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2부 같이 읽어요

D-29
제가 많이 부족하여ㅜ 책을 읽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었는데 적어주신 내용을 읽다 보니 제가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저도 시간을 길게 두고 틈틈이 짧은 단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런저런 살을 덧붙이는 것 뿐이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어떤 책을 이해해야 한다고 접근하기보다 풍경을 감상한다는 자세로 좀 느슨하게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나무가 무성한 산길을 지나갈 때 전나무의 생애주기와 역사와 그 생식을 모두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소설로 넘어오면 좀 다르게 얘기할 순 있겠지만, 자세를 무너뜨린 채로 느긋하게 시간을 천천히 두고 여러번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칼의 형상~] 쭉 따라서 읽기에 별 무리가 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20세기 초반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으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존 빈센트 문'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가 왜 이러한 우회적인 이야기 형식을 택한 것인지 역시 이해할 수 있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1. [아일랜드 역사④…굶어 죽거나 이민 떠나거나]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9 2. [아일랜드 역사⑤…민족주의 대두, 거센 독립운동]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2 3. [아일랜드 역사⑥…對英 전쟁. 내전, 그리고 독립]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5
이 작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마지막의 '시점의 턴테이블'이라 불러야될까... 화자가 바꿔치기되고 이야기 시점이 반대로 탁 돌아서는 순간에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쾌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결말에 다가서기 조금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읽고 있었지만서도)
너무 재밌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1부보다는 2부에 수록된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좋습니다.
“내 흉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 어떤 비난이나 경멸도 누그러뜨리지 말고, 그 어떤 불법적인 상황도 변호하려 하지 마시오."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이상향에 가까운 미래였고, 참기 힘든 현재인 것만은 아니었다오. 그것은 하나의 씁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신화였고, 원형의 탑들과 붉은 수렁이기도 했소. 그것은 파넬의 이혼 스캔들이었고, 전생에서는 영웅들이었고, 또 다른 전생에서는 물고기 떼와 산맥이었던 황소들을 도둑질하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거대한 서사시였소…….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는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나온건지 잘 이해가 안갔어요 🤔 일부 지배층을 희화화하는 작품을 쓰긴 했지만 빈센트 문처럼 말뿐이고 행동에 나서진 않은 겁쟁이라고 암시하는걸까요? (동의하기 어려움), 일반적인 의미에서 앞의 논리에서 이어져서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므로 훌륭한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도 어떻게 보면 빈센트 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그럼 왜 굳이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었는지? 잉글랜드인이라서?) 전체 줄거리 이해에는 별 지장이 없는 사소한 의문이긴 한데, 잘 몰라서 여기 남겨봅니다.
마치 빈센트 문이 아니라 내 쪽이 겁쟁이가 된 것 같았소.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어느 동산에서 있었던 단 한 번의 불복종이 모든 인류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부당하지 않소.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도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오. 아마 쇼펜하우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나는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며,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추측컨대, '셰익스피어의 저자 논쟁'이라고 불리우는 오래된 학술적 논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부터 셰익스피어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저자로 이뤄진 익명의 작가 집단이 아니냐는 의문 제기가 있었거든요. 일각에서는 이를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관련한 유명한 저서로는 제임스 샤피로의 책이 있습니다. 제임스 샤피로는 해당 논쟁을 음모론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라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 셰익스피어 희곡을 두고 벌어진 200년간의 논쟁과 추적25년 동안 컬럼비아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구해온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원작자 여부에 대해 그렇게 많은 논의가 오갔던가?" 그리고 "음모론이 등장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가?" 에 대해서 파헤친다.
아! 그 '셰익스피어 사실 누군지 모른다'썰은 들어본 적 있어요. 이 맥락에서 이해하면 말이 좀 맞아들어가네요.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 대기근, 감자, 지배 등. 이 단어들로 축약하기엔 너무나 빈약하지만ㅜ 이 글을 읽기 전보다는 알게 된 부분이 더 늘어났고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은 입이 바짝 마른 채 벌벌 떨면서 그날 밤의 사건들이 흥미로웠다고 중얼댔소. 나는 그의 상처를 치료한 다음, 그에게 차 한 잔을 가져다주었소. 나는 그의 '상처'가 외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소.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어쩔 줄 모르면서 더듬더듬 말했소. "당신은 너무나 위험한 모험을 했습니다."
픽션들 p.15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칼의 형상] 한 남자가 자기 삶의 과오와 회한이 담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게 만들려면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칼의 형상」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아닐까 합니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했던, 돌고 돌아 자기 자신을 보는 유의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이전에, 사전 습득한 정보로 그 사람을 먼저 판단합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도덕적 판결이 내려진 부정한 인물의 말은 곱게 들리지 않을 테고, 청자는 끝까지 경청하기보다 이미 마음속으로 내린 판결을 재확인할 것입니다. 존 빈센트 문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존 빈센트 문이 처음부터 자신이 같은 아일랜드 민족을 영국군에 팔아넘긴 비겁한 스파이였음을 정직하게 밝히고 얘기를 시작했다면, 아마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경멸스러운 행동을 했음을 우회적으로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얘기할 것 같습니다. 재밌게도 존 빈센트 문은 자기 고백 속에서 1인칭의 '나'가 아니라 3인칭의 '존 빈센트 문', '그'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운 것과 달리 소설 속 화자는 1인칭이나 3인칭 중 하나에만 속하지 않습니다. 때로 1인칭은 은폐된 3인칭이며 3인칭은 은폐된 1인칭처럼 쓰여지니까요. 보르헤스는 제가 말한 내용을 다음처럼 우아하게 쓰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그 사람이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소. 마치 빈센트 문이 아니라 내 쪽이 겁쟁이가 된 것 같았소.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어느 동산에 있었던 단 한 번의 불복종이 모든 인류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부당하지 않소.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도 전혀 부당한 것이 아니오. 아마 쇼펜하우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나는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며,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픽션들 15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하기 위한 방식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너무나 성공적인 방식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임솔아 작가님의 <그만두는 사람들> 이라는 소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스포일러 같기도 하지만ㅜ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다른 부분들을 잘 구성하고 있어서 추천드려 봅니다!
책 추천 감사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논고(주제)'라는 제목에서도 보듯, 소설이라기보다는 향후 쓰게 될 소설에 대한 줄거리 형식입니다. 증조부의 삶을 추적하다가 문득 역사와 문학이 뒤섞이며 서로 모방하는 지점을 발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왜 '라이언'이라는 화자를 보르헤스가 앞세워서 줄거리를 구상했는지 읽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라이언은 증조부인 퍼거스 킬패트릭의 삶을 추적하다가 그의 죽음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봅니다. ⟨줄리어스 시저⟩와 ⟨맥베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이 아일랜드 혁명이라는 시대를 무대로 잘 조작된 한 편의 표절 연극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퍼거스 킬패트릭의 생전 동료였던 제임스 알렉산더 놀란은 셰익스피어의 주요 희극을 게일어로 옮긴 번역자였습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황병하 선생님 번역에서는 한 문장이 누락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송병선 선생님의 번역으로 대체합니다).
역사가 역사를 그대로 복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를 전율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사가 문학을 그대로 베낄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므로···. (The idea that history might have copied history is mind-boggling enough; that history should copy literature is inconceivable ···.)
픽션들 161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놀란의 작품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모방했던 장면들은 가장 ‘덜’ 극적인 부분이다. 라이언은 작가가 미래의 누군가가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그런 장면을 삽입해 놓은 것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역시 놀란이 꾸민 계획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오랫동안 끈질기게 생각한 후에, 이런 발견에 대해 침묵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웅의 영광을 기리는 책을 한 권 출판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 또한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픽션들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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