간 sm, yg, hybe, jyp 춤 스타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는데 술에 절어 처용과 역신의 춤사위는 너무 슬프자나오ㅠㅠ

연해
참여 인원이 많아 과연 이 공간에 남겨주신 글들을 제대로 다 읽을 수 있을까 고민만 며칠째 했는데요. 장작가님의 북클럽 1기도 그렇게 놓쳐버린 게 아쉬워서 이번에는 뒤늦게 합류합니다.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모임에서 정진영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됐고, 이번 모임이 '모집 중'일 때부터 관심은 많이 있었답니다. 책은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3.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를 읽으면서 먹먹한 장면이 많았어요. 잘잘못을 가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른다'와 '미워한다'는 다른 의미라고 하셨으니까요. 7년이나 사귀었지만 다른 남자를 만난 (여) 박지수의 행동에 배신감이 들었다가, 그걸 또 받아들이는 (남) 박지수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박지수와 박지수 사이에 남편이 끼어든 건지, 박지수와 남편 사이에 박지수가 끼어든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처용이 역신을 바라보며 자신이 처용인지 역신인지 잘 모르겠다고 너털웃음을 짓고, 역신도 처용을 바라보며 자신이 역신인지 처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낄낄대는 아이러니라니.
근데 주변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보는 것 같아요.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혹은 헤어질 빌미를 만들어 일부러 헤어지고),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조건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랄까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인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은 참 다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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