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와 '나'중에 누구에 더 가까운지 어제 하루 동안 열심히 고민을 해봤는데요. 타고난 기질은 범재인데, 이제는 어느 정도 사회화가 돼서 '나'와 범재 중간 어디쯤에서 휘청휘청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령이 없다는 말,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왔어요.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를 다들 모른 척하는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이거 나만 이상해? 다들 느끼지 못하는 건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는데, 이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게 좋은 거다는 낙관을 말할 때 쓰는 문장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처럼요.
학창 시절에도 저의 이런 진지하고 곧은 면이 독이 될 때가 많았어요. 고고한 척 한다는 말도 듣고, 재수 없다는 말도 듣고,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어요. 하필 또 체구도 작고 왜소해서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의 먹잇감이 될 때도 많았죠. 아무 이유도 없이 재미로 저를 화장실에 가두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근데 직장 생활은 저 같은 사람이 감당하기에 난이도가 훨씬 더 높더라고요. 엄마는 저를 볼 때마다 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너무 곧아서, 부러질 것 같다, 꺾일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실제로 전 직장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속한 사무국에서 제 선임이 흔히 말하는 권력자였고, 다들 그 사람의 입맛에 맞는 말만 했죠. 패거리처럼 늘 무리 지어 다니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따돌리거나 욕하거나 일로 괴롭히면서요. 저는 학교를 졸업하면 이런 유치한 일들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직장에서도 이런 무리가 존재한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그래서 그 무리에 끼지 않았고, 누군가를 욕하는 일에 동조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입에 바른 소리나 비위를 맞추는 말을 참 못하는 편, 아니 안 하는 편입니다. 인간적인 신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상대가 내 위라고 해서 무조건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아양을 떠는 행동은 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할 줄도 모르거든요. 그런데 선임은 그런 저의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겼죠.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비위와 장단을 맞추지 않는 저의 모습이 거슬렸던지 어느 순간부터 지독할 정도로 괴롭혔어요. 누군가 저를 작정하고 미워하기 시작하면 뭐든 다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필 그 위치가 직속 상사라면 더 편하고 쉽게 할 수 있더라고요.
[장맥주북클럽] 2.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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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연해
그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일로 복수하듯 풀어내기 시작했어요. 어떤 결과물을 가져와도 계속 다시 해오라고 했죠. 알겠다고 대답하면 대답만 하지 마라, 죄송하다 하면 죄송하다는 말 좀 하지 마라, 그래서 제 생각대로 해오면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물어봐라, 물어보면 스스로 해봐라, 겨우 일이 해결돼서 안도의 웃음을 지으면 지금 웃음이 나오냐... 등등 이쯤 되면 그분은 그냥 제 존재 자체가 싫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재무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감사시즌이 되어 한껏 예민해진 그분이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저에게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도 했죠. 그곳을 그만두지 않는 한 그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어요. 실제로 그분 때문에 제 전임자들도 그만둔 케이스가 많았고요.
결국 저는 그곳을 그만뒀어요. 그 과정에서 지리멸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붙잡았지만 붙잡히고 싶지 않았고, 뒤늦게 사과하는 선임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어요(악어의 눈물 같았습니다). 그렇게 당차게 그만뒀죠.
여기서 잘 끝났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그 뒤부터 정말 힘들었답니다. 어쩌면 범재의 모습과 같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불같았죠. 다시 이직을 준비하는 현실은 냉혹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 많이 부딪혔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독립했고 지금껏 혼자 살고 있지요. 그게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인데 여전히 생생합니다. 지금은 다시 좋은 분들과 즐겁게(가끔은 치열하게) 일하고 있지만, 전 직장에서의 저와 지금의 저는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직장 안에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밥 한 끼조차 같이 하지 않습니다. 제 일만 군더더기 없이 하는 편이에요. 사적으로 손을 내밀어도 모두 거절하고, 업무 외적으로는 절대 연락을 받지 않는 편이죠. 강해져야 건드리지 않는구나라는 걸, 전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뼈저리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를 악랄하게 괴롭히던 선임은 지금은 그곳에서 쫓겨나 다른 산하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재작년인가, 전 직장 동료들을 통해 전해 들었어요. 심지어 제가 그만두고 저의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은 2주 만에 그곳을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씁쓸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그녀의 기질이 참 한결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해
그래서 제가 '나'의 처지에 있다면 범재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범재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건, 범재로 인해 '나'도 함께 소멸되고 있다는 거예요. 단지 형이라는 이유로 그걸 다 받아줄 수는 없으니까요(현실적으로). 그렇다고 '나'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 동의한다? 뭐 그렇게도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대혁의 행동에 숙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거든요. 대혁이 선처한다고 한들 그때부터 또 지옥이 시작될 것만 같습니다. 이미 명예훼손으로 범재를 고소한 것부터 자신이 어릴 때 했던 못된 짓은 생각하지 않고, 역으로 공격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은 나를 좀 이해해주면 안 돼? 내가 잘못해서 내 인생이 이 꼬락서니가 된 건 아니잖아!"라고 절규하던 범재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 속이 터집니다. 범재가 잘못한 거라면 어릴 때 곤란한 처지에 놓인 대혁을 도와준 것 밖에 없는데, 왜 세상은!
이런 친구라면 어떻게 믿고, 어떻게 손을 뻗을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의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 선의의 손길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 같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친구를 도와주다가 되려 왕따가 되는 이야기, 꼭 영화나 드라마, 책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현실에서도 존재합니다.
제 경우도 앞서 말한 악랄했던 선임이 저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비슷했거든요. 제가 그곳에 입사하기 전, 선임은 제 또래인 직원을 왕따시키며 한참 괴롭히고 있었는데, 전후사정을 모르던 제가 그곳에 입사하면서 눈치없이(?) 그 친구와 잘 지낸 게 화근이었나봅니다. 그 괴롭힘이 고스란히 저에게 와버린 거죠.

여름섬
힘든 시간 잘 견뎌서 대견하다고 토닥토닥 해드리고싶네요
휠 줄도 알아야하는데 곧아서 부러질 것 같다는 그말에 해당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네요 연해님 처럼 체구도 작고 왜소해서 속상한 일이 많았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지금은 꽤 단단한 아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더라구요

임쿨쿨
연해님 정말정말 고생하셨네요ㅜㅜ.... 입사까지 또 얼마나 힘드셨을지 ㅠㅠ
괴롭히는 이유 사람한테 왜 괴롭히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유도 없어요. 그게 정말 화나는 지점이죠. 저도 이번 주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연해님과 살짝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누가봐도 일을 그르치는 사람의 잘못인데 제가 그걸 짚었다는 이유로 저는 무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역으로 공격 당했죠. 암암리에 제가 잘못 한 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이슈를? 만들면 안 되는 게?(맡은 일을 안 하고 자꾸 실수한 게 이슈일까요,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게 이슈일까요 ㅎ) 이 회사 룰이라 팀장님도 저를 감싸주지 않으시고요, 그저 일을 잘 해결해보고자 했던 일들인데 팀원들한테도 미안해져서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 저는 퇴사각을 재고 있습니다. 저도 연해님처럼 이직하는 데까지 정말 긴 시간이 걸렸어서 이번에는 입사를 하고 퇴사할 예정입니다. ㅠㅠㅠㅠㅠㅠ

연해
세상에,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오래된 과거인데 @임쿨쿨 님은 현재 진행 중이네요.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를 유야무야 넘어가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그걸 짚었다는 이유로 무례한 사람이 되었다니 아이러니합니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사회생활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에요. 저는 한때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지독하게 싫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는 제가 조직을 벗어나 홀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임쿨쿨 님도 직장생활 유지하시면서 이직을 준비하시는 게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다니면서 구하시는 게 심적으로 더 안정되실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느려터진달팽이
진짜 불행한 사람이네요. 그 상사라는 작자는 ㅋ 얼마나 내면이 지옥 같으면 타인에게 그렇게 행동할까 싶습니다. 세상엔 좋고 곱고 귀하고 아름답고 의미있고 감동적인 일들도 많은데 굳이 누군가를 괴롭혀야 살만한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인지 그 곁의 사람들은 얼마나 또 불행할까도 싶습니다. 잘 절연하셨네요^^

연해
깊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책방은 순조롭게 잘 마무리하셨을까요). 저도 제가 좋은 마음이면 상대도 그 마음을 알아봐 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던 때였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어요. 남을 욕하거나 괴롭히면서 삶의 재미(?)를 느끼는 악마같은 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고요. 심지어 상대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차라리 경쟁구도였다면 (백 번 양보해서)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유 없는 괴롭힘이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꿀돼지
저는 기자 시절 갑질하던 직속 선배에게 다시는 안 볼 생각으로 지랄을 떨고 엎었던 적이 있는데, 나중에 오히려 제 눈치를 보고 잘해주려 하더라고요. 후배들에게 정말 악명 높은 선배였는데,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저는 필요할 때 참지 않고 화를 잘 내는 편입니다. 저는 일할 땐 쌍놈이 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연해
그렇군요. 작가님.
저도 지랄(?)을 떨었어야 했는데, 제가 차마 그것까지는...(ㅋ)
일할 땐 쌍놈(?)이 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씀하 시니 저는 그럼 쌍ㄴ... (흠흠)
몇 번의 쓴 경험으로 나름 맷집을 키워가고 있기는 한데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직장 생활하는 게 현명한 건지 계속 휘청거리는 느낌이에요.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모임에서 줌으로 함께 마셨던 '화요'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럴 때 마시는 게 술인가! 싶기도 합니다(허허허).

거북별85
@연해님 글을 읽으니 남 일 같지가 않네요.
저도 주변에서 고고한 척 해서 좀 재수없어 보인다라는 말을 좀 들은 적도 있고 ㅜㅜ, 그냥 넘어가면 될 걸 왜 이렇게 예민하냐, 이상하다 등등 들은 적이 있지요 그래서 왠만하면 듣기만 하는 편인데, 정말 말 안되는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듣고만 있어도 다음날이면 극심한 몸살이 온다는 신기한 경험이ㅜㅜ (정말 신기한 건 제 주변에서 저만 그렇다는게 ^^;;).... 외양도 무서워 보이기보다 '도맛집'느낌(도를 믿으십니까 분들이 아주 선호하시는)이라 좀 그 분들께 만만해 보이기도^^
전 승진을 해야 하는 거대조직에 속해 일해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본능적으로 피한게 아닌가 싶네요...
그 악랄한 선임은 또 어디선가 그렇게 지내겠지만 매번 본인의 정체를 들켜 곤란하실거 같습니다(문제는 그 분의 정체가 들어나기 전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수 있다는 점이죠)

프렐류드
범재와 같은 일관성으로는 사회생활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범재에게 할만큼 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떠나는 나보다도 더 빨리 저는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가장으로 상당기간 나는 동생을 돌보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게를 접게된 것도 범재가 원인이기도 한데, 범재탓을 안하는 주인공 나가 저는 훨씬 더 이해되는건 나이가 들어서겠죠?
맑은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장의 일관성을 지켰던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요. 자기합리화가 체득되어 있어 일상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나'라면 범재에게서 떠나지도 못할 거 같아요. 저는 범재에게 해주고 싶은 말보다 듣고 싶은 말이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형,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어.

지호림
「네버 엔딩 스토리」와 정진영 작가님께서 풀어주신 뒷이야기를 보면서 최근에 재밌게 본 서바이벌 예능 <사상검증구역:더 커뮤니티>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참가자들이 토론 동아리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재판에서 각각의 입장을 맡아 변호/기소하는 게임이었는데요, 변호사의 ‘비밀 유지 의무’가 언제나 윤리적인가에 관해 찬반을 논하는 주제가 나왔습니다.
변호를 맡은 한 참가자는 이 비밀 유지 의무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는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는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유려한 말솜씨에 저 역시 설득되었습니다.(참가자 본인이 현직 변호사라 유리한 주제이긴 했지만요) 법이 왜 그렇게까지 원리•원칙을 지키는지 이해도 되었고요. 어쩌면 법이라는 건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도출한 합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팩트 위주의 설명이 재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사건에 휘말려 고통받고 있는 범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법이 일정부분 안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참 냉정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감정적, 윤리적인 부분에서요. 참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범재에게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꿀돼지
저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게 인격을 가진 신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저는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이 개미를 바라보는 시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데, 권력이 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구조도 큰 틀에선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법은 국민 개개인의 사연에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치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죠. 그 때문에 정당한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 사적제재에 민감한 거고요. 학부 시절에 법을 전공하면서 느낀 건데 '인간적'이라는 단어와 '법'이라는 단어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연해
"법은 국민 개개인의 사연에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치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죠."라는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적'이라는 단어와 '법'이라는 단어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너무 감성적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적용하는 게 가장 좋은 걸까 생각이 깊어집니다.
지난달에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남편의 갑작스러운 추락사에 유력한 용의자로 아내가 지명되면서 법정공방을 이어가는 장면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자살이 아닌 타살(아내가 범인)로 이미 확신하고 접근하면 그렇지 않다(자살이다)는 걸 아무리 증명해도 범인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거든요. 결국 아들의 결정적인 증언에 무죄로 풀려나긴 했지만요(쓰고 보니 너무 스포를... 죄송합니다). 진실을 찾는다는 게, 그리고 개개인의 서사를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그만큼 힘을 쏟는다는 게 큰 틀에서 보면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라고... 말했다)

추락의 해부산드라와 사뮤엘은 시각 장애가 있는 아들 다니엘과 함께 프랑스 알프스의 외딴 산장에서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뮤엘의 죽음 이후,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혹은 범죄에 연루된 것인지를 밝히는 조사는 점차 미궁으로 빠진다.
책장 바로가기

장맥주
아내가 즐겨 보는 예능이에요. 그래서 얘기 종종 듣습니다. 저는 관찰 예능도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관심이 없어서 듣는 척만 하지만... ^^
범재한테는 변호사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제가 범재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서 그런 거 같네요.
게으른독서쟁이
저는 성격이 좀 일관된 편이고 마음에 없는 말 못 하고 거짓말 못하고 상사에게든 학교 선생님에게든 교수님에게든 해야한다고 생각한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입니다. 제 가치관과 다른 사람들과 해야하는 일은 하지만 따로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고 편먹고 무리짓고 이런거 딱 질색이라 대체로 단체로 모이기보단 개개인으로 친분을 갖는 편이고요. 그래서 욕도 먹고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요... 이런 면은 '범재'를 닮은 편인 것 같네요.
이런 제 성격을 제가 잘 알기에 부딪힐 것 같은 상황을 잘 안 만들려고 사람들의 모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피하는 편이 되는 거죠. 나 하나로 모임이나 단체의 분위기가 흐려질까봐 아예 발을 담그질 않는 편이라 이런 면은 '나'와 더 비슷한 것 같고요.
제가 만약 '나'와 같은 상황에서 진짜 도망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에휴.... 정말 너무 도망치고 싶을 것 같아요. 형아도 너무 고생했잖아요. ㅜㅡㅜ
범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맑은주님 말씀처럼 범재가 '나'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마음을 좀 가지고 좀 표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하는 생각과 한편으론 그랬다면 '나'가 저렇게 떠나지는 못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어렵다 어려워...

선경서재
10. 슬프게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 요령이 없어 비참한 처지'에 몰리는 일이 발생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네요. 진심을 가지고, 더 나은 사람 다운 선택을 하며, 일관성을 지키고자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것이 늘 지는 싸움이라고 합니다. 범재에게 이제 그만 그들과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너의 인생을 살라고 하고 싶은데... 범재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아플듯 합니다. 이해하지 받지 못한 사람의 섣부르게 공감, 위로, 충고도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저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함께 살아가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요...

연해
"진심을 가지고, 더 나은 사람 다운 선택을 하며, 일관성을 지키고자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라는 문장에 너무 공감하게 되네요. 저도 옛날에는 저만 정직하고 진심이면 세상(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거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닌가 싶어 서글퍼집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도(나와 범재처럼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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