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북클럽] 2.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함께 읽어요

D-29
작가님, <시간을 되돌리면> 의 대화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한 가지 더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이 작품 속 범우와 소연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혹시 작가님의 경험담도 들어있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니 AI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순정만화 같은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에피소드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소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경험담은 없지만, 스무 살 때 첫사랑에게서 느꼈던 감정이 소설 속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당시 감정을 담아서 만든 곡이 제가 2014년에 앨범을 냈을 때 첫 번째 트랙에 담았던 '꼬마를 기다리며'라는 곡입니다. 링크를 공유합니다. 제가 2000년 스무 살 때 만들어서 첫사랑에게 선물해줬던 곡입니다. 노을이 내린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이 곡을 들려줬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https://youtu.be/LrFCpasJX6Q?si=SZ8KpUkXGFnLlXxB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제가 나중에 어떤 연애소설을 쓰던 간에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티브를 떠올리긴 힘들 것 같아요. 위대한 작품입니다.
세상에, 작가님! 더 찾아보니 <오래된 소품>이라는 음악앨범도 내셨군요. '육지거북'이라는 이름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지난번에 나눈 거북이 이야기 새록새록). 스무 살 때 만들어서 첫사랑에게 선물해 주셨다니, 너무 낭만적입니다. 그 감정이 소설 속 감정과 비슷했다는 점도요. 저는 표제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에서 작가님이 10년 만난 첫사랑 이야기를 나눠주셨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좋지 않은 기억일 거라 생각했어요. 사법시험 합격과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제가 다 분개(?)했으니까요(허허허). 그래도 그때 겪은 이별이 여러 형태로 소설에 변주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소설도 말랑말랑한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네요. 앨범에 수록된 곡들 다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눈물'이라는 곡이 가장 제 취향이었어요. 이별을 암시하는 장면에 어울릴 것 같은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죠(여러 번 들었습니다). 꼭 한 편의 청춘 드라마 OST 같아요.
'눈물(流星雨)'은 지난 2003년에 겨울에 제가 별똥별을 보고 끼적거린 '유성우(流星雨)'라는 시를 흉내 낸 글을 바탕으로 만든 곡입니다. 살이 에일만큼 추웠던 어느 겨울날, 시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느꼈던 황홀감과 왠지 모를 슬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5월에 나오는 새 장편소설에도 그때 봤던 유성우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유성우(流星雨) 맑고 시린 겨울 하늘 아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유성우 지구의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보인다는 시리우스조차도 수많은 유성의 향연에 가려져 그 빛을 잃는다. 유성은 죽은 자의 영혼이 가기 전에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는 빛이라고 성냥팔이 소녀는 내게 이야기했지 생의 단 한 순간도 치열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초라한 영혼들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함으로 검은 하늘을 빛내고 떠난다 그러나 그 찬란한 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지고 그저 빛 그림자만 남긴 채 지구를 떠난다 어느 것은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한채 차가운 바람에 코 끝은 시렸고 회한에 흐르는 눈물은 얼어버렸다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고 어느샌가 나는 대기권을 통과하며 불타고 있었다
오, 저는 이 시를 읽고 영감을 받으셔서 '눈물'이라는 곡을 만드셨다는 말씀인 줄 알고 시인을 검색했는데, 안 나오...?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 생의 단 한 순간도 치열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초라한 영혼들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함으로 검은 하늘을 빛내고 떠난다 - 라는 문장들이 마음에 콕 들어옵니다. 살짝 아리기도 하네요. '눈물'의 탄생 비화(?)까지 상세하게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이 음악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과 이 공간에서 계속 소통을 이어가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어쩜 이렇게 하나하나 창작물에 대한 서사가 깊으신지 놀랍습니다. 진득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정성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아요.
저는 책이 나오면 드디어 이 이야기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하는 쪽이에요. 이렇게 적으니까 너무 매정하게 보이네요. ㅎㅎㅎ 소설가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자기가 만든 인물을 사랑하거나 적어도 딱하게라도 여기는 작가와 연민을 거의 느끼지 않는 작가. 저는 이게 문체나 플롯의 특성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13.<시간을 되돌리면> 첨에 읽을 때는 SF 스릴러물인 줄 알았습니다. 287번째 삭제와 로딩이라니!! 무섭더라구요.. 나의 신체와 상관없이 정신이 살아있는 건 너무 무섭지 않을까요... 전 이번 작품을 읽으며 사후 뇌기증 동의나 유족이 없다는게 이렇게 무서운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나 섬뜩했습니다.(작가님은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쓰셨는데 첫 내용이 충격적이라...^^;;) 그런데 뒤로 갈수록 저릿하니 안타깝더라구요. 만나기에 당당하지 못한 생각이 들어 잠깐 머뭇거린게 이런 결과로 이끌 수가 있나? 정작가님은 비극적 요소를 참 잘 끌어들이시는 거 같아요. 현실에서가 힘들다면 기술 안에서라도 범우의 간절함이 풀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에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에서 나왔던 기술도 마인드 업로딩일까요?? 작가님께서 이런 기술적 소재를 소설에서 자주 다루시는 매력적인 점이 있을까요?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마인드 업로딩은 아니고 데이터 마이닝과 딥러닝을 활용한 기술입니다. 모두 상용화된 지 꽤 된 기술이고요. 소설 속 기술은 이미 해외에선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념 자체는 이미 나온 지 몇십 년이나 된 오래된 기술입니다. 그걸 구현하기가 기술적으로 어려웠죠. 컴퓨터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속도가 빨라지고, 저장장치의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정보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점은행 제도를 통해 컴퓨터공학 학위를 따로 취득하기도 했고요. 다만 저는 현재 구현 가능하거나 근미래에 구현 가능한 기술에 관심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소설로 '현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 제가 너무 기계치고 과학에 문외한이라..ㅜㅜ 독자들이 소설로 '현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감사하네요.. 저처럼 아날로그 감성이신 분들이 또 책은 읽기도 하거든요..^^ 작가님들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다른 세상을 계속 보여주려면 많이 공부하셔야겠네요. 흠흠... 어렵군요...
사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반전을 느낀 작품이긴 했어요. 결말이 그렇게 따뜻할 줄 몰랐거든요. 뭐랄까…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받은 느낌은 마치 불닭볶음면 먹다가 순라면으로 마무리한 느낌이랄까요? 여전히 생각거리는 남겨주시누이야기여서 다 읽고나서 만약에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며칠은 했었는데, 마침 장맥주님이 질문을 던져주셨네요. 이 글을 쓰신 작가님은 14 번 질문에 어떤 답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범우가 눈을 뜨고 원장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영화 속 한장면처럼 떠올랐어요. (287번의 연구과정까지 그려내면 sf 영화 뚝딱인데요!) 사후뇌기증에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인공지능으로 다시 태어날수도 있다는게 소름이 끼쳤네요....
오늘 반 정도 읽었는데 인문계는 어려워요 ㅋㅋㅋㅋㅋ 공대 머리가 부럽습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저만 느낀 게 아니었군요(다행이다). 저도 사실 초반에는 살짝 어렵다고 느꼈어요. SF인가, 로맨스인가 갸우뚱하다가 뒤로 갈수록 감수성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범우 씨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이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범우가 278번째까지 새로 깨어나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늘 같은 것처럼 인간은 감정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감정, 미안한 감정, 후회하는 감정, 돌이키고 싶은 감정. 그런 감정들이 또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13. 전세사기에서 갑자기 첫사랑이라니요! 그동안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너무 감정이입하고 있었는데, 소설이구나 하고 일깨워주시려고 중간에 넣으셨나 봅니다. ^^ 범우가 시간을 되돌려 소연이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나는 기증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배양돼 실험체로 쓰이는 헬라 세포와 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사라지고 싶어도 사라질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p121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정진영 지음
범우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읽으니 그 사고 당시 블랙박스 장면이 자동으로 눈앞에 재생이 되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평소 소설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 헬라셀을 만나서 참 반가웠네요. ㅎㅎㅎ 헬라셀라인을 소설에서 만날 줄이야...ㅎㅎ 전개가 뭐랄까... sf 기술의 윤리성을 다루려나 했더니 학창시절 첫사랑으로 가서 풋풋하니 이쁘다 했는데 돌연 소연이의 사고까지... 워매.... 전환이 아주....급속도인데 소연이 사고 장면에서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덜컥했습니다요. 범우도 반복되는 실험대상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가장 원하던 장면으로 돌아가 소연을 본 건 좋은 결말인 것 같긴 한데... 내 맴은 슬프고 그렇네요....
287번째. 내가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인공지능으로 부활한 횟수였다. 마음속에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일었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시간을 되돌리면> p. 157, 정진영 지음
13.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Al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의 큰 관심에 심드렁한 편인데요. 닥쳐 있는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 '인공지능', '과학' 이런 이야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데에 거북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그런 저임에도 소설에 이입하며 흥미롭게 읽었어요. 디몬 작가님의 <에리타>라는 책도 떠오르더라고요. 사람과 기계, 정신과 육체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래서 사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인데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 언급해봅니다 ㅎㅎ. 다시 돌아와서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제가 실감하는 현실이 어우러지고, 순정이 가미된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마무리까지 허무한 점 없이 좋았는데요.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엔딩에서 경선이 바꾼 장치가 소연의 장애가 사라진 듯, 소연이 범우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로 이해했는데요. (+벚꽃이 피는 것도 있었죠) 소연의 장애가 사라지면서 더 벅찬 마음이 들고, 행복해지는 마무리가 걸리더라고요. 최근에 아이유님 <Love wins all> 뮤비에서 장애인분들이 장애적 요소가 사라짐으로서 행복해지는 연출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요. 장애인분들은 이미 장애와 함께여서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인데, 그게 사라져야 행복해짐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어요. 장애와 함께해서는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걸 뜻하기도 할테니까요. 저는 아이유님을 무척 좋아하는 유애나이고요. 사실 아무렇지 않게 뮤비 내용을 받아드렸는데요. 그런 비판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결국 비장애인인 제가 가진 시선이 반영된 거라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소설의 마무리도 장애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고 뻐근하게 벅찬 행복으로 마무리될 순 없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에리타 1~2 세트 - 전2권d몬 작가의 ‘사람 3부작’ 그 두 번째 이야기. 멸망 직전인 지구에 홀로 남은 인류 ‘에리타’와 그를 지키는 인공지능 ‘가온’, 정신은 인간이나 육신은 프로그래밍된 기계인 ‘김가온’을 통해 사람과 기계,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 부분은 얕게 고민했던 부분인데, 저는 소연이 진심으로 정확하게 범우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분은 일어나 자유롭게 걷거나 뛰고 싶어 하고, 보지 못하는 분은 보고 싶어하니까요. 장애를 정체성이라고 여기며 이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고 싶어하는 장애인이 과연 존재할까 싶습니다. 지금도 의학과 공학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저는 소연이 정확하게 범우의 목소리를 듣고 범우의 이름을 말하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소연이라도 그랬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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