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2부 같이 읽어요

D-29
2024년에 읽는 보르헤스의 두 번째 책입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 『픽션들』은 총 17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고, 각각 8개와 9개의 단편이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총 9편으로 구성된 2부 〈기교들〉을 29일 간 읽겠습니다. 물리적인 볼륨은 적지만 생각해볼 거리는 더 많기 때문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대략 3일에 한 편 정도 읽는 일정입니다. 2부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칼의 형상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죽음과 나침반 ⏤비밀의 기적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끝 ⏤불사조 교파 ⏤남부 한편, 『픽션들』과 『알레프』는 민음사 세계전집시리즈로 출간된 송병선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제게 Andrew Hurley의 영역본도 있고, 스페인어 원문도 있으니 필요할 때는 적절히 소개하겠습니다. 같이 비교해 보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 안 읽고 얘기하셔도 좋고 아는 척하셔도 좋고 생판 딴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24/3/1에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일정과 규칙] 2부 ⟨기교들⟩에 수록된 9개의 단편을 3일에 한 편씩 읽겠습니다. 1부 내용은 이전 모임을 참고해주세요.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늘 그렇듯이 일정에 구애하지 않고 대화 나눴으면 합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 (3/1-3/3) ⏤칼의 형상 (3/4-3/6)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3/7-3/9) ⏤죽음과 나침반 (3/10-3/12) ※3/13은 쉬세요. ⏤비밀의 기적 (3/14-3/16)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3/17-3/19) ⏤끝 (3/20-3/22) ※3/23은 쉬세요. ⏤불사조 교파 (3/24-3/26) ⏤남부 (3/27-3/29) 처음 오신 분들도 있어서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을 정하고자 합니다. 1. 단편의 시작과 끝에 제가 간단히 코멘트를 달고 [화제]를 지정해놓겠습니다. 해당 단편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할 때는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참여하는 사람도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각 단편의 대화 타래를 보고 흐름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2. 인용을 할 때는 용구를 공유해주실 때는 [책 꽂기]나 [문장 수집] 기능을 활용해주세요. 일반적인 대화와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기억의 천재 푸네스~] 2부 첫 번째 단편입니다. 황병하 선생님의 각주 2번은 눈여겨볼만합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깨우다/깨다'의 뜻을 가진 동사(despetar/despertarse) 대신에 '기억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recordar/recordarse)를 쓰면서도 그것을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국어에서는 일견 자연스러운 이 대치 과정이 다른 언어에서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보르헤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탄생시킵니다. 푸네스는 우연한 낙마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었고 어쩐 일인지 그 대가로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깨어있는 동안에는 기억할 일이 늘어갑니다. 이 말은 뒤집어도 참입니다. 기억하는 동안에 인간은 깨어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완벽한 기억력을 지닌 푸네스는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불면에 대한 은유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유념해야 할 점은 '나'의 위치입니다.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레네오 푸네스의 이야기를 하는 '나'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심지어 '나'가 이 회고적인 단편을 쓰는 시점은 푸네스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무려 반세기나 흐른 뒤입니다. '나'는 자신의 불완전한 기억력 때문에 간접화법으로 서술하는 것을 두고, 독자의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즉, 독자는 완벽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푸네스의 이야기를 불완전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나'의 진술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합니다. 나아가 '나'는 이레네오 푸네스를 만났던 그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들려주는 얘기가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들에게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볼 것을 당부합니다. 1부에서도 말했지만 보르헤스는 불완전한 기억력에서부터 상상력을 출발시키기를 요구합니다.
드디어 나는 내 이야기의 가장 난해한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미 눈치를 챘다면 좋겠지만) 반세기 전에 있었던 대화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나는 전혀 원상태로 복원이 불가능한 그 대화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레네오가 말했던 많은 것들을 왜곡함이 없이 요약을 하고자 한다. 물론 간접화법은 거리감이 있을 뿐더러 취약하다. 나는 그렇게 하면 내 이야기의 효과가 사장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자들은 그날 밤 나를 압도했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순간들을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픽션들 182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우리는 한눈에 탁자 위에 있는 세 개의 컵을 감지하지만, 푸네스는 포도 덩굴에 달린 모든 포도 알과 포도 줄기, 그리고 덩굴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1882년 4월 30일 동틀 무렵 남쪽 하늘의 구름 모양을 알고 있었으며, 기억 속의 구름과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어느 책의 가죽 장정 줄무늬, 혹은 케브라초 전투 전야의 네그로 강에서 어떤 노가 일으킨 물보라를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런 기억들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각각의 시각적 이미지는 근육 감각이나 체온 감각 등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꿈이나 선잠을 자면서 본 모든 것들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에게는 일반적인 사고, 즉 플라톤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실질적으로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개’라는 속(屬)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또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손을 보고 매번 놀라기도 했다.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했다.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그는 한평생 내내 황혼에서 여명까지 그 꽃을 바라보았지만,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그는 그런 사실을 내게 말해 주었고, 그 당시에나 그 후에나 난 그것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촬영 기사나 축음기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아무도 푸네스와 같은 실험을 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 같으며 믿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죽지 않을 것이며, 조만간 모든 인간들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픽션들 p.14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기억의 천재 푸네스] 이 단편의 스페인어 제목은 ⟨FUNES EL MEMORIOSO⟩이고, 영역본 제목은 ⟨FUNES THE MEMORIOUS⟩입니다. 개인적으로 '천재'라는 늬앙스까지는 과해 보입니다만, 비상한 기억력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푸네스는 비상한 기억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을 정도여서 저주라고 불러야 할 정도입니다. 흔히 우리는 '기억'에 '힘 력(力)' 자를 붙여서 '기억력'이라고 부릅니다. 기억은 어떤 능력에 가깝고, 기억력이라고 할 때 그 능력은 일종의 '암기력'에 더 가깝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기억과 암기는 다를 뿐 아니라 기억 작용의 핵심에는 망각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망각으로써 개별적인 경험은 테두리가 깎여나간 강가의 조약돌처럼 일반화되고 개념화되면서 비로소 유의미해집니다. 망각은 변화하는 환경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특정 장소에서 쥐에게 약한 전기충격을 주면 쥐는 다시 그 장소에 들어갔을 때 공포를 느낍니다. 처음에는 공포 기억이 생겼던 환경에서만 공포 반응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환경에서도 공포 반응을 느끼는 일반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망각하지 못하도록 조작된 쥐는 일반화된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고, 종내에는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고 합니다. 푸네스의 완벽한 기억력이 역설적이게도 결함투성이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모든 경험을 기억하지만 그것들을 유의미하게 분류하지는 못하는 거대한 용량의 데이터 저장 장치와도 같습니다. 각각의 정보를 인간이 일반화해서 범주화하기 위해서는 그 유사성을 인식해야 하지만 푸네스에게는 "모든 숲의 모든 나무들의 모든 나뭇잎"이 다르게 보였던 탓입니다. 나중에 푸네스는 "독창적인 숫자 체계"를 고안해내는데요, 숫자 하나하나를 기호로 보고 자신의 경험을 각각에 대응시키는 식입니다. 그런데 숫자와 대응되는 경험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습니다. 푸네스가 왜 하필 숫자를 택했는지는 쉽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숫자는 무한하기 때문에 각각에 대응되는 경험이 무한해도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숫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수 체계를 지닙니다. 따라서 푸네스에게 시간은 수 체계에 따라 순서대로 적층되는 시계열을 따르지 않고, 각각이 따로 떨어져 있는 1초 이후의 새로운 1초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들지 못했을 테고요. 이런 푸네스는 은유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은유는 단순히 시적인 표현법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은유는 유사성과 차이성의 긴장을 품은 사고의 추상화를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유에서는 'A는 B다'라고 말하면서 두 관념 사이를 단번에 잇습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사성입니다. 즉, 범주화에 필요한 미세한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한 철학자도 말한 바 있습니다. '먼지 하나도 똑같지 않기 때문에 논리학의 동일성을 받아들이려면 대강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정신의 은유 작용을 필요한 정도에 따라서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독특한 능력입니다. 지나치게 세세한 디테일에 주목하게 되면 은유 작용은 일어나지 않을텐데, 아마 세상 모든 사물에 라벨을 붙이다 죽게 될 지도 모릅니다. 본문에서 존 로크가 17세기에 모든 사물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합니다. 머신러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추상화하는 능력을 통해서 어떻게 사물을 범주화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8년, AI가 블루베리머핀과 치와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짤이 돈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서 AI가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합니다만, 앞선 사례를 단순히 웃어넘기지 말고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리숙한 사람이라도 치와와와 블루베리머핀을 즉시 구분할 줄 압니다.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머신러닝 개발자들은 머핀과 치와와를 단번에 구분하는 인간의 이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을,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연산 과정으로 기계에게 학습시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여담으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푸네스의 정반대 사례가 등장하니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개정판.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경증 환자부터 현실과 완전히 격리될 정도로 중증의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까지 올리버 색스가 엄밀히 관찰하고 따뜻하게 써낸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의 독특한 임상 기록이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박상순의 시는 우리 시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는 매우 전위적이고 따라서 낯선 느낌이 드는 시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당대의 미적 인식을 부정하는 자기 파괴성을 보여준다. ─이승훈
그러나 P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떤 물건 앞에서도 그것을 친숙한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 시각적인 면에서 볼 때, 그는 생기가 없는 추상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현실의 시각 세계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현실의 시각적 자아가 없었다. 그는 사물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다. 휴링스 잭슨은 언어상실증이나 좌반구 장애 환자들은 ‘추상적’이거나 ‘명제적’인 사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환자들을 개에 비유한다(사실은 개를 언어상실증 환자에 비유한다). 그러나 P선생의 뇌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기능했다. 시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면에서 그는 컴퓨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중요한 특징이나 도식적 연관관계를 토대로 컴퓨터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해낸다는 것이었다. 얼굴의 부분을 그린 그림 세트를 이용해 범인의 몽타주를 만들 때처럼, 그러한 도식은 현실과 전혀 대응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만 따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비교하며 다시 보니 내용을 곱씹게 되네요. 부분을 정확하게 보지만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조합하지 못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정말 그렇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어렴풋이 올리버 색스 책에서 관련된 내용 본것같다고 생각했는데 콕 집어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추상의 세계에서만 사는 것, 구체의 세계에서만 사는 것 둘 중에 선택해야만 한다면;;; 어떤게 더 나을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죠...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추상화라는 인간 정신을 서로 다른 두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 같아요. 굳이 표현하자면 푸네스가 구체성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면, 올리버 색스의 글에 나오는 P선생은 추상성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같이 읽을 만한 재밌는 시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보르헤스전집판 표지를 디자인 하신 박상순 시인의 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입니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박상순의 시는 우리 시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는 매우 전위적이고 따라서 낯선 느낌이 드는 시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당대의 미적 인식을 부정하는 자기 파괴성을 보여준다. ─이승훈
첫 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열 번째는 전화기
6은 나무 7은 돌고래 90-91쪽, 박상순 지음
잠깐 짚어두고 갑니다. 제가 갖고 있는 보르헤스전집판본(2019년 52쇄)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187쪽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또한 그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14의 3에 있는 개와 (정면에서 보았을 때) 4의 3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다." 영어 판본과 스페인어 원문으로 해당 내용을 찾아보고 비교해본 결과(DeepL Pro를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옮겨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또한 그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3시 14분에 있던 개와 (정면에서 보았을 때) 3시 15분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오. 파본인지 오타인지 오역인지 의도인지 뭔가 이상하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송병선)에는 제대로 되어있어요. "그는 ‘개’라는 속(屬)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한국일보에 기획 기사 [AI시대, 노동의 지각변동] 시리즈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존 로크가 17세기에 모든 사물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현재에 와서 다시 시도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차이점이 있다면 그 작업이 단 한 사람의 광오한 의지로 실행되고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위 말하는 '데이터 라벨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인데요,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도 불리우는 이 작업은 AI가 학습하기 쉬운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합니다.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진화한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AI 기술 발달은 역설적이게도 제삼세계 데이터 라벨러들의 손을 빌려 학습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reCAPTCHA라는 튜링테스트를 이용해서 특정 사이트에 접근하는 사용자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과 같습니다(9개나 12개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횡단보도가 있는 이미지를 모두 고르라거나, 자전거 이미지가 들어간 타일을 모두 고르라거나 하는 식의 튜링테스트입니다). 요약하면, 오늘날 우리가 ChatGPT나 Bing을 이용해서 손쉽게 자료를 찾아보고 의견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무수한 제삼세계 데이터 라벨러들의 온라인 인형눈알붙이기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 세기 푸네스가 기획했던 허무맹랑한 시도는 오늘에 이르러서 고도로 체계화된 방식으로 재시도되고 있습니다. 이걸 흥미롭다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특집 기사 시리즈를 보세요. [한국일보-AI시대, 노동의 지각변동]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61147000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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